4년 8000만 달러(약 904억원). 2018년 여름 LA 클리퍼스가 포워드 토바이어스 해리스를 잡기 위해 제시한 금액이다. 그리고 해리스 측의 대답은 ‘NO’ 였다.

▶ 옥석 고르기의 희생양

3년 전인 2015년 여름 올랜도 매직이 토바이어스 해리스를 잡기 위해 제시한 금액은 4년 6400만 달러(약 723억원)였다. 샐러리캡이 대폭 상승하기 전이었던 2015~16시즌의 총 샐러리캡은 약 7000만 달러. 이를 감안하면 해리스에게 연간 1600만 달러의 계약을 안긴 것은 그 기대감이 얼마나 컸는지를 알 수 있었다.

올랜도와의 재계약 후 반 시즌만에 팀을 떠났던 해리스. ⓒAFPBBNews = News1
밀워키에서 경력을 시작했던 첫 한 시즌 반 동안 평균 11분 5점을 넣는 모습만을 보여줬던 해리스는 올랜도 이적과 동시에 36분의 출전시간을 보장받으며 17.3점 8.5리바운드를 기록하는 선수로 변신에 성공했다.

이후 시즌에서도 14.6점 7리바운드, 17.1점 6.3리바운드에 3점슛까지 장착하며 성장하는 모습을 보였고, 결국 위에 언급된 대형 계약까지 이뤄내는 것에 성공했다. 하지만 해리스의 성장과 달리 팀 올랜도의 성장은 생각보다 요원한 상황이었다.

우선 옥석 고르기 작업이 한창이던 당시의 올랜도는 드와이트 하워드가 떠난 이후 하위권을 지키며 얻은 유수의 픽으로 많은 재능들을 모았다는 평가를 받는 팀이었다. 당시 주요 자원들의 면면을 보자면 니콜라 부세비치, 빅터 올라디포, 에반 포니에, 엘프리드 페이튼 등이 우선 있었는데 이들은 해리스와 포지션이 겹치지 않는 자원들이었다.

하지만 당시 2년 차를 맞이해 자신의 주가를 올리기 시작한 애런 고든, 해리스와 계약 전 신인 드래프트에서 무려 전체 5순위로 지명했던 ‘슈퍼 마리오’ 마리오 헤조냐는 해리스와 역할이 겹쳤다. 특히 애런 고든의 경우는 6피트 9인치(약 206cm)의 신장으로 3번과 4번을 무던히 소화한다는 점에서 서로 중복되는 느낌을 줬다.

그러나 이 자원들 중 누구도 팀의 확실한 핵심으로 성장하는 모습은 보여주지 못했고 팀 성적도 5할을 밑도는 상황이 계속 됐다. 이미 신인 계약 종료 후 연장 계약을 맺은 부세비치와 해리스, 그리고 연장 계약이 눈앞으로 다가온 포니에와 올라디포 중 누군가는 정리를 해야 하는 상황이 다가왔다.

결국 올랜도가 선택한 정리 대상은 계약서의 잉크가 이제 막 말랐지만 마리오 헤조냐, 애런 고든이라는 대체 자원의 존재감이 가장 컸던 해리스였다. 그는 결국 애런 고든이 덩크 컨테스트 준우승을 통해 자신의 존재감을 뽐낸 직후인 2016년 올스타전 일정이 끝난 직후 디트로이트 피스톤스로 향하게 됐다.

▶ 꾸준하기는 했던 디트로이트 시절

해리스가 트레이드로 향했던 디트로이트는 그의 트레이드 시점에서 5할 승률을 유지하던 팀이었다. 즉 플레이오프 가시권에 있던 팀이었고 그렇기에 즉시 전력감이 될 수 있는 해리스 영입을 추진했던 것이었다. 스탠 밴 건디 감독의 2년차 시즌이던 이 시기는 그렉 먼로, 조쉬 스미스 등을 과감하게 쳐내고 센터 안드레 드러먼드를 팀의 중심으로 밀어주기 시작했던 때였다.

꾸준했지만 임팩트는 크지 않았던 디트로이트 시절의 해리스. ⓒAFPBBNews = News1
올랜도 매직 시절 밴 건디 감독은 하워드라는 센터를 두고 나머지 라인업엔 슛 거리가 긴 선수를 배치하는 형태로 재미를 봤다. 그 당시의 하워드처럼 공격 범위가 제한적인 드러먼드에게 슛 거리가 긴 해리스는 안성맞춤인 자원이었다. 마치 당시의 하워드처럼 압도적인 보드 장악력과 제한적인 공격 범위를 가진 드러먼드가 중심이었음을 생각하면 더욱 그랬다.

게다가 해리스는 맞교환의 반대급부 중 하나였던 얼산 일야소바와는 달리 개인기량으로 만들어내는 공격도 가능했던 선수였다. 결과적으로 레지 잭슨이 15.2점 6.9어시스트를 기록했지만 20%대의 3점슛을 기록하며 가장 부진했던 2016년 3월에 16.2점 3.1어시스트로 공격 조립에서 부담을 덜어주는 역할까지 해주며 팀을 플레이오프 진출로 이끄는 공신 중 하나가 됐다.

그리고 이어지는 2016-17시즌 레지 잭슨이 부상 결장과 컨디션 난조로 시즌 내내 실망스러운 모습을 보였고 결국 해리스가 필드골 시도(13.0개), 평균 득점(16.1점)에서 팀 내 선두로 나서기도 했다. 하지만 잭슨이 있을때는 여전히 26.4%의 USG%(공격 점유율) 1위였던 레지 잭슨 위주 공격 조립이 이뤄졌고 팀은 플레이오프 진출에 실패했다.

새로운 홈 구장에서 다시 시작한 2017-18시즌 초반의 디트로이트는 그 어느 때보다 기세가 좋았다. 마커스 모리스가 보스턴으로 향하고 가드 포지션의 에이버리 브래들리가 합류하며 해리스의 팀 내 입지도 확실히 좋아졌다.

개막 첫 달인 10월에는 평균 20점을 넘기는 등의 모습도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디트로이트의 팀 상황은 더 나아지지 못했다. 유망주를 모아놓고 정체에 시달렸던 올랜도와 달리 디트로이트는 구성 자원들의 전성기를 낭비하는 느낌을 주는 팀이 돼가고 있었다.

결국 디트로이트는 ‘랍 시티’ 의 해체를 진행하며 와일드 와일드 웨스트에서의 경쟁을 포기한 클리퍼스와 블록버스터 트레이드를 진행한다. 이 트레이드로 블레이크 그리핀이 디트로이트로 오게 됐고 해리스는 에이버리 브래들리, 보반 마리야노비치와 함께 클리퍼스로 향하게 됐다.

▶ 1옵션으로 가치를 입증

해리스가 합류한 클리퍼스는 기대 이상이었다. 해리스는 합류 후 19.3점 6리바운드에 3점슛 성공률 41%를 기록하며 안과 밖을 가리지 않고 좋은 모습을 보여줬다. 결국 클리퍼스는 시즌을 42승 40패로 마치며 플레이오프 진출에는 실패했지만 그가 떠난 디트로이트보다 3승을 더 거두게 됐다. 하지만 디안드레 조던이 시즌 후 떠나며 클리퍼스는 이전의 ‘랍 시티’ 시대와 작별을 고하게 됐다.

그리고 이 ‘랍 시티’ 와의 영원한 작별로 클리퍼스는 더 이상 상위권 후보가 아니게 됐다. 신인 드래프트에서 샤이 길저스-알렉산더를 지명하고 패트릭 베벌리가 부상에서 돌아왔으며 사장직을 잃은 아버지의 아들 오스틴 리버스를 마신 고탓과 바꾸며 전력의 보강 및 공백 최소화를 추구하는 움직임을 보였음에도 말이다.

하지만 미국 추수감사절이라 경기가 없는 23일(한국시간) 현재 클리퍼스는 11승 6패로 서부 컨퍼런스 3위다. 1위 멤피스와는 1게임, 2위 포틀랜드와도 0.5게임 차에 불과하다. 그들의 밑에는 디펜딩 챔피언 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 지난해 리그 승률 1위 휴스턴 로케츠 등이 있다.

그리고 이 성적 향상과 함께 가장 눈에 띄는 개인 기록 향상을 보인 선수가 바로 해리스다. 팀이 소화한 전 경기에 출전하며 21.4점을 평균적으로 기록하고 있는 그는 리바운드도 8.7개를 잡아내고 있다. 하지만 제일 눈에 띄는 것은 바로 35분의 평균 출전시간이다.

30.7분으로 30분을 턱걸이로 넘은 다리오 갈리나리를 제외한 브래들리, 베벌리, 루 윌리엄스, 몬트레즐 해럴, 샤이 길저스-알렉산더 등이 모두 25분에서 27분 정도의 출전시간만을 보장받는 클리퍼스는 로스터의 깊이를 통해 주전과 벤치가 고르게 출전시간을 배분하는 것이 이번 시즌 상승세의 주 요인으로 평가 받고 있다.

하지만 해리스만큼은 이 로테이션 원칙에서 벗어나 35분의 출전시간 동안 코트를 지키며 팀의 중심을 잡아주는 존재가 됐다. 수비에서 해리스의 부담을 덜어줄 룩 음바 아 무테가 부상이고 공격 쪽에 장점이 있는 마이크 스캇이 로테이션에 포함돼 있다고는 하지만 이 출전시간은 닥 리버스 감독이 해리스를 얼마나 신뢰하는지를 잘 보여주는 단순하지만 확실한 지표다.

닥 리버스 감독의 절대적 신뢰를 받는 해리스. ⓒAFPBBNews = News1
그렇기에 위에 언급된 해리스의 4년 8000만 달러 연장 계약 거절은 어찌보면 당연한 수순이다. 클리퍼스가 해리스에게 제시할 수 있는 최고액은 5년 1억 8800만달러(한화 약 2,126억 2,800만 원)다. 물론 아직은 시즌 초반이고 해리스에게 어떠한 변수가 찾아올지는 모른다. 하지만 적어도 현 시점까지의 모습만으로도 총액 8000만 달러를 거절한 해리스의 결정은 너무나 현명한 선택이었다. 스포츠한국 김영택 객원기자 piledriver90@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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