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뉴스 제공
[스포츠한국 김성태 기자]국보의 자존심이 뭉개졌다. 예상치 못한 급작스런 기자회견 자청, 마음을 돌린 감독과 이를 뒤늦게 말리는 총재, 그렇게 한국 프로야구 최초의 전임 감독인 선동열이 자리에서 물러났다.

선동열 국가대표 감독은 지난 14일 서울 도곡동 KBO야구회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대표팀 감독직에서 전격적으로 사퇴했다. 북받치는 감정에 준비해온 사퇴의 변을 다 읽지도 않은 채 서너마디만 하고 단상을 내려가는 선 감독의 퇴장은 가히 충격적이었다.

국정감사를 통해 정운찬 KBO 총재와의 관계가 불편해진 것은 사실이지만 정 총재가 국감에 출석한 지 한달 가까이 지났고 그 동안 별 잡음도 들리지 않았다. 그렇기에 선 감독의 기습적인 사퇴는 그가 기자회견장을 빠져나가는 순간부터 상당한 후폭풍을 몰고왔다.

선 감독은 지난 8월 자카르타 팔렘방 아시안게임 대표팀 선수에 병역특례 논란이 되는 선수를 승선시켰다는 의혹을 받았다. LG 오지환, 삼성 박해민이 그 대상이었다.

시작부터 틀어졌다. 선수들도 웃지 못했다. 막상 대회에 가서도 실업선수 위주였던 대만에 패하면서 여론의 화살이 빗발쳤다. 겨우 금메달을 따내긴 했지만, 경기 내용 자체도 썩 좋지 못했다.

선 감독이 국가대표 감독으로 거둔 첫 우승, 하지만 아무도 축하하지 않았다. 결국 병역특혜 논란에 발목이 잡힌 선 감독은 지난 10월 10일, 국정감사 증인으로 출석했고 홀로 모든 비난을 떠안았다.

"우승이 그렇게 어렵지 않다"고 말하는 더불어민주당 손혜원 의원의 발언에 선 감독의 표정은 실망감, 그리고 어두움 그 자체였다. 그렇게 `국보'라 불렸던 선 감독은 죄인이 된 심정으로 고개를 떨궜다.

구겨진 국보의 자존심, 그렇다면 선 감독은 왜 뒤늦게 기자회견을 자청해 감독직을 내려놓았을까?

스포츠코리아 제공
철저히 혼자였던 선동열, 귀를 막은 정운찬

선동열 감독은 사퇴 이유로 크게 두 가지를 언급했다. 첫 번째는 "우승을 하는 것이 그렇게 어렵지 않다"고 말한 손혜원 의원의 발언, 두 번째는 국감에서 보여줬던 선 감독의 공로에 대한 정운찬 KBO 총재의 폄훼하는 듯한 반응이었다.

정운찬 총재가 올해 초 한국 야구의 수장에 올랐을 때, 그에게 거는 기대는 상당했다. 국무총리 출신이자 서울대 총장, 그리고 메이저리그 시구에 야구 칼럼도 썼던 그야말로 '야구광'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선 감독에 이어 지난달 23일 국정감사에 출석한 정 총재의 발언은 야구인들을 실망시키기에 충분했다. 선수 선발 과정에 대한 물음에 그는 "TV로 야구를 보고 선수를 뽑은 것은 선동열 감독의 불찰이었다"고 대답했다.

정 총재의 냉소적인 발언은 이어졌다.

"전임 감독제에 찬성하지 않는다. 국제 대회가 자주 있지 않고 상비군 제도도 없기에 반드시 필요하지 않다."

정운찬 총재와 선동열 감독의 거리감은 상당히 멀어보였다. 총재가 국가대표 감독에 힘을 실어주지는 못할 망정, 오히려 전임 감독 제도에 대한 부정적인 입장과 선 감독의 선수단 운용 방식에 문제를 제기한 것은 누가 봐도 두 사람의 소통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

국감 발언 이후 비난 여론이 들끓자 정 총재는 부랴부랴 자신의 발언을 해명했지만 이미 야구계는 차갑게 돌아선 뒤였다.

선 감독과 정 총재의 소통 부재는 아시안게임 이후의 행보를 봐도 알 수 있다. 정 총재는 지난 9월 12일 기자회견을 열고 아시안게임 병역면제논란에 대한 입장을 밝혔다.

선수 선발에 대한 문제점을 언급한 그는 한국야구미래협의회를 통해 이를 해결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이 과정에 정 총재와 선 감독의 교감은 없었다. 총재가 선수 선발과 관련해 임의대로 판단하고 움직였다고 볼 수 있다.

당시 현장에서 선 감독의 생각에 대한 질문이 나오자, 정 총재는 "앞으로 만나서 논의할 계획을 갖고 있다"라고 언급했다. 취임 이후 공식적인 자리 빼고는 독대를 해본 적이 한번도 없었던 점을 감안하면 무성의한 대답이었다는 것이 야구인들은 지적이다.

감독이 먼저 총재에게 독대를 청하기는 어렵다. 대표팀 감독이라는 자리가 중책이라고 생각했다면 총재가 나서서 관심을 표명하는 것이 맞다. 또한 이런 상황에서 총재와 대표팀 감독이 현안을 논의할 수 있는 자리를 만들지 못한 총재 보좌진들의 정무 감각도 아쉬웠다.

결국 정 총재는 국감에 불려나가 진땀을 흘리며 국회의원들의 일방적인 호통을 온몸으로 받아냈던 대표팀 감독을 다독이기는커녕 방치한 모양새가 됐다. 철저히 혼자이자 외톨이였던 선동열, 그리고 정운찬에 실망한 야구계였다.

연합뉴스 제공
선동열 감독의 사퇴 시점은 왜 지금인가?

선수 선발 과정에서는 특혜 논란이 문제가 됐지만, 그와는 별개로 야구인들은 선동열 감독이 금메달을 따냈음에도 왜 그런 망신을 당하면서까지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지 의아해했다. 선 감독도 그런 목소리를 알고 있었다.

선 감독에게는 두 번의 사퇴 기회가 있었다. 아시안게임 귀국 직후의 기자회견에서 사퇴를 발표하든지, 아니면 국감에 출석한 뒤에 입장 표명을 했더라며 모양새가 그나마 나았을 것이라는 게 야구인들의 생각이었다.

그는 국정감사에 출석해 뭇매를 맞았다. 사퇴를 하든지 사과를 하든지, 손혜원 의원은 선 감독을 궁지로 몰아넣었다. 그럼에도 움직이지 않았다.

그러나 국정감사 한 달이 지나서야 사퇴했다.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깔끔하게 털고 일어섰다. 독대를 마친 뒤 정 총재가 복도에 나와서까지 말렸지만 선 감독은 미동조차 없었다.

그는 사퇴 전문에서 "아시안게임 3회 연속 금메달이었음에도 변변한 환영식 조차 없었다. 금메달의 명예, 선수들의 자존심을 지켜주지 못해서 답답한 심정이었다"고 말해 서운한 감독을 여과없이 드러냈다.

이어 "그때 결심했다. 선수를 보호하고 메달의 명예를 되찾는 적절한 시점에 사퇴를 하기로 했다"면서 국가대표 야구 감독이라는 명예스러운 자리를 지키고 싶었지만, 그렇게 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선 감독은 국정감사가 끝나고 곧바로 사퇴했을 경우, 자신의 행동이 감정적인 대응으로 비쳐질 것을 우려해 일부러 시간을 끌었다는 것이 주변의 전언이다.

물론 그는 사퇴의 변에서 '야구인의 대축제인 포스트시즌이 끝나기를 기다렸다. 이제 때가 됐다'며 사퇴 시기를 저울질 하고 있었다고 밝혔다. 즉흥적인 결단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미 전문 곳곳에 자신의 복잡한 감정을 드러내고 있다.

그는 "불행히도 KBO 총재께서도 국정감사에 출석해야만 했다. 전임감독제에 대한 총재의 생각을 비로소 알게 됐다. 나의 사퇴가 총재의 소신에 부합하리라 믿는다"라고 적었다. 듣기에 따라 비아냥이 섞인 뼈 있는 메시지였다.

소통의 부재도 부재지만, 선 감독은 정 총재의 발언과 행동에 상당한 실망했던 것으로 보인다. 깜짝 발표가 KBO의 책임론으로 번질 도화선이 되리라는 것을 충분히 예견되는 상황에서 이 방식을 택했다는 것은 정 총재를 겨냥한 함축적인 퍼포먼스로 해석해도 무리는 없을 것 같다.

당장 KBO는 국가대표 감독 자리가 공석이 되는 난감한 상황을 맞이했다. 반대로 선동열 감독은 자신의 자리와 안위도 안위지만 야구인의 명예, 그리고 야구에 대한 자신의 존재감을 지켜내는데 일정 부분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아무도 곁에 없고 아무도 도와주지 않는 고독하고 외로운 마운드에 다시 선 선동열이다. 그리고 현역시절 수많은 타자의 간담을 서늘하게 했던 `무등산 폭격기'의 강력한 돌직구, 그 돌직구를 선동열은 다시 한번 힘차게 던졌다.

-스한 위클리 : 스포츠한국은 매주 주말 ‘스한 위클리'라는 분석기사를 통해 스포츠 관련 주요사안에 대해 깊이 있는 정보를 제공합니다. 이 기사는 종합시사주간지 주간한국에도 동시 게재됩니다.

저작권자 © 스포츠한국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