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계현 KIA 단장. 스포츠코리아 제공
[스포츠한국 김성태 기자]KBO리그 지형도가 확실히 달라졌다. 대기업을 모체로 하는 한국프로야구의 특성상 대체로 임원 출신들이 야구단을 이끌었다.

하지만 시대가 바뀌고 메이저리그식 구단 운영이 서서히 스며들면서 예전에는 상상하기 어려웠던 인사가 이뤄지고 있다.

모기업 임원들이 야구단에 왔을 때는 조직을 안정적으로 관리하고 운영하는 것이 최우선이었다.

하루라도 빨리 모기업 본부로 돌아가고픈 마음이 컸다. 야구단으로 인사발령을 받으면 마치 좌천이라도 된 분위기였다. 잠시 머물다 가는 곳, 그저 별 탈 없이 모기업 이미지에 먹칠하지 않는 수준의 야구단 운영이 전부였다.

하지만 스포츠산업의 규모가 커지고 시장이 활성화 되면서 프로야구는 국내 최고의 인기스포츠로 자리를 잡았다. 지난 2016년 833만 9577명의 관객이 야구장을 찾으면서 한국 프로스포츠 사상 최초로 800만 관중을 돌파했고 작년에는 840만 688명이 야구를 즐겼다. 올해도 800만 관중 돌파에 성공했다.

이처럼 프로야구가 새로운 문화콘텐츠로 자리 잡으면서 가장 본질적인 경기력 향상이 구단의 중요한 요소로 자리잡게 됐다. 그저 관리만 하던 시대에서 이제는 선수로 뛰어본 경험이 있는, 결국 현장을 잘 아는 전문가가 팀을 이끄는 것이 효율적이라는 판단이 섰다. 프로야구단 10개 구단이 앞다투어 선수 출신을 단장 자리에 앉히는 이유다.

차명석 LG 단장. 스포츠코리아 제공
10개 팀 중 7개 팀이 선수 출신 단장

유행처럼 번지는 느낌도 있었지만, 이제는 확실히 자리를 잡았다. 2018년 포스트시즌이 진행되는 사이, 가을야구에 초청받지 못한 야구단은 줄줄이 인사를 단행했다. 감독 교체도 많았지만 새롭게 단장으로 올라선 인물도 있었다.

올해 꼴찌에서 탈출, 리그 9위로 마감한 KT는 김진욱 감독이 성적 부진을 이유로 자진 사퇴했다. 동시에 KT는 이숭용 1군 타격코치를 단장으로 선임하는 파격인사를 단행했다.

지난 1994년 태평양에 입단, 프로 생활을 시작했던 이 단장은 현대, 히어로즈에서 선수 생활을 이어갔고 은퇴 후에는 2014년 창단 시즌부터 KT와 함께 했다.

1군 타격코치가 단숨에 단장 자리에 올라서는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작년까지 수석코치로 있던 KIA 조계현 단장이 자리에 올라선 것도 놀라운 일이었지만, 이 단장의 선임은 그 이상의 충격이었다.

하위권을 전전하는 팀의 의식을 바꾸고자 젊은 단장, 새로운 바람을 일으킬 수 있는 인물로 골랐다는 것이 KT가 말하는 선임 배경이었다.

올 시즌, 류중일 감독의 지휘 하에 큰 기대를 받았던 LG도 인사가 있었다. 작년까지 감독으로 있었던 양상문 단장이 롯데 사령탑으로 이동하면서 단장 자리가 공석이 됐다. LG는 과거 팀 수석코치로 있었던 차명석 MBC스포츠플러스 해설위원을 단장으로 데려왔다.

양상문 전임 단장의 경우, LG 감독으로 뛰면서 팀을 두 번이나 포스트시즌에 진출 시킨 공이 있었지만, 2017시즌에 6위를 기록했음에도 단장으로 선임되면서 여론의 지지를 받지 못했다.

그에 비해 1992년 2차 1순위로 LG에 입단해 선수와 코치로 활동한 뒤 2016년 잠깐 KT로 갔다가 해설위원을 했던 차명석 단장이 임명이 됐다.

뿔뿔이 흩어진 LG 특유의 팀 컬러를 다시 하나로 묶기 위해서 LG 출신 단장의 필요성이 대두가 됐고, 투수코치 시절에도 팀 마운드 재건 및 강화에 큰 역할을 했었다는 평가가 많았던 차 단장이었다.

차명석 신임 단장은 "LG 선수 및 코치 출신인 만큼 선수단과의 원활한 소통을 통하여 성과를 창출하고 장기적으로 명문 구단이 되기 위한 초석을 다지는데 최선을 다하겠다"라며 친정팀 복직 소감을 밝히기도 했다.

올해 창단 처음으로 꼴찌를 했던 NC의 경우, 김경문 감독이 시즌 도중 사퇴하면서 유영준 단장이 감독 대행을 맡아 급하게 불을 껐다. 시즌이 끝난 후, NC는 이동욱 전 수비코치를 새 감독으로 선임함과 동시에 언론인 출신으로 구단의 창단 프런트 멤버인 김종문 단장을 승진시켰다.

이렇게 프로야구 10개 구단 가운데 KIA 조계현, 두산 김태룡, 한화 박종훈, LG 차명석, SK 염경엽, KT 이숭용, 넥센 고형욱까지 무려 7개 팀이 선수 출신 단장을 두게 됐다. 프런트 경력이 상당한 홍준학 삼성 단장과 그룹 인사인 롯데 이윤원 단장, NC 김종문 단장까지 3개 구단만 비선수 출신이다.

이숭용 KT 단장. 스포츠코리아 제공
야구를 잘 아는 단장, 명과 암

시작은 두산이었다. 선수 출신이지만, 오랜 기간 프런트로 활약하며 내공을 다진 김태룡 단장의 지휘 하에 두산은 2015년과 2016년 2년 연속 한국시리즈 우승을 차지했다.

김 단장은 두산을 강팀으로 만든 일등공신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야구를 아는 단장이 있기에 어설픈 영입 대신 육성에 초점을 맞추며 팀의 청사진을 그렸고, 이는 현재 두산의 자랑거리인 '화수분 야구'의 시초가 됐다.

하지만 육성에 그치지 않고 2015시즌에 롯데에서 80억이 넘는 큰 금액을 주고 장원준을 데려오면서 팀 전력의 마지막 퍼즐을 완성, 우승에 결정적인 기여를 하기도 했다. 야구를 아는 단장, 선수 출신 단장, 결국 타 팀들도 이를 벤치마킹하면서 프로야구 지형도 역시 크게 달라졌다.

그러나 선수 출신 단장이 무조건 성공한다는 보장은 없다. 그저 유행처럼 너도 하니까 나도 한다는 생각의 단장 선임은 안하는 것이 더 낫다.

롯데 감독으로 간 양상문 단장이 대표적인 사례다. 시작부터 틀어진 선임, 그리고 프런트 입김이 타 팀에 비해 유독 강한 LG에서 양 단장의 비중은 크지 않았다.

대대적인 선수 물갈이를 할 때도, 양 단장은 팬들의 비난을 감수하는 샌드백 역할에 지나지 않았다. 선수 출신이기에 오히려 선수를 알고 더욱 단호하게 정리할 수 있다는 점 때문에 선수들의 반발도 존재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렇게 프런트에서의 역할이 점점 약해지자 양 단장은 미련없이 1년 만에 팀을 떠나 롯데로 갔다.

프런트 경력이 많다면 단장직 적응이 빠르지만 선수 출신 단장의 경우, 언제든 현장 지도자로 다시 돌아갈 수 있다는 생각을 할 수 있다. 과거 LG의 송구홍 단장 역시 자리를 내려놓고 2군 감독으로 이동하기도 했고, SK 염경엽 단장 역시 본인의 의사와는 별개로 힐만 감독에 이은 차기 사령탑으로 하마평에 오르고 있다.

이는 자연스레 프런트와 현장의 역할 구분을 애매하게 만든다. 단장과 감독이 서로 충돌할 여지가 생길 수도 있고 자칫 잘못되더라도 현장으로 돌아가면 된다는 생각이 있기에 장기적으로 구단의 미래를 보고 이끌어 가기에는 부적합하다는 평가도 없지 않다.

여기에 야구는 잘 알지만 구단 운영이나 스포츠 산업과 관련된 홍보, 마케팅 전략과 같은 분야에서는 상대적으로 전문성이 떨어질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김태룡 단장이나 염경엽 단장의 경우는 프런트 경험도 착실히 쌓으면서 그 자리에 올랐지만, 현장은 알지만 프런트는 익숙하지 않은 인물이 어느날 갑자기 프런트의 수장이 되는 경우 구단 운영이 원활하지 않을 수 있다.

현장과의 적절한 소통과 육성에 대한 이해, 선수단 관리에 있어서는 선수 출신 단장이 갖는 장점은 크다. 반면 프런트가 갖고 있는 역량을 키워내고 발전시키는데 있어서는 부족할 수 밖에 없다. 명과 암이 명확한 선수 출신 단장이다.

그럼에도 7개 구단들이 선수 출신을 선택했다. 달라진 KBO리그 단장 지형도, 내년 시즌에 웃을 수 있는 팀과 단장은 어디일지 두고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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