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한국 이재호 기자] 1988 서울 올림픽. 누구도 예상치 못했던 남자 유도 -65kg에서 ‘언더독’으로 여겨졌던 호리호리한 동양인이 폴란드의 야누시 파브워프스키를 꺾고 금메달에 기뻐했다. 한국 올림픽 역사상 최고 성적인 4위-금메달 13개 중 하나는 아무도 주목하지 않았던 이경근(56·한국 마사회 감독)에게서 나왔다.

9월 17일은 1988 서울 올림픽 개막식이 열린지 딱 30년이 되는 날. 13개 금메달을 따낸 올림픽 영웅들은 대부분 현장을 떠나 사업을 한다거나(레슬링 김영남), 사우디 왕실 양궁 교관(양궁 김수녕)으로 재직 중이거나 해설위원을 하는(복싱 김광선) 등 각자의 또 다른 인생을 살고 있다.

하지만 유도 한국 마사회 이경근 감독은 2008년부터 10년간 유도 실업팀 한국 마사회 감독을 맡아 최민호(2008 베이징 올림픽), 김재범(2012 런던 올림픽)을 지도해 올림픽 금메달리스트로 만드는데 혁혁한 공을 세웠다. 올림픽 금메달리스트가 올림픽 금메달리스트를 만든 셈이다.

88 서울 올림픽 금메달 멤버 중 현정화 한국 마사회 탁구 감독, 유남규 삼성생명 탁구 감독도 30년이 지난 지금도 현직에서 몸을 담고 있다. 하지만 이경근 감독처럼 올림픽 금메달리스트를 2명이나 만들고 최근 열린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에서 다크호스로 여겨진 김성민을 금메달리스트로 만들어낼 정도로 꾸준한 지도력과 성과를 보인 감독도 드물다.

이 감독은 “그저 같은 유도인으로써, 그리고 후배들을 아들과 딸 대한다는 생각으로 가르쳤는데 벌써 마사회 감독한지 10년이 훌쩍 지났다”며 특유의 호방한 웃음을 보이며 “제가 잘해서라기보다 워낙 재능 있는 선수들이 알아서 열심히 하다 보니 금메달을 목에 걸었을뿐”이라며 겸손해했다.

1988 서울 올림픽에서 금메달 따낼 당시의 이경근. ⓒ국가기록원
하지만 유도계에서는 ‘올림픽 금메달리스트는 확실히 다르더라. 김재범은 원래 잘하던 선수가 맞지만 이 감독을 만나 제대로 유도에 눈을 떴다. 김재범이 2008 올림픽 은메달리스트에서 2012 올림픽 금메달리스트로 거듭난 것에 이 감독의 지도를 빼고 논하긴 힘들다’고 평하기도 한다.

88 서울 올림픽 영웅으로써 자만하거나 다른 곳에 눈을 돌릴 법도 하지만 이 감독은 2005년 코치로 마사회에 들어왔다 2008년 지도력을 인정받아 내부 승격으로 감독직에 올라 10년간 한팀만 지도 중이다. 한국 스포츠 어느 팀을 통틀어도 이정도로 한 팀에서 오랫동안 지도력을 인정받아 감독직을 유지 중인 이는 찾아보기 힘들다.

자신이 올림픽 금메달리스트이기에 누구보다 금메달에 근접하는 방법을 알기에 그 노하우를 후배이자 선수들에게 아낌없이 지도 중이다. 성과도 분명하다.

이 감독은 소속팀 감독으로써 최민호를 2008 베이징 올림픽 금메달리스트로 배출했다. 김재범은 2010 광저우 아시안게임, 세계 유도선수권, 2011 세계유도선수권, 2012 런던 올림픽, 2014 인천 아시안게임 금메달리스트로 만들었고 조준호 역시 2011 세계 유도선수권과 2012 런던 올림픽 동메달리스트로 만들었다.

이외에도 인천 아시안게임에서 이규원을 금메달리스트로 배출해냈고 최근 열린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에서도 남자부 김성민은 금메달, 여자부 김민정은 은메달을 목에 걸기 물심양면 힘썼다.

2008 베이징 올림픽 당시 제자 최민호(왼쪽), 김재범(왼쪽에서 세번째) 등과 함께한 이경근 감독
국제대회 뿐만 아니라 국내 대회에서도 2010 그래미컵 전국 유도대회에서 심지호와 장진민을 우승시켰고 2015 전국실업선수권에서는 김임환, 이희중을 우승시키고 올해에는 전국실업유도최강전과 청풍기전국유도대회에서 한국마사회팀을 단체전 우승으로 이끌기도 했다. 단체전 우승이야말로 특출난 개인이 아닌 실력이 얼마나 고르냐로 판단되기에 감독 지도력의 바로미터로 평가받기도 한다.

“30년전 금메달의 순간도 지금도 눈에 선하다”는 이경근 감독. 1962년생으로 이제 현역 지도자로 매트에 남아있을 날도 멀지 않은 이 감독은 “최민호, 김재범에 이어 다시금 올림픽 금메달리스트를 배출해 내가 누렸던 30년전의 영광과 승리의 기쁨을 꼭 후배들이 맛보게 해주고 싶다”는 일념을 내비쳤다. 이 감독은 2020 도쿄올림픽까지 내달릴 것을 다짐하며 1988 서울 올림픽 30주년의 9월을 여느 때와 다름없이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저작권자 © 스포츠한국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