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레이오프는 결국 NBA 파이널 우승팀에게 모든 초점이 맞춰지지만 우승팀이 아니더라도 큰 조명을 받을 수 있는 무대다. 개인 선수로서 정말 빛나는 활약을 펼친다면 가능한 일이다.

지난 2017~18시즌 플레이오프의 경우 신인 도노반 미첼이 그 수혜를 톡톡히 봤다. 유타 재즈가 2라운드까지 진군하는 동안 미첼이 보여준 당돌한 플레이는 NBA 팬들의 눈길을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그런데 그 슈팅 가드 미첼의 고득점 활약에 대한 비교 대상이 마이클 조던이었다. 신인 가드로서 첫 플레이오프 4경기 득점 합산으로 조던(117득점) 다음으로 높은 110득점을 기록했기 때문이다. 즉 조던은 신인 가드로서 가장 높은 플레이오프 첫 4경기 득점을 올렸다. 전체 포지션에선 역대 4위다.

이렇게 조던은 신인 때부터 주목 받는 플레이오프 활약을 남겼다. 커리어 첫 3시즌 연속 1라운드에서 물러났고 4년차부터 3시즌 연속 같은 팀에게 막혔음에도 조던은 NBA 팬들의 이목을 집중시키는 모습을 보여줬다.

이에 조던이 첫 우승을 거두기 전까지 참여했던 플레이오프 활약들에 대해 조명해보고자 한다. 3년차부터 줄곧 시즌 득점왕에 올랐고 4년차엔 MVP이자 올해의 수비수였던 조던은 플레이오프에 들어 어떤 숫자들을 남겼을까.

이미 1980년대에도 드리블 후의 점프슛은 돌파 득점과 더불어 조던의 날카로운 무기였다. ⓒAFPBBNews = News1
▶신인 플레이오프 평균 득점 역대 4위

앞서 언급했듯 1984~85시즌 신인 조던은 플레이오프에서 4경기 만에 물러나기 전까지 총 117득점, 평균 29.3득점을 올렸다. 이는 역대 신인들의 플레이오프 평균 득점 중 4위에 올라 있다.

조던 앞에 있는 선수들은 카림 압둘자바(35.2득점), 윌트 체임벌린(33.2득점), 조지 마이칸(30.3득점), 모두 NBA 역사 속 전설적인 센터들이다.

시즌 동안 51.5% 야투율로 평균 28.2득점을 올렸던 조던은 커리어 첫 플레이오프 4경기 동안 43.6% 야투율을 통해 29.3득점을 올렸다. 3차전 유일한 승리에서는 46.2% 야투율로 가장 높은 35득점을 올렸다.

플레이오프 1라운드가 5전3선승제였던 당시 조던은 커리어 첫 3시즌 플레이오프 동안 단 1승만 맛봤다. 2년차와 3년차에서는 2시즌 연속 래리 버드의 보스턴 셀틱스에게 3연패 스윕을 당했다.

사실 조던이 초창기부터 플레이오프에서 뛸 수 있던 데에는 당시 리그 규모가 작았던 것이 컸다. 1983~84시즌부터 현재처럼 컨퍼런스 당 8개 팀이 진출하는 제도가 시작됐는데 23개 팀 규모에서는 살짝 무리인 감이 있었다. 컨퍼런스 8위면 끝에서 4번째 또는 5번째 성적이었기 때문이다.

조던의 3년차까지 시카고 불스는 5할 승률을 넘긴 적이 없다. 심지어 1985~86시즌에는 30승52패(승률 36.6%) 성적으로도 8번 시드로 플레이오프에 진출했다. 하지만 그런 환경 속에서 2년차 조던은 엄청난 플레이오프 숫자를 기록해냈다.

▶역대 최고 플레이오프 경기 득점, 평균 득점

30년도 더 지난 현재까지도 깨지지 않고 있는 플레이오프 경기 득점 기록을 1985~86시즌 1라운드 2차전에서 조던이 세웠다. 63득점, 역대 플레이오프 경기 개인 득점 중 유이하게 60득점을 넘긴 기록이기도 하다.

종전 기록은 1961~62시즌 엘진 베일러가 남겼던 61득점이었다. 그로부터 24년이 흐른 후 조던이 경신했다. 다만 여기엔 2차 연장까지 갔던 혈전이 큰 이유로 작용했다. 4쿼터까지 54득점을 올린 후 1차 연장에서 5득점, 2차 연장에서 4득점을 보탰다.

경기 동안 조던은 41회 야투 시도 중 22개(53.7%) 성공, 자유투 21구 중 19개(90.5%) 성공으로 63득점을 올렸다. 야투 시도는 모두 2점 야투였다.

당시 조던은 막기 힘든 경지에 있었다. 보스턴의 주력 선수들 모두가 돌아가며 막아도 넣었기 때문이다. 41회 야투 시도 중 상대의 저항을 받지 않은 시도는 3회뿐이었다. 드리블 치는 과정에서 던진 점프슛에서는 22회 시도 중 12개를 성공시켰다.

경기는 135-131로 끝내 보스턴이 승리했다. 마침 1985~86시즌의 보스턴은 버드-케빈 맥헤일-로버트 패리쉬 3인조의 힘을 크게 받으며 구단 역사 16번째, 21세기 전 마지막 우승을 거뒀던 팀이다.

이런 보스턴을 상대로 63득점 고군분투를 펼쳤던 조던은 바로 다음 3차전에서 평소보다 적은 득점 참여도를 보여주면서 19득점에 머물렀다. 그래도 그 2차전 활약은 해당 시즌 초 발 골절 부상으로 4개월 넘게 결장했다 돌아온 선수가 보여준 놀라운 사건이었다.

이런 덕분에 1985~86시즌 플레이오프에서 조던은 평균 43.7득점, 역대 최고의 평균 득점을 남기게 된다. 단 3경기를 통해 남긴 아쉬움이 있지만 그만큼 63득점 경기의 힘이 컸다.

역대 플레이오프 개인 평균 득점 21위 안에 조던의 플레이오프 시즌들이 7시즌 있다. 여기에서 우승을 차지하기 전인 2년차부터 6년차까지 5시즌이 모두 들어가 있다. 플레이오프 득점 숫자에 있어선 정말 큰 획을 그은 우승 전의 조던이었다.

▶더 샷, 클러치 해결사로서의 증명

조던이 시즌 MVP이자 올해의 수비수에 선정된 1987~88시즌 시카고는 50승32패(승률 61.0%)로 동부 컨퍼런스 3번 시드로서 플레이오프에 진출했다. 조던에게 첫 상위 시드 진출이었다.

그리고 1라운드에서 맞이한 클리블랜드 캐벌리어스 상대로 3승2패로 승리한 후 2라운드에서 디트로이트 피스톤스에게 1승4패로 물러났다.

홈 팀이 모두 승리한 당시 1라운드 시리즈에서 조던은 야투율 55.9%에 평균 45.2득점으로 놀라운 활약을 펼쳤다.

그 바로 다음 1988~89시즌 플레이오프 1라운드에서는 시카고와 클리블랜드가 서로 입장이 바뀌어 만났다. 클리블랜드가 3번 시드, 시카고가 6번 시드였다. 클리블랜드에게는 복수의 기회였다.

마침 2승2패에서 맞이한 5차전, 클리블랜드의 홈경기였다. 승부는 경기 끝으로 가면 갈수록 알 수 없었다. 서로 치고받으며 종료 3분 안 동안 6회의 리드 교체가 일어날 정도였다.

종료 6초전에 시작한 클리블랜드의 크레이그 일로가 3초를 소비하며 돌파 레이업을 성공시켰고 시카고는 99-100으로 뒤지게 된다. 이제 타임아웃 후 3초를 남기고 시작하는 시카고의 공격, 인바운드 패스를 받은 조던이 2회의 드리블로 자유투 라인 근처로 진입한 뒤 점프슛을 던져 성공시켰다.

바로 전에 득점을 성공시켰던 일로의 저항 너머로 성공시킨 점프슛이었기에 더욱 인상 깊은 결승 버저비터였다. 조던의 ‘더 샷(The Shot)’은 1997~98시즌 6번째 우승 때 나온 점프슛으로 유명하다. 하지만 그보다 먼저 나온 더 샷이 이때의 역전 결승 득점이었다.

하위 시드로서 커리어 첫 업셋을 이룬 조던은 그 1라운드 동안 야투율 51.8%로 평균 39.8득점 5.8리바운드 8.2어시스트 3스틸이라는 대단한 기록을 작성했다. 그리고 2라운드에서도 야투율 55.0%, 평균 35.7득점 9.5 리바운드 8.3어시스트 2.5스틸 1.3블록을 기록한 조던의 힘을 받아 시카고는 컨퍼런스 파이널 진출을 이룬다.

하지만 전 시즌 2라운드에서 시카고를 멈추게 했던 디트로이트가 또 다시 막아선다. 그 유명한 ‘조던 룰(Jordan Rules)’을 동원하면서 조던을 야투율 46.0%, 29.7득점으로 막아냈다.

시카고가 리그를 지배하는 팀이 되기까지 조던의 완숙과 함께 1987년 NBA 드래프트 5순위 스카티 피펜의 성장도 기다려야 했다. ⓒAFPBBNews = News1
▶조던 농구 커리어 최대의 숙적 디트로이트

1987~88시즌부터 3시즌 연속 시카고의 플레이오프 진군은 디트로이트 앞에서 막혔다. 2라운드 한 번, 컨퍼런스 파이널 연속 두 번이었다. 위안이라면 1승부터 3승까지 시즌마다 디트로이트 상대 승리가 차례로 늘어갔다는 점이다.

당시 디트로이트와의 시리즈마다 조던은 본인의 플레이오프 평균 기록보다 덜한 숫자를 기록했다. 1987~88시즌 및 1988~89시즌 플레이오프에서 각각 평균 36.3득점 및 34.8득점을 기록했다면 디트로이트 상대로는 각각 27.4득점 및 29.7득점으로 30득점 아래에 머물렀다.

1989~90시즌 플레이오프에서는 디트로이트 상대로 평균 32.1득점을 올렸지만 플레이오프 전체 평균 36.7득점에 비하면 역시 떨어지는 성과였다. 매번 플레이오프 전체 동안 야투율 50%를 넘겼던 조던이지만 디트로이트 상대로는 넘기지 못하기도 했다.

여기에는 디트로이트가 조던 상대로 들고 나온 수비 전략, 조던 룰이 큰 몫을 했다. 조던 룰이란 조던의 움직임과 위치에 대해 어떻게 수비 움직임을 가질 것인지 약속한 대응책이었다.

궁극적인 그림은 결국 조던 한 명에 대한 집단적인 압박이었다. 철저한 맨투맨 수비 규정의 시대였지만 모두가 원래의 자기 담당과 적절한 간격을 두며 늘 조던의 움직임에 맞춰 움직이는 지역 방어에 가까운 전략이었다. 때문에 조던이 득점을 위해 도약하는 순간 4명의 수비수가 에워싸는 그림들도 나왔다.

여기에다 조던의 컨디션을 떨어뜨리는 거친 움직임들도 곁들여졌다. 드리블 시의 손 접촉은 기본이고 심지어 아예 뒤에서 날아 덮치는 장면들도 나왔다. 조던이 볼 없이 있을 때 툭툭 치고 지나가는 모습들도 있었다. 현재의 기준에서는 당연히 심판 휘슬이 나오거나 플레이그런트 파울이 지적될 만한 상황들이다.

이런 상황 속에 처한 조던을 구해내기엔 당시 시카고 팀의 위력은 떨어졌다. 디트로이트가 교묘히 지역 방어 수준의 집단적 움직임을 가질 수 있던 데에는 시카고의 외곽 지원이 부족했던 이유도 있었다. 조던에 대한 집중 견제로 혜택을 입은 시카고 선수가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결국 1990~91시즌 시카고는 디트로이트 상대로 4승을 챙기게 됐다. 그리고 디트로이트를 꺾고 올라간 후 시카고와 조던을 막은 플레이오프 팀은 나오기 힘들었다. 즉 디트로이트는 조던의 성장에 있어 큰 벽도 됐지만 큰 원동력이 되기도 했다.

그리고 매번 고생한 것은 아니었다. 3시즌 플레이오프 동안 디트로이트 상대로 총 18경기를 치르면서 야투율 50% 이상에 40득점을 넘긴 3경기가 있었고 모두 승리했다. 조던이 53.1% 야투율 이상 기록한 4경기 모두 승리하기도 했다.

정규 시즌과 마찬가지로 플레이오프에서도 조던의 커리어에 있어 큰 숫자들은 대개 우승 전에 나왔다. 그만큼 젊은 시절 조던은 감출 수 없는 송곳과 같은 위력을 발휘하고 있었다. 그리고 다음 [NBA현미경]에서는 젊은 시절 조던이 이룬 첫 번째 3연속 우승에 대해 집중 조명해보고자 한다. 스포츠한국 이호균 객원기자 hg0158@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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