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대의 스타 마이클 조던을 현재까지 와서도 농구 황제라 부르는 데에는 6개의 우승반지, 두 번의 3연속 우승이 결정적이다.

1963년생으로서 생후 28년115일째에 맞이한 첫 우승부터 생후 35년117일째에 맞이한 6번째 우승까지 조던은 수많은 전 세계 NBA 팬들에게 진정한 승리자로서 인정받았다. 그렇다면 NBA 파이널 우승과는 거리가 있었던 1989~90시즌 27세까지의 조던은 어떤 선수였을까.

그때의 조던을 두고 승리보다 자신의 농구에 더 집중했던 선수라는 평도 있었다. 이런 평판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작용했다. 하나는 조던의 개인 기록이 정상의 범주를 넘어섰다는 것. 그리고 또 하나는 팀 성적이 그렇게 높지는 않았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당시의 조던은 정상의 범주에서 얼마나 벗어나 있던 것일까. 조던 최고의 파트너라 불리는 스카티 피펜을 만나기 전까지, 매번 조던의 우승과 같이 했던 필 잭슨 감독을 만나기 전까지 조던은 팀 성적과 우승이란 잣대를 떼고 봤을 때 정말 대단했던 선수였을까.

1년차 1984~85시즌부터 6년차 1989~90시즌까지 조던이 남겼던 숫자들을 통해 돌아보고자 한다.

운동능력, 스킬, 승부근성 등 조던이 초창기 보여줬던 자질들은 현재까지도 모든 NBA 팀들의 최우선 중요 스카우팅 항목으로 꼽힌다. ⓒAFPBBNews = News1
▶올스타 선발, 올NBA 팀, 1970년 이후 최고 득점을 남긴 신인

NBA 커리어 15시즌 중 조던은 첫 번째 은퇴 후 3월에 복귀했던 1994~95시즌을 제외하고 14시즌 모두 팬 투표를 통해 올스타 선발로서 선정됐다. 즉 신인 시즌에도 올스타 선발이었다.

1950~51시즌부터 선정된 역대 올스타들 중 신인은 45명이었다. 그 45명 중 선발로서 선정된 인원은 16명뿐이다. 조던 앞으로는 1981~82시즌 아이제이아 토마스가 있었고 뒤로는 샤킬 오닐, 그랜트 힐, 야오밍이 있었다.

즉 노스캐롤라이나 대학 3년까지의 큰 인기를 NBA에서 잇고 있던 조던이었다. NBA 데뷔 경기에서 야투율 31.3%의 16득점에 그쳤지만 1984년 마지막 12월29일(이하 현지시각) 31번째 경기까지 야투율 49.6%, 평균 25.6득점 5.4리바운드 4.8어시스트 2.3스틸 1.2블록이라는 대단한 신인 기록을 작성하고 있었다.

다만 올스타 경기에서는 현재까지도 앙숙의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듯 보이는 가드 토마스를 비롯해 선배 올스타들의 의도적인 조던에 대한 패스 기피가 보였고 본인도 22.1% 야투율에 그친 나머지 4득점만을 남겼다.

82경기 모두 채운 시즌 전체로는 야투율 51.5%, 평균 28.2득점 6.5리바운드 5.9어시스트 2.4스틸 0.8블록을 남겼다. 여기에서 평균 2.4스틸은 역대 신인들 중 7위의 기록이다.

그리고 평균 28.2득점도 역대 신인들 중 7위의 기록이다. 조던보다 높은 신인 평균 득점들은 모두 6위인 1969~70시즌 카림 압둘자바(28.8득점) 이전에 나왔다. 리그 평균 야투 시도가 100회를 넘기던 1960년대에 비해 1984~85시즌에는 89.1회였던 것을 감안하면 더욱 대단한 성과였다.

조던 이후 가장 높은 신인 평균 득점은 1989~90시즌 데이비드 로빈슨의 24.3득점이었으며 2000년 이후로는 2010~11시즌 블레이크 그리핀의 22.5득점이 최고다.

이런 기록에서 신인상은 수순이었다. 1984년 NBA 드래프트는 3순위 조던을 포함 1순위 하킴 올라주원, 5순위 찰스 바클리, 16순위 존 스탁턴 등 NBA 전설들을 많이 배출했다. 그 중 신인상 투표에서 조던과 대결을 펼쳤던 올라주원도 야투율 53.8%, 평균 20.6득점 11.9리바운드 1.2스틸 2.7블록이란 훌륭한 기록을 남겼지만 조던에게 크게 밀리고 말았다.

또한 신인으로서 올NBA 세컨드 팀에 선정되는 보기 드문 영예도 남겼다. 시카고 불스와 함께 했던 1997~98시즌까지 1985~86시즌과 1994~95시즌을 제외하면 매번 올NBA팀에 선정됐다.

▶주상골 부상에서 돌아와 남긴 역사적 시즌 평균 득점

대단하고도 역사적인 신인 시즌을 보낸 조던에게 위기는 빨리 찾아왔다. 2년차 1985~86시즌 불과 3번째 경기 중 조던은 덩크 후 착지 과정에서 발에 있는 뼈에 금이 갔다. 주상골, 손과 발에 있는 배 모양의 뼈이며 발쪽의 주상골은 발목과 발가락 뼈 사이에 위치해 체중을 지탱하는 중요 부위다.

최근 주상골 부상으로 유명했던 NBA 선수 조엘 엠비드가 있었다. 2014년 NBA 드래프트 바로 전에 1순위로 전망됐지만 주상골 부위 피로골절로 3순위까지 밀려났고 2시즌을 통째로 날리고 나서야 NBA 데뷔를 거쳤다. 9시즌 만에 NBA 커리어를 마쳐야 했던 야오밍도 겪었던 부상 부위다.

조던의 경우는 피로골절이 아닌 일순간 충격에 의한 금이었지만 그 부위의 중요성을 감안하면 수술도 거치치 않고 꽤 빨리 복귀했다. 같은 시즌 3월15일 경기에 복귀해 15경기를 더 뛰었다. 시즌 말에 30득점을 넘긴 경기들도 있었지만 복귀 초기에는 20분 아래의 출전시간을 가지는 등 8득점에 그쳤던 경기도 있었다.

때문에 1985~86시즌에는 야투율 45.7%, 평균 22.7득점이라는 20대 나이 시절 조던의 기록으로 와 닿지 않는 숫자가 나오고 말았다.

그런데 그 다음 시즌은 조던의 커리어 중 가장 높은 평균 득점이 나온 때였다. 1986~87시즌 평균 37.1득점이 나왔다. 이는 NBA 역대 6위의 시즌 평균 득점이다.

역대 시즌 평균 득점 1위부터 3위까지는 모두 1961~62시즌(50.4득점)을 필두로 윌트 체임벌린의 시즌들이다. 그리고 4위 1961~62시즌 엘진 베일러(38.3득점)를 거쳐 다시 5위에 1959~60시즌 체임벌린(37.6득점)이 등장한다. 즉 리그의 경기 당 야투 시도에서 차원이 달랐던 1960년대 이후 최고의 시즌 평균 득점이 조던에게서 나왔다.

하지만 조던이 이렇게 높은 개인 평균 득점을 남겼음에도 소속팀 시카고의 성적은 높지 않았다. 40승42패(승률 48.8%), 이긴 경기보다 진 경기가 많았다. 조던이 82경기 모두 뛰었기에 오롯이 조던에게 그 이유들을 모을 만했다.

당시 시카고에는 평균 37.1득점 조던 다음이 14.5득점의 찰스 오클리였다. 스스로 득점 기회를 창출해 책임질 수 있는 인물은 조던이 유일했다 볼 수 있다. 그래도 결국 팀보다는 개인의 농구를 하는 선수로 보일 수 있는 결정적 시기였다.

▶역사적 개인 농구 기록을 남긴 1987~88시즌

커리어 동안 5시즌의 MVP 경력을 남긴 조던에게 1987~88시즌은 생애 첫 MVP 시즌이자 유일한 우승 전 MVP 시즌이었다.

당시 조던은 82경기 모두 출전해 평균 40.4분 동안 야투율 53.5%, 35득점 5.5리바운드 5.9어시스트 3.2스틸 1.6블록을 남겼다. 득점은 전 시즌보다 살짝 떨어졌지만 당시까지 커리어에서 가장 높은 야투율, 어시스트, 스틸, 블록을 남겼다.

한편 동일 시즌 올해의 수비수에 선정되기도 한 조던은 역대 4위의 평균 스틸을 남겼다. 조던은 역대 커리어 통산 스틸 3위(2514스틸), 커리어 평균 스틸 4위(2.3스틸)에 올라 있다.

상대 팀 입장에서 조던은 수비하기도 무서운 선수였지만 공격할 때도 정말 성가신 선수였다. ⓒAFPBBNews = News1
이런 농구 기록지에 남긴 모든 숫자들을 통합해 보는 숫자로써 플레이어 이피션시 레이팅(이하 PER)이란 계산법이 있다. 리그 평균 선수의 숫자 15를 기준으로 높으면 높을수록 좋은 기여도의 농구 기록을 남겼다는 뜻이다.

사실 이 PER은 완전히 농구 기록지의 숫자만을 쓰기 때문에 비판 받는 구석도 크다. 큰 숫자를 남기지 않아도 팀의 공격을 잘 돌아가게 만드는 선수나 농구 기록지에 명시적으로 남지 않는 수비 쪽 기여도를 놓치기 쉽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전면에 나서는 선수들의 기여도를 일괄적으로 보기에 편한 부분은 확실히 있다. 여기에서 조던이 남긴 1987~88시즌 PER은 31.7이었다. PER 31.7은 한 시즌 1000분 이상 소화한 역대 선수들 중 공동 2위에 해당한다. 1위는 1962~63시즌 야투율 52.8%에 평균 47.6분 동안 44.8득점 24.3리바운드 3.4어시스트를 남겼던 체임벌린의 31.8이었다.

그 다음이 1961~62시즌 체임벌린, 2008~09시즌 르브론 제임스, 그리고 조던의 PER 31.7이다. 제임스와 조던 2명 모두 25세에 마친 시점이었다.

조던의 커리어에서 가장 높은 PER 5시즌들 중 1990~91시즌을 제외하면 모두 생애 첫 우승을 보기 전에 있었다. 1987~88시즌(31.7), 1990~91시즌(31.6), 1989~90시즌(31.2), 1988~89시즌(31.1), 1986~87시즌(29.8) 순이다.

결국 이는 한 선수의 지배적인 기록보다는 팀 전체적인 융화가 높은 성적과 상관관계가 높다는 것을 시사한다. 잭슨 감독의 코칭스태프가 팀 전체적인 공격 움직임을 강조한 트라이앵글 오펜스 전술을 활용하면서 시카고 팀의 공격지표든 승패 성적이든 도약한 것도 이와 연결된다.

▶최고의 운동선수가 보여준 젊음의 농구

NBA 파이널 무대를 밟기 전까지 조던은 운동능력에서 정점의 시기를 보내고 있던 NBA 최고의 운동선수였다. 현재까지도 운동능력에 있어 젊은 시절 조던은 최고로 꼽히곤 할 정도다.

신인 때부터 올스타 슬램덩크 대회에 출전해 1986~87시즌 및 1987~88시즌 2연속 챔피언을 차지했던 조던은 역대 가장 아름답고 멋지다 평을 받곤 하는 자유투 라인 덩크를 선보이기도 했다.

젊은 시절 조던의 득점에 있어 뛰어난 도약력은 핵심을 차지했다. 체공 시간 동안 상대방을 속이는 움직임들을 보여주는 등 이를 통한 농구 제품 브랜드도 나왔을 정도다.

우승을 보기 전까지 조던은 이런 축복받은 몸을 통해 보여줄 것은 다 보여줬다 할 수 있다. 1960년대 이후 NBA 최고의 평균 득점, 최고의 농구 기록지 숫자, 슈팅 가드로서 1988~89시즌 평균 8어시스트 8리바운드에도 도달해 봤을 정도인 다재다능함 등 생애 최고의 숫자는 모두 그 우승 전의 젊은 시절에 나왔다.

그리고 시즌 MVP와 올해의 수비수를 동시에 차지한 역대 유이한 사례 중 하나가 그 시절에 나왔다. 1987~88시즌 조던과 1993~94시즌 하킴 올라주원이었는데 올라주원은 해당 시즌 파이널 MVP도 차지한 유일무이한 업적을 달성하기도 했다. 그래도 가드로서 MVP와 올해의 수비수에 동시 선정됐던 조던 역시 정말 놀랄 만한 성과였다.

즉 최고의 공격수이자 최고의 수비수로서 인정받은 젊은 시절 조던이었다. 이런 젊은 조던은 플레이오프에서 어떤 모습을 보여줬을까. 다음 [NBA현미경]에서는 우승 전까지 플레이오프에서의 조던을 다뤄보고자 한다. 스포츠한국 이호균 객원기자 hg0158@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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