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한국 박대웅 기자] 김재환(두산), 박병호(넥센), 로맥(SK), 로하스(KT)의 홈런왕 경쟁이 시즌 막바지로 향할수록 더욱 뜨거워지고 있다.

15일 현재 김재환이 40홈런을 채워 단독 1위에 올라 있고, 박병호(39홈런), 로맥(38홈런)이 그 뒤를 쫓고 있다. 4위 로하스 역시 36홈런으로 아직 홈런왕의 꿈을 포기할 단계는 아니다.

홈런왕 경쟁의 치열함으로만 놓고 보면 KBO리그 역사를 통틀어도 손에 꼽히는 시즌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먼저 홈런 1~4위에 놓인 선수들이 현재 페이스를 꾸준히 이어갈 경우 산술적으로는 모두가 40홈런을 넘어설 가능성이 높다.

40홈런 타자가 동시에 4명이나 쏟아진 사례는 1999시즌(이승엽 54홈런, 로마이어 45홈런, 스미스 40홈런, 샌더스 40홈런)이 유일하다. 하지만 이 시기에는 이승엽이 사상 첫 50홈런 시대를 열면서 경쟁 자체는 다소 싱겁게 마무리됐다.

올시즌은 김재환이 지난 11, 12일 총 4홈런을 폭발시키며 유리한 고지를 점령하는 듯 했지만 박병호도 최근 2경기 연속 홈런으로 다시 추격을 시작했다. 로맥과 로하스도 몰아치기 능력을 보여준 적이 있기 때문에 아직은 최종 결과를 예측하기 어렵다. 1985시즌 이만수-김성한(이상 22홈런), 2016시즌 테임즈-최정(이상 40홈런)에 이어 공동 1위가 탄생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 밖에 국내 선수와 외국인 선수가 각각 2명씩 1~4위에 포진하고 있다는 점에서 자존심 대결의 구도도 균형이 잘 갖춰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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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엽vs우즈, 최고의 홈런왕 라이벌

하지만 올시즌 이상으로 홈런왕 경쟁이 치열한 시즌도 있었다.

야구팬들에게 현재까지도 꾸준하게 회자되고 있는 홈런왕 라이벌은 바로 이승엽과 우즈다. 1998~2001시즌까지 우즈는 홈런 1~3위를 각각 한 차례씩 경험했고, 이승엽은 같은 기간 홈런 1위 2회, 2위 1회, 4위 1회를 각각 기록했다.

두 선수의 경쟁이 가장 뜨거웠던 시즌은 역시 1998년이었다. 이승엽은 1997년 커리어 첫 홈런왕에 등극한 뒤 2연패를 노리고 있었고, 우즈는 외국인선수 제도가 도입된 첫 해부터 차원이 다른 파괴력을 선보이며 큰 화제를 불러 모았다.

당시 먼저 페이스를 끌어올린 쪽은 이승엽이었다. 이승엽은 1998년 6월에만 13개의 홈런을 몰아치는 등 20홈런, 30홈런 고지를 일찌감치 정복하며 독주 체제를 구축했다.

그러나 8월부터 홈런 페이스가 급격히 떨어지기 시작했고, 한때 이승엽보다 7개까지 뒤져있던 우즈의 막판 뒷심이 발휘되면서 홈런왕 향방이 미궁 속에 빠졌다.

결국 9월15일 우즈가 37호포를 때려내 이승엽과 어깨를 나란히 했고, 잔여 경기가 훨씬 더 많이 남은 이점을 살려 순위를 뒤집는데 성공했다.

우즈는 총 42홈런을 때려내 1992년 장종훈의 기존 한 시즌 최다 41홈런 기록을 갈아치웠고, 외국인 및 잠실구장을 홈으로 쓰는 선수로서 최초의 홈런왕에 오르는 기쁨을 누렸다.

그러나 두 선수의 경쟁이 더 큰 흥미를 불러일으킨 이유는 자극을 받은 이승엽의 반등 때문이다. 1998년 38홈런으로 우즈에게 홈런왕을 내줬지만 이승엽은 이듬해 무려 54홈런을 폭발시켜 KBO 역사를 새롭게 썼다.

이승엽과 우즈는 2002년까지 KBO리그에서 자존심 대결을 펼친 뒤 일본 프로야구에서도 홈런왕 경쟁을 계속 이어갔다. 이승엽은 “우즈 같은 경쟁자가 있었기 때문에 내가 더 발전할 수 있었다”며 우정의 라이벌에게 고마움을 전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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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엽vs심정수, 53홈런 치고도 2인자

이승엽은 우즈 뿐 아니라 심정수와도 역사에 기록될 홈런왕 경쟁을 펼쳤다. 2000시즌까지 홈런 부문 10위권을 맴돌았던 심정수가 체계적 웨이트 트레이닝으로 벌크업에 성공하면서 2002시즌 이승엽을 본격 위협하는 상대로 떠올랐다.

결과는 1개 차이로 이승엽의 승리였다. 총 47홈런을 기록해 생애 첫 2년 연속 홈런왕 타이틀을 거머쥐는 기쁨을 누렸다. 심정수도 막판까지 만만치 않은 기량을 뽐냈지만 본인의 종전 한 시즌 최다 홈런(1999시즌 31개)을 큰 폭으로 뛰어넘은 것에 만족해야 했다.

막판까지 손에 땀을 쥐게 만든 홈런 레이스였다. 심정수가 10월16일 사직 롯데와의 더블헤더 1, 2차전에서 홈런 두 방을 몰아쳐 46홈런으로 이승엽과 타이를 이뤘기 때문. 그러나 심정수가 남은 2경기에서 더 이상 홈런을 기록하지 못한 반면 이승엽이 10월20일 KIA와의 최종전에서 극적인 우월 솔로포를 기록해 두 선수의 명암이 엇갈렸다.

2003시즌에는 두 선수의 경쟁이 더욱 뜨겁게 불붙었다. 50홈런 이상을 때린 선수가 홈런왕에 오르지 못하는 사상 초유의 사태가 나올 만큼 매서운 홈런쇼가 매일같이 펼쳐졌다.

하지만 1년 전과 과정도 비슷했고 최종 결과 역시 동일했다. 마지막에 웃은 선수는 이번에도 이승엽이었다.

이승엽이 2003년 9월5일 수원 현대전에서 50홈런을 폭발시킨 시점까지만 하더라도 아시아 선수 최다 홈런 기록에만 모든 관심이 집중될 만큼 둘의 격차가 제법 컸다.

하지만 이승엽이 53홈런부터 기록 달성에 대한 부담감을 느끼며 주춤하는 사이 심정수의 맹추격이 시작됐다. 특히 9월20일 롯데전에서 시즌 50호, 51호 고지를 나란히 정복하며 8경기 연속 침묵했던 이승엽을 2개 차까지 따라붙었다.

그러나 심정수가 9월27일 LG를 상대로 53호를 쏘아올린 뒤 남은 2경기에서 더 이상의 반전을 일으키지는 못했다. 9월25일 55호포로 본인의 1999시즌 기록을 뛰어넘은 이승엽이 10월2일 대구 롯데와의 최종전에서 왕정치를 제치고 아시아 최다 홈런 주인공으로 우뚝 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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