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선수의 커리어를 평할 때 우승에 너무 큰 무게를 둬선 안 되는 근거로 가장 많이 쓰이는 사례가 로버트 오리다.

16시즌의 NBA 커리어 동안 단 한 번의 올스타 선정이 없었고, 올루키 세컨드 팀을 제외하면 어떤 명시적인 영예를 남긴 적이 없음에도 오리는 역사에 손꼽히는 우승 횟수를 남겼다. 무려 7개의 우승반지가 오리에게 있다.

NBA 역사에서 오리보다 우승반지를 더 많이 가진 선수들은 모두 1960년대 무렵 11시즌 우승을 거뒀던 보스턴 셀틱스의 일원들이다. 가장 많은 우승반지 11개의 빌 러셀로 시작해 6명의 1960년대 보스턴 선수들이 8개 이상의 반지를 가졌고 모두 명예의 전당에 들어가 있다.

즉 1960년대 뒤의 선수들 중엔 1970년생 오리가 가장 많은 우승반지를 가졌다. 카림 압둘자바(6개), 마이클 조던(6개), 매직 존슨(5개), 팀 던컨(5개)도 오리보다 적다.

휴스턴에서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리던 오리를 보고 훗날 7개의 우승반지를 차지할 것이라 예상하기는 힘들었다. ⓒAFPBBNews = News1
하지만 또 뒤집어 생각해보면 커리어 평균 7득점 4.8리바운드 2.1어시스트의 오리가 이렇게 많은 우승반지를 차지할 수 있던 것이 대단하다고도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오리가 7개의 우승반지를 가지게 된 비결은 무엇이었을까.

▶2시즌 이상 우승을 차지한 팀들 위주로 이적

1992년 NBA 드래프트에서 휴스턴 로켓츠가 전체 11순위로 호명했던 선수가 오리였다.

그리고 1996년 여름 피닉스 선즈로 트레이드됐다가 1996~97시즌 32경기만 뛴 후 1월에 LA 레이커스로 또 트레이드됐다. 이후 2003년 여름 프리 에이전트로서 샌안토니오 스퍼스와 계약을 맺는다.

즉 오리가 시즌을 마감한 소속팀들은 모두 1990년대와 2000년대에 2시즌 이상 우승을 거뒀던 팀들이다. 오리의 NBA 커리어 16시즌 모두 플레이오프까지 이어졌다.

1993~94시즌 및 1994~95시즌 2연속 우승을 달성했던 휴스턴, 1999~00시즌부터 2001~02시즌까지 3연속 우승을 달성했던 레이커스, 2004~05시즌과 2006~07시즌 우승을 차지했던 샌안토니오, 오리는 우승하는 팀으로만 이적했다.

오리가 단지 운이 좋아서 이런 팀들로만 둥지를 튼 것은 아니었다. 레이커스와 샌안토니오 모두 플레이오프 성과에 초점을 맞춘 팀들이었고 플레이오프에서 오리가 해줄 수 있는 것을 필요로 했다.

다만 오리에게 결정적 행운은 있었다. 첫 소속팀이 휴스턴이었고 휴스턴이 첫 우승을 거두기 직전에 트레이드될 뻔 했다가 무산된 적이 있다. 오리 본인도 그 트레이드 취소가 자신의 커리어를 구했다 말한 바 있다.

1993~94시즌 2월 휴스턴은 오리를 디트로이트 피스톤스에 트레이드로 보냈다. 하지만 디트로이트에서 오기로 한 션 엘리엇이 신장 질병으로 신체검사를 통과하지 못하면서 무산됐다. 그 4개월 후 오리는 첫 우승을 맛봤다. 그 트레이드가 성사됐더라면 오리의 우승반지 개수는 지금과 크게 달랐을지 모른다.

▶플레이오프에서 더 많이

커리어 평균 7득점, 최고 평균 기록이 1995~96시즌의 12득점이었던 오리는 팀 내 득점 순위에서 1995~96시즌의 4위가 최고였다. 휴스턴을 떠난 뒤로는 줄곧 5위 밖이었고 10위 밖에도 있어 봤다.

대신 플레이오프 때의 오리는 보다 중용 받았고 보다 높은 득점을 올렸다. 3년차 1994~95시즌의 경우 정규 시즌 평균 32.4분 동안 10.2득점을 올렸던 오리는 플레이오프에서 38.2분 동안 13.1득점을 올렸다.

커리어 마지막 우승이었던 2006~07시즌의 경우 정규 시즌 평균 16.5분 동안 3.9득점을 올렸던 오리는 20.1분을 뛰며 4.3득점을 올렸다. 이런 경향은 커리어 전체 동안 유지됐다. 즉 코칭스태프는 플레이오프에서 오리를 더 필요로 했다.

사실 206cm 신장의 오리는 커리어 초창기 스몰 포워드로서 뛰었을 때도, 그 후 파워 포워드로 뛰었을 때도 포워드로서의 공수 양 진영 영향력은 크지 않았다. 수비에서 마이너라스는 평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플레이오프에 들어서면 특유의 강심장이 빛을 발하며 승부에 결정적인 득점들을 쌓아 줬다. 이를 통해 얻은 별명이 빅 샷 랍(Big Shot Rob)이었다. 이런 활약들은 휴스턴, 레이커스, 샌안토니오 세 팀 모두에서 대박을 냈다.

2001~02시즌 컨퍼런스 파이널 4차전 종료 버저가 울릴 때 오리는 모든 레이커스 동료들의 영웅이었다. ⓒAFPBBNews = News1
▶휴스턴에서의 빅 샷

1994~95시즌 휴스턴은 6번 시드로서 플레이오프에 뛰어들어 컨퍼런스 파이널에서 1번 시드 샌안토니오를 만났다. 그리고 오리는 미래의 소속팀 샌안토니오를 상대로 1차전에 큰 비수를 꽂았다.

샌안토니오 홈에서 치러진 1차전에서 휴스턴은 92-93으로 뒤진 채 마지막 24초를 공격권으로 사용했다. 여기에서 몇 차례의 패스가 오간 뒤 안에 있던 하킴 올라주원이 밖에 열려 있던 오리에게 패스했다. 오리는 곧바로 3점 라인 안으로 한 걸음 옮긴 뒤 오픈 점프슛을 넣으며 94-93 결승 득점을 올렸다.

바로 뒤 NBA 파이널에선 클러치 3점슛이 본인의 최대 장기가 되는 서막을 열었다. 올랜도 매직에 2연승으로 앞선 뒤 맞이한 3차전에서 휴스턴은 종료 20초 남았을 무렵 101-100 1점차 앞선 채 거의 마지막 공격권을 보내고 있었다. 이때에도 올라주원이 안에서 빼준 패스를 오리가 받은 뒤 3점슛을 넣으며 시리즈 3승0패를 굳혔다.

▶레이커스에서의 빅 샷

2000~01시즌 NBA 파이널에서 레이커스는 1승1패 후 필라델피아 세븐티식서스 홈에서 3차전을 맞이했다. 이때 종료 1분 남았을 무렵 필라델피아가 3점 플레이를 성공시켰고 레이커스는 89-88, 1점차로 쫓기게 됐다. 여기에서 동료 가드 브라이언 쇼의 돌파 후 빼주기 패스를 받은 오리가 3점슛을 성공시켰다.

저 3점슛 포함 레이커스의 마지막 7득점이 모두 오리에게서 나왔다. 당시 플레이오프에서 오리는 43.8%의 저조한 자유투 성공률을 기록 중이었고 그 경기 전까지 4연속 실패를 기록하고 있었다. 필라델피아가 여기에 기대를 걸 수 있었지만 오리는 얻어낸 자유투 4구 모두 성공시켰다.

2001~02시즌 플레이오프 1라운드에서 레이커스는 5전3선승제였던 당시 포틀랜드 트레일블레이저스 상대로 2승0패로 앞선 채 3차전을 맞이했다. 그리고 경기 마지막 쯤 89-91로 뒤지며 한 차례 고비를 맞이했지만 코비 브라이언트의 돌파 후 빼주는 패스를 받은 오리가 3점슛으로 연결시켜 시리즈 승리를 결정지었다.

그리고 너무나도 유명한 빅 샷이 동일 년도 컨퍼런스 파이널에서 나왔다. 새크라멘토 킹스에게 1승2패로 뒤진 채 맞이한 4차전, 레이커스는 97-99로 뒤진 채 마지막 11.8초를 써야 했다. 여기에서 브라이언트의 러닝 점프슛도, 샤킬 오닐의 팁인도 말을 듣지 않았다.

그런데 이 직후 새크라멘토의 센터 블라디 디바치가 시간을 소진시키기 위해 쳐낸 볼이 하필 3점 라인 밖 오리의 손에 그대로 튕겨 들어갔다. 그리고 버저비터 3점슛, 이 활약이 없었더라면 레이커스의 3연속 우승은 힘들었을 테다.

2004~05시즌 NBA 파이널 5차전에서 유리한 고지에 있던 디트로이트가 오리의 3점슛으로 일순간 내려앉는 순간이었다. ⓒAFPBBNews = News1
▶샌안토니오에서의 빅 샷

샌안토니오에서도 오리는 시리즈 형세에 구원자와 같은 3점슛을 넣었다. 2004~05시즌 NBA 파이널에서 2승2패 후 디트로이트 홈에서 치르는 5차전, 지면 크게 불리했다.

앞선 4경기에서 서로 대승과 대패를 주고받던 두 팀은 5차전에서 피 말리는 접전을 이뤘다. 급기야 연장까지 갔고 연장 종료 9초를 남기고 샌안토니오는 93-95, 2점차로 뒤진 채 마지막 공격권을 가졌다. 여기에서 오리는 동료 마누 지노빌리가 코너에서 빼주는 패스를 받아 3점슛을 성공시켰고 결승 득점이 됐다.

당시 그 5차전에서 21득점을 올린 오리는 6회의 3점슛 시도 중 5개를 성공시켰고 후반전에서 4개, 연장전에서 그 1개를 성공시켰다. 당시 21득점은 1996~97시즌 21득점 이후 본인의 플레이오프 경기 최고 득점이었다.

▶미움도 많이 받았지만 승리자로 남은 커리어

이렇게 상대 팀들에게 일순간 큰 좌절을 안겨준 오리였기에, 그것도 세 팀을 돌면서 여러 팀들을 상대로 비수를 꽂았던 오리였기에 많은 미움을 받기도 했다. 때로는 상대 팀 에이스보다도 이런 저격수들이 더 큰 미움을 받기도 한다.

그리고 딱히 농구 플레이가 아닌 행동으로 큰 논란을 빚기도 했다. 2006~07시즌 플레이오프 2라운드에서 상대했던 피닉스 선즈의 스티브 내쉬에게 오리가 플레이와 큰 상관없이 강하게 몸을 부딪친 적이 있다. 이 때문에 피닉스 벤치에 있던 선수들이 움직이며 징계를 받기까지 했다.

이렇게 미움 받을 계기들이 있었지만 오리는 결국 승리자로 남았다. 현재는 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의 감독이지만 선수 시절 두 팀에서 5개의 우승반지를 차지한 스티브 커와 함께 팀의 우승에 결정적인 클러치 3점슛들을 보탠 기여자로서 이름을 남겼다.

NBA 역사에서 세 팀을 통해 우승반지를 갖게 된 선수들은 단 2명이다. 1988~89시즌부터 1999~00시즌까지 디트로이트, 시카고 불스, 레이커스를 통해 4시즌 우승을 본 존 샐리와 오리다. 그리고 시카고와 레이커스에서 적은 시간만 뛰었던 샐리와는 달리 오리는 매번 적지 않은 시간 동안 큰 기여를 한 선수였다.

현재는 3위로 내려왔지만 은퇴 당시 오리는 역대 플레이오프 통산 출전 경기 1위(244경기)였다. 그리고 NBA 파이널 37경기를 통해 넣었던 56개의 3점슛도 현재는 5위지만 은퇴 당시 역대 파이널 통산 1위였다. 7개의 우승반지를 놓고 오리가 자랑스러워할 근거는 충분하다. 스포츠한국 이호균 객원기자 hg0158@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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