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에도 상당수 NBA 팬들에게 아이돌로서 남겨져 있는 전설이 앨런 아이버슨이다. 선수 시절 보여줬던 그 화려하고도 빛나는 플레이들과 함께 인물 자체에서 나왔던 독보적 매력 덕분이다.

공식 기재 신장 딱 6피트(183cm), 포인트 가드들 중에서도 작은 축에 드는 신장으로 코트를 누비며 고득점을 올렸던 아이버슨은 4시즌에 걸쳐 리그 득점왕에 올랐다. “중요한 것은 기재된 사이즈가 아닌 마음의 사이즈”라고 했던 본인의 말처럼 아이버슨은 담대한 플레이들로 거인들을 상대했다.

이런 아이버슨의 담대한 플레이를 가장 명시적으로 보여주는 타이틀이 2000~01시즌 MVP다. 2000~01시즌은 그의 첫 평균 30득점 이상 시즌이기도 하며 처음이자 유일한 NBA 파이널 진출 시즌이기도 하다.

2000~01시즌 NBA 파이널 연장까지 간 1차전에서 아이버슨은 48득점을 올리며 레이커스에 플레이오프 유일한 패배를 안겼다. ⓒAFPBBNews = News1
1955~56시즌부터 선정된 역대 MVP들 중 최단신이 아이버슨이다. 역대 MVP들 중 190cm 미만 신장에는 리그 평균 신장이 196cm이었던 1956~57시즌의 밥 쿠지(185cm)와 리그 평균 신장 201cm의 시즌 때 아이버슨뿐이다.

이런 아이버슨은 얼마나 대단한 커리어를 남겼던 것일까. 2016년 네이스미스 농구 명예의 전당에 들어갔던 아이버슨이 남긴 커리어가 얼마나 빛이 났었는지 돌아보고자 한다.

▶마이클 조던 앞에서 당돌하게 재주를 펼쳤던 신인

2학년까지 커리어 평균 22.9득점으로 조지타운 대학 역대 기록을 세운 아이버슨은 1996년 NBA 드래프트에서 필라델피아 세븐티식서스에 의해 전체 1순위로 뽑혔다. 이 역대 드래프트 전체 1순위 역사에서도 아이버슨은 최단신으로 남아 있다.

1년차 1996~97시즌 아이버슨은 야투율 41.6%로 평균 23.5득점을 올렸다. 이는 역대 신인 기록들 중 18번째로 높은 평균 득점이다. 그리고 1984~85시즌 마이클 조던(28.2득점) 이후 가드 신인에게서 나온 최고 득점, 1989~90시즌 데이비드 로빈슨(24.3득점) 이후 나온 신인 최고 득점이기도 하다.

신인 아이버슨은 커리어 전체에서도 손꼽히는, 때로는 커리어 최고로도 꼽히는 하이라이트를 남겼다.1996~97시즌 3월12일(이하 현지시각) 시카고 불스전에서 시즌 득점왕이자 올디펜시브 퍼스트 팀에 선정됐던 조던 상대의 득점이었다.

해당 시즌 본인의 6번째로 높은 37득점을 올렸던 아이버슨은 때때로 조던과 상대했다. 그 중 3점 라인 밖 정면에서 조던을 크로스오버 드리블로 제친 직후 던진 오픈 미드레인지 슈팅이 꽂혀 들어가며 큰 인상을 남겼다.

경기는 104-108로 패했다. 하지만 그 순간만큼은 아이버슨이 어떤 선수인지 보여줄 수 있던 사건이었다. 마침 65.2%의 야투율도 나왔었기에 더욱 인상 깊은 경기였다.

한편 시즌 69번째 경기부터 5경기 연속 40득점을 넘기면서 1959~60시즌 윌트 체임벌린의 신인 3경기 연속 40득점 이상 기록을 넘어섰다. 이런 활약들에 힘입어 신인상은 아이버슨의 차지였다.

▶득점에 전념하게 해준 래리 브라운 감독

리그에서 가장 빠른 선수로 꼽히기도 했고 뛰어난 드리블 기술까지 갖춘 아이버슨은 분명 타고난 득점원이었다. 대단한 도약능력에다 체공 시 놀라운 집중력을 보여준 아이버슨은 통상의 선수에게 무리인 상황에서 득점해내는 특별한 소질이 있었다.

이런 아이버슨을 확실하게 팀의 득점 견인차로 활용한 인물이 래리 브라운 감독이었다. 1997~98시즌부터 부임한 브라운 감독은 곧바로 12월 슈팅 가드 제리 스택하우스와 헤어진 뒤 아이버슨을 전면에 내세우기 시작했다. 그리고 포인트 가드였던 아이버슨을 슈팅 가드로 올리기도 했다.

신장으로 인해 수비에서 갖게 되는 불리함은 포인트 가드 자리에 190cm 신장 에릭 스노우를 배치시키며 메웠다. 즉 공격 진영과 수비 진영에서 서로 포지션을 바꾸기만 하면 됐다. 더욱이 이제 팀에는 전면에 나서는 득점원이 아이버슨 외에 없게 됐다.

이런 변화를 거친 후 1998~99시즌 아이버슨은 전 시즌 평균 22득점에서 리그 1위의 26.8득점으로 뛰어올랐다. 역시 역대 시즌 득점왕 중 최단신이란 기록도 남겼다. 단 한 시즌이지만 2016~17시즌 리그 최단신(175cm) 아이제이아 토마스가 평균 28.9득점으로 리그 3위에 오르며 빛났을 때 아이버슨과 비교된 이유였다.

2000년대 아이버슨과 코비 브라이언트는 동서 양 컨퍼런스를 대표하는 슈팅 가드들로서 경쟁 관계를 가졌다. ⓒAFPBBNews = News1
▶생애 첫 평균 30득점 돌파, 시즌 MVP

본격적인 아이버슨의 에이스 활용이 처음부터 효과를 봤던 것은 아니다. 아이버슨이 리그 개인 평균 득점 1,2위에 오른 1998~99시즌 및 1999~00시즌을 보냈지만 필라델피아는 저조한 득점 성과로 마감했다.

NBA닷컴에 따르면 100포제션 당 득점의 공격지표 리그 순위에서 필라델피아는 1998~99시즌 21위(96.8), 1999~00시즌 25위(98.5)에 그쳤다. 수비지표는 계속해서 4위에 오르는 훌륭한 성과를 보였지만 팀 득점 측면에서 아쉬웠다.

이랬던 필라델피아가 2000~01시즌 큰 변화를 이뤘다. 수비지표는 여전히 리그 5위(96.2)에 오른 한편 공격지표가 13위(100.7)로 뛰어올랐다.

핵심 식스맨으로서 애런 맥키가 평균 11.6득점을 보탠 한편 아이버슨이 더욱 큰 득점의 짐을 소화하면서 자신의 별명인 해답(The Answer)을 보여줬기 때문이다. 평균 94.7득점을 올린 팀 안에서 아이버슨은 31.1득점을 올렸다.

개막 10연승으로 출발한 필라델피아는 56승26패(승률 68.3%)로 마감했다. 구단 역사 10번째로 좋은 성적이었으며 1984~85시즌 58승 이후 최고 성적이다. 2000~01시즌 뒤로 56승에 닿아본 적이 없다.

당시까지 커리어에서 가장 높은 시즌 공격 참여도를 보여주면서 팀을 높은 성적으로 올린 아이버슨은 시즌 MVP 1차 투표에서 124표 중 93표라는 압도적 숫자로 MVP에 올랐다.

▶높은 공격참여도, 높은 성적

2000~01시즌 아이버슨은 평균 42분 동안 코트 위에서 뛰며 팀의 공격기회 중 35.9%를 사용했다. 야투 및 자유투 시도와 턴오버를 통해 팀의 공격 기회 종료 중 35.9%를 차지했다는 뜻이다. 이를 유시지 퍼센티지(Usage percentage, 이하 USG%)라고 한다.

2000~01시즌 35.9%는 아이버슨 커리어 중 2번째로 높은 USG%다. 경기 당 25.5회 야투 시도, 10.1회 자유투 시도, 3.3턴오버를 통해 나왔다.

한 시즌 평균 40분 이상 뛰면서 USG% 35% 이상 기록해본 선수는 역사에서 총 4명이다. 4시즌의 아이버슨과 1시즌씩의 조던, 스택하우스, 코비 브라이언트다. 이 중 팀 성적이 가장 좋았던 경우가 2000~01시즌의 아이버슨이다.

1986~87시즌 평균 37.1득점을 올렸던 조던의 시카고는 40승42패로 마감했다. 2000~01시즌 평균 29.8득점을 올렸던 스택하우스의 디트로이트 피스톤스는 32승50패였다. 2005~06시즌 평균 35.4득점을 올렸던 브라이언트의 LA 레이커스는 45승37패였다.

즉 2000~01시즌 아이버슨의 56승 필라델피아가 가장 좋은 성적을 올렸다. 한 선수에게 집중된 득점의 짐 사례 중 가장 성공적이었다고 볼 수 있다. 나머지 아이버슨의 평균 40분 이상 출전, USG% 35% 이상 시즌들은 2001~02시즌(43승39패), 2003~04시즌(33승49패), 2005~06시즌(38승44패)이었다.

2003~04시즌에 아이버슨이 34경기를 결장했음을 감안해도 역시 한 선수가 집중적인 공격 활동을 보일 때 팀이 성공하기는 어려움을 볼 수 있다. 그만큼 2000~01시즌 아이버슨과 필라델피아는 돋보이는 성과를 냈다.

11시즌 연속 팬 투표로 올스타 선발에 선정된 아이버슨은 2회의 MVP 수상으로 화답했다. ⓒAFPBBNews = News1
▶시간이 흐르면서 독이 된 스타일

아이버슨은 온 몸이 부상인 선수로도 유명했다. 경기 중계방송에서 아이버슨의 부상 부위들을 보여주는 사진이 종종 나오곤 했다. 시종일관 코트를 휘저으며 상대와의 접촉도 많았고 시즌마다 경기 당 10회에 가까운 자유투 시도가 이런 과정에서 나왔다.

이런 이유로 MVP 바로 다음 시즌인 2001~02시즌부터 아이버슨은 부침을 자주 겪었다. 2001~02시즌 야투율이 39.8%이기도 했다.

그리고 아이버슨은 커리어 전체적으로 높은 효율성으로 득점하는 스타일이 아니었다. 통상의 선수에게 힘든 득점 과정을 고집하는 성향으로 인해 득점 장면 때의 멋진 모습과 효율성이 큰 상관관계를 갖진 못했다.

이로 인해 2001~02시즌부터 필라델피아의 성과는 만족스럽지 못한 쪽으로 흘러갔다. 2001~02시즌부터 아이버슨이 있는 동안 필라델피아가 플레이오프 1라운드를 넘어선 적이 한 번뿐이었다. 2003~04시즌과 2005~06시즌에는 진출조차 못했다.

어떻게든 자신이 해결해보고자 하는 스타일이 팀 농구에서 성공하기엔 확실히 여러 변수가 잘 맞아떨어져야 함을 증명한 사례이기도 하다. 이런 측면에서 아이버슨의 커리어는 훗날 아쉬움을 주는 성격이 있다.

그래도 이런 성격이 있었기 때문에 한편으로 아이버슨은 큰 인기를 얻을 수 있었다. 어려운 상황에서도 멋진 해답을 보여준 모습들은 큰 호소력을 갖기 마련이다. 그렇기 때문에 14시즌이라는 아주 길지만은 않은 NBA 커리어 동안 11시즌 연속 올스타 선발이라는 영예를 얻을 수 있었다. 2000~01시즌 및 2004~05시즌에는 올스타 MVP이기도 했다.

아이버슨은 총 4시즌에 걸쳐 평균 30득점을 넘겼다. 역대 183cm 신장 이하 선수들 중 평균 30득점을 넘겨본 선수는 아이버슨뿐이다. 역대 모든 선수들 중에서도 60경기 이상 채우면서 4시즌 이상 평균 30득점을 넘긴 선수는 4명뿐이다.

조던(8시즌), 오스카 로버트슨(6시즌), 제리 웨스트(4시즌), 그리고 아이버슨이다. 이런 위업을 남긴 선수였기에 시대의 아이콘이었다 말하기에 부족함이 없다. 스포츠한국 이호균 객원기자 hg0158@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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