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이스미스 농구 명예의 전당에 헌액될 인원들을 정식 소개하는 행사가 오는 8일(이하 한국시각) 열린다. 올해는 NBA 선수로서 보낸 커리어를 통해 선정된 인원들이 무려 5명이나 될 정도로 파격적인 인원수를 자랑한다.

연령순으로 모리스 칙스, 그랜트 힐, 제이슨 키드, 스티브 내쉬, 레이 앨런이 그 주인공들이다. 이 중 힐, 키드, 내쉬, 앨런은 1990년대 후반과 2000년대를 관통해 NBA 팬들로부터 큰 인기를 끌어냈던 스타들이다. 이에 [NBA현미경]은 이 4명 각자의 커리어를 집중적으로 살펴보기로 한다.

이번 주인공 내쉬는 초창기 때 크게 눈에 띄지 못했지만 2시즌 연속 MVP에 오른 극적인 커리어를 보냈다.

이런 측면에서 2004~05시즌 및 2005~06시즌 MVP 내쉬는 정확히 10년 뒤 2시즌 연속 MVP에 오른 스테픈 커리와도 비슷한 부분이 있다. 비교적 늦게 스타덤에 올랐지만 정점의 시기엔 누구 못지않게 빛났다는 점이다.

정점에 있던 내쉬는 최고의 포인트 가드라는 말이 과장스럽지 않았다. 코트 위 플레이 모습과 더불어 숫자도 최고의 지휘자임을 말해줬기 때문이다. 이런 경지까지 닿기까지 내쉬는 어떤 과정을 거쳤을까.

예측이 불가능한 플레이를 자주 보여준 내쉬는 상대 팀에게 최우선 요주의 인물이었다. ⓒAFPBBNews = News1
▶벤치에 주로 앉아 있어야 했던 첫 소속팀

1974년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 태어난 내쉬는 생후 18개월째에 캐나다로 이주했다. 프로 축구 선수였던 아버지 밑에서 어린 시절 축구에 몸담기도 했지만 청소년기엔 본격적으로 농구 선수로서 보냈다.

캐다나 고등학생 내쉬에게 눈길을 준 미국 대학이 나오지 않다가 극적으로 들어가게 된 산타클라라 대학에서 4년 동안 큰 족적을 남겼다. 5년만의 학교 첫 전미 대학 토너먼트 진출에도 기여했고 득점과 어시스트에서 학교의 기록을 갈아치웠다. 이를 통해 산타클라라 대학에서 첫 영구 결번을 부여받은 운동선수가 됐다.

하지만 이름난 컨퍼런스 소속 대학이 아니었기 때문인지 1996년 NBA 드래프트 당시 15순위 내쉬에 대한 피닉스 선즈 팬들의 시선은 썩 곱지 않았다. 게다가 당시 피닉스는 내쉬가 본인 기량을 입증할 시간을 많이 받을 여건도 아니었다.

1996~97시즌 피닉스의 가드진에는 케빈 존슨과 샘 카셀, 그리고 이번 명예의 전당에 같이 들어가게 된 키드가 있었다. 각각 NBA 파이널 경험이 있는 베테랑들인 존슨과 카셀에 신인상 경력을 가진 키드가 있는 곳에서 내쉬가 나서기는 힘들었다.

때문에 1년차 1996~97시즌 내쉬는 출전 65경기 중 63경기를 벤치에서 나오며 평균 10.5분을 기록해야 했다. 그래도 2년차 1997~98시즌에는 외곽 슈팅 능력을 발판 삼아 평균 21.9분으로 출전시간을 크게 늘렸다. 다만 76경기 출전 중 선발은 9경기에 그쳤다.

▶6년차 28세부터 참가한 올스타전

올해 같이 명예의 전당에 들어가는 힐은 신인 때부터, 키드는 2년차부터, 앨런은 4년차부터 올스타에 선정되기 시작했다. 이에 비해 내쉬는 6년차인 2001~02시즌에 처음 선정됐다.

하지만 늦은 나이에 시작했어도 그 뒤의 선정 페이스는 대단했다. 커리어 8회의 올스타 선정 중 6회가 30대의 나이에 나왔다. 2011~12시즌의 경우 38세로서 올스타전에 나섰다.

20대 나이의 대부분을 보낸 댈러스 매버릭스에서 내쉬는 비슷한 나이의 마이클 핀리 및 덕 노비츠키와 위력적인 3인조를 형성했다. NBA닷컴에 따르면 100포제션 당 득점을 의미하는 공격지표에서 댈러스는 1999~00시즌 리그 7위(103.8)로 시작해 2001~02시즌부터 3시즌 연속 1위에 올랐다.

이를 바탕으로 2002~03시즌에는 플레이오프 컨퍼런스 파이널까지 진출했다. 하지만 아직까지 조명은 주득점원들인 노비츠키와 핀리 쪽에 더 강하게 비쳐지는 경향이 있었다. 때문에 2004년 여름 내쉬가 첫 소속팀 피닉스와 다시 계약했을 때의 주목도는 그렇게까지 크지 못했다.

▶9시즌 연속 리그 최고 득점력의 팀 포인트 가드

6년 만에 다시 피닉스로 돌아온 내쉬에게 리그에서 가장 뜨거운 조명이 향하는 데에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가장 뜨거운 팀의 지휘자가 내쉬였기 때문이다.

2004~05시즌 피닉스는 리그 다른 팀들과는 격이 다른 화력을 뿜어냈다. 당시 공격지표 1위(111.9) 피닉스와 2위(108.2) 사이의 차이는 2위와 10위(104.5) 사이의 차이와도 같았다.

이에 비해 2003~04시즌까지 3시즌 연속 리그 1위 공격지표를 기록하던 댈러스는 2004~05시즌 5위(107.5)로 내려갔다.

수비지표는 리그 16위(103.7)의 애매한 성과였지만 막강한 화력 덕분에 2004~05시즌 피닉스는 62승20패(75.6%), 리그 1위의 성적으로 마감했다. 이는 NBA 파이널에 진출했던 1992~93시즌과 더불어 구단 역사 최고의 성적이다.

여기에서 멈추지 않고 피닉스는 2009~10시즌까지 6시즌 연속 리그 1위의 공격지표를 남겼다. 즉 댈러스까지 연결시키면 내쉬의 팀은 9시즌 연속 리그 최고의 공격 팀이었다.

바스켓볼 레퍼런스에 따르면 역대 최고의 팀 공격지표 40위 안에 내쉬가 있던 시절 피닉스의 6시즌들이 있다. 그 중 2009~10시즌은 5위(115.3)에 올라 있다.

매직 존슨과 카림 압둘자바의 1986~87시즌 LA 레이커스(115.6), 커리와 케빈 듀란트의 2016~17시즌 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115.6), 마이클 조던과 스카티 피펜의 1991~92시즌 시카고 불스(115.5), 래리 버드와 케빈 맥헤일의 1987~88시즌 보스턴 셀틱스(115.4) 다음이 내쉬와 아마레 스타더마이어의 피닉스였다.

2시즌 연속 MVP, 포인트 가드, 뛰어난 외곽 슈팅 등 내쉬와 커리는 공통분모들을 제법 갖고 있다. ⓒAFPBBNews = News1
▶2시즌 연속 MVP

2003~04시즌에 29승53패(승률 35.4%)로 마감했던 피닉스가 바로 다음 시즌에는 62승을 거뒀다. 이는 NBA 역사에서 4번째로 큰 성적 상승이다.

물론 이런 큰 성적 도약을 이룬 팀에 있다고 해서 MVP 영예가 가는 것은 아니다. 2004~05시즌 피닉스보다 더 큰 성적 상승을 거둔 2007~08시즌 보스턴(+42승), 1997~98시즌 샌안토니오 스퍼스(+36승), 1989~90시즌 샌안토니오(+35승)에서는 MVP가 나오지 않았다.

내쉬라는 개인 선수의 영향력이 그만큼 컸다는 뜻이다. 2003~04시즌 22번째 경기부터 지휘봉을 잡은 마이크 댄토니 감독의 농구를 코트 위에서 제대로 실현시킬 선수가 내쉬였다. 코트를 넓게 쓰고 빠르게 공격하는 농구였다.

또한 위력적인 득점력을 가진 3년차 스타더마이어의 잠재력을 한껏 꽃피워준 선수도 내쉬였다. 픽앤롤 과정에서 자신에게 붙은 2명의 수비수 사이의 좁은 틈으로 찔러주는 패스는 스타더마이어의 멋진 마무리로 연결되곤 했다.

2003~04시즌 47.5% 야투율로 평균 20.6득점을 올렸던 스타더마이어는 2004~05시즌에 55.9% 야투율로 26득점을 올렸다. 팀의 확실한 득점원으로 올라서는 계기였다.

그런데 2005~06시즌에는 스타더마이어가 좋지 못한 컨디션으로 단 3경기만 나오는 데 그쳤다. 그럼에도 피닉스는 다시 리그 1위의 공격지표를 기록하면서 54승28패(승률 65.9%)로 리그 4위, 서부 컨퍼런스 3위의 성적으로 마감할 수 있었다.

내쉬의 2004~05시즌 기록은 야투율 50.2% 평균 15.5득점 11.5어시스트 3.3리바운드 1스틸 0.1블록이었다. 2005~06시즌에는 51.2% 야투율 평균 18.8득점 10.5어시스트 4.2리바운드 0.8스틸 0.2블록이었다.

단지 기록지 숫자로만 본다면 내쉬의 2연속 MVP 선정에 의아할 수 있다. 2시즌 연속 두 자릿수를 넘긴 어시스트를 제외한다면 나머지 기록들은 역대 MVP들 중 가장 낮거나 바닥권에 있다. 대신 코트 위에서 팀의 경기력에 미친 영향력 측면에선 당시 투표인단이 내쉬에게 기울 수밖에 없었다.

같은 팀 동료와 경쟁 상대의 관계를 거치면서 키드와 내쉬는 어느덧 서로의 명예의 전당 헌액을 축하해줄 위치에 있게 됐다. ⓒAFPBBNews = News1
▶역대 통산 어시스트 3위

존 스탁턴의 통산 1만5806어시스트, 키드의 1만2091어시스트 다음이 내쉬의 1만335어시스트다. 커리어 평균 8.5어시스트는 9위에 올라있다.

숫자 측면에서 내쉬는 비교적 늦게 발동 걸린 면이 있다. 1년차 평균 2.1어시스트, 2년차 3.4어시스트로 시작해 5년차에야 7.3어시스트로 본격적인 궤도에 올랐다.

그래도 늦게 발동 걸린 대신 지속력은 놀라울 정도다. 30세로 시작한 2004~05시즌 평균 11.5어시스트로 시작해 피닉스에서의 8시즌 경력 동안 7시즌에서 10어시스트를 넘겼다. 38세로 마감한 2011~12시즌에도 평균 10.7어시스트로 마감했다.

내쉬는 36세 이후에도 3시즌에 걸쳐 평균 두 자릿수의 어시스트를 남겼는데 역대 이런 시즌을 남긴 36세 이상 선수는 내쉬 외에 없었다.

▶50-40-90 클럽 4시즌

신묘하고도 재치 있는 패스만으로 내쉬의 많은 어시스트를 설명하기엔 부족하다. 내쉬 자체의 위협적인 외곽 득점력이 상대 수비에게 큰 미끼로 작용했기 때문이다.

농구 선수의 드높은 슈팅 정확도를 상징하는 숫자가 50-40-90 클럽이다. 야투율 50%-3점 야투율 40%-자유투 적중률 90%를 동시에 만족시켜야 들 수 있는 문턱이 아주 높은 클럽이다.

각 항목의 기준치를 만족시키면서 이 위업을 남긴 NBA 선수는 역대 7명뿐이다. 시대 순으로 래리 버드, 마크 프라이스, 레지 밀러, 스티브 내쉬, 덕 노비츠키, 케빈 듀란트, 스테픈 커리다.

여기에서 2회 이상 50-40-90 클럽에 든 선수는 버드(2시즌)와 내쉬(4시즌) 뿐이다. 내쉬는 2005~06시즌, 2007~08시즌, 2008~09시즌, 2009~10시즌에 걸쳐 대기록을 완성시켰다.

커리어 내내 본인의 득점 중 페인트 구역 득점 비중은 30% 안팎이었음에도 내쉬는 7시즌에 걸쳐 야투율 50%를 넘겼다. 2점 야투율은 11시즌에 걸쳐 50%를 넘겼다. 그만큼 위력적인 미드레인지 슈팅 정확도를 뽐냈다는 의미다.

즉 내쉬의 커리어를 간단히 정리하자면 정확도다. 패스든 슈팅이든 상식을 넘어선 정확도를 늦은 나이까지 보여줬다. 축구 선수로서 다졌던 경쾌한 풋워크와 함께 내쉬의 손에서 나오는 패스와 슈팅은 역대 손꼽히는 공격력의 팀을, 당대 리그 최고 공격력의 팀을 이끌 수 있었다. 또한 늦은 나이에도 농구에서 유지될 수 있는 것은 스킬이라는 점을 증명한 장본인이기도 하다. 스포츠한국 이호균 객원기자 hg0158@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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