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이스미스 농구 명예의 전당에 헌액될 인원들을 정식 소개하는 행사가 오는 8일(이하 한국시각) 열린다. 올해는 NBA 선수로 보낸 커리어를 통해 선정된 인원들이 무려 5명이나 될 정도로 파격적인 인원수를 자랑한다.

연령 순으로 모리스 칙스, 그랜트 힐, 제이슨 키드, 스티브 내쉬, 레이 앨런이 그 주인공들이다. 이 중 힐, 키드, 내쉬, 앨런은 1990년대 후반과 2000년대를 관통해 NBA 팬들로부터 큰 인기를 끌어냈던 스타들이다. 이에 [NBA현미경]은 이 4명 각자의 커리어를 집중적으로 살펴보기로 한다.

이번 주인공 힐은 2018 명예의 전당 일원들 중 가장 화려한 초창기 활약을 보여준 경우다. 7회의 올스타 선정 경력에 신인 시즌부터 6시즌 연속이 있다. 2년차부터 5시즌 연속 올NBA 팀에 선정되기도 했다.

전성기 시절의 힐은 30대 나이 시절의 모습과는 완전히 다른 맹렬함을 보여줬었다. ⓒAFPBBNews = News1
하지만 아쉽게도 그렇게 드높았던 명성이 부상으로 인해 큰 타격을 받았다. 7년차부터 10년차까지 4시즌 동안 불과 총 47경기만을 뛰었다. 이로 말미암아 기량도 크게 꺾였다.

그래도 30대에 다시 시작한 힐의 커리어는 꽤 건실한 편이었다. 1972년생으로서 마지막 2012~13시즌까지 늦은 나이에도 좋은 활약을 보여줬다.

하지만 결국 힐을 명예의 전당으로 들여보내 준 가장 큰 원동력은 대학시절과 NBA 첫 6시즌 동안의 맹활약이었다. 그렇다면 그 시기의 힐은 얼마나 대단한 선수였을까.

▶듀크 대학 8번째 영구결번

미국 대학농구 전통의 명가, 듀크 대학에 자신의 등번호를 영구 결번시킨 인원은 현재까지 총 13명이다. 전미 규모의 업적을 쌓아야 이룰 수 있는 위업이다. 그 중 힐은 8번째로 유니폼을 걸어놓을 수 있었다.

1학년 1990~91시즌부터 4학년 1993~94시즌까지 힐은 소속팀의 영예들에 큰 몫을 했었다. 1991년 및 1992년, 2년 연속 전미 대학 토너먼트 우승을 거머쥘 때에도 힐은 어린 나이에도 많은 시간을 뛰며 활약했다.

결정적인 장면은 힐이 2학년 때인 1992년 대학 토너먼트 결승이었다. 켄터키 대학과의 단판 결승에서 듀크 대학은 종료 2.1초를 남기고 실점하며 102-103으로 뒤지게 됐다. 이때 엔드라인에서 패스를 던진 선수가 힐이었고 멀리 날아간 볼은 반대 진영 자유투 라인 근처에 서있던 동료 크리스찬 레이트너의 손에 들어갔다. 그리고 레이트너의 중거리 슈팅으로 역전을 이루며 2년 연속 우승을 달성하게 됐다.

2년 연속 전미 우승을 거둔 후에도 듀크 대학은 1993년과 1994년에도 결승에 진출할 정도로 큰 위력을 자랑했다. 여기에서는 힐이 중추 역할을 맡았다. 3학년 때 평균 18득점 6.4리바운드 2.8어시스트, 4학년 때 평균 17.4득점 6.9리바운드 5.2어시스트를 기록하며 다재다능한 경기력을 보여줬다.

3학년으로서 올해의 수비수, 4학년으로서 컨퍼런스 최고의 선수에 선정된 힐은 1994년 NBA 드래프트에서 글렌 로빈슨과 키드 다음인 3순위로 디트로이트 피스톤스에 의해 호명됐다.

▶신인으로서 올스타 선발, 공동 신인상

NBA 역사에서 올스타 선발에 선정된 신인들은 16명뿐이다. 그리고 이 중 15번째인 힐 다음으로 올스타 선발에 선정됐던 신인은 2002~03시즌의 야오밍뿐이다.

이렇게 힐은 신인이었던 1994~95시즌부터 큰 활약을 보여줬다. 1988~89시즌 및 1989~90시즌에 2연속 우승을 달성했던 이후로 하락의 길을 걷고 있던 디트로이트에 구원자가 될 슈퍼스타를 예감케 했다.

신인 시즌 힐은 평균 38.3분을 뛰며 19.9득점 6.4리바운드 5어시스트 1.8스틸 0.9블록을 기록했다. 득점과 스틸에서 팀 내 선두였던 힐은 특히 뛰어난 운동능력을 통해 다양한 경로의 득점을 선보였다. 드리블 돌파든 컷인이든 효과적인 결과를 냈다.

여기에 스몰 포워드로서 쌓은 평균 5어시스트는 힐의 경기력을 말해주는 핵심 기록이다. 힐이 포인트 포워드로 불렸던 이유를 설명해주는 기록이기 때문이다. 힐보다 뒤에 나온 선수지만 힐의 비교대상으로 많이 거론되는 르브론 제임스의 신인 때 기록이 힐과 비슷했다. 2003~04시즌 제임스는 평균 20.9득점 5.5리바운드 5.9어시스트를 기록했다.

그런데 동시에 힐과 대등한 위력을 보여줬던 신인이 또 있었다. 역시 2018 명예의 전당 일원인 키드가 평균 11.7득점 5.4리바운드 7.7어시스트 1.9스틸 0.3블록이라는 다방면 기록을 작성했다.

이로써 NBA 역사에서 3회 있었던 공동 신인상을 받게 됐다. 이 외 공동 신인상은 1970~71시즌의 제프 페트리와 데이브 코웬스, 1999~00시즌의 스티브 프랜시스와 엘튼 브랜드가 있었다.

드리블로 자신 앞의 수비수를 제치는 모습은 힐의 인기에 큰 몫을 담당했다. ⓒAFPBBNews = News1
▶6시즌 연속 올스타 선발

1950~51시즌 시작된 이래 유일하게 NBA 올스타전이 열리지 않았던 때가 직장폐쇄로 단축됐던 1998~99시즌이었다.

힐은 5년차였던 1998~99시즌을 제외하고 1년차부터 7년차까지 연속으로 올스타에 선정됐다. 그것도 매번 투표로 뽑힌 선발이었다. 그리고 올스타전이 없던 1998~99시즌도 평균 21.1득점 7.1리바운드 6어시스트 1.6스틸의 평소와 다름없던 올스타 급 시즌이었다.

힐의 가장 큰 매력은 다재다능함이었다. 빅맨과 비슷한 리바운드 숫자, 포인트 가드와 비슷한 어시스트 숫자를 기록하면서 오히려 힐의 포지션을 명확히 정의할 수 없을 정도였다.

수시로 앨리웁 덩크를 꽂을 수 있었던 활발한 운동량과 도약능력, 크로스오버 드리블로 수비수를 혼자서 제칠 수 있던 드리블 기술, 여기에 폭발적인 속도를 냈던 스텝이 더해지며 힐의 경기력은 매력을 뿜어냈다.

부상 전까지 디트로이트에서 보낸 첫 6시즌 동안 힐은 평균 21.6득점 7.9리바운드 6.3어시스트 1.6스틸 0.6블록을 기록했다. 이 숫자들은 힐의 커리어 첫 6시즌에 걸쳐 대동소이하게 유지됐다.

게다가 전성기 나이에 가까워진 1999~00시즌에 야투율 48.9%로 평균 25.8득점을 기록하며 도약을 알리기도 했다. 그 전까지 줄곧 평균 21득점 근처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렇게 득점이 상승하면서 효율성이 감소하는 비용은 따르지 않았다. 야투율 48.9%는 당시까지 2번째로 높았다.

피닉스 선즈에서 명예의 전당 동료 내쉬 등과 5시즌을 보낸 동안 힐은 평균 12.1득점 4.7리바운드를 기록했다. ⓒAFPBBNews = News1
▶아쉽지만 유종의 미를 거둔 커리어

그렇게 빛났던 1999~00시즌이 끝난 뒤 힐은 프리 에이전트로서 올랜도 매직과 계약하며 큰 기대를 모았다. 하지만 발목 부상이 올랜도와 힐 모두를 시름에 잠기게 만들었다. 올랜도 소속으로서 힐은 7시즌의 시간을 보냈지만 출전 경기는 불과 200경기였다. 2003~04시즌은 아예 한 경기도 뛰지 못했다.

그나마 67경기를 소화한 2004~05시즌의 힐은 벌써 32세에 접어들었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그 시기 뒤로 큰 굴곡 없이 커리어를 보냈다는 점이다. 2004~05시즌부터 40세로 마친 2011~12시즌까지 계속해서 평균 두 자릿수 득점을 올렸다. 야투율도 50% 근처 대역의 알찬 효율을 보여줬다.

이렇게 힐은 1시즌 공백을 제외하고 NBA 18시즌을 보내면서 나름 유종의 미를 거뒀다. 드높았던 인기를 끌다가 부상 등으로 갑자기 초라한 시즌들만 보내다 마친 선수들과는 다르다.

2000~01시즌 단 4경기만 뛰었음에도 팬들의 투표로 올스타 선발에 선정됐던 그 인기까지는 아니지만 여전히 힐은 매체에서 환영받는 인물이다. 3회의 NBA 스포츠맨십 상을 받았을 정도로 모범이 되는 인성도 있다. 전성기 화려했던 경기력 및 기록과 함께 힐이 명예의 전당에 헌액된 데에는 여러 무형의 요소들이 작용했을 것이다. 스포츠한국 이호균 객원기자 hg0158@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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