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시즌의 NBA 커리어 동안 평균 15.2득점 5어시스트 4.5리바운드 1.6스틸은 미지근해 보일 수 있다. 이를 통해 보면 1990년대 후반 앤퍼니 하더웨이에게 향했던 그 뜨거웠던 인기가 의아할 만하다.

가장 높았던 평균 득점이 21.7득점이었던 것을 봐도 이 선수가 당시 농구 황제로 군림했던 마이클 조던을 잇는 스타로 여길 만했던 것일까 의심할 수 있다.

그래도 저런 기대를 불러일으킬 만큼 하더웨이가 초창기 대단한 플레이를 보여줬던 것은 사실이다. 불과 4년차까지의 짧은 기간이었지만 확실한 가능성을 보여줬다.

2년차 1994~95시즌과 3년차 1995~96시즌 하더웨이는 2시즌 연속 올NBA 퍼스트 팀에 선정됐었다. 1994~95시즌은 존 스탁턴과, 1995~96시즌은 조던과 함께 리그 최고의 가드 두 명으로서 인정받았다.

그렇다면 하더웨이의 그 뜨거웠던 모습을 담을 기록들은 없을까. 몇 가지를 통해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하더웨이의 등장은 당시 NBA 리그에 신선한 충격을 주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AFPBBNews = News1
▶당대 최고의 센터들 중 한 명과 동료

1993년 NBA 드래프트는 꽤 독특한 그림을 갖고 있었다. 로터리 추첨에서 가능성이 가장 높았던 3팀이 모두 미끄러지고 11위의 확률(1.52%)을 갖고 있던 올랜도 매직이 1순위에 당첨됐다. 2순위 필라델피아 세븐티식서스는 5위, 3순위 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는 7위, 마찬가지로 꽤 낮은 당첨 확률을 갖고 있었다.

이런 가운데 1순위의 올랜도와 3순위의 골든스테이트는 서로 뽑은 선수들을 맞교환하는 트레이드를 단행했다. 원래의 1순위 크리스 웨버는 골든스테이트, 3순위 하더웨이는 올랜도로 향했다. 파워 포워드 또는 센터를 맡는 웨버보다는 가드인 하더웨이가 당시 올랜도에게 맞는 조각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그 이유는 샤킬 오닐이었다. 신인이었던 1992~93시즌 평균 23.4득점 13.9리바운드 3.5블록을 남긴 괴물 센터 옆에는 빅맨보다는 가드가 더 어울릴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 하더웨이도 드래프트 전 올랜도와의 면접에서 강한 합류 의사를 비쳤다.

단 4시즌을 뛰고 프리 에이전트로서 팀을 떠났지만 올랜도에서 오닐은 큰 숫자들을 남겼다. 2년차와 3년차 연속으로 평균 29.3득점을 남겼고 4년차에도 26.6득점의 높은 숫자를 기록했다.

오닐은 올랜도에서의 4시즌에 걸쳐 코트 위에 있는 동안 야투 및 자유투 시도 또는 턴오버로 팀의 공격 기회 중 29.9%를 사용했다. 그리고 하더웨이와 함께 한 3시즌 동안에는 31.0%를 사용했다. 1994~95시즌의 31.9%와 1995~96시즌의 32.8%는 지난 2017~18시즌의 르브론 제임스(31.6%)보다 높은 사용지분이다.

이 공격기회 사용지분을 의미하는 유시지 퍼센티지(Usage percentage, 이하 USG%)에서 하더웨이는 오닐과 함께한 3시즌 동안 23.6%를 기록했다. 가장 높았던 3년차 1995~96시즌엔 25.5%를 기록했다. 이 USG%는 지난 시즌 러셀 웨스트브룩(34.1%)과 함께 뛰었던 폴 조지(25.7%)와 비슷하다.

▶뛰어난 재능과 감각을 선보이며 뽑아낸 높은 효율성

장신 포인트 가드의 대명사 매직 존슨과의 비교를 정말 많이 끌어냈던 하더웨이는 공식 기재 신장이 201cm다. 현재 리그에서는 클레이 탐슨, 더마 드로잔, 제일런 브라운, 카와이 레너드 등의 윙 포지션과 드레이먼드 그린 같은 빅맨도 이 신장을 지녔다.

우수한 신체 조건을 앞세워 하더웨이는 페인트 구역 쪽으로 침투했을 때 매우 훌륭한 마무리를 보여줬다. 자신과 같은 포지션인 포인트 가드들은 물론 포워드 수비수들을 앞에 두고도 곧잘 성공시키곤 했다.

2년차 1994~95시즌 및 3년차 1995~96시즌에서 하더웨이는 각각 55.8%와 57.3%의 2점 야투율을 기록했다. 평균 20득점을 넘기면서 2점 야투율 55%를 넘겨본 역대 201cm 신장 이하 NBA 선수들은 17명뿐이다. 현역 중에는 2015~16시즌 및 2017~18시즌의 스테픈 커리뿐이다.

1994~95시즌 평균 20득점을 넘긴 선수들 중 2점 야투율 1위가 오닐(58.5%)이었고 2위가 하더웨이였다. 1995~96시즌에는 세드릭 세발로스(57.6%) 다음의 2위였다.

여기에 역대 2m 이상 신장 최고의 볼 핸들러들 중 한 명으로서 꼽힐 볼 핸들링과 신묘함까지 느낄 수 있는 패스 감각이 더해져 하더웨이는 막기 힘든 선수로 인정받았다.

▶오닐의 공백 동안 보여줬던 폭발적인 숫자

1995~96시즌 올랜도는 부상으로 인해 오닐 없이 첫 22경기를 치러야 했다. 당시로써는 꽤 비상사태인 상황에서 올랜도는 17승5패(승률 77.3%)의 훌륭한 성적을 거뒀다. 여기에는 11월 이달의 선수에 선정됐던 하더웨이의 견인이 컸다.

11월3일(이하 현지시각)부터 11월30일까지 15경기 동안 하더웨이는 51.0% 야투율 평균 27득점 6.5어시스트 5.8리바운드 2.2스틸 1블록을 기록했다. 그리고 오닐이 돌아오기 직전인 12월13일까지 22경기 동안엔 50.3% 야투율 평균 26.4득점 6.8어시스트 5.3리바운드 2스틸 0.9블록을 기록했다.

길지 않다면 길지 않은 기간이지만 한 팀의 확실한 구심점으로서 나설 만한 활약과 숫자를 기록했다. 하더웨이가 82경기 모두 뛴 이 시즌에서 오닐이 28경기를 결장했음에도 올랜도는 29시즌 구단 역사에서 최다 기록 60승을 이룩했다.

시즌 경기 최고 기록이 42득점이었던 하더웨이는 플레이오프에서도 42득점이 최고 기록이다. ⓒAFPBBNews = News1
▶오닐과의 작별 후 보여준 플레이오프 고군분투

빛나는 시즌 성과와 함께 하더웨이는 플레이오프에서도 빛을 발했다. 2년차 1994~95시즌엔 1990~91시즌 이후 조던에게 유일한 플레이오프 시리즈 패배를 안겨준 데에 일조하기도 했다. 그리고 동일 시즌 NBA 파이널에서 4연패 스윕으로 물러났지만 50.0% 야투율 평균 25.5득점 8어시스트의 훌륭한 숫자를 남기기도 했다.

하지만 오닐이 떠난 뒤 하더웨이도 올랜도도 위기를 맞이했다. 1996~97시즌 하더웨이는 에이스로서의 위치를 굳힐 시기에 잦은 부상들을 겪으며 3년차까지의 드높은 성장세를 잇지 못했다.

하지만 플레이오프에서는 에이스로서의 역할에 집중할 때 하더웨이가 얼마나 매섭게 되는지 볼 수 있었다. 1라운드에서 2연패를 당한 뒤 3차전부터 42득점과 41득점을 올리며 2연승을 이끌었다. 당시 상대방 마이애미 히트의 팻 라일리 감독 팀을 상대로 플레이오프에서 2경기 연속 40득점을 넘긴 선수는 하더웨이가 처음이었다.

하지만 결국 3차전부터 시작된 3경기 연속 47분 이상의 출전 혹사는 시리즈 승리로 이어지지 못했다. 1라운드가 5전3선승제였던 당시 2승3패로 물러나야 했다.

그리고 이어진 1997~98시즌에 하더웨이의 커리어를 무너뜨린 무릎 부상이 나왔고, 이후로 화려했던 시절 하더웨이를 다시 보기는 힘들었다.

2년차부터 올NBA 퍼스트 팀 및 올스타 선발에 선정되기란 어렵다. 리그 최고의 가드 2명 안에 들어야 되기 때문이다. 4시즌 연속 올스타 선발로서 선정된 하더웨이는 심지어 1997~98시즌 19경기의 불안정한 출전에도 NBA 팬들의 강력한 투표 지원을 받았다.

즉 치명적 부상이 오기 전까지 하더웨이의 첫 NBA 4시즌은 그만큼 NBA 매체와 팬들에게 크게 각인됐다는 의미다. 조던의 은퇴 시기와 맞물릴 즈음 리그의 간판스타 자리를 물려받을 선수로서 인정받기도 했다. 농구 기록에 남긴 숫자의 덩치가 엄청 크지는 않았지만 나서야 할 때는 그런 숫자를 남길 수 있음을 증명했기 때문이다. 스포츠한국 이호균 객원기자 hg0158@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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