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한국 이재호 기자]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이 9월 2일 폐막까지 숨가쁜 레이스를 펼치고 있는 지금, 아시안게임에 출전한 한국인이지만 그들의 가슴팍에는 태극마크가 아닌 다른 나라 국기가 달려있는 이들이 있다.

더 이상 한국에서 써주지 않아 어쩔 수 없이 한국을 떠났지만 베트남의 영웅이 된 박항서 베트남 축구대표팀 감독부터 라오스에 희망을 전달하기 위해 간 이만수 라오스 야구대표팀 단장, 일본에서만 무려 14년째 배드민턴 감독으로 활동하고 있는 박주봉이 고국팬들에게 잔잔한 감동을 전하고 있다.

왼쪽부터 베트남 축구대표팀 감독 박항서, 라오스 야구대표팀 단장 이만수, 일본 배드민턴 대표팀 감독 박주봉. 연합뉴스 제공
▶한국 축구가 버린 박항서의 기막힌 반전

지난해 박항서 감독은 심각하게 고민에 빠진다. 과연 베트남까지 가야하는 것일까.

박항서가 누구인가. 2002 한일 월드컵 4강 신화에서 거스 히딩크 감독을 바로 옆에서 보좌한 수석코치였고, 2002 부산 아시안게임 한국대표팀 감독에 경남FC, 전남 드래곤즈, 상주 상무 같은 프로팀 감독까지 두루 역임한 간판급 지도자가 아닌가.

A대표팀 수석코치, 연령별 대표 감독, 시민구단(경남), 기업구단(전남), 군경팀(상무) 감독에 K리그 1부리그(경남, 전남, 상무), 2부리그(상무), 3부리그(내셔너릴그 창원 시청)까지 모두 역임한 한국축구 지도자의 산증인인 박항서 입장에서 베트남까지 간다는 것은 큰 결단이 필요했다.

하지만 방법이 없었다. 2017년 3부리그격인 창원시청 감독까지 내려간 박항서를 더 이상 K리그나 국가대표에서 불러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박항서 감독도 훗날 “베트남으로 간 건 솔직히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이미 다른 감독들이 자리를 잡고 있어 한국 프로리그에서 더 활동하기 힘들거라고 판단했다”고 털어놨다.

생소한 베트남으로 떠난 박 감독은 단숨에 10년간 못 이긴 라이벌 태국을 이기며 베트남 축구붐을 불러일으켰고 지난 1월 AFC U-23 챔피언십에서 준우승을 차지하며 국민 영웅으로 추앙받았다.

이번 아시안게임에서도 일본을 꺾는 등 조별리그 무실점 3전 전승이라는 놀라운 성적으로 토너먼트에 올랐다. 늘 약체던 베트남 축구의 놀라운 성적에 동남아시아 언론들은 “동남아 축구의 자랑”이라며 추켜세울 정도.

한국에서도 ‘쌀딩크’, ‘베트남의 히딩크’라 불리는 박항서 감독은 베트남 정부의 훈장과 함께 문재인 대통령의 베트남 국빈방문 때도 함께해 불과 몇 개월 전만 해도 한국에서 더 이상 써주지 않던 감독에서 짜릿한 반전을 이뤄냈다.

연합뉴스 제공
▶라오스 야구의 ‘은인’ 이만수

한국 프로야구 1호 홈런의 주인공이자 역대 최고의 포수, 한국인 최초 코치로서 미국 월드시리즈 우승(시카고 화이트삭스), ‘스포테이먼트’로 SK 와이번스를 이끈 이만수 감독도 아시안게임에 한국 유니폼이 아닌 라오스 유니폼을 입고 인도네시아에 나타났다.

야구 볼모지였던 라오스에 2014년 방송을 통해 재능 기부를 하면서 시작된 인연은 지난해 7월 라오스에서 라오스 야구협회를 창립하는데까지 이어졌다.

라오스의 야구 발전을 위해 아낌없는 지원과 재능 기부를 해온 이만수 전 감독의 활동에 감동한 라오스 정부 역시 이만수에게 감사함을 느껴 외국인임에도 라오스 야구협회 부회장직을 제안했고 이만수는 라오스 야구협회 부회장과 라오스 야구 대표팀 단장으로 아시안게임까지 참석했다.

이만수 라오스 야구협회 부회장은 이번 대회에서 1승이라도 거두면 라오스 수도 비엔티안에서 '상의 탈의' 퍼포먼스를 펼치겠다는 공약까지 내걸었다. SK에서도 팬티만 입은 상의 탈의 퍼포먼스로 한국 스포츠사에 특별한 퍼포먼스로 한 획을 그은 이만수다운 공약.

21일 열린 태국전을 통해 역사적인 첫 국제 경기에 나선 라오스는 그러나 0-15, 6회 콜드게임 패배를 당했고 22일 열린 2차전에서 스리랑카에 10-15로 패하며 본선에 오르지는 못했다.

하지만 스리랑카를 상대로 10득점이나 해내며 희망을 봤다. 이만수 단장과 함께하는 권영진 라오스 대표팀 감독은 “라오스 야구팀은 한국의 중학교 2학년 수준”이라면서도 “그런 수준으로 스리랑카에 선전한 것에 희망을 봤다”고 했다.

연합뉴스 제공
▶일본 배드민턴을 바꿔놓은 박주봉 감독

2004년 아테네 올림픽. 일본 배드민턴 선수는 13명이 출전해 12명이 1회전을 탈락한다. 국제 기준에서 보면 많이 부족했던 일본 배드민턴은 전격적으로 ‘라이벌’ 한국의 지도자인 박주봉을 영입한다. 그리고 2018년까지 무려 14년을 지휘봉을 맡겼다.

2012 런던에서는 은메달, 2016 리우 올림픽, 배드민턴 여자 복식은 일본 배드민턴 역사상 사상 첫 올림픽 금메달을 따낸다. 일본의 뚝심 있는 박주봉 감독에 대한 믿음과 박주봉 감독의 지휘력은 단숨에 일본을 배드민턴 강대국 사이에 끼워 넣었다.

1990년대 박주봉 감독은 쉽게 말하면 이용대같은 한국의 ‘배드민턴 스타’였다.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 남자 복식 금메달,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 혼합 복식 은메달, 세계선수권대회 통산 5회 우승 등에 빛나는 한국 배드민턴 역사의 전설이었다.

그런 그는 탁월한 지도력으로 일본 체육 역사상 가장 위대한 도전으로 준비되고 있는 2020 도쿄 올림픽까지 계약 연장했다. 한국 태릉선수촌을 벤치마킹해 전문 훈련시설과 합숙 시스템을 통해 약한 일본 선수를 성장시킨 박주봉 감독은 체력 강화 프로그램, 일본 대표팀 전담 코치제도 등을 정립시키기도 했다.

한국을 넘어 일본 배드민턴에서도 ‘전설’로 자리잡고 있는 박주봉의 일본 배드민턴은 25일 한국 여자 복식을 꺾고 4강에 오르기도 했다. 여자단체전 결승전 역시 우승하며 대회 6연패를 노리던 중국을 잡아내기도 했다.

-스한 위클리 : 스포츠한국은 매주 주말 ‘스한 위클리'라는 특집기사를 통해 스포츠 관련 주요사안에 대해 깊이 있는 정보를 제공합니다. 이 기사는 종합시사주간지 주간한국에도 동시 게재됩니다.

저작권자 © 스포츠한국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