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순서
① 생중계 인터뷰서 일본식 용어… 콩글리시 용어도 여전히 사용
② 핸들링, 파넨카킥, 미들슛은 모두 틀린말? (축구·농구 편)
③ 후덕과 뒤펜스가 탁구용어? '용병' 써야하나(일반 종목 편)
④ 톱타자는 1번 타자일까? 최고의 타자일까?(야구 편 1/2)
⑤ 야구는 미국 스포츠, 그럼 영어만 써야할까?(야구 편 2/2)

[스포츠한국 김성태 기자]언어는 한 나라의 의식 수준을 가늠하는 척도다. 동시에 국가와 민족의 유구한 전통과 문화를 엿볼 수 있는 거울이기도 하다. 부끄럽게도 2018년 국내 스포츠 현장에서는 여전히 출처불명의 용어들이 무시로 사용되고 있고, 또한 일본식 혹은 콩글리시 용어들이 마치 표준어처럼 광범위하게 쓰이고 있다. 올바른 스포츠 용어 정착은 곧 스포츠의 대중화, 세계화와도 연결돼있다. 스포츠한국은 캠페인을 통해 올바른 스포츠 용어 문화 조성의 첫 걸음을 마련하고자 한다. /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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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바른 용어 사용은 필수, 상황에 맞는 유연성도 필요

올바른 용어 개선은 꾸준히 이루어지고 있지만, 야구의 원조인 메이저리그가 대중에 익숙해지면서 이로 인한 혼동은 계속 생겨나고 있다.

예를 들어 '사이클링 히트'라는 단어가 대표적이다. 한 경기에서 1루타, 2루타, 3루타, 홈런을 모두 쳐내는 것을 의미한다. 야구 팬이라면 이 단어가 어떤 것을 뜻하는지 쉽게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사이클링 히트는 전형적인 일본식 영어다. 그렇다고 해서 이를 우리말로 번역하기엔 마땅히 떠오르는 용어가 없다. 미국에서는 '힛 포더 사이클'(Hit for the cycle)로 부르고 있지만 어감도 어렵고 길고 이해도 잘 가지 않는다. 사실 한국 야구 팬이라면 '사이클링 히트'가 훨씬 익숙하고 이해도 잘 간다.

여기서 고민거리가 생긴다. 미국은 야구의 본고장이다. 스포츠의 경우, 본고장의 용어를 사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시각이 많다. 그렇다면 영미권 용어를 그대로 가져와서 사용하는 것이 옳은 건지, 아니면 콩글리시라고 해도 익숙하게 쓰고 있으니 그대로 쓰거나, 혹은 우리식 표현을 꼭 만들어야 할까.

허구연 해설위원은 "무조건 영어식 용어만 사용을 한다면 이해하기 어렵고 길기도 하다. 야구는 대중을 위한 스포츠다. 영어를 전혀 모르는 사람도 봐야 한다"라며 유연하게 정립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한다.

인사이드 더 파크 홈런(Inside-the-park home run)의 경우도 애매하다. 뜻 그대로 해석을 하면 '장내 홈런'이 된다. 타구를 쳐낸 타자가 인플레이 된 상황에서 1루와 2루를 돌아 3루를 거쳐 홈까지 들어와 득점을 올리는 플레이를 말한다.

그렇다면 우리가 흔히 쓰고 있는 '장외 홈런'과 혼동이 될 수 있다. 한국에서 장외 홈런은 타구가 아예 경기장 밖으로 나간 홈런을 뜻한다. 자칫 이런 해석이라면 경기장 내 관중석에 떨어진 일반적인 홈런도 장내 홈런으로 오해, 착각할 수 있다.

그래서일까. 한국에서는 인사이드 더 파크 홈런이라는 용어 대신 '그라운드 홈런'이라는 표현으로 이를 대체하고 있다. 일본에서는 '러닝 홈런'이라고 부르고 있기에 유사한 점도 있지만 이는 미국과 일본도 아닌 한국에서 만들어진 용어라 추측할 수 있다.

심지어 KBO 레코드북에도 '그라운드 홈런, 대타 그라운드 홈런, 그라운드 만루 홈런'이라는 항목이 엄연히 존재한다. 사실상 공식 용어처럼 사용되고 있다는 의미다. 이처럼 '인사이드 더 파크 홈런'보다는 '그라운드 홈런'이 한국 야구 팬들에게는 훨씬 이해하기 편한 용어라 볼 수 있다.

민훈기 해설위원은 "편의상 줄이는 것도 맞지만 영어식 표현을 억지로 한국말로 바꿔서 쓰거나, 혹은 영어 그대로 쓴다고 해도 너무 길다보면 팬들이나 관계자, 선수들 모두 인식하는데 있어서 어려움을 겪을 수 밖에 없다. 영어를 쓸 수 있으면 쓰지만 익히 알려진 용어의 경우에는 우리식으로 쓰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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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땅한 대체 용어가 없는 기록 용어, 영어 그대로 쓰되 해설이 필요

위에 언급한대로 많은 이들이 익숙하게 사용하고 있는 용어라면 큰 문제가 없다. 하지만 야구는 기록의 스포츠다. 종목의 특성상, 점점 더 새로운 통계 및 기록 지수들이 생겨나고 있다. 이는 본고장이라 불리는 미국에서 건너와 사용되고 있다. 흔히 말하는 `세이버 매트릭스(Sabermetrics)'가 바로 그것이다.

야구를 통계 및 수학적으로 분석하는 방법론이지만, 최근 들어서는 그 비중이 더욱 커지면서 한국 야구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단순히 승수로만 투수, 타율로만 타자를 평가했던 시절과 달리 이제는 새롭고 세부적인 기록 지표들이 쏟아지고 사용되고 있다.

만약 한 해설위원이 "저 선수의 `OPS'는 1이 넘기에 좋은 타자로 볼 수 있습니다. `WAR'도 높다보니 팀에 없어서는 안될 선수지요. 하지만 상대하는 투수의 경우, `WHIP'가 너무 높습니다. 스스로 위기를 자초하는 경우가 많을 수 밖에 없죠. 팀 내 야수진의 `DER'도 좋지 않기에 투수 입장에서는 여간 곤혹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라고 말을 한다면?

야구를 좋아하는 일부 팬들은 이해를 할 수 있지만, 일반적인 팬들은 쉽게 알아듣기 어렵다. 그렇다고 해서 이를 모두 한글로 번역해서 설명을 한다면 한참 망설여진다. 장타율(Slugging Percentage)이나 출루율(On Base Percentage)은 그나마 짧으면서도 한국어로 번역이 잘 이루어진 경우다.

하지만 두 기록이 합쳐진 OPS(On base percentage Plus Slugging percentage) 경우는 마땅한 한국어 대체 용어가 없다. 말 그대로 '장타율과 출루율의 합'으로 부를 수 밖에 없다.

또한 WHIP(Walks Plus Hits Divided by Innings Pitched) 역시 한국어로 '이닝 당 출루 허용률'로 사용되고 있으며, 한 선수가 얼마나 많은 승리를 기여했는지를 나타내는 지수인 WAR(Wins Above Replacement)은 '대체 선수 승리 기여도'라고 불리고 있다.

이러한 용어를 무작정 한글로 변환해서 사용하기엔 너무 길고 불편하다. 우리말로 바꾸기에 어려운 용어의 경우는 억지로 바꾸는 것이 오히려 독이 된다. 어차피 사용되지 않는 우리말은 자연스래 도태되기 마련이다. 영어 그대로의 표현을 써주되, 대신 그 용어에 대한 정확한 설명 및 해설이 필요하다.

민훈기 해설위원은 "어떠한 표현을 사용할 때는 미국에서 어떻게 쓰여지고 있는지를 추가적으로 설명해서 시청자들의 이해를 돕는 것이 바람직하다. 예를 들어 투수가 던지는 스플리터(Splitter)라는 구종의 경우도 스플릿 핑거 패스트볼(Split-Finger Fastball, SF Ball)이라는 식으로 덧붙여 설명하고 있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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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이 '종주국'인 스포츠, 하지만 우리 말로 바꿀 것은 바꾸자

야구는 '국민 스포츠'다. 마니아적인 성향을 지닌 팬들도 많지만 야구가 인기를 끌 수 있었던 가장 큰 요인은 바로 남녀노소 모두가 쉽게 받아들이는 '대중성'에 있다. 야구라는 스포츠가 미국과 일본을 거쳐 한국에 왔다고 해도 결국 우리가 사용하고 우리에게 익숙해진 용어가 있다면 그대로 사용하는 것이 우선이다.

그라운드 홈런, 사이클링 히트 뿐 아니라 볼넷 역시 미국에서는 '베이스 온 볼스(base on balls)라고 불리지만 부르기도 쉽고 의미도 맞기에 이제는 '볼넷'이라는 단어로 정확하게 정착했다. 한글 사용의 목적은 결국 화자다. 말하는 이가 편하게 사용할 수 있는 것이 중요하다.

국립국어원 연구원 출신이자 [공부도 인생도 국어에 답 있다]의 저자인 허철구 창원대 국문과 교수는 "영어 자체로 쓰는 경우는 아무래도 일반인은 어렵게 느낄 수 밖에 없다. 꼭 영어 원어를 찾아서 쓰는 것보다 우리말로 알아 듣기 쉽게 만드는 것도 바람직하다고 본다"고 말한다.

그는 "물론 외래어라고 해서 무조건 우리 말로 바꿔야 하는 것은 아니다. 국제적인 소통도 중요하기에 그대로 사용할 필요도 있다. 하지만 용어를 처음부터 선택하는 과정이 아니라 충분히 우리 말로 대중들이 익숙하게 사용하고 있는 말이 있고 우리식으로 굳어졌다면 꼭 바꾸거나 할 필요는 없어 보인다. 실제로 쓰이고 있다면 그 자체가 이미 '용어'가 된 것이다"고 설명한다.

본고장의 용어를 쓰는 것은 세계화 추세에도 걸맞다. 마땅한 우리말 대안이 없을 경우에는 그것이 최우선이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모두가 공감하고 알맞는 우리말이 있다면 그 용어를 사용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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