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BA 역사 최고의 파워 포워드로 꼽을 선수로 은퇴 선수들인 칼 말론과 팀 던컨이 항상 거론된다. 그리고 둘 사이의 경쟁에서 대개 던컨에게 무게중심이 쏠리는 경향이다.

물론 관점에 따라 충분히 말론을 꼽을 수 있다. 던컨과 달리 커리어 전체 동안 계속해서 파워 포워드로서 뛰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간략히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21세기가 오기 전까지 보자면 단연 역사 최고의 파워 포워드는 말론이란 사실이다. 19시즌 커리어 51.6% 야투율 평균 25득점 10.1리바운드라는 드높은 기록을 통해 요약할 수 있다.

그리고 말론의 드높았던 위치를 요약해주는 숫자가 또 있다. 3년차부터 16년차까지 14시즌 연속 올NBA팀에 선정됐던 말론은 퍼스트 팀에만 무려 11회 선정됐었다. 즉 1988~89시즌부터 1998~99시즌까지 줄곧 리그 최고의 포워드 2명 안에 들었다.

이 기록은 현역 르브론 제임스의 지난 시즌까지 12회 다음으로 코비 브라이언트와 함께 역대 공동 2번째로 많은 올NBA 퍼스트 팀 선정 횟수다.

말론이 이와 같은 위업을 쌓을 수 있던 힘은 무엇이었을까. 그 힘을 통해 얼마나 큰 숫자의 탑을 쌓았던 것일까.

던컨과 같은 시대를 뛰기도 했던 말론은 코트 위의 모습으로 절대 밀리지 않는 위력을 보여준 바 있다. ⓒAFPBBNews = News1
▶스탁턴과 기록한 역대 최고의 출석 듀오

유타 재즈는 1984년 NBA 드래프트에서 존 스탁턴을 전체 16순위로 뽑은 뒤 1985년엔 말론을 13순위로 뽑았다. 이렇게 해서 1985~86시즌부터 시작된 스탁턴-말론 듀오는 2002~03시즌까지 18시즌 동안 계속해서 유타의 심장으로서 존재했다.

이들이 함께 플레이한 1412경기는 NBA 역사 중 동일 팀에서 두 선수가 같이 플레이한 가장 많은 경기 수다. 일찍부터 오랜 시즌을 함께 한 것도 있지만 양 선수 모두 결장이 매우 적었다. 유타 커리어 동안 말론은 불과 9경기, 스탁턴은 22경기만을 결장했다.

또한 스탁턴-말론 듀오는 NBA역사에서 2위와 큰 차이로 가장 많은 승리를 챙겼다. 스탁턴-말론이 906승이라면 2위 로버트 패리쉬-케빈 맥헤일은 656승, 3위 빌 러셀-샘 존스는 618승이다.

스탁턴의 역대 통산 1위 1만5806어시스트는 깨질 가능성이 희박한 기록으로 꼽힌다. 그리고 말론은 카람 압둘자바의 3만8387득점에 이어 역대 통산 2위의 3만6928득점을 쌓았다. 이 듀오가 각자 이런 큰 탑을 쌓은 데에는 각자 19시즌이란 많은 시간을 보낸 것도 있지만 능력 자체가 역사에서 손꼽히기 때문이다.

▶픽앤롤 득점에 모범적인 말론의 능력

현재 NBA에서 픽앤롤은 전혀 특이점이 없는, 모든 팀들에게 기본적인 전술이 된 움직임이다. 하지만 픽앤롤이 리그에서 쓰이기 시작할 무렵 가장 효과적으로 사용했던 선수들이 스탁턴-말론 듀오다.

206cm 신장 113kg 체중 말론은 완전한 근육질 몸매를 통해 누구 못지않은 몸싸움을 벌일 수 있었다. 이런 몸으로 서는 스크린에다 말론은 뛰어난 주력을 보였다. 때문에 스크린 후 효과적으로 빈 공간을 잘라 들어갈 수 있었다.

그리고 이들의 픽앤롤 전술을 더욱 완벽하게 만들었던 것이 말론의 점프슛 능력이었다. 스크린 후 본인의 수비가 멀어졌을 때 던지는 말론의 미드레인지 슈팅은 상대에게 적지 않은 피해를 줬다.

실제 말론의 슈팅 지점은 두 구역으로 요약할 수 있다. 바스켓 주변과 자유투 라인 근처의 중거리 지점이다. 말론의 야투 시도 중 거의 대부분이 이 구역들에서 나왔다.

그리고 말론은 볼을 가졌을 때 본인의 전진이 상대 수비의 몸에 의해 멈췄을 때도 좋은 마무리 실력을 보여줬다. 부드러운 손끝 터치를 통해 수비수 머리 위로 던질 때도 성공시키곤 했다.

사실 말론의 시대에만 해도 최근처럼 픽앤롤이 기본적으로 사용되진 못했다. 그런 배경 속에서 말론이 역대 통산 2위의 득점을 남길 수 있던 데에는 강인한 체격과 부드러운 손의 조합이 큰 역할을 했다.

바스켓 근처에서 말론은 꺼낼 수 있는 모든 득점 기술들을 지니고 있었다. ⓒAFPBBNews = News1
▶기록이 된 자유투 획득 능력

말론의 별명 우편배달부는 그의 꾸준한 생산성에서 비롯됐다. 실제 말론은 8년차 1992~93시즌부터 13년차 1997~98시즌까지의 모든 경기에서 두 자릿수 득점을 올리기도 했다.

시즌 평균 득점을 봐도 2년차 1986~87시즌(21.7득점)부터 18년차 2002~03시즌(20.6득점)까지 17시즌 연속 20득점을 넘겼다. 평균 25득점 이상으로는 3년차부터 13년차까지 11시즌 연속이다.

이렇게 꾸준히 높은 대역의 득점 생산력을 보인 데에는 앞서 언급한 말론 자체의 뛰어난 야투 해결 능력이 컸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꾸준한 고득점 행진을 잇기 힘들다. 자유투가 더해져야 한다.

자유투는 득점 효율성에서 정말 큰 부분을 차지한다. 그리고 말론은 이 자유투 활용에 있어 모범이 됐다. 우선 놀라운 성장을 보여줬다. 커리어 자유투 성공률 74.2%의 말론은 신인 때 불과 48.1%에 그쳤다. 그런데 2년차 59.8%를 거쳐 3년차 70.0%, 그리고 4년차에 76.6%까지 올렸다.

그리고 경기에서 얻어내는 자유투 자체가 많다. 커리어 최고 경기 당 자유투 시도 11.5회를 필두로 말론은 10회 이상의 자유투 시도 시즌을 6시즌 가졌다. NBA 역사에서 말론보다 평균 10회 이상 자유투 시도 시즌을 많이 가진 선수는 윌트 체임벌린(11시즌)과 샤킬 오닐(8시즌)뿐이다.

7시즌에 걸쳐 말론은 자유투 시도 리그 1위에 올랐고 자유투 성공에선 9시즌에 걸쳐 1위에 올랐다. 말론의 자유투 정확도가 제법 괜찮았기 때문이다.

통산 자유투 시도(1만3188회)에서도, 통산 자유투 성공(9787개)에서도, 말론은 양 부문 역대 1위에 올라 있다. 각 부문 2위와는 각각 1326회와 1256개의 넉넉한 차이들이다.

▶강인한 체격과 영악함을 통한 수비

최근 NBA 빅맨들에 대한 수비 진영 평가 잣대는 얼마나 가드와 윙 포지션을 감당할 수 있느냐에 초점이 맞춰졌다. 빅맨들이 골밑 몸싸움을 통해 득점을 올리는 시대는 아니다.

반면 말론이 있던 시대에서는 픽앤롤을 통한 스위치 수비가 빈번히 일어나지도 않았고 뛰어난 득점력을 선보인 빅맨들도 많았다. 때문에 빅맨에게는 얼마나 자신이 맡는 동 포지션을 잘 막느냐가 관건이었다.

여기에서 말론은 큰 힘을 보여줬다. 딱히 상대적으로 큰 신장은 아니지만 몸싸움에서 밀리지 않는 체격을 지녔고 상대가 힘으로 승부할 때 교활한 움직임을 통해 실책을 끌어내곤 했다. 스텝을 꼬이게 만들어 트래블링 또는 공격자 반칙 등의 턴오버를 유도했다.

그리고 턴오버를 끌어내는 방법이 또 있었다. 커리어 최저가 평균 1.1스틸일 정도로 말론은 꾸준한 스틸을 기록지에 남겼다. 커리어 평균 1.4스틸을 남긴 말론은 통산 2085스틸을 남기며 역대 10위에 올랐다.

말론은 팔이 유난히 길지도 않았고 붕붕 날아다니는 고공 플레이도 잘 보여주지 않았다. 이 같은 모습은 평균 1블록 이상의 시즌이 4시즌에 그친 것으로 연결됐다. 하지만 그 시대에서는 말론의 방식이 충분히 통할 수 있었다. 올디펜시브 퍼스트 팀 3회에 세컨드 팀 1회 선정이 이를 증명한다.

지저분한 플레이 순위에서 손꼽히는 말론은 상대 선수들에게 썩 달갑지 않은 존재였다. ⓒAFPBBNews = News1
▶눈앞에서 놓쳤던 우승들

1974~75시즌 뉴올리언스 연고를 시작으로 유타의 44시즌 역사에서 아직 우승은 없다. 가장 높이 올라갔던 적이 스탁턴과 말론이 있던 1996~97시즌 및 1997~98시즌의 NBA 파이널 진출이었다. 하지만 농구 황제 마이클 조던이 이끄는 시카고 불스의 2번째 3연속 우승에 배경이 되고 말았다.

두 번의 파이널 시리즈에서 말론은 시즌 성과보다 떨어지는 결과를 냈다. 수비 강도가 올라가는 플레이오프이기 때문에 당연한 결과다.

원정에서 파이널을 시작한 1996~97시즌은 55.0% 야투율 평균 27.4득점 대비 44.3% 야투율 23.8득점이었다. 그리고 홈에서 시작한 1997~98시즌은 53.1% 야투율 평균 27.4득점 대비 50.4% 야투율 25득점이었다.

플레이오프에서는 시즌에 비해 유타의 정교한 팀 공격의 위력이 떨어진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그런 모습의 반영으로 플레이오프에서 말론이 홀로 해결해야 하는 모습이 많기도 했다. 말론의 해결 능력이 좋기는 하지만 결국 확률에 기대야 하는 슈팅들이 주를 이뤘다.

그래도 1997~98시즌 파이널 5,6차전에서 말론은 연속으로 30득점을 넘겼다. 하지만 6차전 마지막 즈음 공격에서 조던에게 볼을 빼앗기며 앞서던 경기를 뒤집히는 빌미를 제공하기도 했다.

이렇게 파이널에서 쓴맛을 본 말론은 2003~04시즌 최소 금액만을 받는 조건으로 LA 레이커스에 합류했다. 당시 오닐-브라이언트 듀오에 말론과 개리 페이튼까지 합류하며 레이커스는 우승 가능성이 정말 높아 보였다.

하지만 커리어 최초로 말론은 부상에 시달리는 시즌을 보냈고 파이널에서도 발목 부상을 당하며 제몫을 못했다. 레이커스 팀 자체도 기대 이하의 모습을 보이며 결국 우승에 실패했다. 당시 파이널에서 말론은 최고 9득점, 야투율 33.3% 평균 5득점에 그치는 수모를 겪었다.

▶우승 외에 모든 것을 이루다

이렇게 NBA 파이널들은 말론에게 아픈 기억들로만 남았다. 때문에 말론의 커리어 평가에서 마이너스로 작용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말론이 커리어 전체 동안 보여줬던 플레이 모습을 부정할 수는 없다. 돋보이지 않는 신장임에도 공수 양 진영에서 말론은 정말 큰 선수처럼 보였다. 신인 시즌과 마지막 시즌을 제외하면 숫자 측면에서 정말 꾸준하게 높은 대역의 곡선을 그렸다.

1996~97시즌 및 1998~99시즌 MVP 수상을 통해 당대 최고의 선수에 오르기도 했다. 이를 통해 명예의 전당 헌액과 1996년 50주년 NBA 역사에서 가장 위대한 선수 50인 선정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NBA 역대 통산 득점 2위, 통산 1만4968리바운드로 7위, 통산 스틸 10위, 통산 자유투 성공 1위, 이를 통해 말론은 유타를 넘어 NBA 역사에서 손꼽히는 위대한 선수들 대열에 속하는 동시에 최고의 파워 포워드들 중 한명이 될 수 있다. 스포츠한국 이호균 객원기자 hg0158@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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