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팀에서의 커리어를 통해 두 곳 모두에서 영구 결번을 거친 NBA 선수들은 매우 적다. 한 팀에서도 이루기 힘든 일이다.

현재까지 이와 같은 영예를 누린 선수들은 10명을 조금 넘는다. 이 대열엔 윌트 체임벌린, 오스카 로버트슨, 줄리어스 어빙, 모제스 말론, 카림 압둘자바, 찰스 바클리, 샤킬 오닐 등의 당대 거물급 스타들이 속해 있다.

그리고 여기에 클라이드 드렉슬러도 있다. 등번호 22번이 찍힌 드렉슬러의 유니폼은 포틀랜드 트레일블레이저스와 휴스턴 로켓츠의 홈구장 두 곳에 모두 걸려있다.

드렉슬러는 1983~84시즌부터 1997~98시즌까지 NBA에서 총 15시즌을 보냈다. 그리고 앞선 12시즌 반을 포틀랜드에서 보냈고 뒤쪽의 4시즌 반을 휴스턴에서 보냈다. 이 두 구단 모두에서 드렉슬러는 큰 업적과 기록들을 남겼다.

이에 드렉슬러가 남긴 NBA 업적과 기록들을 두 팀에 나눠 비교해보는 시간을 갖고자 한다.

뛰어난 운동능력에 유연성을 겸비한 드렉슬러의 경기력은 큰 인기를 끌만한 멋진 플레이들로 연결됐다. ⓒAFPBBNews = News1
▶선수로서 최고의 전성기를 보낸 포틀랜드

1983년 NBA 드래프트에서 14순위로 뽑혔던 드렉슬러는 1년차 1983~84시즌에서 82경기 모두 출전했지만 선발출전은 3경기에 그쳤다. 출전시간도 평균 17.2분에 그치며 평균 7.7득점을 남겼다.

하지만 2년차부터 드렉슬러는 높은 기량을 선보였고 출전시간이 평균 31.9분으로 대폭 증가해 17.2득점을 남겼다. 그리고 4년차 시즌부터 온전히 전 시즌을 선발출전하며 커리어 처음으로 평균 20득점을 넘긴 21.7득점을 남겼다.

커리어 최고 평균 득점 27.2득점이 6년차 1988~89시즌이었다. 1987~88시즌부터 평균 27득점으로 포틀랜드의 확실한 득점 선두로 올라선 드렉슬러는 이후 1993~94시즌(19.2득점)을 제외하고 매번 포틀랜드의 최고 득점자로서 앞장섰다.

퍼스트 팀 1회를 포함 드렉슬러가 남긴 시즌 올NBA팀 5회 선정 이력 모두 포틀랜드 시절을 거쳤다. 다만 올NBA 써드 팀에 선정됐던 1994~95시즌은 휴스턴으로 트레이드돼 포틀랜드에서 41경기, 휴스턴에서 35경기를 치렀다.

NBA 역사에서 전체 경력 동안 올스타 선정 두 자릿수를 넘긴 선수는 불과 39명이다. 총 10회 선정으로 이 대열에 속한 드렉슬러는 포틀랜드에서 8시즌 동안 올스타에 선정됐다. 1987~88시즌부터 1993~94시즌까지는 7시즌 연속이다.

기여도 측면에서 가장 높은 평가를 받은 시즌도 포틀랜드 시즌이다. 1991~92시즌 76경기 평균 36.2분을 출전했던 드렉슬러는 25득점 6.7어시스트 6.6리바운드 1.8스틸 0.9블록을 남기며 MVP 투표 점수에서 마이클 조던(900점) 다음의 2위(561점) 점수를 남겼다.

▶휴스턴의 2연속 우승, 드렉슬러의 첫 우승

휴스턴은 1967~68시즌부터 시작된 52시즌의 구단 역사에서 2회의 우승을 남겼다. 그리고 그 두 번의 우승이 1993~94시즌 및 1994~95시즌 2시즌 연속 우승이었다.

지난 시즌 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의 2시즌 연속 우승이 나오기 전까지 NBA 역사에는 2시즌 이상의 연속 우승을 거둬본 구단이 총 6개 구단뿐이었다. 보스턴 셀틱스, LA 레이커스, 디트로이트 피스톤스, 시카고 불스, 마이애미 히트, 그리고 휴스턴이다.

휴스턴이 이 같은 위업을 남기는 과정은 쉽지 않았다. 1993~94시즌 휴스턴은 지난 2017~18시즌 65승17패(승률 79.3%)가 나오기 전까지의 최고 성적 58승24패(승률 70.7%)를 거뒀던 팀이다. 이에 비해 1994~95시즌에는 47승35패(승률 57.3%) 성적에 만족해야 했다.

사실 드렉슬러가 트레이드로 들어오기 전까지 30승17패(승률 63.8%)를 거두던 팀이 드렉슬러가 참여한 35경기에서 17승18패를 거뒀으니 기대감도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6번 시드로서 참여한 플레이오프에서 휴스턴은 기적과 같은 일을 냈다. 서부 컨퍼런스 3번 시드 유타 재즈, 2번 시드 피닉스 선즈, 1번 시드 샌안토니오 스퍼스를 차례로 모두 꺾었다. 그리고 NBA 파이널에서는 리그 공동 4번째 승률(69.5%)을 달성했던 올랜도 매직을 4연승 스윕으로 꺾었다.

즉 휴스턴은 네 시리즈 모두 홈코트 우위 없이 치렀음에도 매번 승리했다. 여기에는 물론 드렉슬러의 휴스턴 대학 시절 동료이기도 했던 센터 하킴 올라주원의 힘이 컸다. 플레이오프 평균 33득점 10.3리바운드 4.5어시스트 1.2스틸 2.8블록이란 괴물 기록을 남겼다.

드렉슬러의 커리어 첫 우승에 있어 동료 올라주원의 존재는 정말 컸다. ⓒAFPBBNews = News1
그래도 드렉슬러의 기여를 빼놓을 수 없다. 플레이오프 평균 20.5득점 7리바운드 5어시스트 1.5스틸 0.7블록을 남기며 다방면의 활약을 펼쳤다.

NBA 파이널에서는 윙 포지션으로서 평균 21.5득점 9.5리바운드 6.8어시스트 1스틸 0.3블록으로 더욱 다재다능함을 뽐냈다. 특히 4경기 동안 총 13개의 공격 리바운드는 올랜도 쪽 호레이스 그랜트의 19개 다음으로 많은 숫자였다.

▶득점원을 넘어선 기여도

드렉슬러의 별명은 대학시절 붙여졌던 ‘글라이드(Glide)’다. 미끄러지는 듯한 동작 또는 활공을 뜻하는 이 별명은 이름과 발음이 비슷하기도 했고 뛰어난 운동능력을 토대로 멋지게 득점 마무리를 했던 드렉슬러의 움직임에서 나오기도 했다.

실제 드렉슬러는 신인이었던 1983~84시즌부터 1988~89시즌까지 1985~86시즌만을 제외하고 올스타 슬램덩크 대회에 매번 출전했다. 다만 우승 경력은 없고 1988~89시즌 결승 진출이 최고 성적이었다.

빼어난 운동능력에 더해 점프슛에도 좋은 기량을 선보였다. 뛰어난 골밑 마무리 및 점프슛 능력을 통해 커리어 15시즌 중 8시즌에 걸쳐 2점 야투율 50%를 넘길 수 있었다.

하지만 드렉슬러를 득점원에 한정시키기엔 모자란 감이 크다. 뛰어난 운동능력과 감각을 지닌 201cm 윙 포지션에겐 득점 외의 여러 부문에 걸쳐 기여할 길들이 열려 있다. 드렉슬러는 커리어 전체를 모두 슈팅 가드로서 나섰지만 그 포지션을 뛰어 넘는 다방면의 숫자들을 기록했다.

1988~89시즌 최고 평균 7.9리바운드를 기록하기도 했던 드렉슬러는 공격 리바운드 3.7개를 기록했었다. NBA 역사에서 201cm 신장 이하 선수들 중 공격 리바운드 평균 3.7개 이상을 기록했던 선수들은 주로 찰스 바클리나 데니스 로드먼처럼 작은 사이즈의 파워 포워드들이었다. 가드 포지션은 드렉슬러뿐이다.

그리고 어시스트도 1985~86시즌 평균 8어시스트를 필두로 12시즌에 걸쳐 5어시스트 이상을 기록했다. 1980,90년대 206cm 매직 존슨이나 201cm 레지 티어스 및 앤퍼니 하더웨이 같은 장신 포인트 가드들이 있긴 했지만 드렉슬러도 래리 버드나 스카티 피펜처럼 평균 5어시스트 이상 시즌들을 다수 남긴 윙 포지션이었다.

올디펜시브 팀에 한 번도 선정된 적이 없을 정도로 드렉슬러의 수비 진영 기여도는 큰 인정을 받지 못했다. 하지만 드렉슬러가 남긴 스틸 숫자만큼은 역대 정상권 순위다. 드렉슬러의 통산 2207스틸은 역대 7위다. 그리고 커리어 평균 2.03스틸은 역대 11위다. 현역 중 드렉슬러 앞에 있는 선수는 크리스 폴(2.25스틸)뿐이다.

현재 드렉슬러는 3대3 농구 리그인 빅3 리그의 커미셔너로서 활동 중이기도 하다. ⓒAFPBBNews = News1
▶포틀랜드 구단 최고의 숫자들

드렉슬러가 이끌던 당시 포틀랜드는 2회의 NBA 파이널 진출을 이뤘지만 1989~90시즌 디트로이트에게 1승4패로, 1991~92시즌 시카고에게 2승4패로 밀리며 준우승에 멈췄다. 구단 역사 총 3회의 NBA 파이널 진출 중 1976~77시즌에만 우승을 거뒀다.

때문에 드렉슬러의 위치가 드높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포틀랜드 구단 역사에서 드렉슬러는 누구도 따라잡지 못한 숫자들을 남겼다.

48시즌의 구단 역사 동안 포틀랜드에서 오랜 시즌을 보낸 선수들은 적었다. 12시즌의 드렉슬러가 가장 오래 보냈고 그 외 10시즌을 넘긴 선수는 제롬 커시(11시즌)와 테리 포터(10시즌)뿐이다. 높은 소속감을 보이고 있는 현역 스타 대미안 릴라드는 이제 6시즌을 보낸 터다.

이를 통해 드렉슬러는 역대 포틀랜드 선수들 중 1위의 통산 867경기 2만9496분 출전, 1만8040득점 1795스틸을 남겼다. 그리고 앞서 언급한 다재다능함을 뽐내듯이 통산 5339리바운드는 2위, 4933어시스트도 2위, 594블록은 7위다.

▶당대 손꼽히는 스타들 중 한 명으로서 기억되다

이로서 드렉슬러는 포틀랜드의 역대 최고의 구단 스타로 꼽을 만하지만 본인 인생에 있어 휴스턴의 의미가 크다. 첫 우승을 맞이한 소속팀을 넘어 연고 도시 휴스턴이 실질적인 고향이기 때문이다. 뉴올리언스에서 태어났지만 어린 시절부터 대학 시절까지 줄곧 휴스턴에서 보냈다.

은퇴 직후 2시즌 동안 잠깐이나마 모교 휴스턴 대학의 감독을 맡기까지 했다. 그리고 현재는 휴스턴에서 9시즌을 보냈던 맷 불러드와 함께 휴스턴 지역 중계 해설위원을 맡고 있기도 하다.

그리고 1962년생으로 36세에 은퇴한 1997~98시즌 평균 18.4득점을 올렸을 정도로 의욕적인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커리어 평균 20.4득점의 드렉슬러는 휴스턴에서의 4.5시즌 동안 평균 19득점을 올렸다.

1980년대 쇼타임 레이커스와 악동 디트로이트를 거쳐 농구 황제의 시카고에게 막혔던 드렉슬러지만 15시즌 동안 당대의 큰 스타로서 인정받을 큰 기록들을 남겼다. 그리고 전설로 남은 동료 올라주원과 함께 하며 우승도 맛봤다. 여기에 더해 1992년 올림픽에서 원조 드림팀의 일원이기도 했다.

이렇게 드렉슬러는 1996년 NBA가 선정했던 50년 역사 동안 가장 위대한 NBA 선수 50인 안에 들 수 있었다. 즉 큰 별들이 등장했던 1980,90년대에서 빼놓을 수 없는 스타가 드렉슬러였다. 스포츠한국 이호균 객원기자 hg0158@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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