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순서
① 생중계 인터뷰서 일본식 용어… 콩글리시 용어도 여전히 사용
② 핸들링, 파넨카킥, 미들슛은 모두 틀린말? (축구·농구 편)
③ 후덕과 뒤펜스가 탁구용어? '용병' 써야하나(일반 종목 편)
④ 톱타자는 1번 타자일까? 최고의 타자일까?(야구 편 1/2)
⑤ 야구는 미국 스포츠, 그럼 영어만 써야할까?(야구 편 2/2)

[스포츠한국 김성태 기자]언어는 한 나라의 의식 수준을 가늠하는 척도다. 동시에 국가와 민족의 유구한 전통과 문화를 엿볼 수 있는 거울이기도 하다. 부끄럽게도 2018년 국내 스포츠 현장에서는 여전히 출처불명의 용어들이 무시로 사용되고 있고, 또한 일본식 혹은 콩글리시 용어들이 마치 표준어처럼 광범위하게 쓰이고 있다. 올바른 스포츠 용어 정착은 곧 스포츠의 대중화, 세계화와도 연결돼있다. 스포츠한국은 캠페인을 통해 올바른 스포츠 용어 문화 조성의 첫 걸음을 마련하고자 한다. / 편집자 주

스포츠코리아 제공
일본 거쳐 들어온 야구, 한국 야구 용어는 일본어와의 싸움

지난 1905년 필립 질레트라는 선교사를 통해 우리나라는 야구를 처음 접했지만, 일제 강점기 시절을 거치며 우리는 그들의 방식대로 야구를 익히게 됐고, 그들이 사용하는 용어를 따라하고 외치고 불렀다. 야구(野球)라는 단어 역시 일본이 부르는 명칭의 한자 독음을 그대로 가져와서 사용한 단어다.

초창기에 사용된 야구 규칙집의 경우도 일본야구 규칙을 번역해 만들어졌기에 자연스레 일본식 용어가 많이 사용됐다. 지난 1982년 한국프로야구가 출범할 당시의 상황도 별반 달라지지 않았다. 일본프로야구(NPB)에서 많은 것을 보고 가져왔기에 일본식 용어 사용의 흐름은 오랜 시간 이어져 왔다.

딱히 외국어를 사용하지 않아도 되는 표현마저 예전부터 계속 쓰여졌다는 이유 하나로 무분별하게 사용되는 경우가 많았다. 그렇게 일본어와 영어, 한국어가 뒤섞인 '국적을 알 수 없는 용어'의 사용이 즐비해졌고, 언론이나 방송에서도 올바르지 않은 표현이 그대로 팬들에게 전해지기도 했다.

내부적으로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지자 야구는 불분명한 용어를 올바르게 사용하고자 좀 더 적극적으로 움직였다. 이를 위해 KBO는 지난 2006년 대한야구협회(KBA)와 함께 100주년 기념사업의 일환으로 '야구용어위원회'를 발족, 보다 순화된 야구 용어 개선에 나섰다.

당시 위원회에서 개선한 용어를 살펴보면 두음법칙을 적용하지 않았던 루를 '누' 혹은 '베이스', 원정경기를 '방문경기', 방어율을 '평균자책점', 사구(四球)를 '볼넷' 등 기존에 올바르지 않은 표현을 보다 쉬운 용어로 바꾸기도 했다.

위원장을 맡았던 허구연 MBC스포츠플러스 해설위원은 "최대한 쉬우면서도 정확하게 야구를 알리고자 일본식 용어 대신 우리식 용어, 혹은 영어로 된 정확한 용어를 가져다 쓰는 방향으로 가닥을 잡았다. 용어라는 것이 한번 고착화 되기 시작하면 바꾸는 것이 매우 어렵다. 야구라는 스포츠가 우리 국민 생활 속에 파고 들었기에 더더욱 정화해야 할 필요가 있었다"라고 당시를 돌아봤다.

그러면서 "일본식 용어를 그대로 가져와서 사용하다보니 올림픽이나 WBC(월드베이스볼클래식)와 같은 국제대회에 나가면 의사소통이 제대로 되지 않았다. 그때, 용어를 제대로 정비해야 한다는 경각심이 더욱 들었다. 예전에 사용됐던 포볼, 데드볼, 헤드 슬라이딩 등과 같은 일본식 표현은 이제 많이 사라졌다"라고 말했다.

스포츠코리아 제공
나아진 야구 용어 개선, 그래도 콩클리시는 여전히 존재

이 같은 개선을 통해 일본식 야구 용어들은 많이 고쳐졌다. 하지만 최근 들어서는 새로운 문제가 대두되고 있다. 박찬호를 시작으로 미국 메이저리그에 진출하는 선수가 늘고 메이저리그 경기가 실시간으로 생중계가 되면서 '본토 야구'가 한국팬들의 일상 생활 속에 자연스럽게 자리를 잡았다.

미국 현지에서 오랜 기간 메이저리그를 취재한 민훈기 SPOTV 해설위원은 "예전에 비하면 일본식 용어, 혹은 일본식 용어와 한국식 용어가 섞인 알 수 없는 야구 용어의 사용은 많이 개선된 것이 사실이다"라고 말하면서도 "하지만 최근에는 일본어 뿐 아니라 영어식 표현이 잘못 섞여서 사용되는 용어가 있다"고 소개했다.

단적인 사례를 하나 들면 바로 '톱타자'다. 이 말 역시 영어와 한국어의 혼용 단어다. 맨 위를 뜻하는 영어 `TOP'의 발음 '톱'과 '타자'가 만난 단어로 흔히 1번 타자 또는 매 이닝 첫 번째로 타석에 들어서는 타자를 의미한다. 톱타자의 경우, 이제는 너무나 익숙해진 용어여서 오히려 다른 단어를 쓴다는 것이 낯설 정도다.

민 위원은 "톱타자 역시 잘못된 용어다. 미국에서는 리드오프(lead off)라는 용어를 쓴다. 우리 식으로는 '선두타자'라는 적절한 표현이 있다"고 지적했다.

방송에서 8-7 스코어를 일명 '케네디 스코어', 혹은 '루스벨트 스코어'로 부르는 경우가 있다. 미국의 케네디 대통령과 루스벨트 대통령이 8-7로 끝난 경기를 보고 `흥미로웠다'고 말한 데서 비롯된 사연이 한국에 넘어오면서 `고유명사'처럼 굳어진 표현이다.

이에 대해 민훈기 위원은 "미국 현지 메이저리그 야구 전문가에 물어봐도 전혀 알지 못하는 말이다. 한국에서 올바르지 않은 용어가 계속 전해지는 것은 바람직 하지 못하다"고 말한다.

그 외에도 영어와 한글이 섞인 일명 콩글리시 야구 용어는 상당히 많이 쓰이고 있다. 유니폼 등에 새겨진 '백넘버'도 맞지 않는 용어다. 말 그대로 풀이하면 '뒷번호'다.

미국에서는 '유니폼 넘버(Uniform number)로 부르고 있다. 국립국어원에서는 선수의 등 뒤에 붙이는 번호라는 의미에서 '등번호'라는 용어를 권장하고 있다.

ⓒAFPBBNews = News1
올바른 용어 사용은 곧 야구를 즐기는 정확한 지름길

야구에서 사용되는 용어가 타 종목에 비해 많은 개선이 이루어진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여전히 현장에서는 지도자와 선수가 정체불명의 용어를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흔히 말하는 병살타, 아웃카운트 두 개를 잡는 용어를 두고 '겟투'라는 일본식 표현이 여전히 입에 오르고 있다.

야구 경기장을 찾는 어린 야구 선수들은 이 표현을 그대로 학습, 학교에 가서 그대로 사용하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허구연 위원은 "시간이 지날수록 언어라는 것은 고치기 쉽지 않다. 이 선수들이 자라서 나중에 이 용어를 그대로 사용하게 된다면 올바르지 않은 야구 용어가 계속 전해질 수 밖에 없다"라며 우려를 표했다.

민훈기 위원도 "프로야구에서 사용하는 용어가 곧 사회인 야구나 학생야구에게 그대로 전파가 된다. 방송이나 신문 등 언론에서도 보다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올바른 용어 사용의 필요성을 지적했다.

올바른 용어를 사용하는 것은 올바른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보게 한다. 야구라는 스포츠를 계속 즐기기 위해서라면 올바른 용어 사용은 필수다.

선수, 그리고 지도자 뿐 아니라 학생 야구를 지도하는 학교 지도자 역시 기본적이면서 정확한 야구 용어를 숙지하고 알리는 것이 필요하다. 동시에 언론과 방송 역시 함께 이러한 움직임에 적극적으로 동참해야 한다.

저작권자 © 스포츠한국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