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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은 미국 내 최대의 시장 규모를 자랑한다. 압도적으로 가장 많은 도시인구에 여러 사업체들이 밀집돼 있다.

이런 도시에 연고를 둔 덕분에 뉴욕 닉스는 성적과 상관없이 큰 값어치를 가진다. 유력 경제지 포브스가 해마다 발표하는 NBA 구단 가치에서 뉴욕은 2018년을 포함 계속해서 1위에 올랐다. 21세기 동안 플레이오프 진출조차 벅찬 팀임을 고려했을 때 놀라운 일이다.

이와 같은 배경에 있다 보니 뉴욕엔 매체들의 집중도가 크다. 그렇다면 뉴욕을 거쳐 간 NBA 선수들 중 매체와 가장 많은 접촉을 거친 이는 누구였을까.

패트릭 유잉을 꼽을 수밖에 없다. 가장 많은 15시즌을 뛰었고 가장 많은 1039경기를 뛰면서 개인으로서 가장 큰 업적을 쌓은 선수였기 때문이다.

다만 구단 역사에서 2회의 우승 경험이 있는 뉴욕이 유잉 시절에는 우승을 건진 적이 없다. 이런 의미에서 유잉이 평가에서 절하당하는 측면이 없지 않다.

그런데 이렇게 바라보면 어떨까. 72시즌이란 긴 구단 역사 속에서 뉴욕이 영구 결번시킨 번호는 단 7개다. 이 중 6개는 모두 1969~70시즌 및 1972~73시즌 우승을 달성했을 때 있던 인원들의 번호다. 나머지 하나가 바로 유잉의 33번이다.

이렇게 유잉은 뉴욕에게 크나큰 의미가 있다 할 수 있다. 유잉이 남긴 숫자들을 통해 그가 쌓은 커다란 업적의 탑을 돌아보기로 한다.

  • 뉴욕이 1990년대를 전후로 14시즌 연속 플레이오프 진출을 이뤘던 데에는 유잉이라는 큰 버팀목이 있었기 때문이다. ⓒAFPBBNews = News1
▶자메이카 소년에서 대학 최고의 선수로

중앙아메리카 군도 국가들 중 하나인 자메이카의 수도에서 1962년에 태어나 자란 유잉은 1975년 청소년기를 앞에 두고 미국으로 이주했다. 그리고 타고난 신체조건 덕분에 또래 중 압도적인 기량을 발휘하는 선수로 발전할 수 있었다.

조지타운 대학에서 유잉은 인생 최고의 농구 업적을 경험했다. 2학년부터 4학년까지 계속 전미 대학농구 토너먼트 결승까지 진출했으며 1984년 3학년 시즌에는 하킴 올라주원의 휴스턴 대학을 꺾고 우승을 차지했다.

1984년 토너먼트 파이널 포 최고의 선수, 1985년 전미 올해의 대학 선수, 2학년부터 3년 연속 올아메리칸 퍼스트 팀 선정. 이런 성과를 통해 1985년 NBA 드래프트는 시작도 전에 유잉의 1순위가 기정사실화된 분위기였다. 그리고 그런 유잉을 뽑는 행운은 뉴욕에게로 갔다.

▶출발부터 강력한 신호의 숫자

1985~86시즌 유잉은 신인으로서 평균 20득점 9리바운드 2어시스트 2.1블록 1.1스틸을 기록했다. 부상으로 인해 32경기를 빠지는 위기가 있었지만 워낙 돋보인 기록이었기에 신인상을 수상할 수 있었다.

사실 평균 20득점은 엄밀히 따졌을 때 20득점이 아니었다. 50경기 동안 998득점으로, 19.96득점이었다. 그래도 이는 NBA 역사 신인들 중 58위의 득점이다.

그리고 평균 20득점 9리바운드 2블록 이상을 동시에 만족시킨 NBA 신인은 단 7명이다. 시간 순서대로 랄프 샘슨, 올라주원, 유잉, 데이비드 로빈슨, 샤킬 오닐, 알론조 모닝, 팀 던컨, 모두 역사에 큰 획을 그은 전설들이다.

▶부드러운 손을 통한 고득점 행진

투박한 외모와 달리 유잉은 매우 부드럽고 정교한 손을 지녔다. 유잉의 득점 과정은 어지간한 선수들에게 있어 매우 불안정한 방법이었다. 그럼에도 곧잘 성공시킬 수 있었다.

포스트에서 상대 선수를 등지고 볼을 받은 뒤 곧바로 턴어라운드 점프슛이나 러닝 훅을 구사했는데 대개 수비수의 머리 위로 볼을 띄우는 과정이다. 213cm 장신 229cm 양팔너비의 토대가 있긴 하지만 부드러운 손 터치가 있지 않고서는 성공률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그리고 중거리 점프슛도 잘 구사했다. 자신의 수비가 도움 수비를 가느라 멀어졌을 때 오픈 상태에서 던진 미드레인지 슈팅이 또 좋은 성과를 냈다.

2년차 1986~87시즌부터 13년차 1997~98시즌까지 매번 평균 20득점을 올리는 동시에 최소 46.6%에서 최대 56.7%까지의 야투율을 기록했다. 양과 질을 동시에 만족시킨 성과들이었다.

그 중 절정 조합은 5년차 1989~90시즌 55.1% 야투율을 통한 커리어 최고 평균 28.6득점이었다. NBA역사에서 평균 28득점 이상 야투율 55% 이상을 동시에 만족시켰던 선수들은 단 7명뿐이다. 5시즌씩의 샤킬 오닐과 에이드리안 댄틀리, 3시즌의 카림 압둘자바, 1시즌씩의 키키 밴더웨이, 찰스 바클리, 유잉, 칼 말론이다.

17시즌을 보낸 유잉은 커리어 평균 20.98득점을 남겼다. 이는 NBA 역대 43위의 숫자다. 그리고 통산 2만4815득점은 23위에 올라있다.

  • 뉴욕의 종전 통산 득점 기록인 프레이저의 1만4617득점을 돌파하던 1993~94시즌 경기에서 유잉이 월트 프레이저에게 축하를 받았다. ⓒAFPBBNews = News1
▶수비 실적 향상을 통한 성적 상승

커리어 평균 2.4블록을 남긴 유잉은 신인 때부터 14년차 1998~99시즌까지 매번 평균 2블록을 넘겼다. 유잉의 통산 2894블록은 NBA 역대 7위에 올라있다.

유잉이 1991~92시즌을 마지막으로 올디펜시브 팀에 3회 선정됐지만 뉴욕 팀의 수비 실적이 확실하게 리그에서 명망을 떨친 시기는 1992~93시즌부터였다. 바스켓볼 레퍼런스에 따르면 해당 시즌 뉴욕은 100포제션 당 99.7실점으로 리그 2위(104.9실점)와 큰 차이로 1위의 수비지표를 남겼다.

물론 팻 라일리 감독이 부임한 1991~92시즌부터 리그 3위의 수비지표(104.2)에 오르는 등 강력함을 보여줬다. 유잉에 더해 찰스 오클리와 존 스탁스 등 인원 측면의 준비는 이미 된 상태에서 코칭스태프의 전략이 더해졌다.

수비 체제를 다지면서 뉴욕의 성적은 부쩍 상승했다. 1990~91시즌 39승43패(승률 47.6%)를 기록했다가 1991~92시즌 51승31패(승률 62.2%)를 기록했다. 이후 4시즌 연속 60% 이상의 승률을 기록했고 1993~94시즌 플레이오프에서는 NBA 파이널 진출까지 이뤘다.

▶유잉에게 잔인했던 플레이오프

유잉의 큰 무대 영예는 대학 시절이 정점이었다. NBA에서의 큰 무대는 유잉에게 시련을 주기 일쑤였다.

생애 첫 진출이자 실질적인 마지막 출전이었던 1993~94시즌 휴스턴 로켓츠 상대 파이널에서 유잉은 큰 하락을 봤다. 하필 대학 시절 결승에서 꺾었던 올라주원을 상대로 보였던 부진이기에 더욱 아쉬웠다.

사실 1993~94시즌 파이널 시리즈는 매 경기 올라주원이 유잉보다 좋은 성과를 냈음에도 5차전 때 뉴욕이 3승2패를 만들며 우위에 서기도 했다. 하지만 6,7차전 연속 원정에서 내리 지며 물러나야 했다. 마지막 두 경기 접전의 패배들에서 유잉은 총 24개의 야투를 실패하며 17득점씩에 그쳤다.

본인이 뛰던 시절 뉴욕의 2번째 NBA 파이널 진출인 1998~99시즌에 유잉은 부상으로 나서질 못했다. 이미 그 전 시즌 큰 부상으로 26경기 출전에 그쳤던 유잉은 1998~99시즌에도 부상에 시달려야 했다.

아킬레스 통증으로 인해 경기들을 빠져야 했고 그 탓에 팀도 간신히 8번 시드로서 플레이오프에 진출했다. 그래도 뉴욕은 8번 시드로서 NBA 파이널에 진출하는 기적을 보여줬다. 이 과정에서 유잉은 인간의 한계를 넘는 출전 의지를 보여주면서 컨퍼런스 파이널 2차전까지 코트에 섰다.

하지만 그 한계를 넘어섰기에 결국 유잉의 시즌은 파이널 전에 끝나야 했다. 당시 파이널에서는 샌안토니오 스퍼스의 로빈슨과 던컨이라는 막강한 빅맨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 은퇴 후 유잉은 자신의 모교인 조지타운 대학에서 지휘봉을 잡고 있다. ⓒAFPBBNews = News1
▶뉴욕 선수들 중 최고의 성과

이렇게 유잉의 파이널 경험은 썩 좋지 못한 과정과 결과들로 끝맺음됐다. 하지만 우승 반지가 없다는 이유로 낮게 볼 이유는 없다. 15시즌 동안 계속해서 팀을 위해 헌신했고 본인의 부상이 있을 때도 한계를 넘어서면서까지 힘을 보탰다.

커리어 마지막 두 시즌을 시애틀 슈퍼소닉스와 올랜도 매직에서 뛰었지만 15시즌 동안의 뉴욕 커리어만 해도 대단한 숫자를 남겼다. 단적으로 뉴욕에서 올린 통산 2만3665득점은 NBA 역대 27위 로버트 패리쉬(2만3334득점)보다 높다.

뉴욕에서 유잉의 1039경기 3만7586분 출전, 2만3665득점 1만759리바운드 2758블록 1061스틸 모두 뉴욕을 거쳐 간 선수들 중 가장 높은 통산 기록들이다. 통산 2088어시스트만이 1위가 아닌 12위다.

우승 시즌들에서의 주역 월트 프레이저와 윌리스 리드의 경우 10시즌씩만 보냈고 출전도 각각 759경기 및 650경기였다. 뉴욕에서 유잉이 평균 22.8득점을 올렸다면 프레이저는 19.3득점, 리드가 18.7득점을 올렸다.

그리고 유잉을 돋보이게 만드는 다른 업적들도 있다. 11회 올스타 선정. 1996년 NBA 50주년에 선정한 가장 위대한 NBA 선수 50인 중 일원. 그리고 자메이카 출신이지만 시민권 획득을 통해 1984년 아마추어로서 올림픽 금메달을 획득한 데에 이어 1992년 원조 드림팀으로서도 합류해 금메달을 획득했다.

커리어 황혼기에 각종 큰 부상들까지 겹쳐 외부의 많은 눈총을 사며 구단을 떠나기로 마음먹기까지 했지만 선수로서 유잉은 몸이 허락하는 한도까지 헌신했다. 그리고 그 성과는 NBA 역사에서도 돋보이는 수준이다. 때문에 여전히 유잉을 뉴욕의 심장으로, 역대 최고 선수로 바라볼 이유는 충분하다. 스포츠한국 이호균 객원기자 hg0158@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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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시간 : 2018/08/09 07:0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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