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BA의 국경 없는 농구 프로그램 일환으로 아프리카 경기가 지난 5일(이하 한국시각)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열렸다. 세 번째를 맞이하는 이번 아프리카 경기는 넬슨 만델라의 생일 100주년을 기념하는 의의도 있었다.

이런 행사에 빠질 수 없는 인물이 있다. 1966년 아프리카 콩고민주공화국(1971년~1997년 자이르)에서 태어나 자란 NBA 전설 디켐베 무톰보다. 이미 전부터 국경 없는 농구 행사에 적극적으로 참여해온 무톰보는 NBA 글로벌 홍보대사로서 활동하고 있다.

어쩌면 NBA 팬이 아닌 사람들에겐 인도주의 업적으로 유명한 사람일 수 있다. 현역 시절부터 시작해 무톰보의 인도주의 사업은 여러 경로를 거쳐 진행됐고 진행되고 있다. NBA와 더불어 무톰보는 심신장애자들을 위한 스페셜 올림픽의 국제 홍보대사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런 모습과는 달리 농구 코트 안의 무톰보는 매우 거친 움직임을 보였던 선수다. 병원을 세운 무톰보지만 리바운드 과정에서 자신의 팔꿈치 휘두르기로 다치게 만든 선수들이 20명 근처였다.

이런 투지 넘치는 플레이를 기반으로 올해의 수비수 4회 수상이라는 NBA 공동 최다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다른 4회 수상자는 벤 월러스다. 월러스와 마찬가지로 무톰보도 공격 진영보다 수비 진영 활약을 통해 스타덤에 올랐다.

이런 무톰보가 남긴 숫자들은 어떤 것들이 있을까. 꽤 늦게 시작했던 그의 농구 커리어를 되돌아보며 꼽아보고자 한다.

올해의 수비수 트로피는 무톰보가 NBA에서 백만장자로서 18시즌 동안 버틸 수 있던 힘을 요약해 준다. ⓒAFPBBNews = News1
▶늦게 시작한 농구로 미국 진출

지난 [NBA 현미경]에서 다룬 아프리카 출신 첫 NBA 전설 하킴 올라주원처럼 무톰보도 농구를 늦게 시작했다. 공교롭게도 올라주원, 무톰보 두 명 모두 성장기 때 축국 골키퍼로서 활동했다.

키 큰 가족들 중에서도 유난히 컸던 무톰보는 10대 후반 7피트(213cm) 가까이 자랐다. 이에 아버지와 형은 농구를 권장했고 무톰보는 마지못해 시작했다. 사실 미국 조지타운 대학으로 건너갈 수 있었던 데에는 농구가 큰 힘이 됐지만 무톰보의 속마음은 대학에서 공부해 의사가 되는 것에 있었다.

하지만 결국 조지타운 대학 존 톰슨 감독의 설득으로 농구에 전념하기로 했다. 영어를 하지 못해 대학 2학년부터 시작된 늦은 농구 커리어였지만 특출한 신체 능력을 기반으로 빠르게 성장을 거듭했다.

다만 나이는 분명 같은 학년 선수들 중 많은 편이었다. 22세에 대학 2학년 시즌을 시작했고 4학년 시즌을 25세에 마쳤다. 대신 4학년 시즌 평균 15.2득점 12.2리바운드 4.7블록이라는 큰 숫자를 남길 수 있었다. 이를 통해 1991년 NBA 드래프트 4순위로 뽑힐 수 있었다.

▶시작부터 큰 숫자를 남긴 리바운드와 블록

덴버 너겟츠에서 25세 나이에 시작한 무톰보의 NBA 1년차 1991~92시즌 기록은 평균 16.6득점 12.3리바운드 3블록이었다. 신인으로서 역대 3위의 평균 리바운드이자 역대 7위의 평균 블록이다.

이렇게 큰 신인 기록 숫자를 남긴 218cm 신장 무톰보는 11년차 2001~02시즌까지 계속해서 평균 두 자릿수 리바운드를 남겼다. 평균 득점은 신인 때가 커리어 최고일 정도로 득점 기량이 늘진 않았지만 역시 11년차까지 계속 두 자릿수를 기록하며 11시즌 연속 평균 더블더블을 남겼다.

한편 블록은 30세 달한 1995~96시즌 평균 4.5블록으로 정점을 찍었다. 평균 4.5블록은 역대 6위에 달하는 높은 숫자다. 커리어 평균 2.8블록을 기록한 무톰보는 통산 3289블록을 기록하면서 올라주원(3830블록)에 이어 역대 2위에 올라있다.

보통의 경우 트리플더블 기록은 득점-리바운드-어시스트를 통해 작성된다. 하지만 무톰보의 커리어 트리플더블 10경기는 모두 득점-리바운드-블록을 통해 작성됐다. 이렇게 득점-리바운드-블록 조합으로 작성된 커리어 트리플더블 횟수에서 10경기는 올라주원과 더불어 역대 최다 기록이다.

블록 후 상대에게 날리던 검지 흔들기는 여전히 언제 어디서든 무톰보를 대표하는 동작이다. ⓒAFPBBNews = News1
▶가장 빛났던 1993~94시즌 플레이오프 1라운드

무톰보가 들어오기 직전 1990~91시즌 덴버는 평균 실점 리그 30위(130.8실점)로 최악의 수비 팀이었다. 바스켓볼 레퍼런스에 따르면 당시 덴버의 100포제션 당 114.7실점 수비지표 역시 최하위였다.

이런 덴버가 무톰보 입단 이후로 확 달라진 숫자를 기록했다. 1991~92시즌 평균 실점 리그 8위(107.6실점), 수비지표 13위(108.6)에 올랐다.

그리고 무톰보의 생애 첫 플레이오프 진출 년도인 1993~94시즌에는 평균 실점 리그 9위(100.3실점) 수비지표 5위(102.3)까지 올랐다. 당시 공격지표는 20위(103.9)에 그치긴 했지만 수비력을 통해 플레이오프에 진출했던 셈이다.

그래도 결국 8번 시드였다. 당시까지 8번 시드가 1번 시드를 꺾는 일은 전혀 없었다. 더욱이 2연패로 시작하면서 5전3선승제였던 당시 그 가능성은 0으로 수렴해 보이기까지 했다.

하지만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났다. 3연승을 거치며 NBA 플레이오프 역사 최초 8번 시드의 업셋을 이뤄냈다. 1,2차전 106,97득점을 올렸던 1번 시드 시애틀 슈퍼소닉스는 3,4,5차전에서 93,85,94득점에 그쳤다. 해당 시즌 시애틀은 공격 지표 2위(111.1)에 올랐지만 플레이오프 1라운드 동안엔 100포제션 당 104.9득점에 그쳤다.

이런 팀의 수비에 있어 무톰보는 큰 영향을 미쳤다. 당시 5차전까지 무톰보는 총 31블록을 남겼다. 이는 NBA 플레이오프 5전3선승제 시리즈에서 나온 최다 블록 기록이다. 연장까지 갔던 5차전 마지막 수비 리바운드를 잡은 뒤 바닥에 누워 무톰보가 환히 웃던 장면은 역사에 남은 하이라이트다.

▶수비를 통해 스타로

무톰보는 올스타 8회 선정에 빛날 정도로 큰 인정을 받았다. 그리고 이런 위치에 오를 수 있던 데에는 공격보다 수비의 힘이 컸다. 올디펜시브 퍼스트 팀 3회 선정, 세컨드 팀 3회 선정이라는 명예도 따랐다. 그리고 올NBA 세컨드 팀 1회, 써드 팀 2회도 수비를 바탕으로 따라온 영예다.

그래도 결국 무톰보의 수비 진영 업적은 올해의 수비수 4회 수상으로 요약할 수 있다. 1994~95시즌, 1996~97시즌, 1997~98시즌, 2000~01시즌이다. 소속별로는 덴버에서 한 시즌, 애틀란타 호크스에서 두 시즌, 필라델피아 세븐티식서스에서 한 시즌이다.

수비는 무톰보가 플레이오프 팀들의 구애를 받는 힘이기도 했다. 2000~01시즌 NBA 파이널에 진출했던 필라델피아는 해당 시즌 중에 무톰보를 트레이드를 통해 들였다. 2001~02시즌 및 2002~03시즌 2시즌 연속 파이널에 진출했던 뉴저지 넷츠는 2002~03시즌에 무톰보를 영입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무톰보의 커리어는 2002~03시즌에 큰 내리막을 형성했다. 계속된 부상들로 24경기 출전에 그쳤고 플레이오프에서도 큰 기여를 하지 못했다. 이후 출전시간도 계속해서 큰 감소세를 보였다.

다만 30대 후반의 나이였음을 감안하면 무톰보가 꽤 늦은 나이까지 버텨냈음을 알 수 있다. 2008~09시즌 휴스턴 로켓츠 소속으로서 은퇴를 결정할 수밖에 없었던 무릎 부상을 당했던 당시 무톰보는 43세였다.

본인의 재단을 통해서든 단체의 힘을 통해서든 무톰보는 아프리카 삶의 질 향상에 큰 노력을 쏟아왔다. ⓒAFPBBNews = News1
▶결국 꿈을 이룬 무톰보

청소년기 무톰보의 꿈은 골키퍼 또는 의사였다. 정확하게 그 꿈을 이루지는 못했지만 결국 큰 의미에서는 두 가지 꿈을 모두 이룬 셈이다.

농구에서 블록으로 상대방의 슈팅을 막아냈고 백만장자가 돼 2007년 개원한 병원으로 고국의 동포들이 쉽게 치료를 받을 수 있게 만들었다.

콩고민주공화국은 1990년대 중반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두 번의 큰 전쟁에 연루됐었다. 무톰보와 고향이 같은 NBA 현역 엠마뉴엘 무디에이는 어린 시절 그 전쟁 통에서 가족이 미국으로 이주한 경험을 갖고 있기도 하다. 무톰보는 당시 별달리 조치를 취하지 못하고 병으로 돌아가신 어머니의 이름을 따서 병원을 열었다.

이런 힘든 세월을 거친 아프리카와 고국을 위해 무톰보는 계속해서 큰 힘을 쏟고 있다. 뿐만 아니라 세계에 걸친 활동을 통해 많은 상을 받기도 했다. 코트 안에서는 거칠게 부딪히고 날카롭게 쳐내는 선수였지만 코트 밖의 무톰보는 많은 이들을 살리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스포츠한국 이호균 객원기자 hg0158@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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