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순서
① 생중계 인터뷰서 일본식 용어… 콩글리시 용어도 여전히 사용
② 핸들링, 파넨카킥, 미들슛은 모두 틀린말? (축구·농구 편)
③ 후덕과 뒤펜스가 탁구용어? '용병' 써야하나(일반 종목 편)
④ 톱타자는 1번 타자일까? 최고의 타자일까?(야구 편 1/2)
⑤ 야구는 미국 스포츠, 그럼 영어만 써야할까?(야구 편 2/2)

[스포츠한국 이재호 김성태 기자] 언어는 한 나라의 의식 수준을 가늠하는 척도다. 동시에 국가와 민족의 유구한 전통과 문화를 엿볼 수 있는 거울이기도 하다. 부끄럽게도 2018년 국내 스포츠 현장에서는 여전히 출처불명의 용어들이 무시로 사용되고 있고, 또한 일본식 혹은 콩글리시 용어들이 마치 표준어처럼 광범위하게 쓰이고 있다. 올바른 스포츠 용어 정착은 곧 스포츠의 대중화, 세계화와도 연결돼있다. 스포츠한국은 캠페인을 통해 올바른 스포츠 용어 문화 조성의 첫 걸음을 마련하고자 한다. /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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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 문제인지도 모르는 현장과 일본식-콩글리시 용어

유명한 탁구스타 A선수가 경기가 끝나고 전국에 중계되는 방송 인터뷰에서 이렇게 승리 소감을 전했다.

“저는 '오모떼 러버'를 쓰는데 이게 참 부드럽게 넘어가서….”

오모떼 러버? 무심코 TV를 지켜보던 박도천 아시아탁구연맹 경기위원장은 이 장면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고 한다. 완전한 일본식 표현이어서 탁구인들도 가급적 삼가는 표현이 선수의 입을 통해 전국에 중계됐으니 화들짝 놀란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그는 황급히 A선수에게 전화를 걸었다고 한다. 그런데 되돌아온 대답이 더 가슴을 답답하게 했다.

“'오모떼 러버'라는 말뜻을 제대로 알고 있나 싶어 물었는데 그 선수는 일본식 용어인지도 몰랐다고 하더군요.”

탁구 라켓 위에 붙이는 고무패드인 러버 중 돌출러버를 탁구계에서는 여전히 ‘오모떼’ 혹은 ‘오목대’라고 부른다.

일본어로 튀어나온 것을 뜻하는 '오모떼(おもて)'를 한국식으로 발음한 `오목대'는 일본식 용어의 잔재가 남은 대표적 오용 사례다. ‘돌출러버’라는 한국식 용어가 있음에도 선수들조차 습관적으로 일본식 용어를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일본식 용어는 여전히 주변에서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심지어 언론에서 즐겨쓰는 표현 가운데 경기에 나서는 것을 뜻하는 ‘출장(出場)’이 있다. 일본식 표현이다. ‘손흥민이 주말경기에 출장했다’는 말은 ‘출전’으로 바꿔쓰는 것이 옳다.

일본식 용어 혹은 콩글리시는 스포츠의 국제화에도 걸림돌이다. 허구연 야구해설위원은 “수비 훈련 때 공을 쳐주는 방망이의 경우, 일본식 `노크(KNOCK) 배트'라는 용어를 썼다. 언젠가 미국 전지훈련에서 현지 관계자에게 노크 배트를 빌려달라고 하니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어 난감했다. `펑고 배트'라고 정정하니 그제서야 알아들었다”고 회상했다.

과거 일제의 언어적 침탈행위의 잔재가 남은 것은 스포츠계가 부끄러워해야한다. 잘못된 용어는 우리도 모르게 독버섯처럼 중독시키기 마련이다.

해방 70년이 넘었음에도 여전히 바꾸지 못했다는 것은 우리의 잘못이다. 현장 지도자와 관계자들은 국제대회에서 어설픈 콩글리시인지 뒤늦게 깨닫고 의사소통이 되지 않은 민망한 순간을 한 번씩은 경험했다고 토로했다.

▶무조건 한국식으로 바꿔? 종주국 언어 가져와야?

그렇다면 올바른 스포츠 용어란 무엇일까. 태권도 정도를 제외하곤 한국이 종주국인 스포츠가 없는 현실에서 외국식 용어를 무조건 우리말로 바꾸는 것이 능사일까.

이에 대해 최근 남북단일팀을 지켜봤던 박도천 아시아탁구연맹 경기위원장은 “북한은 다소 무리하게 용어를 바꾼 경향이 있다. 서비스를 ‘쳐넣기’, 리시브를 ‘받아치기’ 등으로 바꾸다보니 남한 선수들과 소통이 되지 않았다. 위화감을 많이 느꼈다"고 털어놓았다.

그러면서 그는 남북 선수들의 소통을 위해 벽면 한쪽에 남한식 용어와 북한식 용어를 정리해 붙여놓기도 했다면서 쓴 웃음을 지었다.

그는 “탁구가 국산 스포츠가 아닌데 억지로 바꾸다보니 이질감이 컸다. 대체가능한 우리말이 있다면 바꾸는 게 옳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 어떻게 할지 북한과의 교류를 통해 새삼 고민해보게 됐다”고 말했다.

대부분의 전문가들은 무조건 한국식으로 바꾸는 것에 대해 거부감을 드러냈다. 그 이유로 세계와 교류하는 스포츠로써 소통의 한계와 지나친 용어 변경에 의한 혼란과 어색함을 언급했다.

강을준 전 프로농구 감독은 “리바운드를 북한처럼 ‘튄공’으로 표기할 경우 세계적 스포츠로써 소통의 문제가 있을 수 있다. 세계와 소통할 수 있는 일관성이 필요하다”면서 현장에서 느낀 용어의 일관성 필요성을 강조했다.

‘축구계의 걸어 다니는 백과사전’로 불리는 한준희 해설위원은 “기본적으로 일본식이 강한 용어는 고치는 것이 옳다. 하지만 영어적 문법이 틀리지 않는 용어와 어설프게 영국식으로 멋 부리려다 도리어 콩글리시를 만드는 것은 지양해야한다”고 충고한다.

아직 정답은 없다. 정답이 없는 이유는 이에 대해 진지한 논의가 전무했기 때문이다. 모두들 필요성은 인지하지만 어디 하나 나서서 바로잡겠다는 노력을 한 적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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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넋 놓고 있는 협회와 단체, 여론수렴과 논의 필요

야구에서 올바른 용어를 사용하자는 의미에서 2006년 야구용어위원회를 만들어 용어 개정을 한 것을 제외하곤 그 어떤 종목에서도 용어 개정에 대해 논의한 바는 없다.

대부분 알음알음 자신들이 아는 대로 써왔고 그러다보니 통일이 되지 않았다. 같은 종목의 해설인데도 해설자마다 쓰는 용어가 다르고 누가 옳다, 틀리다고 주장해도 정말 무엇이 맞는지 판단을 내리기도 쉽지 않다.

스포츠한국에서는 여러 스포츠 용어에 대해 제대로 쓰고 있는 것인지, 아닌지에 대한 판단을 국립국어원에 의뢰했다. 국립국어원 측은 대부분의 용어 예시에 대해서 ‘표준화 대상이 아님’이라는 대답을 했다. 국어원 내에서도 올바른 용어 정립을 위한 회의나 자료가 정비되어있지 않아 표준화에 대한 기준이 없기 때문.

국립국어원 뿐만이 아니다. 올바른 용어에 대한 기준, 일본식과 콩글리시식 표현을 지양하기 위해서는 대한체육회와 산하 단체의 노력이 필요하다.

야구의 경우 KBO주도로 2006년 야구용어위원회(위원장 허구연)를 만들어 방어율을 평균자책점으로, 사구를 볼넷으로 바꾸는 등 일본식, 콩글리시식 잔재를 많이 없앴다는 평가를 받았고 현재까지도 바뀐 용어는 잘 이어지고 있다.

하지만 그 외의 다른 스포츠 분야에서는 여전히 용어 개선이 미흡한 것이 사실이다. 문화체육관광부 국어 정책 관계자는 "일반 국민들이 사용하기에 어려운 용어를 개선해야 한다는 취지는 충분히 인지하고 있다. 분야가 워낙 다양하다보니 어려운 부분이 많다. 지난 2월 평창 동계올림픽 당시, 국립국어원과 함께 쉬운 용어로 해설을 할 수 있는 참고 자료를 만든 적은 있지만 그 외에 스포츠 용어 개선 관련 자료 및 연구는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고 털어놓았다.

더욱이 용어 개정을 하자고 권유해도 당사자들이 선뜻 나서지 않는다고 한다. 그래서 문체부는 대통령 정책 제안에 따라 금년부터 '전문용어표준화협의회'를 각 부처에 두기로 했다.

이 관계자는 "각 분야의 전문용어를 국민들이 보다 쉽고 편리하게 사용할 수 있도록 표준 및 체계화 하고자 진행 중이다. 인력이나 시간 등 여러 현실적인 문제가 있지만 좀 더 장기적인 관점에서 진행하려고 한다"는 정부의 방침을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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