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한국 이재호 기자] ‘언론이나 축구팬 여러분께서도 공식 발표가 있을 때까지는 차분히 기다려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물론 그러면 얼마나 좋겠나. 하지만 너무 이상적이다. 대한축구협회에만 48개 언론사가 출입하고 이외에도 여러 언론에서 축구에 관심을 가진다. 여기에 수를 셀 수 없는 해외 언론이 있고 SNS와 동영상 사이트 등 언론이 아니라도 축구에 관심을 가지고, 또 관심을 받고 싶어 하는 이들이 많다.

대한축구협회는 너무 이상적이기에 정보 통제의 냄새를 풍기는 구시대적 발상을 하고 있다.

ⓒ대한축구협회
대한축구협회는 23일 ‘감독 선임 관련 언론 기사에 대한 공식입장’을 공식 홈페이지와 SNS에 내놨다.

요약하면 이렇다.

‘축구대표팀 감독 선임 관련 추측성 기사가 나오고 있는데 ’관계자‘라고 나오는 기사는 걸러볼 필요가 있다. 외신기사 역시 마찬가지다. 언론의 입장을 모르는 바는 아니고 협회가 답답하기도 할 것이다. 하지만 감독 선임은 비밀리에 진행되고 대상자가 공식화되면 협상에서 불리하다. 예전에도 그런 사례가 있었다. 기다려 달라.’

틀린 말은 없다. 하지만 과연 이것이 축구협회가 공식입장을 낼 정도로 문제가 되고 언론 보도, 외신기사까지 ‘추측성 기사’, ‘걸러볼 필요가 있다’는 식으로 깎아내릴 사안일까.

대중이 관심을 가질만한 사안에 언론이 관심을 가지는 것은 당연하다. 축구계에서는 월드컵, A매치, 손흥민 정도를 제외하곤 실시간 검색어에 오를 정도로 인기 있는 것은 많지 않다. 현재 대표팀 감독 선임건은 전국민적 관심을 받고 있고 언론이 이에 대응해서 기사를 내는 것도 지극히 당연하다.

ⓒ대한축구협회
이는 협회 역시 매우 잘 알고 있는 언론계 사정이다. 지난 2016년 9월 대한축구협회 홍보실은 홈페이지를 통해 50페이지 분량의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 선수를 위한 인터뷰 잘하는 법’이라는 책자를 공개한 바 있다. 왜 언론이 축구에 관심을 가지고, 선수들은 이 언론에 대해 어떻게 대응해야하는지 등을 잘 설명한 책자 중에는 이런 내용이 있다.

‘언론이 축구에 관한 뉴스를 하지 않거나 중계를 해주지 않는다면 축구는 국민들의 관심에서 점점 멀어지겠죠. 그러니까 언론이 없다면 우리는 사람 없는 축구장에서 그들만의 축구를 하겠죠.(10페이지).’

‘기자들도 일반 회사원입니다. 언론사라는 회사에 고용된 사람입니다. 회사에 다니는 이상 매일 새로운 기사를 작성해야합니다. 독자들의 관심을 끌만한 기사를 써야합니다. 요즘에는 인터넷 클릭 숫자가 높은 기사를 많이 써야 회사에서 인정받죠. 그러므로 기자들은 남들보다 하나라도 더 알아내려고 하죠. ‘특종 뉴스’에 대한 욕심이 있어요. 그러니까 기자들의 요구가 피곤하더라도 어느 정도는 이해해줘야 합니다. 즉 기자들이 인터뷰 요청을 하는 것은 축구 선수들이 게임을 뛰는 것과 같습니다.’

이렇게 언론 이해가 높고 높은 언론 이해도로 선수들을 납득시키는 책자까지 만든 대한축구협회가 감독 선임 건에서는 아마추어적이고 구시대적 발상을 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국익에 치명적인 타격이 있을 경우, 혹은 지극히 개인적인 신상의 이유가 있을 경우 엠바고(보도 유예)를 요청하고 기자들이 자발적으로 보도를 유예할 수 있다.

하지만 축구 대표팀 감독 선임이 그 정도 사안이라고 보기는 힘들다. 독자들이 알아서 기사의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것이지 축구협회에서 나서서 ‘걸러 읽어라’고 말하는 것은 시민들의 수준을 낮게 보는 것밖에 되지 않는다.

ⓒ대한축구협회
또한 국내 여론은 저런 공지나 엠바고 등으로 막을 수 있다고 치자. 하지만 전 세계 어디서 나올지 모르는 외신과 SNS, 축구 커뮤니티를 통해 어떤식으로든 정보는 나오기 마련이다.

외신에서 한국 대표팀 감독과 관련된 기사가 나오는데 이를 어떻게 막겠다는 것이며 기사보다 빠른 SNS와 축구 커뮤니티 등의 글이 여론을 만드는데 기사를 쓰지 않는다고 되는 것은 아니다.

게다가 협회가 홍보책자에서 언급했듯 기자들 역시 자신들이 해야 하는 일을 하는 것인데 이를 막겠다는 것 자체가 비상식적일 수밖에 없다.

앞서 언급했듯 축구협회에만 출입하는 언론사가 48개사에 우리나라 언론은 이외에도 훨씬 많다. 당장 러시아 월드컵을 취재하기 위해 러시아를 찾은 취재기자만 해도 100여명이 넘었었다. 이 모든 언론사와 기자를 통제하겠다는 접근 발상 자체가 무리다. 축구기자가 한국에서 가장 이슈가 많은 사안을 쓰지 않아야한다면 대체 이들은 뭘 해야 하는가?

이미 협회는 지난 9일에도 “루머가 외신과 국내언론을 통해 기사화 되고 있다. 공식적으로 확인되지 않은 외신발 루머성 뉴스를 자제해 달라”고 했다. 하지만 루머라 할지라도 ‘이런 소문이 있다고 한다’고 알리는 것조차 자제를 요청하는 것은 축구협회의 소관 밖이다.

물론 이해한다. 좋은 감독을 데려오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고 소문에 의해 좌절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모든 역경을 이겨내야 한다. 한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 모든 축구계가 그렇게 돌아가고 있다. 한국보다 축구 열기가 더 높은 곳도 같은 과정을 거쳤지만 ‘축구협회에서 보도 자제 요청을 한다’는 기사를 단 한건도 본적은 없다. 차라리 더 영리하다면 언론을 이용해 후보인 감독을 압박하거나 가격을 낮출 수도 있다. 하기 나름이다.

구시대적인 보도 자제 요청과 ‘그저 기다려 달라’는 식의 입장을 낼 필요가 없다. 언론은 언론대로, 축구팬은 축구팬대로, 그리고 협회는 협회대로 일하면 된다. 비록 부정적인 효과가 있다할지라도 이는 ‘세계 No.1스포츠’ 축구가 이겨내야 할 ‘왕관의 무게’이자 그만큼 전국민적 관심이 있다는 방증이기 때문이다.

-이재호의 할말하자 : 할 말은 하고 살고 싶은 기자의 본격 속풀이 칼럼. 냉정하게, 때로는 너무나 뜨거워서 여론과 반대돼도 할 말은 하겠다는 칼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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