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한국 박대웅 기자] '코리안 특급' 박찬호는 메이저리그 초창기에 현지 적응 문제로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고 방송에서 여러 차례 거론한 바 있다. 언어는 물론 문화 차이를 극복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반대로 생각해보면 KBO리그에 입성한 외국인 선수들 역시 마찬가지다. 이들의 뛰어난 커리어가 언제나 성공을 보장하지는 않았다. 한국 문화 및 KBO리그 적응이라는 장벽을 뛰어넘지 못해 초라하게 짐을 꾸린 선수들도 많았다.

타지 생활의 외로움을 이겨내는 것은 성공적인 적응을 위해 반드시 해결해야 할 과제다. 구단과 동료가 아무리 적극적인 지원과 관심을 아끼지 않더라도 결국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결국 외국인 선수들에게 정신적으로 가장 큰 힘이 되는 존재는 바로 가족이다.

린드블럼의 첫째 딸 프레슬리, 아들 팔머, 막내 먼로의 뒷모습. 세 자녀는 아버지가 마운드에 설 때마다 잠실구장에 방문해 뜨거운 응원을 펼친다. 린드블럼 SNS 캡처
▶ ‘딸 바보’ 린드블럼과 해커

가장으로서 누구보다 강한 책임감을 드러냈던 선수는 바로 두산 린드블럼과 넥센 해커다.

린드블럼은 롯데 시절 막내 딸 먼로가 태어날 때부터 선천성 심장병을 앓아 수술을 받아야 하는 사정으로 인해 2017년 팀과 작별을 고한 적이 있다. 현재 먼로는 린드블럼의 극진한 정성으로 건강을 되찾았다.

단지 먼로 뿐 아니라 첫째 딸 프레슬리, 아들 팔머, 그리고 아내 오리엘에 이르기까지 린드블럼에게는 누구보다도 소중한 존재가 바로 가족이다. 잠실구장에 린드블럼이 등판하는 경기마다 아내와 세 자녀가 응원을 보내며 뜨거운 힘을 실어주는 모습을 지켜볼 수 있다.

린드블럼 역시 마운드를 내려올 때면 가족들을 향해 인사를 남기고, 수훈선수로 선정될 경우에는 호투의 비결을 ‘가족의 힘’이라 주저 없이 밝히는 등 극진한 사랑 표현을 빠뜨리지 않는다. 야구장을 벗어나서도 린드블럼은 최근 가족들과 함께 2018 러시아 월드컵 거리응원을 함께 펼치는 등 소중한 추억 쌓기에 여념이 없다.

넥센 해커는 가족들과 함께 보낸 한국에서의 추억을 잊지 못해 다시 KBO리그로 발길을 옮겼다. 사진은 지난해 NC 시절에 찍은 모습. 스포츠코리아 제공
최근 넥센에 합류하며 재취업에 성공한 해커 역시 대표적인 딸 바보다. 2014년 한국에서 태어난 딸 칼리는 NC 시절부터 인형같은 외모로 팬들의 사랑을 받았고, 응원을 올 때마다 해커가 많은 승리를 따내 ‘승리 요정’으로도 통했다.

실제 해커는 딸을 얻은 이후 지긋지긋한 불운을 벗어던지고 2015시즌에는 19승을 따내며 투수 부문 골든글러브 주인공이 되기도 했다.

해커가 지난 시즌을 끝으로 NC와의 재계약에 실패한 뒤 KBO리그 쪽으로 끊임없이 공개 구직을 한 것도 가족들과 함께 보낸 한국 생활에 특별함을 느꼈기 때문이다. 넥센과 계약서에 사인하기 전 칼리를 비롯한 가족들도 흔쾌히 이를 허락했다는 후문.

한화 샘슨과 소프트볼 선수 출신의 아내 헤일리. 헤일리는 7월말 출산 예정이다. 한화 이글스 제공

▶불운과 부진 극복, 샘슨-듀브론트-브리검

가족의 힘을 통해 부진과 불운을 딛고 일어선 선수들도 있다. 한화 샘슨, 롯데 듀브론트, 넥센 브리검이 대표적 사례다.

샘슨은 개막 후 2경기에서 도합 8.2이닝 14실점(12자책점)을 기록하며 출발이 좋지 못했지만 아내 헤일리가 한국을 찾은 시점부터 서서히 안정감을 찾았다.

특히 샘슨은 소프트볼 선수 출신인 아내와 평소 야구 관련 이야기를 많이 하는 편은 아니지만 정서적으로 안정이 될 수 있는 조언들을 듣고 도움을 받았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현재 아내가 미국으로 떠난 상태지만 출산을 앞두고 있어 샘슨 역시 선발 로테이션에 큰 지장을 주지 않는 범위에서 조만간 휴가를 떠날 예정.

한용덕 감독은 “샘슨이 아내에게 제구력에 대해 혼이 났다고 하더라. 샘슨을 정면에서 볼 수 있는 곳에 아내를 안내해놓으라고 했는데 레이저 눈빛을 발사하면 잘 하지 않겠나”라는 농담과 함께 ‘가화만사성’이 주는 힘을 강조하기도 했다.

듀브론트의 아내 킴벌리는 전력 분석원과 다름없는 역할을 통해 남편의 반등을 도왔다. 스포츠코리아 제공
샘슨과 마찬가지로 듀브론트도 출발은 최악에 가까웠다. 4월까지 6경기를 소화하는 동안 승리 없이 4연패에 빠진 것.

하지만 5월1일 KIA를 상대로 7이닝 무실점 완벽투를 선보이며 시즌 첫 승을 챙겼고, 듀브론트는 이 승리를 아내 킴벌리에게 바친다는 말과 함께 가족에 대한 사랑을 드러냈다.

킴벌리는 듀브론트가 등판하는 날이면 언제나 수첩을 지참해 꼼꼼하게 투구 내용을 메모했다. 사실상 전력 분석원을 자청하면서 남편에게 많은 조언을 전했고 때로는 쓴 소리도 아끼지 않았다. 이러한 지원이 듀브론트에게는 반등을 이룰 수 있는 큰 힘이 됐다.

브리검이 5월말 입국한 아내 테일러, 딸 스텔라, 아들 콥과 다정하게 기념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넥센 히어로즈 제공

브리검의 경우 안정적인 투구 내용에도 불구하고 유독 승리 운이 따르지 않았지만 가족의 힘을 통해 이를 이겨낼 수 있었음을 밝혔다.

5월말 한국으로 아내 테일러, 딸 스텔라와 아들 콥이 들어온 뒤 브리검은 더욱 눈부신 호투를 펼쳤다. 그 결과 6월13일 한화전에서 7이닝 1실점을 기록하며 가족들에게 잊지 못할 승리의 선물을 안겼다. 그는 이날 딸 스텔라를 품에 꼭 안고서 수훈 선수 인터뷰를 진행했다.

▶러프, 로맥을 위한 특별 이벤트

구단이 가족을 앞세워 선수의 사기를 높여주는 경우도 있다. 삼성 러프와 SK 로맥이 그 대상이었다.

삼성은 4월21일을 러프 데이로 지정하고 평소 ‘애처가’로 소문난 러프를 위한 특별 행사를 마련했다. ‘아이러프유’ 공을 특별 제작해 관중들에게 이를 나눠주는 한편 러프 사인회를 통해 팬들로부터 응원을 받을 수 있는 자리를 마련했다.

특히 경기 전 아들 헨리 러프에게 시구를 맡겼고, 아내 리비 역시 시구 행사를 돕도록 하는 등 가족을 위한 배려를 아끼지 않아 러프에게 감동을 안겼다. 러프 역시 이날 3타수 2안타 1득점 1볼넷을 기록하며 팀 승리에 힘을 보탰다.

삼성 러프가 아들 헨리, 아내 리비와 함께 구단에서 마련해 준 '러프 데이'를 즐기고 있다. 스포츠코리아 제공
SK는 5월4일 로맥의 입단 1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깜짝 행사를 준비했다. 경기를 앞두고 아내 크리스틴과 아들 내쉬가 인천 SK행복드림구장의 초대형 전광판에 모습을 드러냈고, 로맥을 향해 따뜻한 응원의 한 마디를 남긴 것.

내쉬의 손뽀뽀에 함박 미소를 지은 로맥은 이어진 4회초 수비에서 상대의 병살타를 이끌어내는 호수비를 선보이는 한편 4회말에는 2루타와 득점까지 기록해 SK의 5-4, 짜릿한 승리를 이끌었다.

로맥은 지난해 SK 유니폼을 입기 전 메이저리그 콜업 기회가 있었지만 KBO리그에서 뛰는 길을 택했다. 더 꾸준히 경기에 나서면서 가족을 안정적으로 부양하기 위함이었다.

결과적으로 최고의 선택이었다. 지난해 총액 45만 달러의 연봉은 1년 만에 85만 달러까지 수직 상승했고, 올시즌에는 홈런왕까지 노려볼 수 있는 활약을 펼치고 있기 때문이다. 소위 ‘분유 버프’가 제대로 터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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