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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한국 박대웅 기자] ‘빌리 장석’에서 ‘비리 장석’, 능력 있는 ‘장사꾼’에서 희대의 ‘사기꾼’. 프로야구 넥센 히어로즈 이장석 전 대표의 몰락 과정을 표현하는 말이다.

과거 이장석 전 대표에게는 ‘머니볼’ 성공 신화를 쓴 메이저리그 오클랜드 어슬레틱스 단장 빌리 빈에 빗댄 ‘빌리 장석’이라는 별명이 따라붙었다.

실제 이 전 대표는 KBO리그에 새로운 유형의 비즈니스 모델을 제시한 인물이다. 모든 구단들이 대기업 후원 중심으로 운영됐다면 히어로즈는 자생적으로 살아남을 수 있는 모델을 끊임없이 찾아왔다.

이장석 전 대표는 2008년 현대 유니콘스가 문을 닫고 새로운 인수자를 찾지 못해 어려움을 겪는 과정에서 야구계에 처음 모습을 드러냈다. 생소한 인사에 대한 야구계의 반응은 싸늘했다.

일각에서는, 좋게 말해 `인수합병 전문가'라고 했지만 실제는 그저그런 기업사냥꾼으로 유니콘스의 몸값을 부풀려 되팔려는 심산이라고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못했다.

그러나 2008년 이전까지 야구계와 아무런 인연이 없었을 뿐 `출신 성분' 만큼은 확실했다. 이 전 대표의 아버지는 초대 경제기획원 차관보를 지낸 고 이기홍 씨, 누나는 미국 포브스가 선정한 ‘올해의 자수성가 여성 사업가 50인’에 선정된 SHI대표 이태희(SHI 대표) 씨다. 구단 인수 과정에서 누나의 도움이 있었다는 후문도 있었다.

이처럼 부족함 없는 집안에서 태어나 연세대 금속공학과를 졸업한 뒤 프랑스 유럽경영대학원(INSEA) 경영학 석사를 받았고, 보잉항공사 컨설턴트, 아서디리틀(ADL) 부사장 등을 지내며 능력을 인정받기도 했다.

2008년 당시 자본금 5000만원에 직원은 단 2명인 신생 회사 센테니얼 인베스트먼트 대표였던 그는 “프로야구 스포츠산업의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제시하겠다. 수익 창출을 위한 야구단 운영으로 한국프로야구 산업의 새로운 이정표가 될 수 있도록 하겠다”는 야심찬 포부 속에 히어로즈를 창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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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창기에는 여러 난관이 많았다. KBO에 가입금 120억원을 납입하는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 KBO 최초로 네이밍 스폰서를 도입시켰지만 가입금 문제로 논란이 커졌고, 메인스폰서인 우리담배와는 실질적으로 4개월 만에 관계가 정리됐다.

설상가상 구단 운영 자금마저 바닥나면서 전지훈련 비용, 선수 계약금이 제대로 완납되지 않았고, 선수단 숙박비가 연체되는 일도 있었다. 이장석 대표를 ‘희대의 사기꾼’, ‘야구판 악의 축’으로 분류하는 분위기가 2008년부터 이미 존재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히어로즈는 2008년 12월 가입 분납금 24억원을 조기 납부하면서 전체 120억 가운데 총 60억원을 해결했다. 바로 차후에 밝혀졌듯 홍성은 레이니어그룹 회장에게 지분 40%를 양도하는 조건으로 20억원을 투자받으면서 가능했던 일이다.

이듬해 히어로즈는 이택근, 장원삼, 이현승 등 팀 내 핵심 선수들을 본격적으로 트레이드 시켰고 120억원의 거금을 모두 KBO에 납부할 수 있었다. 자금 문제와 관련해서는 비로소 안도의 한숨을 내쉴 수 있게 된 시점이다.

이후에도 잦은 트레이드가 이어졌고, 선수를 팔아서 구단을 연명한다는 부정적 시선이 계속 따라다녔지만 점차 히어로즈에 자생력이 갖춰지게 된 것도 사실이다.

시행착오 끝에 2010년에는 메인 스폰서 넥센 타이어와 계약을 체결했을 뿐 아니라 70여개 단체로부터 광고료 수입을 확보해 재정 문제를 해결했다.

또한 실속 있는 트레이드를 통해 많은 이익을 얻었고, 유망주들을 끊임없이 발굴해내며 팀 전력을 점차 끌어올렸다. 2011년부터는 FA 이택근을 4년 50억에 영입하는 한편 팀 기여도가 높은 선수들에게 파격적인 연봉을 제시하는 등 때때로 반드시 필요한 부분에는 돈을 지출하면서 인식도 서서히 바꿔나갔다.

히어로즈는 2014시즌 소위 ‘부자 구단’ 상징성이 강한 삼성에 우승을 내주긴 했지만 창단 첫 한국시리즈에 진출하는 성과를 이뤄냈다.

2015년에는 강정호, 2016년에는 박병호가 메이저리그에 진출하며 구단에 포스팅 시스템 비용을 안겼고, 2016년에는 당기 순이익 약 190억원으로 창단 첫 흑자를 기록하는 기염을 토했다. 모 기업의 든든한 지원을 받는 여러 구단들도 쉽지 않은 성과를 성적 및 운영 측면에서 모두 이뤄냈다는 것은 의미하는 바가 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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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빌리 장석’ 신화의 민낯이 곧바로 드러났다. 2016년 이장석 전 대표의 사기, 횡령 혐의가 세상에 알려졌기 때문.

이 전 대표는 앞서 언급한 홍성은 레이니어그룹 회장에게 2008년 20억원을 투자받고도 지분 40%를 넘겨주지 않았을 뿐 아니라 2010년 2월부터 2015년 1월까지 야구장 내 매점 임대보증금 반환 등에 사용한 것처럼 장부를 조작하고 빼돌린 회삿돈 20억8100만원을 개인 비자금으로 사용했다.

또한 회사 정관을 어기고 인센티브를 받아내 회사에 17억원의 손해를 끼치고, 상품권 환전 방식으로 28억2300만원을 횡령한 것으로도 조사됐다. 결국 이 전 대표는 지난 2월 1심에서 징역 4년을 선고받고 법정 구속됐다.

이후로도 문제가 끊이지 않았다. 대한상사중재원이 홍성은 회장의 손을 들어줬음에도 분쟁이 계속되고 있는 상태이며, 유상증자로 경영권 방어에 나서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KBO가 대표 이사 직무를 정지시켰음에도 불구하고 소위 ‘옥중 지시’를 통해 여전히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한다는 의혹이 끊이지 않고 있다.

최근에는 히어로즈가 과거부터 현금을 포함한 선수 트레이드 가운데 신고하지 않았거나 발표와는 다른 계약이 있었다는 사실까지 무더기로 적발됐다. 2009년 12월부터 올해 1월까지 총 23차례 트레이드 가운데 12건이나 문제가 있었다. 189억5000만원 중 신고 되지 않은 금액만 무려 131억5000만원.

과거부터 현금 트레이드 의혹이 끊임없이 제기됐지만 히어로즈는 야구 팬들 앞에서 뻔뻔한 거짓말을 늘어놓았다. 이 전 대표가 트레이드에 따른 인센티브를 챙겼다는 문건까지 공개되면서 논란이 더욱 확산되고 있다.

과거 이 전 대표는 약자도 강자를 이길 수 있는 스토리를 만들고 싶은 소망을 밝힌 바 있다. 무명 선수도 영웅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히어로즈라는 구단명 역시 본인이 직접 지었다.

이 전 대표는 스몰 마켓도 살아남을 수 있다는 것을 분명히 보여줬다. 하지만 히어로즈라는 가면 뒤에서 수많은 팬들을 기만했고, 야구계 전체를 농락했다. 이제는 누구도 그를 영웅이라 칭송하지 않고 롤모델로 생각하지 않는다. ‘빌리 장석’의 신화가 그렇게 처참하게 저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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