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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한국 김명석 기자] 장내가 술렁이고, 또 술렁였다.

2018 국제축구연맹(FIFA) 러시아 월드컵 1차 명단이 공개된 지난 14일 서울시청 다목적홀. 최종엔트리(23명) 진입을 놓고 경쟁을 펼칠 28명이 영상을 통해 하나 둘씩 공개됐다.

앞서 신태용(48) 축구대표팀 감독이 “깜짝 발탁은 없을 것”이라고 단언했던 터라, 기존의 대표팀 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었던 분위기였다.

그런데 장내는 세 차례나 술렁였다. FC바르셀로나 유스팀 출신이자 한국 축구의 미래로 손꼽히던 이승우(20·헬라스 베로나), 지난 시즌 K리그 베스트 수비수였던 오반석(30·제주유나이티드)이 월드컵 출전의 꿈을 꿀 기회를 얻었기 때문.

그리고 또 한 명. 성인 대표팀 경력은 물론 뚜렷한 수상 실적조차 전무했던, K리그 팬들이 아니라면 생소할 수밖에 없는 그의 이름도 28명의 월드컵 명단에 포함됐다. 인천유나이티드 소속의 미드필더, 문선민(26)이었다. 무명에 가까운 선수의 그야말로 ‘깜짝 승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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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제법 날렸던 유망주, 무적(無籍)의 신세로

사실 문선민은 초중고 시절 두각을 나타내던 유망주였다. 서울 신정초 5학년 때 처음 축구화를 신은 뒤 문래중과 장훈고를 거치면서 또래들 사이에서 제법 이름을 날렸다.

2009년에는 첫 태극마크도 달았다. 고 이광종 감독의 부름을 받아 17세 이하 청소년대표팀에 발탁됐다. 당시 손흥민(26·토트넘 홋스퍼) 김진수(26·전북현대) 등과 호흡을 맞췄다. U-17 월드컵 최종엔트리에는 들지 못했지만 예비명단에는 이름을 올렸다.

서울 장훈고 졸업 직후에는 해외진출에 도전했다. 프랑스, 헝가리 등에서 입단테스트를 보면서 더 큰 무대에 도전했다. 다만 그의 도전은 실패로 돌아갔다. K리그 드래프트 지원시기도, 대학 진학의 시기도 모두 놓쳤다. 오갈 곳 없는 신세가 됐다.

고민의 나날이 이어졌다. 모교에서 몸을 만들면서 새 길을 모색했다. 다행히 ‘은사’ 이규준 감독의 추천으로 한 오디션 프로그램에 지원했다. 선수들의 프로 진출을 돕는 영국 나이키 아카데미의 장학생을 선발하는 프로그램이었다.

전 세계 41개국에서 ‘공 좀 찬다’는 7만5000명이 지원했다. 이 중 아카데미에 입소할 수 있는 선수는 단 8명, 경쟁률은 무려 9375대1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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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375대1 뚫고 오디션 통과…스웨덴 3부→K리그까지

문선민의 재능이 빛을 발했다. 경쟁자들을 제치고 제쳐, `톱100'에 이름을 올렸다. 영국 런던의 한 축구센터에 모인 99명의 또 다른 경쟁자들 사이에서도 문선민의 기량이 돋보였다. 결국 그는 동양인으로는 유일하게 최종 8인에 이름을 올렸다.

아카데미에 입소하자마자 프로 데뷔의 기회가 찾아왔다. 연습경기에서 두각을 나타내면서 당시 스웨덴 3부리그의 외스테르순드의 러브콜을 받았다.

마침내 그는 2년 계약을 맺고 프로 무대를 밟았다. 그는 “하부리그인 것은 상관이 없었다. 프로에 가고 싶은 마음만이 절실했다”고 했다.

경쟁은 이어졌다. 특히 홀로 동양인인 그에게는 더욱 만만치 않은 도전이었다. 그는 “처음에는 마냥 좋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외로움이 컸다. 우울증도 겪었다”고 했다.

다만 그는 오롯이 실력으로 이를 극복했다. 팀의 2부리그 승격에 힘을 보태는 등 서서히 팀의 주전으로 도약했다. 스웨덴 1부리그 팀인 유르고르덴의 러브콜로 이어졌다. 스웨덴에서 5년간 그는 101경기에 출전해 12골과 15개의 도움을 기록했다.

그는 새로운 도전을 택했다. 외로운 생활 속에, 한국에 대한 그리움이 컸다. 2016년 여름 김도훈 당시 인천 감독으로부터 영입 제안을 받았다. 김 감독에 이어 인천 지휘봉을 잡은 이기형 감독도 그를 원했다. 결국 그는 스웨덴을 떠나 한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낙천적인 성격에 친화력까지 갖춘 그는 입단 첫 시즌 만에 팀 부주장 역할을 맡았다. 100m를 11초대에 주파하는 빠른 발을 앞세워 팀 공격에 활력소가 됐다. K리그 첫 시즌 30경기(선발16경기)에 출전, 4골3도움을 기록하면서 팀의 1부리그 잔류에 힘을 보탰다.

여기에서 만족하지 않았다. 겨우내 혹독한 훈련을 통해 부족했던 골 결정력 등 스스로를 갈고 닦았다. 그리고 맞이한 K리그 2년차인 올해, 그는 시즌 초반부터 펄펄 날았다. 빠른 돌파에 예리한 골 결정력까지 갖춘 측면 공격수로 자리 잡았다. 13경기 만에 6골 3도움. K리그 득점 4위, 국내선수로는 최다득점 선수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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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교여행 계획하다 깜짝 승선…“살아남아야죠”

이러한 활약은 축구대표팀의 레이더망에도 포착됐다. 차두리(38) 김남일(41) 코치 등이 인천축구전용경기장을 찾아 그를 유심히 지켜봤다.

결국 신태용 감독으로부터 낙점을 받았다. 신 감독은 “스웨덴에서 5년 동안 뛴 만큼 스웨덴 선수들에게 정형화 되어 있는 선수라고 판단했다. 빠른 발과 과감함, 저돌적인 부분이 흡족하게 만들었다”고 평가했다.

문선민 스스로도 전혀 생각지 못했던 일이었다. 당초 그는 월드컵 휴식기를 통해 아내와 태교여행을 떠날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대표팀 명단이 발표됐을 당시에도 그는 전날 치른 경기 탓에 잠을 자고 있었다. 핸드폰이 쉴 새 없이 울리는 통에 뒤늦게 월드컵 대표팀에 발탁됐다는 소식을 알았다. 그는 “1%도 기대하지 않아서 너무 얼떨떨했다. 열심히 잘 해야겠다는 생각만 들었다”고 했다.

아직 월드컵행이 확정된 것은 아니다. 28명 중 23명의 최종엔트리에 들어야 러시아행 비행기에 오를 수 있다. 그러나 앞서 9375대1이라는 경이적인 경쟁률 속에서도, 먼 타지에서의 치열했던 경쟁 속에서도 살아남아온 그다. 부담감보다는 오히려 경쟁을 반기고 있다.

문선민은 “그동안 계속 경쟁을 해왔다. 이번에는 최정상급 선수들과 경쟁을 하게 됐다. 즐겁고 설렌다. 도전하는 것이 즐겁다”면서 “아직 최종목표에는 오르지 못했다. 저돌적인 드리블, 수비 뒷공간을 파고드는 능력 등을 앞세워 꼭 최종목표인 월드컵에서 살아남고 싶다”고 말했다.

그가 월드컵을 향한 축구화 끈을 더욱 동여맬 수밖에 없는 이유는 또 있다. 인천에서 아내를 만난 그는 올 가을 자신을 닮은 2세(태명 행복이)와의 만남을 앞두고 있다. 문선민은 “책임감이 몇 배는 더 커졌다. 자랑스러운 남편이자, 부끄럽지 않은 아빠가 되고 싶다”며 웃어 보였다.

-스한 위클리 : 스포츠한국은 매주 주말 ‘스한 위클리'라는 기획기사를 통해 스포츠 관련 주요사안에 대해 깊이 있는 정보를 제공합니다. 이 기사는 종합시사주간지 주간한국에도 동시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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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시간 : 2018/05/20 07:0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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