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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한국 박대웅 기자] “우선 순위는 육성이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좀 더 이기는 야구를 하겠다. 임기 내 우승권에 도전하겠다.”

한용덕 감독이 한화의 11대 사령탑으로 지휘봉을 잡으면서 남긴 야심찬 포부다. 그러나 한화는 김인식, 김응용, 김성근 감독 등 한국 프로야구를 대표했던 명장들이 모두 고개를 숙인 채 초라하게 물러났던 팀이다. 한 감독의 출사표에 큰 기대감을 드러낸 팬은 그리 많지 않았다.

하지만 개막 후 38경기를 치른 11일 현재 한용덕 감독이 믿기 힘든 기적을 써나가고 있다. 21승17패, 단독 3위에 오르며 11년만의 가을 야구 진출에 대한 희망을 밝히고 있다.

‘전편보다 나은 속편은 없다’는 말이 있지만 한 감독 주연의 ‘마리한화 시즌2’는 작품성 뿐 아니라 흥행에서도 전편을 능가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시즌1의 장점은 그대로 살아있다. 포기하지 않는 정신, 상대를 끝까지 물고 늘어지는 투혼을 선보이며 역전승 2위(12승)에 올라 있고, 8회 이후 뒤집기 승리도 4번이나 있었다. 최종 승리를 가져가는 빈도를 더욱 높이면서 마리한화의 중독성은 오히려 강화됐다.

반대로 시즌1에서 아쉬움을 남긴 부분들은 알차게 보강했다. 무엇보다 마리한화 야구를 선보이는 과정에서 나타난 고질적인 문제점 및 부작용을 최소화했다. 시즌1에서는 좀처럼 찾기 어려웠지만 시즌2에서 제대로 빛을 보고 있는 요소들에 대해 보다 자세히 들여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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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음-밝은 미래

한화는 지난해 시즌 직전 KBO가 발표한 선수단 평균 연령 29.4세로 최고령 팀이다. 투수들의 평균 연령은 무려 31.9세. 김성근 전 감독이 지휘봉을 잡았을 때부터 이같은 경향이 심화됐다. 당장의 성과를 위해 즉시 전력감 자원을 다수 영입한 결과다.

그러나 올시즌 한화는 선수단 평균 연령이 27.9세까지 내려갔다. 지난 시즌 중반부터 베테랑 선수들을 다수 방출하면서 리빌딩에 대한 의지를 분명하게 드러냈다.

무엇보다 반가운 것은 단순히 연령만 낮아진 것이 아니라 젊은 선수들의 활약이 두드러지고 있다는 점이다.

마운드의 경우 지난해 이상군 감독대행의 믿음 속에 잠재력을 드러낸 김재영(25)이 선발진의 한 축으로 자리 잡은 가운데 불펜에서는 서균(26)과 박상원(24)이 짠물 피칭을 이어가고 있다.

특히 서균은 11일 현재 21경기를 소화할 때까지 13.1이닝 평균자책점 0의 ‘미스터 제로’로 떠올랐고, 박상원도 18경기 14.2이닝을 소화하면서 서균, 정우람 다음으로 우수한 평균자책점 1.23을 기록했다. 신인 박주홍(19)과 김진욱(18)도 씩씩한 피칭을 통해 가능성을 활짝 밝힌 자원들이다.

야수들 중에서는 팀의 리빌딩 코어 하주석(24), 든든한 백업 포수로 성장한 지성준(24)을 필두로 정은원(18), 장진혁(25), 정경운(25), 이동훈(22) 등이 활력소 역할을 해내고 있다.

정은원의 경우 시즌 타율이 높지는 않지만 지난 8일 고척 넥센전에서 아마추어 무대를 포함한 생애 첫 홈런을 폭발시키며 대역전 드라마의 발판을 마련했다. 다음날에는 그의 롤모델 박진만을 떠올리게 하는 호수비로 팀을 위기에서 구해내기도 했다.

한용덕 감독도 젊은 피들의 활약에 가장 큰 의미를 부여했다. 그는 “가장 바라던 부분이다”고 운을 뗀 뒤 “젊은 선수들이 활약해야 결국 팀이 강해질 수 있다. 고참은 당연히 잘 해야한다고 생각한다. 여기에 젊은 선수들까지 잘해준다면 내부 경쟁 속에서 고참들도 자극을 받게 된다”며 팀이 바람직한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고 평가했다.

이성열 역시 “(정)은원이가 첫 홈런을 친 이후 형들도 신이 나서 정신을 차린 것 같다”며 후배들의 대견한 활약에 미소를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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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밝은 팀 분위기

김성근 전 감독 시절 한화의 큰 문제점 중 하나는 바로 소통 부재였다. 김성근 전 감독이 강력한 카리스마로 선수단을 휘어잡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으나 그 과정에서 마찰이 너무 많았다.

현장과 프런트의 갈등 관계에 대해 야구 팬이라면 모르는 이가 없었고, 코칭스태프들도 감독에게 억눌리는 경우가 많았다. 대다수의 선수들도 의식을 스스로 일깨우기보다는 지옥훈련을 통해 주입에 가까운 방식으로 하루하루를 버텨나갔다.

하지만 한용덕 감독이 지휘봉을 잡은 이후 한화 프런트는 별다른 잡음 없이 뒤에서 묵묵히 현장을 서포트하고 있다.

화끈한 취임 선물을 안기지는 못했지만 현장과의 교감을 통해 선수 부상 관리에 만전을 기울이고 있으며, 육성 기조에 맞춰 팀의 뿌리부터 바로 잡아나가고 있다.

최근에는 박종훈 단장이 2군 선수들을 독려하기 위해 퓨처스 경기가 열린 춘천을 조용히 방문한 것으로 드러났다. 전면에서 움직였던 김성근 전 감독 시절 때와 달리 이제는 짧은 인터뷰마저 조심스러운 반응을 보일 만큼 노출을 피하는 모습이다.

코칭스태프, 선수들과의 소통 역시 과거와는 차이가 많다. 한용덕 감독은 취임 당시 송진우 코치와 성격이 잘 통하지 않아 과거 충돌을 일으킨 적도 있었다고 솔직히 고백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송 코치 및 장종훈 코치 등에게 도움을 요청한 것은 이글스 레전드 정신을 선수들에게 함께 일깨워주기 위함이었다. 이들이 한화에서 다시 하나로 뭉친 것은 현재까지 신의 한 수로 평가받고 있다.

선수들에게도 한용덕 감독은 든든한 형님이자 포근한 아버지 같은 존재다. 물론 한 감독도 신인 선수들과 별도의 대화 시간을 가질 기회는 많지 않다. 그러나 그의 표현을 고스란히 빌리면 소위 ‘하트 눈빛’을 발사하며 애정으로 선수들을 지켜보고 있다.

특히 홈런을 친 이성열이 한 감독의 가슴을 주먹으로 때리는 모습은 한화의 위계질서가 수직적 구조에서 수평적 구조로 완전히 바뀌었음을 확인할 수 있는 상징적 장면이다. 한용덕 감독은 “신인 선수들에게도 내 가슴은 언제든 열려 있다”며 미소를 지었다.

덕장 이미지 속에 전혀 다른 모습이 발견될 때도 있다. 기사로 다뤄지지 않았지만 최근 한 감독은 한화 선수에게 지속적으로 사구를 던진 타 팀 투수를 강한 어조로 비판한 적이 있다. 한 식구를 지키기 위해 때로는 거침없이 해야 할 말은 반드시 한다.

선수들에게는 큰 힘이 될 수밖에 없다. 수훈 선수로 선정된 선수들마다 한 감독을 비롯한 코칭스태프의 믿음, 밝은 팀 분위기를 설명하기 바쁘다.

지성준은 “예의상 하는 말이 아니다”고 강조한 뒤 “정말로 좋은 분위기 속에 팀을 이끌어주시고 다독여주시기 때문에 심리적으로 마음이 편하다”며 이같은 신뢰에 부응하고 싶은 마음을 드러냈다.

정은원 역시 “홈런을 치기 전 5타석에서 안타를 기록하지 못했었는데 선배들께서 ‘오늘은 첫 안타 가보자’고 말씀해주셨다. 홈런을 친 이후 다들 놀라신 듯 정말로 반겨주셨다”며 고마움을 드러냈다. 믿음과 신뢰, 그리고 소통을 통해 이뤄낸 대반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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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식-진정한 행복 야구

김성근 전 감독이 추구한 야구가 ‘마리한화’라는 수식어를 얻을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앞서 언급했듯 절대 포기하지 않는 정신을 통해 마지막까지 끈질기게 상대를 물고 늘어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러한 투혼 이면에는 혹사 논란과 같이 어두운 그림자가 함께 따라다녔던 것이 사실이다.

2015시즌 권혁은 무려 78경기 112이닝을 소화한 데 이어 이듬해 역시 66경기 95.1이닝을 책임졌다. 불꽃 투혼의 상징으로 자리매김했지만 2017시즌에는 혹사 여파를 피해가지 못했다.

박정진 역시 2015시즌 76경기 96이닝, 2016시즌 77경기 84이닝을 던졌고, 송창식도 지난 3년 동안 193경기 280이닝을 묵묵히 책임졌다. 연투 뿐 아니라 3연투, 심지어 개막 시리즈부터 이같은 승부수를 던지기도 했으며, 크게 리드한 경기에서조차 핵심 불펜들의 등판을 자주 지켜볼 수 있었다. ‘필승조’가 아닌 ‘살려조’라는 씁쓸한 표현까지 등장할 정도였다.

올시즌 한화는 38경기를 소화할 때까지 혹사 논란에서 벗어나 있다. 불펜에서 가장 많은 26.1이닝을 소화한 송은범도 연투는 두 차례 뿐이었고, 가장 많은 21경기에 출전한 서균도 5번의 연투가 있었지만 대부분 이닝을 짧게 가져가고 있다.

정우람 역시 1이닝을 초과한 경우가 한 차례에 그치는 등 확실한 관리 속에 제2의 전성기를 보내고 있다. 특정 선수에게만 지나치게 의존하는 모습에서 벗어났다는 것이 큰 소득이다.

선발 로테이션도 팀 사정에 따라 일부 변화를 줄 때는 있었다. 그러나 극단적인 보직 파괴가 이뤄졌던 시절과의 비교는 실례다.

현재 롱릴리프로 기용되고 있는 선수들이 좋은 모습을 보이면서 보직 이동에 대한 유혹이 찾아올 때도 있지만 특별한 상황이 아니라면 큰 변화를 주지 않을 계획이다.

이같은 뚜렷한 원칙이 있었기 때문에 한화는 끊임없이 부상자가 쏟아지는 고질적인 악순환을 끊어낼 수 있었으며, 선발 전력이 떨어지는 상황 속에서도 불펜 위력을 통해 한층 더 단단하고 짜릿한 야구를 할 수 있는 팀으로 거듭났다.

희생을 통해 투혼을 발휘해온 선수들을 지켜보며 그동안 한화 팬들은 고마움을 느끼면서도 동시에 미안함도 함께 가져야만 했다. 승리 속에는 짜릿함이 담겨 있었지만 불편함도 함께 녹아들어 있었다.

하지만 보편적인 상식 속에서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사실 충분하다. 시즌이 모두 종료된 시점에서 현재보다 순위가 내려가더라도 이러한 열정만 계속 보여준다면 아낌없는 박수를 보내겠다는 팬들의 목소리가 압도적으로 많다. 올시즌 한화는 현재까지 팬들이 꿈꾸는 ‘진짜 행복 야구’를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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