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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한국 김성태 기자]최고의 자리, 세계랭킹 1위는 모든 선수의 꿈이다.

한때, 그 자리를 오래 지켰던 선수가 있다. 하지만 영원한 1등은 없다. 부상으로 인해 하락에 하락을 거듭했다. 다시는 그 자리에 못 오를 것이라 봤다. 하지만 클래스는 영원하다. 다시 1위로 올라섰다. 골프여제 박인비(30)다.

지난 4월 21일(이하 한국시간) 미국여자프로골프(LPGA)투어 휴젤-JTBC LA오픈에서 익숙한 이름이 리더보드 상단에 올랐다. 막판까지 치열하게 맞붙었다.

간발의 차이로 우승은 놓쳤지만, 준우승 자리에 오르며 포인트 획득에 성공했다. 그리고 대회가 끝난 4월 23일, 박인비는 세계랭킹 1위 펑산산(중국)을 제치고 2년 6개월 만에 1위 자리에 다시 올랐다.

2013년 LPGA를 장악했던 박인비, 최고의 골퍼 되다

박인비는 지난 2008년 LPGA 무대에 데뷔했다. 그 해, 메이저 대회인 US오픈에서 우승을 차지하며 존재감을 드러냈다. 잠시 숨을 고르더니 2012년 다시금 상승 궤도를 그리기 시작했다. 특히 이듬해인 2013년은 박인비에게 있어 최고의 시즌이었다.

그 해에만 LPGA 투어에서 6승을 따냈다. 더욱 눈길이 갔던 것은 6승의 퀄리티였다. 무려 3승이 메이저 대회 우승이었다. 나비스코 챔피언십에서 우승을 차지한 뒤, 연달아 LPGA 챔피언십과 US오픈까지 석권하며 LPGA 투어의 새로운 강자로 발돋움했다.

사실 장타력이나 페어웨이 안착률에 있어서는 다른 정상급 선수들에 비해 2% 부족한 느낌이었다.

하지만 특유의 강점인 세밀함과 정교함을 앞세운 컴퓨터 샷은 그와 함께 챔피언 조에서 뛰던 다른 선수들의 기를 제대로 눌러버렸다. 아무리 추격을 해도 흔들리지 않는 박인비의 강인한 멘탈에 경쟁자들은 스스로 무너졌다.

그렇게 2013년부터 세계랭킹 1위에 오른 박인비는 2015년 10월까지 무려 92주라는 기나긴 시간을 최고의 자리에서 버텨내며 명실상부 LPGA 여제로 등극했다. 수없이 많은 태극낭자, 그중에서 박인비는 단연 최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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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역대 LPGA 최연소 명예의 전당에 입성한 박인비

2015년, 그는 또 다른 신흥 강자인 리디아 고(뉴질랜드)에게 세계랭킹 1위 자리를 내줬지만 KPMG 위민스 PGA챔피언십에서 우승을 따내며 1위 자리를 탈환했다. 동시에 메이저 6승이라는 태극낭자 역대 최고의 기록(종전 5승 박세리)까지 달성했다.

박인비의 질주는 멈추지 않았다. 다시 1위가 됐지만 그는 더 높은 곳을 바라봤다. 그 해 8월에 열린 브리티시오픈에서 우승트로피를 들어 올리며 그토록 간절히 바라던 커리어 그랜드 슬램(시즌에 상관없이 4대 메이저 타이틀을 모두 우승하는 것을 의미)을 달성했다.

역대 LPGA에서도 단 7차례에 불과했으며 박세리와 경쟁했던 안니카 소렌스탐이 2003년에 기록한 이후, 12년 만에 나온 커리어 그랜드 슬램이었다. 마침내 2015년 11월 23일, 박인비는 박세리에 이어 태극낭자 역대 두 번째로 LPGA 명예의 전당에 이름을 올렸다. 27세 10개월 28일, 최연소 입성이었다.

부상에 부상, 그럼에도 박인비는 황금빛을 목에 걸었다

선수가 이뤄낼 수 있는 모든 것을 이미 이룬 듯했다. 그동안 쉼 없이 달려온 박인비였지만 생각지도 않게 탈이 났다.

2016시즌 개막전 바하마 클래식 1라운드에서 허리 부상으로 7오버파라는 최악의 스코어를 기록했다. 결과는 1라운드 기권. 그리고 JTBC 파운더스컵에서 9개월 만에 컷 탈락의 수모까지 당했다. 아쉬움이 컸다.

부진의 시작이었다. 더욱이 112년 만에 2016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에서 골프가 부활했기에 허리에 이어 손가락 부상까지 입은 박인비를 두고 우려의 목소리가 점점 커졌다.

당시 올림픽 여자 골프는 1개국 2명의 선수가 출전할 수 있었다. 하지만 세계랭킹 15위 이내의 선수들의 경우, 1개국 4명의 선수가 나가는 예외 조항도 함께 있었다.

박인비는 세계랭킹 10위권 내에 있었다. 태극낭자 중에서도 최상위권 4명 안에 포함이 된 랭킹이었다. 꿈에 그리던 올림픽 출전이 가능했다.

그가 최고의 선수라는 것은 누구나 인정하는 사실이었다. 하지만 제대로 된 컨디션이 아니었기에 기존 15위권 내에 있는 태극낭자 중에서 올림픽 직전까지 페이스가 가장 좋은 선수가 박인비 대신 올림픽에 나가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박인비가 받는 압박감은 그야말로 상상을 초월했다. 그럼에도 박인비는 "이겨내겠다"라고 단단히 마음을 먹고 올림픽 출전을 원했고 강행했다. 행여라도 메달 획득에 실패한다면 돌아올 비난은 상상조차 하기 어려웠다. 그러나 클래스는 여전했다. 올림픽 골프가 시작하자, 박인비는 흔들리지 않았다.

2라운드부터 선두 자리에 오르더니 최종 16언더파를 기록, 리디아 고와 펑산산의 맹렬한 추격을 뒤로 하고 감격스런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올림픽 감독으로 그와 함께 했던 박세리 역시 박인비의 메달에 눈물을 펑펑 쏟았다. 커리어 그랜드 슬램에 이어 금메달까지, 그렇게 박인비는 어느 누구도 이뤄내지 못했던 골든 커리어 그랜드 슬램의 주인공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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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부활한 박인비, 제2의 전성기 올까

부상을 딛고 보여준 금메달 투혼 이후, 박인비는 회복에 전념했다. 이룰 수 있는 모든 것을 이룬 박인비였다. 이제 골프채를 내려놓는다고 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았다. 더 이상의 동기부여가 없을 것 같았던 박인비에게 부상 회복 기간은 또 다른 터닝 포인트가 됐다.

골프가 아닌 다른 삶을 살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오히려 새로운 박인비로 태어날 수 있는 계기가 됐다. 다시 필드로 돌아온 박인비는 새로운 반전을 이끌어냈다. 그렇게 올해 3월 뱅크 오브 파운더스컵에서 우승을 차지하며 성공적인 귀환에 성공했다.

그리고 ANA 인스퍼레이션에서 준우승, 롯데 챔피언십 3위, 휴젤-JTBC LA오픈 준우승까지 연달아 달성하며 자신이 세계 최고 수준의 선수라는 것을 증명했다. 세계랭킹 1위라는 타이틀이 다시 박인비에게 돌아왔다.

간발의 차이다. 2위 중국 펑산산과 3위 미국 렉시 톰슨은 박인비의 1위 자리를 빼앗기 위해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고 있다.

특히 4월 30일 발표된 세계랭킹에서 2위 펑산산은 랭킹 포인트 0.19점을 추가로 따내며 7.23점을 기록, 7.49점의 박인비를 단 0.26점 차이로 따라붙는 데 성공했다.

일단 4월 23일에 이어 29일까지 2주 연속 발표된 랭킹에서 세계랭킹 1위를 유지한 박인비다. 펑산산과 톰슨의 추격이 매섭지만, 박인비는 그 누구보다 세계랭킹 1위 자리를 오래 지킨 선수 중 한 명이다.

이전에 그가 그랬던 것처럼 단단한 멘탈을 가지고 또다시 꾸준히 스윙을 하고 필드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상대 지치게 하기'는 박인비가 가진 최고의 무기다. 올라올 선수는 결국 올라온다. 박인비의 새로운 전성기가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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