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프로축구연맹 제공
[스포츠한국 김명석 기자] 1979년생, 우리 나이로 마흔.

그라운드보다는 벤치가, 유니폼보다는 정장이 더 어울릴 법한 나이다. 실제로 한솥밥을 먹던 1년 선배도, 동갑내기 친구도 저마다 지휘봉을 잡았다. 이미 축구화를 벗은 후배들도 상당수. 선수 생명이 상대적으로 짧은 종목 특성을 고려하면 지극히 자연스러운 흐름이기도 하다.

‘불혹’의 나이에 여전히 그라운드를 누비고 있는 이동국(전북현대)의 행보는 그래서 더 눈부시다. 올 시즌 K리그 현역 최고령 선수라는 수식어와 함께 여전히 그라운드를 누비고 있는 까닭이다.

그저 가까스로 선수생명을 연장하고 있는 것이라고 판단한다면 크나큰 오산이다. 19일 현재 그는 12경기에 출전해 8골을 넣었다. ‘현역 국가대표 공격수’인 김신욱과 더불어 팀내 최다득점이다. 8골 중 절반은 팀 승리를 이끄는 결승골이었다.

“나이는 선입견에 불과하다”는 자신의 주장을, 그라운드 위에서 직접 증명하고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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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킬 것은 지킨다, 나이가 마흔이어도

‘불혹’인 이동국이 선수로 뛴다는 것이 얼마나 대단한지는 그 주변을 돌아보면 알 수 있다.

예컨대 박동혁 아산무궁화 감독은 그와 나이가 같다. 고종수 대전시티즌 사령탑은 이동국보다 겨우 한 살 많다. 올 시즌 K리그에는 1999년생 선수들도 여럿 있는데, 이동국과는 무려 스무 살이나 차이가 난다.

특별한 비결이라고 할 것은 없다. 특이한 보양식을 먹는다거나, 별도의 훈련을 진행하는 등 눈길을 사로잡을 만한 것이 없다.

대신 단순하면서도 원론적인 것이 하나 있다. 후배들이 일제히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울 정도의 엄격한 자기관리다.

예컨대 아무리 팀내 최고참이어도, 그는 팀 훈련을 소홀히 하는 법이 없다. 여유를 부리거나 느슨해질 만도 한데, 시간에 엄격한 팀 내 규율 속에 벌금을 내본 적이 없을 정도다. '훈련에 대한 욕심이 있다'는 표현이 나올 만큼, 아직까지도 묵묵히 땀을 흘린다.

낮잠 시간 등 규칙적인 생활 패턴을 유지하는 것도 이동국이 매우 신경 쓰는 일 중 하나다. 가령 그는 정해진 수면 시간이 되면 무조건 눈을 붙인다. 낮잠을 즐기면서 체력을 보충하고, 저녁 취침 시간도 꼬박꼬박 챙긴다.

팀 동료이자 후배인 이재성은 “낮잠 시간마저 칼 같이 지키는 것을 보면서 많이 배우고 있다”고 했다. 국가대표팀 등에서 한솥밥을 먹었던 이근호(강원FC)도 “신기할 정도로 철저하게 관리한다”고 입을 모은다.

그나마 최강희 감독이 혀를 내두를 정도로 ‘타고난 회복 속도’가 비결이라면 비결이다.

최 감독은 “서른 중반이 넘으면, 한 경기를 뛰고난 뒤 완전히 회복하는데 이틀은 필요하다”면서도 “그런데 이동국은 하루만 푹 자면 완전히 돌아온다. 부모님께 감사드려야 할 일”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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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발 더 뛰게 만드는 힘, 가족

든든한 지원군이자 존재만으로도 큰 힘이 될 ‘가족’은 그가 더욱 롱런할 수 있는 가장 큰 원동력이다. 심리적인 안정을 찾은 것은 물론, 가장이라는 책임감이 더해지니 그라운드 위에서 한 발 더 뛸 힘이 생긴다.

지난 2005년 이수진(39) 씨와 백년가약을 맺은 그는 10만분의 1의 확률이라는 겹쌍둥이 아빠다. 2007년 재시-재아(11), 2013년 설아-수아(5)에 이어 2014년 ‘대박이’ 시안(4)을 품었다. 가족들은 인천에 머무르고 있고, 이동국은 쉬는 날마다 전주와 인천을 오가며 가족들과 시간을 보내고 있다.

최근에는 한 예능 프로그램을 통해 대중들과도 만나고 있다. 그는 개인 휴가시간을 쪼개가면서 틈틈이 촬영에 임하고 있는 중이다. 현역 선수가 시즌 중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하는 것은 이례적인 일. 다만 이동국의 철저한 자기관리 능력을 믿었기에 구단도 흔쾌히 허락했다는 후문이다.

그리고 공교롭게도 예능 출연은 이동국 스스로 자기관리에 더욱 힘 쓸 수밖에 없는 배경이 됐다. 자칫 경기력이 저하될 경우, 예능 출연과 맞물려 곱지 않은 시선을 받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촬영 조건으로 ‘팀 훈련 일정에 지장을 받지 않는 것’을 내건 것 역시 같은 맥락이다.

마침 예능에 출연하기 시작한 이후에도 이동국의 득점 감각은 변함이 없다. 오히려 지난해 9월에는 국가대표팀 재승선이라는 결실까지 맺었다. 마흔에 접어든 올 시즌 초반, 12경기 8골이라는 기록 역시 이를 뒷받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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숫자에 불과한 나이, ‘월드컵’ 가능성은

나이를 무색케 하는 활약 속에 러시아 월드컵 출전 가능성도 모락모락 피어나는 모양새다. 현실적으로 이번 월드컵이 그에게는 마지막 기회가 될 가능성이 크다.

다만 변수가 있다. 신태용 축구대표팀 감독의 의중이다. 앞서 신 감독은 이동국의 대표팀 재발탁 가능성에 선을 그은 바 있다.

신 감독은 지난해 10월 “이동국은 K리그에서 200골을 넣은 영웅”이라면서도 “이제는 아름답게 보내줘야 한다는 것이 개인적인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어 “월드컵에서는 앞선에서부터 상대와 강하게 부딪혀 줘야 한다. 다만 이동국이 상대와 싸워줄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든다”면서 “만약 좋은 찬스에서 골을 넣지 못하면, K리그의 영웅이 많은 비난을 받을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실제로 신 감독의 이 발언 이후, 이동국은 국내파가 중심이 됐던 12월 동아시안컵(E-1 챔피언십)과 1월 터키 전지훈련에서 모두 제외되면서 월드컵의 꿈은 사그라지는 듯했다.

다만 새 시즌 개막 후 이동국의 맹활약이 이어지면서, 신 감독의 고민도 깊어질 수밖에 없게 됐다. 일각에서도 대표팀의 정신적인 지주 역할과 함께 후반 조커로 이동국을 발탁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심심찮게 나오고 있다.

이동국이 만약 러시아 월드컵에 부름을 받는다면, 지난 1998년 프랑스 대회와 2010년 남아공 대회에 이어 세 번째 월드컵 무대를 밟게 된다. 불혹의 나이에도 펄펄 날고 있는 그의 마지막 도전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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