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한국 이재호 기자] 지난 3일(이하 한국시각) 메이저리그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의 홈구장 체이스필드에서는 애리조나 팬들에게도, 한국 팬들에게도 반가운 얼굴이 모습을 드러냈다.

‘Born to K(삼진을 위해 태어난)’의 약자인 BK가 별명인 김병현(39)이 오랜만에 대중들 앞에 선 것. 류현진(LA다저스)의 2018시즌 첫 선발 등판으로 주목받았지만 3.2이닝 3실점의 부진한 내용으로 인해 경기 후 주인공이 된 것은 김병현이었다.

애리조나 구단은 올해로 창단 20주년을 맞기에 SB네이션은 애리조나 각 포지션별 역대 최고 선수를 투표로 받았고 김병현은 마무리투수 부문에서 역대 1위에 올랐다. 사실 김병현이 애리조나에 머문 시간은 4년을 조금 넘기는 수준이다. 고작 4년밖에 뛰지 않았음에도 김병현은 애리조나의 전설로 기억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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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도 힘든 말도 안되는 등장… 3개월만에 마이너리그 초토화

메이저리그 선수가 되기 위해서는 드래프트 혹은 국제 아마추어 계약 후 평균 마이너리그에서 3년, 많게는 6~7년 혹은 평생 메이저리그에 데뷔하지 못하는 경우가 수두룩하다. 아무리 뛰어난 아마추어, 신인 선수라도 마이너리그에서 소위 ‘눈물젖은 빵’을 먹어야하는 것이 당연하다.

실제로 2010년 신인드래프트 전체 1순위로 ‘역대급 재능’으로 여겨지고 실제로 2015년 MVP까지 따냈던 브라이스 하퍼도 2010년 지명 후 2년 이상을 마이너리그에서 보낸 후 2012시즌 중반 메이저리그 무대를 밟았다. 역대 최고득표율(99.3%)로 명예의 전당에 입성한 켄 그리피 주니어도 1987 신인 드래프트 전체 1순위 지명 후 2년 후인 1989년 메이저리그에 승격됐다.

하지만 김병현은 달랐다. 만 20세의 나이에 지금까지 20년이 지나도 한국인 신인 역대 최고계약금인 225만달러를 받고 1999년 2월 애리조나와 국제 아마추어 계약으로 입단했다.

김병현도 당연히 마이너리그부터 시작했지만 최하인 루키리그에서 2이닝 무실점 후 곧바로 싱글A를 건너뛰고 더블A로 승격해 10경기 21.1이닝 32탈삼진 평균자책점 2.11 후 트리플A 승격, 트리플A에서 11경기 30이닝 40탈삼진 평균자책점 2.70을 기록하고 메이저리그에 승격한다.

1999년 2월 20일 애리조나와 계약 후 그해 5월 29일 메이저리그 데뷔까지 고작 3개월, 실제로 마이너리그 정규시즌은 2달만에 초토화시킨 후 메이저리그까지 승격한 것이다. 고작 20세에 지나지 않는 선수가 이렇게 빠른 승격을 한다는 점은 이미 김병현이 메이저리그급 선수로 미국에 왔다는 것밖에 설명되지 않는다. 지금도 사례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김병현은 엄청난 재능이었다.

▶BK라 불릴만 했던, 짧지만 강렬했던 활약

20세의 나이에 메이저리그에 등장한 김병현은 첫해에는 27.1이닝 30탈삼진으로 성공적인 데뷔시즌을 보내더니 두 번째 시즌이었던 2000년에는 그야말로 ‘Born to K(삼진을 위해 태어난)’라고 불려도 될만한 엄청난 탈삼진 머신으로 활약한다. 70.2이닝을 불펜투수로 나오며 무려 111탈삼진을 만들어냈는데 9이닝당 14.1삼진이었다. 2000년 불펜투수 137명 중 9이닝당 탈삼진 숫자 1위였고 2위와는 1.2개 차이일정도로 압도적이었다. 그해 50이닝 이상 던진 모든 투수를 합쳐도 1위였다.

언더핸드로 던지는데 95마일에 달하는 강속구를 던지고, 마구처럼 휘는 슬라이더에 타자들은 헛스윙을 연발했고 김병현은 삼진머신으로 결국 2001년부터는 본격적인 마무리 자리를 꿰찬다. 그리고 2001년 그 유명한 뉴욕 양키스와의 월드시리즈에서 홈런을 맞으며 무너진 안타까운 장면도 만들어내며 스타가 됐다. 특히 2001년은 마무리투수임에도 98이닝이나 던지는 ‘혹사’를 당했고 이 98이닝은 2001년부터 2017년까지 17년간 불펜투수 최다이닝 시즌 7위에 해당할 정도로 심각했다.

전설로 남은 2001 월드시리즈 김병현의 연속 홈런 허용 장면. ⓒAFPBBNews = News1
2002년에는 완벽하게 전성기를 연 김병현은 박찬호 이후 한국인 첫 올스타 선정이자 지금까지도 처음이자 마지막 올스타 선정까지 된다. 2002시즌 기록한 36세이브 평균자책점 2.04는 현재까지 역사적인 시즌으로 기억된다.

▶‘유일한 우승이자 황금기’ 애리조나가 김병현을 기억하는 이유

김병현은 6월 보스턴 레드삭스로 트레이드되며 4년간의 애리조나 생활을 청산했고 이후에도 애리조나와 인연은 선수 마지막해 2경기를 뛴 것 빼고는 없다. 고작 4년밖에 뛰지 않았지만 김병현이 애리조나 역대 마무리 투표 1위에 뽑힌 이유는 무엇일까.

통산 기록만 따지만 김병현보다 더 뛰어난 불펜투수는 애리조나에 많았다. 하지만 김병현만큼 강렬하면서도 스토리까지 남긴 선수는 없었다. 김병현은 애리조나가 처음부터 데려와 메이저리그에 데뷔시켜 올스타까지 달게한 몇 안 되는 선수 중 하나라는 ‘프랜차이즈 스토리’와 창단 20주년을 맞는 동안 단 한번이었던 2001년 월드시리즈 우승 당시 지금까지도 회자되는 양키스를 상대로 이틀 연속 9회 홈런을 맞았다는 강렬한 임팩트가 강하다. 지금까지도 이 장면을 얘기할 때 현지 언론도 ‘당시 김병현이 지나치게 혹사를 당했었다’며 안타까워한다.

또한 애리조나 구단의 사정도 김병현이 은퇴 후 재평가와 향수의 이름이 될 수밖에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애리조나 구단은 1998년 창단 후 3년만에 깜짝 우승이라는 놀라운 성과를 거뒀지만 이후에는 단 한 번도 월드시리즈에 진출하지 못하고 있다. 2001년 이후에는 지구우승조차 고작 3번이 다일 정도로 애리조나는 강했던 적이 없다. 약한 시기일수록 과거의 황금기를 추억하기 마련. 과거가 그리운 타이밍에 창단 20주년을 맞아 가장 강렬했고 뜨거웠던 김병현을 추억하는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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