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한국 박대웅 기자] “언젠가는 농구부의 구세주가 될 사람일지도 몰라. 이름은 백호라고 해.”

일본 애니메이션 ‘슬램덩크’의 채소연이 주인공 강백호를 오빠 채치수에게 소개하며 남긴 대사다.

농구를 주제로 다룬 애니메이션이라는 점에서 차이는 있지만 프로야구 현실 세계에도 동명이인이 존재한다. 올시즌 KT 유니폼을 입고 프로무대를 뒤흔들고 있는 ‘슈퍼루키’ 강백호(19)가 그 주인공이다.

사실 ‘슬램덩크’의 강백호와 KT 강백호의 비교는 그동안 너무 자주 나온 식상한 소재다. 강백호 역시 서울고 시절부터 지겹도록 이와 관련된 질문을 받아왔다.

그러나 강백호가 시즌 초반부터 보여주고 있는 천재성이 만화 주인공과 너무나도 닮아있다는 점에서 둘의 비교는 앞으로도 끊임없이 이어질 전망이다.

만화 속 강백호가 무명팀 북산고의 구세주로 거듭났듯 현실 속 강백호 역시 3년 연속 최하위에 머문 KT의 미래를 이끌 희망임을 일찌감치 증명해냈다.

'괴물 신인' 강백호가 2018시즌 KBO리그를 초반부터 뒤흔들고 있다. KT 제공
▶괴물 신인의 화려한 등장

7일 현재 강백호는 데뷔 시즌 12경기를 치르면서 역대 프로야구 최고의 타자들과 감히 견줄 수 있는 활약을 펼쳤다.

이 기간 그는 타율 3할2푼6리(22위) 4홈런(공동 6위) 13타점(5위) 9득점(공동 9위) OPS(출루율+장타율) 1.109(10위)의 성적을 기록했다. 시즌 초반이라 상황을 좀 더 지켜봐야겠지만 수많은 지표에서 역대 고졸 신인 타자 최다 기록들이 새롭게 작성될 가능성도 충분하다.

기록만으로 설명하기 힘든 영향력은 더욱 강렬하다. 3월24일 KIA와의 개막전부터 지난해 다승왕 헥터를 상대로 데뷔 첫 타석 홈런을 때려낸 강백호는 이후에도 린드블럼, 장원준(이상 두산) 등 리그 최고의 투수들을 상대로 거침 없이 방망이를 휘둘러 외야 담장 밖으로 타구를 날려 보냈다.

특히 3월31일 두산전은 강백호의 스리런포가 터진 것을 계기로 KT 타선이 살아나면서 0-8 열세를 20-8로 뒤집었다. 만화에서도 일어나기 힘든 일이 현실로 나타난 셈이다. 득점권 타율 5할5푼6리는 강백호가 얼마나 큰 배짱과 스타성을 지녔는지 확인할 수 있는 수치 중 하나다. 5일 고척 넥센전에서는 시즌 처음으로 선발 라인업에서 제외됐으나 팀이 1점 차로 뒤진 9회초 대타로 출전해 동점 2루타를 때려내는 존재감을 발휘하기도 했다.

강백호의 맹활약 속에 KT는 12경기까지 7승5패(공동 4위)를 기록하며 시즌 전 당차게 내세웠던 5할 승률 및 5강 목표를 향해 힘찬 발걸음을 내디뎠다.

▶끊이지 않는 주변 칭찬

KT 노춘섭 스카우트 팀장은 지난해 신인드래프트를 앞둔 시점부터 강백호에 대해 “대학생은 물론 프로선수와 비교해도 배트 스피드에서 밀리지 않는다. 당겨치기와 밀어치기 모두에 능하며 향후 발전 가능성 또한 높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프로 선수들 틈에서 뚜껑을 열어봐야 한다는 지적이 많았지만 강백호는 시즌 개막 후 이러한 평가가 결코 틀리지 않았음을 증명했다. 최근에는 KT 김진욱 감독 뿐 아니라 KT와 맞대결을 펼치는 상대 감독 및 선수들까지 강백호를 향해 연신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고 있다.

강백호의 홈런은 개막전 첫 타석부터 터진 것을 비롯해 믿기 힘든 역전 드라마의 신호탄이 되는 등 특별한 순간에 집중됐다. KT 제공
개막 2연전에서 강백호의 데뷔 첫 타석 홈런을 지켜본 KIA 김기태 감독은 “참 대단한 일이다. 시합 전에 잠깐 만나기도 했는데 참 기특하다”며 감탄했고, 양현종 역시 “개막전을 보면서 고졸 신인이 이렇게 쳐도 되나 싶을 정도로 잘하더라”며 그의 빠른 배트 스피드에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또한 SK 힐만 감독도 “또래 중에서는 미국에서도 최상급의 선수”라며 힘과 밸런스를 높이 평가했으며, 두산 김태형 감독 역시 강백호가 두산 신인 곽빈의 피칭에 감탄했다는 말을 들은 직후 “나는 강백호에게 더 감탄했다. 도저히 19세라고 생각하기 어려운 배포를 지녔더라”며 혀를 내둘렀다.

넥센 장정석 감독 역시 지난해 신인왕이자 소속팀의 이정후가 어린 친구의 느낌이라면 강백호는 듬직한 베테랑 같다는 평가를 내렸다. 박병호 역시 “정말 굉장한 선수다. 어린 선수인데도 자기 스윙을 하고 있다. 중압감이 있는 상황에서도 좋은 타격을 했다. 대단하다”는 호평을 남겼다.

이 밖에 강백호를 시범경기 때 만났거나 TV를 통해 지켜본 감독들도 하나같이 그의 천재성을 내심 부러워했다.

▶김진욱 감독이 주목한 멘탈

그렇다면 강백호를 품에 안은 KT 김진욱 감독의 평가는 어떨까. 그동안 수많은 취재진들의 질문을 받아왔고, 이에 대해 다양한 답변을 내놓았지만 핵심만 짧게 요약한다면 김 감독 역시 강백호의 천재성과 성장 가능성에 대해서는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이 가운데 강백호를 가장 가까이서 지켜본 입장에서 전할 수 있는 발언들을 소개하고자 한다. 많은 야구인들이 언급한 타격에서의 재능보다는 마인드와 관련된 흥미로운 이야기 몇 가지를 김 감독에게 들을 수 있었다.

김진욱 감독은 강백호의 초반 활약을 예상했느냐는 물음에 “보통 선수는 아니라는 것을 느꼈다”고 운을 뗀 뒤 “사실 멘탈이 쉽게 흔들리지 않는 능력은 시즌 전에도 확인을 했지만 현재의 활약까지는 예상하지 못했다”는 답변을 남겼다.

그는 이어 “상대의 전력분석을 이겨내고 유인구를 참아내는 것을 보면 강백호가 기대 이상으로 잘 해주고 있다”면서 “무엇보다 시합을 즐기는 선수다”는 생각을 전했다.

3월27일 SK전에서 박종훈을 상대로 때려낸 2루타 속에 강백호의 즐기는 모습이 제대로 포착됐다.

김 감독은 “로하스가 박종훈의 커브가 보이지 않는다고 했다. 그런데 강백호가 ‘제가 걷어올려 보겠다’고 하더니 정말로 2루타를 터뜨렸다. 누구나 허풍을 떨 수는 있겠지만 실제로 결과를 만들어내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백호의 체력 부담에 대한 걱정은 있지만 멘탈 걱정만큼은 없다. 힘든 시기가 찾아오더라도 강백호가 지닌 마인드라면 분명 빠르게 이겨낼 것이다”고 밝혔다.

팀 동료들 역시 강백호의 친화력과 재능을 인정했다. 주장 박경수는 강백호를 ‘야구장에 풀어놓은 호랑이’로 묘사하며 담력을 높게 평가했고, 황재균도 스프링캠프 기간 동안 본인에게 끊임없이 야구와 관련된 질문을 남긴 강백호의 적극성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고 전했다. 심우준의 경우 4년 후배인 강백호에게 오히려 조언을 들은 뒤 큰 도움을 받았다고 밝히기도 했다.

올시즌 KT는 최하위 탈출을 넘어 5할 승률 및 5강을 당당히 목표로 내걸었다. 강백호가 구세주 역할을 해낼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KT 제공
▶겸손함과 자신감, 보여줄 것이 더 많은 강백호

강백호는 기본적으로 상당히 당당한 성격을 지녔다. KT 홍보팀에서는 행여나 인터뷰를 전해듣는 팬들이 강백호를 ‘건방진 선수’로 오해할까 걱정할 정도다.

일찌감치 지나친 관심이 쏠리는 것에 대한 우려의 시선도 있다. 구단 홍보팀에서 취재진들에게 경기 전 인터뷰만큼은 최대한 자제해주기를 부탁하는 것도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하지만 김진욱 감독의 언급처럼 강백호는 본인에게 향해있는 시선을 내심 즐기는 모습이다. 늘 비슷하게 반복되는 질문에 “부담은 전혀 없다”며 능청스러운 답변을 내놓는다.

고교 시절부터 경쟁 관계를 이어온 신인왕 경쟁자와의 맞대결 결과를 유독 의식하는 솔직한 모습을 보여줄 때도 있다. 이러한 승부욕 또한 ‘슬램덩크’ 강백호와 닮은 꼴 중 하나다.

그러나 만화 속 강백호처럼 소위 스스로를 천재라고 칭하는 등 자아도취에 빠진 선수는 절대 아니다. 자신감에 가득 차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보다는 본인의 부족함을 먼저 인지하고 칭찬에는 늘 겸손한 반응을 보이는 선수가 강백호다.

강백호는 “내가 잘 한다고 생각해본 적은 없다. 이제 시즌이 시작됐을 뿐이기 때문에 현재에 만족할 마음도 없다”며 “지금보다 선구안을 더 기르고 수비 역시 더욱 많은 노력을 해야 한다. 앞으로 선배들의 말씀을 더 잘 듣고 항상 노력하는 선수가 되겠다”는 다짐을 남겼다.

기본적으로 장착한 천재성에 부족함을 배우고자 하는 의지까지 강하기 때문에 앞으로 보여줄 것들이 훨씬 더 많다. KT의 구세주가 되기 위한 강백호의 도전은 지금부터가 진짜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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