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한국 이재호 기자] A는 어떻게 해서든 주전 확보를 위해 매년, 아니 1년에 2번씩 팀을 바꿔가며 뛰었다. '저니맨'이라 욕해도 모두가 동경하는 유럽리그에서 노력했고, 끝내 유럽 5대리그 주전급 선수가 됐다.

또 다른 A는 월드컵을 위해서, 그리고 자신이 주전경쟁에서 밀린 것을 인정하고 유럽의 꿈을 접고 K리그로 돌아와 꾸준히 출전하며 다시금 대표선수로서의 자격을 증명했다.

B는 2년간 변변한 출전 기회가 없었다. 많은 이들이 이적을 해야한다고 종용했지만 알기 힘든 이유로 번번이 이적하지 않았다. 그러다 월드컵을 앞두고 결국 자국리그로 돌아왔다.

하지만 A는 러시아 월드컵에서 이변이 없는 한 선발 자체가 힘들어졌고 B는 월드컵 승선의 가능성을 잡게 됐다. 무엇이 공정할까. 생애 단 한번 출전하기 어려운 월드컵을 위해 4년을 열심히 준비해온 A같은 선수보다 2년을 선수로서 포기한 듯 허비하다 월드컵 직전에 3개월을 뛰고 월드컵을 갈 수 있는 기회를 잡은 B가 국가대표의 자격이 있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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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상하듯 A는 석현준(트루아)과 김진수(전북 현대), B는 박주호(울산 현대)와 홍정호(전북 현대)의 예시다.

물론 의도한 바는 아닐 것이다. 그리고 선발된 것이 본인들 잘못은 아니다. 하지만 지난 2년여간 소속팀 주전에서 밀린 후 경기 출전을 못하다 월드컵을 앞두고 급하게 돌아와 2월부터 5월까지 3개월동안만 경기감각을 찾고 월드컵에 가려는 행태는 과연 국가대표 선발이 옳은 것인가 하는 의문이 들 수밖에 없게 한다.

신태용 감독은 12일 서울 축구회관에서 3월 북아일랜드(24일)-폴란드(28일)전에 나설 23인 명단을 발표했다.

기자회견에서 박주호의 발탁과 관련된 질문에 “박주호는 풀백도 볼 수 있지만 볼란치도 볼 수 있다. 주세종, 이명주의 경찰청 입대 후 군사훈련을 받으며 몸이 올라오지 않아 박주호를 이곳에서 활용할 생각을 하고 있다. 대표팀 코치 시절 볼란치로도 잘해줬던 기억이 있다. 왼쪽 풀백과 볼란치에 모두 활용이 가능하기에 뽑았다”고 설명했다.

▶박주호-홍정호, 스스로 이적하지 않으며 출전하지 못하다

3월 A매치는 월드컵 직전 마지막 A매치 데이로서의 중요성이 남다르다. 3월 A매치 이후 한국 대표팀은 5월 월드컵 최종명단을 발표하기에 이 평가전에서 어떤 모습을 보이는지에 따라 최종명단 승선 여부가 결정된다. 사실상 3월 A매치에 승선하지 않은 선수(부상자 제외)는 월드컵 최종명단에 드는 것은 웬만하면 힘들다는 것이 정설.

즉 3월 A매치에 박주호와 홍정호가 승선했다는 것은 월드컵에 갈 수 있는 가능성이 주어진 것이나 다름없다. 이는 굉장히 나쁜 선례를 남길 가능성이 있다.

박주호의 경우 2015~2016시즌을 앞두고 도르트문트로 이적했을 당시만 해도 큰 기대를 받았다. 하지만 첫 시즌에는 리그 5경기, 유럽대회 4경기 출전에 그치더니 2016~2017시즌에는 고작 2경기 출전에 그쳤다.

그리고 2017~2018시즌의 절반인 2017년 하반기에는 출전이 ‘0’이었다. 최근 2년 반 동안 공식경기 11경기, 최근 1년 반 동안 공식 경기 출전이 고작 2경기에 그쳤던 것이다.

홍정호 역시 무려 2시즌 가까이 경쟁끝에 따낸 ‘유럽 5대리그’ 독일 분데스리가 주전 자리를 스스로 내려놓고 중국 장쑤로 떠났던 2016년 여름 이후 커리어에서 내리막을 겪었다.

장쑤에서 최용수 감독이 재임 당시에는 주전으로 나왔지만 해임과 동시에 그 역시 주전 자리에서 물러나 출전 기회조차 잡기 쉽지 않았다. 2017시즌 12경기 출전에 그쳤지만 그 12경기도 초반에 몰렸을뿐 여름부터는 거의 출전이 없었다.

대한축구협회 제공
▶박주호와 홍정호에게 열린 월드컵 가능성, 나쁜 선레 남길라

박주호와 홍정호는 적게는 1년여, 많게는 2년 반 동안 출전 기회가 거의 전무했던 선수들이었다. 많은 이들이 이적을 주장했고 종용했지만 석연찮은 이유로 잔류만 고집했다.

하지만 월드컵을 6개월 앞둔 2018년 1월, 돌연 국내 복귀를 선택했고 결국 5경기 내외만 뛰고 곧바로 대표팀에 복귀했다. 홍정호와 박주호 모두 지난해 6월 이라크전 이후 9개월간 대표팀 선발이 되지 못했던 선수들이다.

2년간 떨어진 경기감각, 대표 선수로서의 공헌도는 무시된채 그전 예전의 경력과 최근 다시 뛴다는 이유만으로 대표팀에 돌아와 월드컵까지 노릴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렇게 되면 그동안 열심히 뛰고 주전 경쟁을 위해 치열하게 노력하던 선수들의 허탈감은 이루 말할 수 없게 된다. 또한 향후 국내를 떠나 이적해 출전 기회가 없더라도 ‘버티다 월드컵 직전에 이적해 3개월만 뛰고 월드컵 출전을 노리면 된다’는 나쁜 선례를 남기게 된다.

▶기량이 압도적인가? 국가대표의 의미

물론 두 선수가 압도적 기량을 선보이고 있다면 이 모든 논란과 의문을 사그라들 것이다. 하지만 홍정호와 박주호가 소속팀에서 좋은 기량을 선보이고 있는지는 쉽게 고개를 끄덕이기 힘들다.

이미 홍정호를 포함해 전북의 수비진이 5명이나 뽑힌 대표팀 라인업에 대해 최근 5경기 7실점을 한 수비진이 이렇게 많이 뽑히는 것에 의문이 제기되고 있고 그 중심에는 홍정호도 빠져나가기 힘들다.

박주호 역시 울산에서 나온 4경기에서 8실점을 하는 동안 뚜렷한 활약을 했는지 의문이다. 아직 생소한 한국 리그에 적응하고 있는 중이라고 보는 것이 맞다.

만약 홍정호가 독일 분데스리가에서 주전을 차지하던 막강한 수비력을, 박주호가 명문팀 도르트문트까지 이적할 정도로 뛰어났던 활약을 최근 경기들에서 보여줬더라면 실력으로 압도할 수 있지만 그 누구도 그때와 같다고 얘기하기 힘들다.

월드컵은 축구 선수에게 꿈의 무대이자 발탁 혹은 출전 그 자체로 커리어에 길이 남을 역사가 된다. 이런 월드컵에는 실력뿐만 아니라 국가대표로서 자신의 기량을 꾸준히 발전시키려는 의지와 노력이 명확해야한다.

그저 예전에 잘했다고, 월드컵 경력이 있다고 뽑는 것은 나쁜 선례를 남길 뿐 아니라 월드컵을 위해 열심히 준비해온 선수들의 노력을 무색하게 만든다는 점도 고려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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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호의 할말하자 : 할 말은 하고 살고 싶은 기자의 본격 속풀이 칼럼. 냉정하게, 때로는 너무나 뜨거워서 여론과 반대돼도 할 말은 하겠다는 칼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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