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 팀추월 준준결승을 마친 직후의 박지우, 김보름, 노선영. 스포츠코리아 제공
[스포츠한국 전영민 기자] 2018 평창 동계올림픽의 가장 큰 논란거리는 이른바 ‘팀추월 스캔들’이었다. 평창올림픽이 폐막한 지 10여일이나 지났지만 논란은 여전하다.

김보름은 경기 내용뿐 아니라 경기 외적인 측면에서 국민적 지탄을 받으며 논란의 중심에 섰다. 급기야 뿌리깊은 한국빙상계 파벌에 대한 분노가 극에 달하면서 청와대 국민청원 참여 인원이 60만명을 넘어 본격 수사를 앞두고 있다.

김보름, 노선영, 박지우로 구성된 한국 여자 팀추월 대표팀은 지난달 19일 강릉 스피드 스케이팅 경기장에서 열린 대회 스피드스케이팅 여자 팀추월 준준결승에서 김보름과 박지우가 결승선을 통과하고 한참 뒤 노선영이 결승선을 통과했다. 결과는 4강 실패였다.

마지막으로 골인하는 선수의 기록이 팀의 기록으로 결정되는 종목 특성상 3명의 선수가 함께 호흡을 맞추는 것이 중요했다. 하지만 국민들은 선수들이 협동하지 못하는 모습에 실망했고 이른바 ‘왕따 논란’까지 불거졌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잘못을 노선영에게 전가하는 듯한 인터뷰로 인해 김보름 박지우에 대한 국가대표 자격 박탈을 요청하는 비난이 하늘을 찌르기도 했다. 김보름은 매스 스타트에서 은메달을 따낸 뒤 트랙에서 관중석을 향해 사죄의 큰 절을 했지만 진정성 있는 용서를 받지는 못했다.

그렇다면 평창 올림픽 최대의 오점으로 남은 왕따 논란이 김보름만의 잘못이었을까. 감정에 치우친 나머지 소홀히 넘긴 문제는 없는 것일까.

▲ 감독 작전에 문제는 없었나?

백철기 감독이 경기에 앞서 몸을 푸는 선수들에게 작전을 지시하고 있다. 스포츠코리아 제공
팀추월 종목은 3명이 400m 트랙을 6바퀴 돌아 총 2400m를 질주한다. 작전에 따라 선수 3명이 각각 2바퀴씩 선두에서 레이스를 이끌 때도 있고 평창올림픽 팀추월 준준결승전처럼 작전을 달리 구사하기도 한다.

감독은 대회에 앞서 훈련을 통해 선수들의 기량, 몸 상태는 물론 경기 중 선수들이 넘어지는 경우, 선수들의 간격이 벌어지는 경우 등 여러가지 변수를 고려해 작전을 구상한다.

특히 올림픽이라는 큰 대회라는 점을 고려하면 백철기 감독은 관중의 함성, 선수들이 느낄 심리적 중압감 등 더욱 다양한 변수를 생각했을 터.

당시 준준결승전에서는 박지우가 스타트를 끊으며 한 바퀴, 노선영이 3~4번째 바퀴를 선두에서, 김보름은 2번째 바퀴, 그리고 ‘팀추월의 사점(6바퀴 중 4바퀴를 돌고 5바퀴 째 돌입하는 순간)’부터 골인까지 선두에서 스퍼트를 올리는 중책을 맡았다.

하지만 5번째 바퀴부터 마지막 주자였던 노선영이 2번 주자와 벌어진 간격을 좁히지 못했다. 코너에서부터 멀어지더니 간격은 계속해서 벌어졌다.

경기 내용에 앞서 애당초 백 감독이 작전 구상 과정에서 노선영이 경기 중 뒤처질 경우를 생각한 것인지, 큰 무대의 변수를 감안한 것인지 자체가 의심스러운 대목이다.

팀추월 준준결승에 나선 선두 김보름·박지우가 속도를 올리자 노선영이 간격을 좁히지 못한 채 달리고 있다. 스포츠코리아 제공
준준결승이 끝나고 왕따 논란이 불거진 이튿날 해명 기자회견에서 백철기 감독은 “마지막에 선영이가 뒤처졌다는 사실을 링크 안에서 선수들에게 전달하려고 했지만 함성이 큰 상황에서 선수들에게 제대로 전달되지 않은 채 경기가 진행됐다”라고 밝힌 바 있다.

노선영은 평창올림픽 개막에 앞서 빙상연맹의 행정 착오로 인해 훈련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 또한 직전 두 바퀴를 맨 앞에서 달려 이미 체력이 다한 상태로 가장 힘든 마지막 두 바퀴를 끝에서 달렸다.

사점 이후 가장 힘든 주자가 두번째로 들어가야 한다는 것은 기본 중의 기본이다. 선두가 2번 주자를 끌어주고 3번 주자가 2번 주자를 밀어주며 달려야 처지지 않고 셋이 함께 달릴 수 있다. 하지만 백 감독은 경기 전 작전 지시에서도, 경기 중에도 작전 수정에 실패했다.

이에 대해 전 스피드스케이팅 국가대표 상비군 출신 B씨는 “TV로 지켜보면서 바로 ‘작전미스구나’라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초등학생 때 스케이팅을 시작한 후로 줄곧 상비군에 이름을 올려온 B씨는 “실력의 여부를 떠나 작전 자체부터 실패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장거리와 팀추월이 주 종목이었던 전 스피드스케이팅 국가대표 상비군 출신 A씨도 “물론 관중석이 비어 있는 국내 대회와 달리 올림픽이라는 큰 대회였기 때문에 함성 소리에 묻혀 선수들이 작전 지시를 제대로 듣지 못했을 수도 있다”면서도 “변수를 예상하지 못한 것도 결국 감독의 작전 실패다”라고 지적했다.

▲경기 중 의사소통 문제는 없었나

여자 팀추월 준준결승에 출전한 김보름, 박지우, 노선영이 달리고 있다. 스포츠코리아 제공
팀추월 주자 3명은 위치에 따라 각자 다른 역할을 맡는다. 레이스를 이끄는 선두의 역할은 앞만 보고 달리는 것, 2번 주자의 역할은 뒤에 있는 마지막 주자를 확인하면서 선두를 따라가는 것, 마지막 주자는 선두와 거리가 멀어지지 않도록 2번 주자를 밀어주는 역할이다.

특히 ‘팀추월의 사점’을 지나면서 가장 힘에 부치는 주자가 2번 자리로 들어오는 것이 정석이다. 3번 주자가 힘에 부치는 경우 중간 자리로 치고 들어오거나 혹은 2번 주자가 3번 자리로 빠져주는 방법도 있다. 선두가 속도를 늦추는 방법은 그 이후의 선택지다.

하지만 당시 경기에서 그러한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박지우는 선두 김보름만을 쫓으며 달렸다. 첫번째 바퀴만 선두에서 레이스를 이끈 박지우는 노선영에 비해 체력이 남아있었다. 노선영과의 거리가 벌어진 사실을 한참 뒤에야 알았지만 이미 늦은 때였다.

노선영 또한 박지우에게 위치를 바꾸자는 사인을 보내지 않았다. 국가대표 경력만 10년 이상인 선수가 경기 중 2번 자리로 치고 들어가야 한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을까.

준준결승 마지막 2바퀴 중 한 바퀴만이라도 박지우와 노선영이 자리를 바꿨다면 적어도 ‘함께’ 결승선은 통과했을 것이다. 마지막 경기였던 7~8위 결정전처럼 말이다.

반대로 빙상계 일각에서 제기하는 것처럼 김보름과 박지우가 상황별 작전 변환을 묵살하고 노선영을 `방치'했을 가능성도 생각해볼 수 있다.

앞서 달린 두 선수는 노선영과 거리가 벌어진 사실을 분명 인지했을 터. 그럼에도 끝까지 거리를 좁히지 않은 것은 전략과 전술의 부재만으로 설명할 수 없는, 또 다른 `무엇인가'를 의심하게 만드는 것도 사실이다.

대표 선수 선발 과정 등 전반적인 조사에 착수한 문화체육관광부, 그리고 국민청원에 관련해 정부 차원에서 진상 조사를 밝힌 청와대의 움직임이 그래서 더 중요해졌다.

저작권자 © 스포츠한국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