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 컬링 대표팀. 스포츠코리아 제공
[스포츠한국 김성태 기자]1988년 서울올림픽 호돌이가 30년 만에 2018년 평창올림픽 수호랑으로 돌아왔다. 지난 2월 25일, 17일 간의 긴 여정을 끝으로 2018 평창 동계올림픽이 막을 내렸다.

이번 대회는 올림픽 사상 최초로 구성된 남북 단일팀과 역대 최다 메달, 여기에 메달 종목 다변화까지 이뤄내면서 성공적인 올림픽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평창 올림픽 최고의 인기 스타는 단연 '여자 컬링 대표팀'이었다. '영미~'를 외치는 리더 김은정을 비롯해 김영미, 김경애 자매와 김선영, 김초희로 구성된 컬링 대표팀은 예선전 포함, 11전 9승2패를 거두며 아시아 최초로 컬링 은메달을 따냈다.

여자 컬링팀은 철저한 '언더독'이었음에도 탄탄한 팀워크를 앞세워 기대 이상의 결과를 냈다. 이들이 인기를 끈 또다른 이유는 체고, 체대 라인의 엘리트 코스를 밟은 선수가 아닌 경북 의성여고 출신의 `평범한 시민'이라는 점이다.

의성에 컬링 경기장이 생기면서 영미가 방과후 활동으로 시작했고 친구 은정이 합류한 뒤에 영미 동생 경애가 심부름을 하다가 재밌어 보여서 했고, 영미 동생 경애의 친구인 선영이도 같이 하다가 후배 초희가 들어오며 팀이 완성됐다.

우스개소리로 지연, 학연, 혈연의 결정체. 흔히 말하는 동네 친구들끼리 모여 완성된 팀이었다. 평범함, 그 자체였지만 엘리트가 아닌 생활체육에서 시작했기에 이들의 팀워크는 더욱 단단했고 피나는 노력 끝에 기적과도 같은 메달을 따냈다.

팀추월 김보름. 스포츠코리아 제공
엘리트 체육은 만능? 이제는 실력이 전부가 아니다

여자 컬링이 올림픽 최고의 인가를 구가했다면 여자 스피드스케이팅 팀추월은 국민들의 공분을 샀다. 김보름, 박지우, 노선영은 스피드스케이팅 여자 팀추월 준준결승에서 네덜란드를 상대로 패했다. 결과도 결과지만 경기 내용이 문제였다.

팀추월은 마지막 골인 선수의 기록이 팀 기록이 된다. 3명의 선수가 함께 속도를 맞춰야 하는데, 김보름과 박지우가 노선영을 멀찌감치 두고 결승선을 통과했다. 같은 팀 동료를 버리고 온 셈이었다.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김보름과 박지우는 경기 후, 인터뷰에서 상황에 맞지 않은 언행을 보였다. 관중이 시끄러워 의사소통이 되지 않았고, 노선영이 늦게 들어올 것을 어느 정도 예측 했었다고 말했다. 여기에 탈락 책임을 노선영에게 돌리려는 뉘앙스의 발언과 함께 비웃음에 가까운 조소를 날렸다.

논란이 커졌고 비난이 쏟아졌다. 청와대 국민청원게시판에 김보름과 박지우의 국가대표 자격을 박탈하라는 청원이 끊임없이 올라왔다. 사과 기자회견이 열렸지만 막상 당사자인 노선영은 자리에 나타나지 않았다. 김보름은 눈물을 흘리며 사죄를 했지만, 여론의 성난 마음을 돌리기는 어려웠다.

그로부터 며칠 뒤 매스스타트에서 김보름은 은메달을 따냈음에도 웃지 못하고 용서를 구하는 큰 절 세리머니를 했지만 국민들의 시선은 여전히 차가웠다. 빙상 연맹의 파벌 문제도 함께 불거졌지만, 국민들은 이들이 팀추월에서 메달을 따내지 못해 화가 난 것이 아니었다.

팀워크가 핵심인 팀추월 경기에서 김보름과 박지우가 노선영을 따돌리며 임의로 레이스를 펼친 부분, 국가대표답지 않은 아쉬운 언행에서 비롯된 분노였다. 아무리 실력이 좋아도 제대로 된 인성을 갖추지 못한 이들에게 국민들은 엘리트 체육과 성과지상주의의 병폐가 절정의 콜라보를 이룬 최악의 사건이라고 말했다.

매스스타트 금메달리스트 이승훈. 스포츠코리아 제공
예전에는 메달 위한 고도의 작전…달라진 여론은 공정 대결 더 원해

결과보다 과정, 공정함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이러한 국민적 흐름은 평창올림픽 내내 이어졌다. 남자 매스스타트에서 금메달을 따낸 이승훈과 정재원의 레이스도 마찬가지였다. 이승훈이 금메달을 따냈지만, 획득 여부와 별개로 전략 자체를 놓고 논란이 불거졌다.

매스스타트는 사이클이나 마라톤처럼 오픈 레이스 방식의 장거리 종목이다. 전략상 페이스메이커를 두고 치르는 경기다. 알려진대로 페이스메이커는 육상이나 수영 등에서 다른 선수를 위해 속도를 조율하거나 특정 선수가 대회에서 좋은 기록을 낼 수 있도록 옆에서 거드는 선수를 말한다.

당시 정재원은 선두 뒤에 있는 후미 그룹의 맨 앞에서 달렸다. 정재원이 스피드를 올리며 레이스를 하는 사이, 이승훈을 포함한 후미 선수들은 계속 체력을 보충했다.

그리고 막판에 이승훈이 빈틈을 노리고 돌진, 그대로 스퍼트를 했고 금메달을 따냈다. 초반에 오버페이스를 한 정재원은 8위로 레이스를 마감했다.

선택과 집중이었다. 세계랭킹 1위 이승훈을 견제하는 타 국가와의 경쟁에서 이기려면 페이스메이커는 필요악의 전략이었다. 하지만 메달을 이승훈 혼자 가져가다보니 정재원이 이승훈의 메달 획득을 위한 희생양에 지나지 않았다는 여론이 불거졌다.

여기에 정재원의 어머니가 "우리 아들은 이승훈의 탱크였다"는 발언을 하며 더욱 불이 붙었다. 개인전에서 한 사람에게 희생을 강요하는 스포츠가 과연 의미가 있는지, 그리고 선수 선발 과정이 공정했는지, 페이스메이커 역할에 대한 강요는 없었는지를 놓고 논란이 일파만파 커졌다.

전략은 팀이 해도 한 선수만 메달을 가져가는 종목 자체의 특수성, 그리고 빙상계의 고질적 파벌 문제는 둘째치더라도, 예전 같으면 메달 획득을 위한 하나의 팀 전략이라고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었다.

하지만 시대가 달라졌다. 메달과 결과에만 집착하는 엘리트 체육보다 선수 개인의 노력을 인정하고 결과보다 과정에 박수를 쳐주는 이들의 목소리가 커졌다.

성화봉송 마지막 주자로 나선 김연아. 스포츠코리아 제공
스포츠를 향한 달라진 인식, 결과만큼 과정도 중요하다

스포츠를 바라보는 시선은 더이상 예전 같지 않다. 최순실 국정농단 당시, 딸 정유라에게 승마를 시켜 편법적으로 이화여대에 입학 시킨 것이나 동계스포츠 영재센터를 빌미로 한 대기업 뇌물수수까지, 스포츠는 비리의 온상으로 낙인이 찍혔다.

스포츠는 더이상 공정하지 않은, 소수 엘리트의 전유물이자 이들의 성공을 뒷받침 하는 수단으로 전락했고 국민들의 눈엣가시가 됐다.

지난 1964년 도쿄올림픽에서 한국은 선수 165명과 임원 59명, 당시 최대 규모로 선수단을 파견했지만 신통치 않은 성적표를 받자 본격적으로 엘리트 체육을 활성화 시켰다.

재능 있는 선수들을 집중적으로 육성, 4년에 한 차례씩 돌아오는 올림픽에서 메달을 따내는 것을 국가 지상 과제로 삼고 태릉선수촌을 짓고 선수들을 육성했다.

스포츠를 통한 우민화 정책을 시도하려한 당시 정부의 성향 자체도 그랬지만, 1986년 서울 아시안게임과 1988년 서울 올림픽이 연달아 열리면서 이러한 풍토는 계속 이어졌다.

나라의 위상을 높이고자 국제 무대에서 메달, 그것도 반드시 금메달을 따내는 것이 엘리트 체육의 존재 목적이었다. 이는 최근까지도 변함이 없었다.

하지만 시대의 흐름이 변했다. 가장 뚜렷하게 나타난 것이 바로 이번 평창올림픽 남북 여자아이스하키 단일팀 구성이었다.

남북단일팀의 공동 입장과 더불어 올림픽 최초 단일팀 구성을 논의했음에도 반대의 목소리가 상당히 높았다. 다 된 밥에 북한이 갑자기 끼어들어 숟가락을 놓는 것이 아니냐는 비판이 쇄도했다.

평화라는 큰 틀에서 남북단일팀을 구성하는 것을 필수불가결한 것으로 치부하지 않았다. 대의를 위해 개인이 희생하는 것을 인정하지 않았다.

국가대표가 되고자 노력했던 선수들의 공정한 출전 기회 박탈이라는 점이 젊은 세대에게 더욱 크게 다가왔다. 민심을 놓친 문재인 정부의 지지율이 이 시기에 출범 이후 최초로 50%로 떨어진 것이 대표적인 예였다.

과정과 결과, 모두 중요하지만 우선순위의 정답은 없다. 스포츠는 경쟁이며 선수들의 목적은 승리다. 졌지만 잘 싸웠다라는 말은 위로가 아니다. 과정이 좋으면 박수는 받지만 결과가 좋지 않으면 선수는 잊혀지기 마련이다.

반대로 말해 과정 역시 마찬가지다. 성적 만능주의로는 더 이상 한국 스포츠의 발전을 기대하기 어렵다. 그렇기에 이번 평창올림픽은 그동안 한 쪽으로 너무 치우쳐 있던 메달 만능주의 벽을 허물었다는 점에서 그 의의를 갖기에 충분한 대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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