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한국 이재호 기자] 흰모자, 흰티셔츠, 흰반바지를 입은 소년이 잠실종합운동장을 가로지르며 굴렁쇠를 굴리고, 1936년 일장기를 가슴에 달고 올림픽 금메달을 따냈던 고 손기정 옹이 80세 가까운 나이에 아이처럼 팔짝 뛰며 성화를 들고 잠실운동장에 입장했던 그때로부터 30년. 다시금 올림픽 성화가 한국에서 피어오른다.

2018 평창 동계 올림픽이 오는 9일 오후 8시 평창 올림픽스타디움에서 열리는 개회식을 시작으로 25일까지 대장정에 돌입한다. 올림픽의 시작이자 공연, 선수 입장, 성화 점화로 가장 큰 이벤트로 평가받는 개회식은 과연 어떤 모습으로 열리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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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비리 속에 연습중인 개회식… 저예산·2시간·추위·K팝 가수 눈길

약 2년반을 준비한 개·폐회식의 총 연출은 배우로도 유명한 송승환 총감독이 맡았다. 개회식 연출은 연극계에서 ‘셰익스피어 스페셜리스트’로 불리는 양정웅 연극 감독이 맡았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와의 비밀 서약으로 인해 개회식은 철저하게 베일에 가려져있다. 얼마나 철저한지 지난달 29일 성화점화 리허설 장면을 촬영한 로이터의 사진기자는 올림픽 취재권이 박탈됐고, 로이터는 개회식 취재가 불허됐을 정도. 로이터가 세계적인 통신사임에도 이같은 중징계를 받았을 정도로 개회식은 극비리에 연습 중이다.

지난 1월 15일부터 평창에서 매일같이 개회식 리허설 중인 공연에는 4000여명의 출연자와 스태프, 600억원의 예산이 투입됐다. 2008 베이징 올림픽 개·폐회식 예산은 무려 6000억원이었고 일반적인 개·폐회식 예산은 2000억원인데 반해 굉장히 적은 예산만 투입됐다.

대신 3~4시간 소요되던 개회식을 2시간 안팎으로 대폭 줄였다. 예산 문제도 있지만 IOC측에서 평창의 워낙 추운 날씨를 고려해 짧은 시간에 끝내길 원한 것. 올림픽조직위는 개막식 행사 시간의 기온을 -10∼-5도로 예상하고 있다. 평창 올림픽 스타디움은 지붕이 없어 강원도 밤 추위를 3만5000여 관중들이 오롯이 느껴야할 상황.

그러나 ‘평화와 열정’이라는 주제로 2시간가량 진행될 개회식뿐만 아니라 성화점화의 순간 세계 최고 수준의 불꽃놀이가 함께 펼쳐진다. 서울불꽃축제 등을 맡아온 한화에서 올림픽 불꽃놀이도 맡았기에 얼마나 화려한 불꽃들이 역사에 남을 밤을 수놓을지 관심을 모은다.

또한 개회식은 그나라 문화의 자부심을 드러내는 자리이기도 하다. 당장 2012 런던 올림픽 당시 비틀즈의 폴 매카트니 공연, 007의 제임스 본드역을 맡은 배우 다니엘 크레이그, 해리포터의 저자 조앤 K 롤링 등이 나와 자신들의 대중문화의 수준을 전세계에 내보였다.

평창의 개회식 역시 이미 대중음악사 명반 1위인 들국화의 보컬 전인권, 젊은세대들에게 인기 몰이 중인 볼빨간사춘기, 화끈한 고음으로 유명한 국카스텐의 하현우 등 K팝과 이전의 한국 가요계를 주름잡았던 이들이 한데 모여 개막식 공연에 설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하면 떠오르는 ‘K팝’을 중심으로 한 한국 대중문화를 어떻게 전세계에 내보일지도 관심을 모은다.

1988 서울 올림픽 손기정 옹의 모습. 손기정기념재단
▶고 손기정 옹의 감동 성화, 누가 이을까… 김연아 유력?

1988 서울 올림픽 개회식 당시 가장 감동적이었던 장면은 1936년 베를린 올림픽에서 만 24세의 나이에 일장기를 가슴에 달고 마라톤 금메달을 따낸 고 손기정(1912~2002) 옹이 76세의 백발에 광복된 조국의 올림픽 개최를 위해 잠실 올림픽 경기장에 입장하며 성화를 봉송했던 것이다.

일장기가 아닌 태극기를 달고 아이처럼 기뻐하며 육상 트랙을 뛰는 손기정 옹의 모습은 전세계인들에게 진한 감동을 안겼다.

이처럼 성화를 누가, 어떤 방식으로 어떻게 할 것인가는 가히 개회식의 하이라이트라 할 수 있다.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의 불화살, 2000년 시드니올림픽의 물 속 점화 등은 아직까지도 화젯거리로 회자된다.

평창 올림픽 스타디움에는 관중석에서 경기장 내부까지 100m가량의 슬라이딩 조형물이 설치되어 있어 썰매를 타고 등장해 성화 점화를 하는 것이 아니냐는 추측도 나오고 있다.

성화 최종 점화자가 누가 될지도 관심이다. 4년전 소치 동계올림픽 때 러시아는 마음껏 자신들이 동계 올림픽 최강국임을 내보이기도 했다. 올림픽 금메달 3회에 빛나는 아이스하키 골키퍼 블라디슬라프 트레티아크와 세계선수권 10회 우승과 올림픽 3회 연속 금메달의 피겨 페어 선수인 이리나 로드니나를 내세운 바 있다.

외신에서는 ‘김연아가 마지막 주자가 아니라면 놀라울 것’이라며 김연아가 최종 점화자가 되지 않겠냐는 전망을 내놓고 있다. 물론 쇼트트랙에서 무려 금메달을 4개나 보유한 전이경, 한국 동계올림픽 최초의 메달리스트인 김윤만 등도 있지만 대중적 인지도 면에서 부족하다.

아예 2014 인천 아시안게임 때의 배우 이영애처럼 비선수 출신, 혹은 2002 부산 아시안게임처럼 남북대표 체육계 스타(당시 한국 유도 하형주, 북한 유도 계순희)가 함께 점화하는 방식 등도 얘기된다.

역대 가장 많은 예산을 쏟은 2008 베이징 올림픽 개회식. 연합뉴스 제공
▶세계인의 관심 받을 남북공동입장… 11년만·남남북녀 차례

전세계 21개국에서 정상급 외빈 26명이 참석하는 개회식에 앞서 문재인 정부는 개회식 당일 리셉션을 가지는 등 대통령 부임 후 첫 다자외교의 무대를 가진다.

문재인 정부뿐만 아니라 세계 정상들, 외신들이 가장 관심을 가질 개회식 행사는 역시 남북공동입장이 될 전망이다. IOC는 이미 '기수는 남북에서 1명씩, 남자 선수 1명과 여자 선수 1명으로 한다'고 명시했다.

2000년 시드니 올림픽에서 첫 남북공동입장이 있은 후 늘 그랬듯 남북이 '코리아'(KOREA)라는 명칭으로 한반도기를 함께 든 공동기수를 앞세워 입장할 예정이다.

역대 남북공동입장은 2000년 시드니 올림픽을 시작으로 2002 부산 아시안게임, 2003 아오모리 동계아시안게임, 대구 하계유니버시아드, 2004 아테네 올림픽, 2005 마카오 동아시안게임, 2006 토리노 동계올림픽, 도하 아시안게임, 2007 창춘 동계아시안게임까지 총 9차례 있었다.

2007년 이후 무려 11년만으로 남녀북남과 남남북녀가 교차하는 패턴을 따른다면 평창올림픽은 남남북녀 차례로 한국은 어떤 남자 선수가, 북한은 어떤 여자선수가 나설지 기대를 모은다.

사상 첫 공동입장이었던 2000 시드니 올림픽. 연합뉴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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