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한국 이재호 기자] “박항서는 최고의 감독이다. 선수들이 경기를 못했을 뿐이며 전술은 매우 합리적이었다.”

2002 한·일 월드컵 4강 신화 속에서 거스 히딩크 감독 옆에서 수석코치, 2002 부산 아시안게임 U-23대표팀 감독, 경남FC, 전남 드래곤즈, 상주 상무 감독을 거쳐 베트남 국가대표팀 감독을 맡고 있는 박항서에 대한 베트남 현지에서의 열기가 뜨겁다.

약 1억명 인구로 세계 15위 인구를 지닌 베트남은 지금 한창 달아오른 축구열기만큼이나 ‘박항서 열풍’이 뜨겁게 불고 있다. 최근 중국에서 열린 23세 이하 축구대회에서 한국팀에 아깝게 패한 걸 두고도 베트남 축구팬들은 `박항서 축구'에 열렬한 찬사를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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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경기 역전패… 베트남 언론, 이긴 듯 환호

박항서 감독이 이끄는 베트남 U-23 축구대표팀은 지난 11일 중국 장쑤성 쿤산 스타디움에서 펼쳐진 2018 아시아축구연맹(AFC) U-23 챔피언십 D조 1차전 한국과의 경기에서 1-2로 아쉽게 졌다.

베트남은 정말 이길 뻔했다. 전반 16분 선제골을 넣어 경기를 주도했던 베트남은 전반 29분 한국의 조영욱에게 동점골을 허용하고 후반 27분 이근호에게 역전골을 허용하며 패했다.

그러나 경기 내용으로는 한국에 뒤지지 않았다. 김봉길 한국 대표팀 감독도 “쉽지 않은 경기였다. 베트남 선수들이 매우 잘했다. 박항서 감독이 좋은 팀을 만들었다”고 혀를 내두르기도 했다.

베트남 현지에서는 난리가 났다. 비록 패했지만 격차가 크다고 여겼던 한국을 상대로 거의 이길 뻔 했기 때문이다.

베트남 기관지 더 타오는 “한국이 여전히 베트남을 상대로 승리했지만 골을 넣은 응우옌 꽝 하이 등 베트남 선수들을 잊지 못할 것”이라며 “수비적으로 임했지만 실수가 적었다. 정신력과 경기력은 매우 좋았다”며 찬사를 보냈다.

호주전에서 승리했을 땐 난리가 났다. 베트남 언론들은 "역사적인 경기"라며 박항서 신드롬을 심층보도하기도 했다. 시리아전 무승부로 대회 8강 진출을 확정한 뒤에도 현지에서는 대대적인 보도가 이어졌다.

박항서 감독 밑에 있는 르 투이 하이 코치는 “박항서 감독은 최고다. 선수들을 매우 합리적으로 기용한다. 선수들이 요구에 못 따라줬지만 전술적으로 매우 납득할 만 하다”며 감독으로서 박항서에 대해 존경심을 드러내기도 했다.

▶박항서 신드롬의 시작은 10년만에 꺾은 라이벌 태국전

지난해 10월 베트남 국가대표팀 겸 U-23대표팀 감독으로 취임한 박항서 감독은 처음에는 크게 신뢰를 받지는 못했다. 화려한 경력을 감안할 때 `축구 약소국' 베트남행은 이례적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부임 두 달 만인 12월 M-150컵에서 베트남 U-23 대표팀을 이끌고 10년 만에 태국을 꺾었다. 베트남에게 태국은 한·일전처럼 국가적인 라이벌이다.

베트남 최고이자 압도적 인기 스포츠인 축구에서 라이벌을 10년만에 꺾었으니 박항서 감독은 단숨에 전국구 스타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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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항서 감독의 에이전트인 DJ매니저먼트의 이동준 대표는 “확실히 박 감독님이 베트남 시내를 돌아다니면 지나가는 택시기사부터 식당 아주머니들 모두 사인과 사진 요청을 한다. 태국전 승리가 인기의 기폭제가 됐다”고 귀띔하기도 했다.

이런 상황에서 월드컵 4강, 월드컵 9회 연속 진출 등으로 아시아 축구 최강국으로 여겨지는 한국을 상대로도 대등한 경기력에 아쉬운 역전패를 당하자 베트남 내에서는 박항서 감독에 대한 신뢰가 생길 수밖에 없다.

▶U-23 중심으로 미래 보는 베트남, 무시 못 할 성장

베트남이 박항서 감독을 선임한 이유는 명확하다. 이전에 일본인 감독에게 국가대표팀을 맡겼지만 생각보다 성과가 좋지 못해 ‘그렇다면 이번에는 한국 축구에 맡겨보자’는 생각을 했다.

적임자를 찾던 중 월드컵 4강팀의 수석코치에 부산 아시안게임 당시 감독을 했고 K리그에서도 3개팀의 감독(경남, 전남, 상주)을 했을 정도로 인정받는 지도력에 박항서 감독을 택했다. 베트남은 국가대표팀은 물론 U-23대표팀도 함께 감독을 겸임할 수 있는 지도자를 원했고 이 모두를 경험한 박 감독이 적임자였다.

숨겨진 비화도 있다. 170cm의 단신인 박항서 감독의 키가 베트남 축구협회를 흔들었다는 것. 박항서 감독의 베트남행 과정을 처음부터 지켜본 한 관계자는 “베트남 선수들이 대부분 키가 작다. 그렇다면 작은 키를 가지고 축구를 해본 사람이 선수들을 누구보다 잘 이해할 것이라고 봤다. 박항서 감독은 현역시절 작은 키에도 투지넘치는 축구를 했다는걸 베트남 쪽이 알고 있더라. 또한 박 감독이 공을 점유하고 패스를 많이하는 축구보다 신체를 극복할 수 있는 기동력 축구를 하는 것에도 큰 매력을 느꼈다고 한다”고 소개했다.

박 감독은 대구 감독을 지낸 이영진 수석코치, 한국인 최초의 태국 프로팀 감독을 한 배명호 피지컬 코치까지 베트남 대표팀 내에 한국인 코치를 꾸렸고 베트남 축구협회는 전폭적 지지를 약속했다.

베트남 축구는 우리가 알던 예전의 축구 약소국이 아니다. 동남아시아 시장은 EPL 등 해외축구 열기는 물론 국내축구 열기도 엄청나 국가적 스포츠로 축구를 취급한다. 인구 1억명에 달하는 베트남 역시 갈수록 선진화된 시스템을 받아들이고 있다. 실력도 점차 향상돼 간혹 아시아 축구 강국들이 동남아시아팀들에게 덜미를 잡히는 모습이 늘어나고 있다.

많은 축구인들도 “동남아시아 축구가 무섭게 성장하고 있다. 예전에 우리가 쉽게 5-0으로 이기던 그런 수준이 아니다. 경계할 수준에는 다다랐다”고 경계심을 보였다.

▶베트남 축구 이끄는 박항서의 목표

박 감독은 처음 베트남 대표팀에 부임하자마자 선수들이 쌀국수 등 운동선수에게 필요한 영양소가 담기지 않은 음식을 먹는 식습관부터 바꿨다. 베트남의 주식은 성장과 운동선수에게 부족하다고 느껴 좀더 국제적 음식으로 식습관을 바꾸고 협회에도 더 높은질의 음식을 선수들에게 제공할 것으로 요구했다.

기초인 식습관부터 바꿔나간 박 감독도 물론 스트레스는 있다. 베트남 내에서 대표팀에 대한 인기는 상상초월이라 작은 일도 언론에서 큰 관심을 가지기 때문. 또한 약간만 결과가 안 좋아도 비난도 많이 받는다. 물론 잘할 경우 더 큰 환호를 받기도 한다.

박항서 감독 에이전트 측은 “박 감독님이 베트남 선수들의 가능성을 높게 보신다. 베트남 축구협회도 U-23대표팀 선수들을 국가대표팀의 중심에 놓고 먼 미래를 보고 있고 이는 박 감독님의 생각과도 일치해 협업이 잘 되고 있다”고 말했다.

박 감독은 취임 당시 “피파랭킹 100위권 진입(12월까지 112위)과 동남아 최강국이 되는 것이 목표다. 또한 궁극적 목표는 아시아 강국들과도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는 수준을 갖추는 것”이라고 천명했다.

올해로 한국나이 60세가 된 박항서 감독은 60세에 베트남 감독이라는 생경하지만 도전적인 직책을 맡으며 활력이 넘친다고 한다. 그 어느 때보다 즐기며 베트남 감독직을 수행하고 있다는 박항서 감독이 과연 인구 1억명의 동남아시아 최대시장 베트남 축구를 어떻게 변화시킬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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