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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한국 김성태 기자]자리가 사람을 만든다고 했다. 가지고 있는 재능이나 실력이 다소 부족하다고 해도, 그 자리에 걸맞은 사람이 되기 위해 스스로를 갈고 닦는 이가 있다.

차라리 그게 낫다. 재능 하나 믿고 노력을 게을리하다가 야구계에서 사라진 선수들이 부지기수다. 프로 선수 중에 학창시절 '천재' 소리 안 듣고 자란 이 없다.

한 팀의 에이스라는 왕관을 짊어지기 위해 스스로의 한계를 극복하고 노력을 하는 이가 알짜배기다. 그렇게 8년 만에 팀 우승까지 일궈냈으니 이제 진짜 에이스가 됐다. 바로 KIA 양현종(29)이다.

그는 선동열도 이승엽도 달성하지 못한 대기록의 주인공이다. 양현종은 지난 13일 2017 KBO리그 골든글러브 시상식에서 투수 부문 수상자로 뽑혔다. 이 상은 올 시즌 포지션별 최고선수를 상징한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골든글러브 수상으로 양현종은 정규시즌 MVP와 한국시리즈 MVP까지 3관왕을 휩쓸었다. 역대 KBO리그 최초의 대삼관이다.

이밖에도 그는 각종 언론사의 연말 시상식을 비롯해 야구인들의 모임인 일구회의 대상 수상으로 받은 트로피를 모두 합치면 무려 12개다. 말 그대로 올해 프로야구는 양현종의 독무대였다고 볼 수 있다.

양현종과 타이거즈는 운명이었다

지금은 그를 '대투수(大投手)'라는, 이름도 거창한 수식어가 붙었지만 예전부터 그를 알고 있던 팬들에게 양현종은 햇볕에 얼굴이 타지 않기 위해 선크림을 잔뜩 바른 안경 쓴 `하얀 꼬마'에 불과했다.

팀 내에 많지 않은 왼손 투수라는 점은 그에게는 플러스 요인이었다. 불펜이든, 선발이든 가리지 않고 나가야 했다. 대신 구위는 좋지만, 제구가 떨어지는 그런 전형적인 선수였다.

이런 '모 아니면 도' 스타일은 제구를 잡고 주전급 선수로 도약하던가, 아니면 평생 힘 빼고 공을 던지지 못한 채 스스로 야구를 접던가, 둘 중 하나였다.

입단 과정도 재밌다. 광주 동성고 출신이다. 어릴 때 무등구장 담 넘어 타이거즈 야구를 보고 자랐다. 나이대를 고려하면 이대진 KIA 투수코치의 공을 던지는 모습을 봤으리라.

양현종이 프로에 입단한 2007년, KIA는 직전 해인 2006년에 꼴찌를 했다. 2차 지명 1순위를 가져갔다. 1차와 달리 2차 지명은 지역에 상관없이 선수 지명이 가능하다.

타이거즈는 좌완 유망주였던 양현종을 데려갔다. 만약 꼴찌를 하지 않았다면 'KIA 양현종'은 없었다. 새옹지마(塞翁之馬)라고 했던가. 꼴찌를 해서 양현종을 데려갈 수 있었던 KIA다.

그해, 타이거즈의 신인 지명은 망했다. 양현종 홀로 살아남았다고 보면 된다. 대신 그 양현종이 지금 팀을 잘 이끌면서 에이스 역할을 톡톡히 해주고 있으니 실패 아닌 성공이라고 봐도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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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민·한기주에 가린 유망주에서 에이스로 성장

양현종은 왼손 투수다. 고교 시절 140km가 넘는 강속구를 뿌려대는 선수였으니 탐이 날 만한 재목이었다. 청소년 국가대표로도 뛰었으니 가능성 있는 유망주라는 것에 이견은 없었다.

하지만 양현종에게 큰 기대를 걸었던 이는 많지 않았다. 이유가 있다. 직전, 그리고 그 직전 해에 지명을 받고 들어온 거물급 신인 투수들이 있었다. 두 선수에 비교하면 양현종은 한 단계 아래였다.

KIA는 2005년 2차 1라운드 지명으로 야탑고 윤석민을 데려왔다. 그리고 2006년 1차 지명으로 '10억팔' 한기주를 찍었다. 우완 에이스 두 명을 차례로 데려왔으니 양현종은 '서포트' 역할이었다.

윤석민은 에이스가 됐다. 2011년에 17승 5패 평균자책점 2.45를 찍고 투수 4관왕(다승, 평균자책점, 승률, 탈삼진)을 달성하며 선동열 이후 20년 만에 타이거즈 투수 4관왕의 자리에 올랐다.

그렇게 2013시즌이 끝나고 윤석민은 메이저리그 도전을 선언했다. 하지만 이겨내지 못했다. 볼티모어 오리올스 산하 마이너리그팀인 노포크 타이즈에서 뛰었고 빅리그 무대를 아예 밟지도 못했다.

타이거즈에 돌아왔고 4년 90억이라는 대형 FA 계약을 맺었다. 하지만 2015시즌에 30세이브를 기록한 뒤, 어깨 수술로 인해 2016시즌과 2017시즌을 통째로 날렸다. 팬들은 그저 아쉬울 따름이다.

한기주도 비슷하다. '제2의 선동열'이라 불렸다. 역대 KBO리그 사상 최다인 10억이라는 계약금을 받았다. 프로 2년 차에 타이거즈의 새로운 심장이 되어 뛰었다. 하지만 너무 많이 던졌다.

팔꿈치를 비롯해 몸 상태가 말이 아니었다. 그래도 참고 뛰었다. 대신 보직을 마무리로 바꿨다. 2007년부터 2008년까지 2년간 40세이브를 넘게 찍었다. 결국, 탈이 났고 수술을 받았다.

기나긴 재활 끝에 한기주는 돌아왔다. 하지만 그 빨랐던 150km의 강속구 투수는 더 이상 없었다. 그렇게 한기주는 타이거즈의 품을 떠나 삼성으로 트레이드됐다.

두 선수가 한참 전성기를 구가하던 시절, 양현종은 오히려 완성되지 않은 풋내기였다. 하지만 2017시즌, 현재 세 명의 1순위 지명 가운데 가장 팀에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것은 양현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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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2017년, 한국시리즈 통해 성장했고 완성됐다

프로 2년 차까지 양현종은 별다른 활약을 보여주지 못한 젊은 선수였다. 하지만 3년째였던 2009년은 양현종에게 결코 잊지 못할 시즌이었다. 불펜에서 선발로 보직을 바꾸고 잠재력을 터뜨렸다.

팀도 승승장구했다. 김성근의 SK가 리그를 폭풍처럼 휘감고 있던 시절, KIA가 혜성처럼 등장했다. KIA가 가장 잘하는 선발 야구가 팀 전력의 핵심이었다. 로페즈-구톰슨은 최고의 원투펀치였다.

그리고 3선발이 양현종이었다. 그해, 로페즈가 14승, 구톰슨이 13승을 거뒀고 양현종이 12승 5패 평균자책점 3.15를 찍었다. 평균자책점은 로페즈(3.12)보다 높고 구톰슨(3.24)보다 더 좋았다.

오히려 윤석민이 9승에 그치며 부진했던 시기였기에 양현종의 대활약은 팬들을 놀라게 하기에 충분했다. KIA는 리그 1위로 시즌을 마무리하고 SK와 한국시리즈에서 붙었다.

양현종도 한국시리즈 4차전에서 선발로 나와 공을 던졌다. 그리고 마지막 7차전, 나지완의 끝내기 홈런과 함께 KIA는 1997년 이후 12년 만에 우승했다. 양현종의 첫 타이거즈 우승이었다.

그로부터 8년이 지났다. 양현종은 이제 풋내기 유망주 3선발이 아니었다. 팀 마운드를 이끄는 핵심 중의 핵심으로 자리 잡았다. 2017시즌, 그는 20승 6패 평균자책점 3.44를 찍었다.

지난 1995년 LG 이상훈 이후 22년 만에 나온 토종 20승이었다.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팀을 정규시즌 1위로 이끌었고 한국시리즈 2차전에서 '1-0' 완봉승을 거두며 두산을 제압했다.

마지막 5차전에서도 그는 9회에 나와 극적인 세이브를 기록, 8년 만에 타이거즈의 'V11'을 완성했다. 그렇게 2009년과 2017년, 타이거즈가 두 번의 우승을 일궈내면서 양현종도 함께 성장하고 완성이 됐다.

-스한 위클리 : 스포츠한국은 매주 주말 ‘스한 위클리'라는 기획 기사를 통해 스포츠 관련 주요사안에 대해 깊이 있는 정보를 제공합니다. 이 기사는 종합시사주간지 주간한국에도 동시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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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시간 : 2017/12/16 06:0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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