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한국 이재호 기자] 몽골의 수도 울란바토르에서 자신의 얼굴만 보면 택시는 공짜로 탈 수 있다고 한다. 몽골에서 인기 스포츠인 복싱 국가대표까지 지냈으니 오죽할까.

하지만 현재 한국에서는 낮에는 공사판의 막노동꾼으로, 저녁에는 택배 배송을 하며 자녀 학비와 아내의 대학원 등록금까지 살펴야 하는 ‘가장’이다. 그 와중에 감량과 운동을 지속해 한국 선수가 모두 탈락해 다소 걱정이 되는 로드FC의 100만불 토너먼트(로드 투 아솔)의 8강까지 진출했다.

이제 4번만 더 이기면 100만 달러(약 11억원)를 가지게 된다. 100만 달러를 받으면 무엇을 할 것인지를 묻자 “그 돈이면 면목동에서 아파트 살 수 있죠?”라며 한국의 부동산 시세까지 파악한 ‘한국생활 8년차’의 몽골 출신의 파이터 난딘 에르덴(30)을 만났다.

로드FC 제공
▶올림픽 꿈꾸던 복싱 국가대표, 한국 유학 여친 따라 한국행

얼굴은 순박하다. 그러나 케이지 위에서의 난딘 에르덴의 타격은 폭발적이며 뻗는 족족 치명적이다. 그의 펀치에 세계의 강자들이 쓰러졌고 어느새 ‘우승시 100만불’의 막대한 상금이 주어지는 로드FC 100만불 토너먼트 8강까지 올랐다.

그의 펀치력이 파이터 사이에서도 남다른 이유는 어린 시절부터 복싱을 해 국가대표까지 지낼 정도로 ‘태생 파이터’였기 때문. “아버지가 복싱선수 출신이세요. 어머니랑 동생 빼고 가족 6명 중 4명이 격투기 종목 선수예요”라며 ‘격투 가족’을 소개했다.

몽골에서 복싱계의 샛별이었던 난딘 에르덴은 2008 베이징 올림픽 출전이 유력했다. 몽골은 2008 베이징 올림픽에서 복싱 금메달리스트를 배출했는데 이 금메달리스트도 난딘 에르덴에게 패했을 정도로 그의 실력은 최고였다. 하지만 올림픽 준비 중 어깨부상으로 출전이 불발됐다.

유도, 복싱 등이 인기종목인 몽골에서 국가대표를 지낸 그의 인기는 폭발적이었다.그는 “울란바토르에서 택시를 잡으면 운전사가 얼굴을 알아보고 공짜로 태워줄 정도는 됐어요”라며 쑥스러운 듯 말했다. 그런 그가 현재 있는 곳은 서울 면목동. 어쩌다 이역만리 떨어진 고국을 떠나 한국에 있는 것일까.

“지금은 아내인 여자친구가 한국에 유학을 왔어요. 그런데 어느날 전화가 오더니 ‘누가 날 스토킹한다’고 하더군요. 들어보니 거리에서 몰래 따라오는 것은 물론 샤워 중에 창문으로 엿보기까지 했다라더고요. 깜짝 놀라서 뒤도 돌아보지 않고 한국에 왔어요. 그때부터 여자친구를 지켜주기 위해 한국에 계속 살다보니 어느새 8년째가 됐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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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계 막막해 시작한 별별 아르바이트, 그 끝은 격투기 선수

2010년, 막상 한국에 왔지만 한국말도 모르고 모아둔 돈으로 생계를 이어가기엔 턱없이 부족했다. 그러다보니 난딘 에르덴은 당장 먹고 살기 위해 몸으로 할 수 있는 온갖 일에 뛰어들었다.

“돈 되는 건 다해봤어요. 설거지, 서빙, 택배 상하차, 이삿짐 짐꾼, 막노동 등등 정말 다했죠. 그중에서 가장 힘든 일은 새벽에 음식물 쓰레기 수거였어요. 정말 냄새가 지독하고 일도 힘들어요. 고역이었죠. 정말 그때 몽골로 돌아갈까 생각했어요.”

여자친구와 함께 살다보니 자연스레 결혼도 하고 아이까지 갖게 된 난딘 에르덴은 가장이 되자 더 열심히 일할 수밖에 없었다.

일하면서 배운 한국어는 유창한 수준이 됐고 지금도 낮에는 공사장 일꾼으로 생계를 이어가고 있다. 그는 “일할 때 절대 힘들다고, 아프다고 하지 않아요. 그러면 잘써주지 않잖아요. 예전에 한국인 일꾼이랑 같이 공사장에서 추락을 했는데 한국분만 병원에 가고 전 그냥 조퇴하고 지하철 타고 집에 와서 쉬었죠. 어쩌겠어요, 외국인 노동자인데”라며 열악한 현실을 털어놓으며 말끝을 흐렸다.

한국생활 8년째이지만 단 한번도 ‘월급’을 받아본 적이 없다고 한다. “늘 하루하루 돈이 필요하다보니 일급만 받아왔어요. 저축은 꿈도 못 꾸죠”라면서도 “그래도 한국에서 아이들이 좋은 환경에서 배우고 아내도 하고 싶은 공부를 한다고 생각하면 행복해요”라고 했다.

일에만 매진하던 난딘 에르덴은 운동이 고팠다. 도전해보지 못한 종합격투기를 해보고 싶었다. 그래서 찾은 곳이 마침 로드FC 미들급 잠정 타이틀전도 치른 김훈 관장이 운영하는 체육관이었다.

‘복싱 국가대표’의 실력이 어디갈까. 금세 체육관의 에이스가 된 난딘 에르덴은 마침내 2014년 1월 로드FC를 통해 종합격투기에 데뷔한다. 이후 승승장구(7승2패)하며 어느새 100만불 토너먼트의 8강까지 올라 오는 11일 중국 석가장에서 열리는 8강전을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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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만불 따야할 수많은 이유들

그에게는 이번 100만불 토너먼트에서 우승해야할 수많은 이유들이 있었다. “얼마전 제 아들 친구들이 집에 왔는데 ‘너희집에 재밌는게 없다’고 무시했다고 하더라고요. 얼마나 가슴이 아픈지…”라며 가슴 아파한 난딘 에르딘은 “몽골 부부에게 태어난 아이지만 제 아이들은 한국에서 나고 자라고 교육받아 한국 아이들이 하는 학원도 열심히 다녀야해요. 교육비도 만만치 않죠”라며 가장으로서의 당연한 역할을 강조했다.

또한 감량의 고통 역시 그가 승리해야하는 중요한 이유 중 하나였다. 전문적으로 운동만 하는 선수들도 감량은 매우 힘들었다. 그런데 막노동까지 하며 운동하는 것은 오죽 힘들까.

“감량 때는 밥은커녕 수분도 잘 섭취 안해요. 열심히 일하고 다른 인부들은 점심시간에 밥을 먹는데 전 안먹는다고 하고 그냥 그늘에서 잠을 자죠. 정말 그때 마다 꼭 이겨야겠다고 다짐해요.”

최근 아이들이 고층 아파트에 사는 친구들을 부러워하며 아파트에 살고 싶다고 노래를 부른다고 한다. 난딘 에르덴은 기자에게 “면목동 아파트 시세가 어느 정도 되죠? 100만불로 살 수 있죠?”라고 농담처럼 되물으며 주택, 빌라, 아파트의 차이를 정확히 이해하고 시세 역시 파악한 ‘한국화’된 모습으로 웃음을 자아냈다.

로드FC가 아시아에서도 관심있는 격투기 대회로 부상하면서 자연스레 몽골에서도 인기를 끌고 있는 격투기계에서는 ‘복싱 스타’였던 난딘 에르덴의 재등장에 반가워하고 있다.

몽골 매체에서도 관심을 보이고 있는 이번 100만불 토너먼트에 대해 난딘 에르덴은 “몽골 팬들도 SNS를 통해 많이 응원해주세요. 전 몽골 사람이기도 하지만 한국에 살고 한국에서 종합격투기를 배운 한국형 파이터이기도 해요. 마침 제 상대인 만수르 바르나위가 한국 선수들을 꺾고 8강까지 왔어요. 꼭 복수하고 싶네요”라며 몽골과, 그리고 한국을 위해 승리할 것을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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