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한국 김성태 기자]세상의 모든 아들은 아버지의 등을 보며 자란다. 그리고 아버지는 아들의 성장하는 모습을 지켜보며 기쁨을 얻는다.

부자지간이 나란히 가슴에 태극마크를 달고 대회에 나설 수 있는 것은 축복이나 다름 없다. 물론 같은 선수는 아니지만, 그래도 코치와 선수로 '대표팀' 한솥밥을 먹게 된 두 사람이 있다.

바로 '바람의 손자' 이정후(19)와 아버지 '바람의 아들' 이종범(46) MBC스포츠플러스 해설위원이다. 이정후는 지난 10일 KBO(한국야구위원회)가 발표한 아시아 프로야구 챔피언십 25인 엔트리에 이름을 올렸다.

24세 미만의 한국과 일본, 대만의 젊은 선수들이 나서는 대회이지만, 만 19세 프로 1년차 선수가 국가대표에 당당히 뽑혔다는 점에서 이정후의 대표팀 합류는 세간의 관심을 받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이정후는 외야수, 그리고 이종범은 외야 및 주루코치로 오는 11월 일본에서 열리는 아시아 프로야구 챔피언십에 나라를 대표해 나서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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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전드 이종범은 아들 이정후의 최고의 라이벌이다

아버지가 프로야구의 한 획을 그은 선수 출신인데, 그 아들이 야구를 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자기 자신과의 싸움은 물론이거니와 아버지라는 큰 그림자와도 맞붙어야 한다.

아무리 잘해도 본전이다. 자신의 이름 앞에 항상 아버지의 이름이 붙는다. 누구의 아들이라서 이렇게 야구를 잘한다, 이런 식이다. 특히나 아버지가 이종범이라면 문제는 더 다르다.

이종범은 레전드다. KIA 타이거즈에 영구결번이 2명 있다. 한 명은 18번을 달았던 '국보' 선동열이다. 나머지 한 명이 7번 이종범이다.

해태 사령탑을 역임했던 김응용이 "투수는 선동열, 타자는 이승엽, 야구는 이종범"이라는 말을 남길 정도였으니 그야말로 야구사의 한 획을 그은 선수였다.

보통 선수가 아니었다. 프로 2년차였던 1994년에 그는 타율 3할9푼3리를 기록했다. 백인천 이후로 4할을 넘길 수 있는 유일한 선수로 각광 받던 해였다.

또한 같은 해, 한 시즌 최다 도루 84개는 아직까지도 깨지지 않고 있다. 그 외에도 유격수 골든글러브 4회 수상(1993, 1994, 1996, 1997)에 1993년과 1997년 한국시리즈 MVP, 1994년 리그 MVP에 오르기도 했다.

이종범은 컨택, 장타, 수비, 주루, 송구까지 일명 '5툴 플레이어'를 상징하는 전형적인 선수였다. 특히 선수 끝자락인 2009년에는 타이거즈의 'V10'을 완성하면서 우승, 실력, 명성까지 모두 챙기기도 했다.

지금도 역대 프로야구 최고 유격수를 꼽으라는 질문에 이종범의 이름은 빠지지 않는다. 그만큼 이종범이 남긴 프로야구의 족적은 어마어마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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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후…36년 야구 역사 가운데 최고의 고졸 신인 되다

이 명성을 그대로 쫓아가는 선수가 바로 아들 이정후다. 눈매부터 이종범의 젊은 시절이었던 1993년, 그 당당함이 그대로 느껴진다. 승부 근성 역시 대단하다.

또한 한 경기 3안타를 쳤음에도 마지막 타석에서 안타를 쳐내지 못해 덕아웃에 앉아 스스로를 자책하는 모습은 팬들에게도 익히 알려진 장면이다.

무엇보다 이정후가 대단한 것은 고졸 1년차 신인이라는 점이다. 고교 시절부터 발 빠르고 타격 잠재력이 풍부한 선수로 소문이 자자했다.

잘 성장했다. 그렇게 2017시즌 1차 지명을 받고 넥센에 입단했다. 10명의 1차 지명을 받은 선수 중 유일하게 야수였다. 그만큼 이정후가 가진 재능은 프로에서도 알아주는 수준이었다.

하지만 재능은 재능일 뿐, 프로의 세계는 다르다. 오로지 가지고 있는 실력, 그 하나만 인정하는 세계가 프로다.

올해 시범경기에서 좋은 모습을 보였던 이정후는 팀 주전 외야수였던 임병욱이 부상을 당하자 외야수로 전격 기용됐다. 매 경기, 놀라울 정도의 활약을 보여줬다.

가장 눈에 띄는 성적은 144번의 전 경기 출전이다. 막 고등학교를 졸업한 신인이, 그것도 1군 전 경기 출전을 완성한 것은 KBO리그 36년 역사에서 최초다.

넥센 장정석 감독은 "이정후는 교체로도 나설 수 있을 만큼 대타나 대수비, 대주자등 활용도가 높고 여러 부분에서 장점을 갖고 있는 선수다"라고 칭찬한다.

넥센이라는 팀 자체가 젊은 선수에게 기회를 많이 주는 편이지만, 그만큼 본인이 가지고 있는 타고난 야구 센스가 있기에 가능한 기록이었다.

그러다보니 역대 신인 선수들의 기록을 대부분 갈아치웠다. 올해 그의 성적은 144경기 출전에 552타수 179안타, 타율 3할2푼4리 2홈런 47타점 111득점이다.

고졸 신인 최초 3할 타율(0.324)에 이어 신인 최다안타 겸 득점인 179안타와 111득점을 기록, 종전 최다였던 157안타의 LG 서용빈과 109득점의 LG 유지현을 뛰어넘기도 했다.

특히나 최근 리그에서는 신인과 기존 선수들의 실력 차가 너무 크다보니 중고 신인들이 신인왕 타이틀을 따내는 경우가 많았다. 고졸 선수가 그만큼 적응하기 힘든 것이 현재 KBO리그다.

하지만 이정후가 올해 신인왕을 받게 된다면 순수 고졸 신인으로는 지난 2000년 김태균 이후 10년 만이다. 사실상 신인왕을 확보한 상황이기에 이정후의 첫 시즌은 그야말로 센세이셔널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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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후광? 아니, 이제는 아들의 후광

이 정도의 실력이라면 만 24세 이하의 선수로 대표팀을 구성하는데 있어서 빠질 수 없다. 지난 8월에 열린 아시아프로야구챔피언십 예비 40인 엔트리에 그는 당당히 자신의 이름을 올렸다.

대표팀 외야 및 주루코치로 아버지 이종범이 함께 하면서 부자지간 국가대표 역시 가능성이 높아졌다. 그리고 지난 10일 최종 25인 엔트리에 이정후가 포함되며 부자지간 태극마크가 성사됐다.

아들이 대표팀에 합류하게 되면서 이종범 해설위원은 "아들이 더 좋아할 것 같다. 야수 쪽 파트 코치가 여러모로 생각을 해서 뽑았다"라고 말했다.

오히려 이종범은 야구에 대한 조언을 아들에게 하지 않는다. 대신 감기약이나 음식과 같은 세밀한 부분에 대해서 조언을 하기도 한다. 이번 대표팀 발탁 역시 마찬가지다.

이종범은 "대표팀에 선발 된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본인이 어떻게 해야 하는지가 중요하다. 좋은 경험이 될 것이다. 태극마크의 사명감을 가지길 바란다"라고 이야기하기도 했다.

어린 시절부터 아버지의 국가대표 경기를 지켜본 이정후 역시 "아버지와 함께 태극마크를 다는 것은 어렸을 때부터 꿈이었다"라고 포부를 밝힌 바 있다.

부자지간이 나란히 태극마크를 달고 경기에서 나서는 것은 큰 영광이다. 지난 2006년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부터는 대표팀은 프로선수로만 구성됐다.

아버지와 아들이 함께 대표팀에 동반 승선한 사례는 없다. 다시 말해 최초 부자 국가대표다. 충분히 자부심을 가질 수 있다.

프로에서는 아버지 그 이상으로 신인 시즌을 보낸 이정후다. 이제 국가대표로 함께 뛰며 더욱 실력을 키워나갈 수 있는 기회도 주어졌다.

올해만큼은 이종범의 아들 이정후가 아니라 이정후의 아버지 이종범이다. 오히려 이종범이 아들 덕을 톡톡히 본 셈이다. 이제 다시 바람이 불어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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