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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한국 김명석 기자] "흑인과 유색인종을 억압하는 나라에, 존경심을 표할 수 없다".

지난해 8월이었다. 미국 프로풋볼(미식축구·NFL) 경기를 앞두고 국가가 연주되자, 샌프란시스코 포티나이너스 소속의 콜린 캐퍼닉(30)이 한쪽 무릎을 꿇고 앉았다.

경찰 등 미국 내 인종차별에 항의하는 뜻이 담긴 행동이었다. 이후 NFL과 미국 프로농구(NBA) 등 미국 스포츠계에서는 캐퍼닉처럼 국민의례를 거부하는 것으로 저항의 뜻을 표현하는 장면들이 이어졌다.

그런데 최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선수들의 이러한 행동들을 문제 삼고 나섰다. 현지시각으로 지난 22일 앨라배마주 상원의원 지원 유세에 참석한 자리에서였다.

현지 언론들에 따르면 이날 트럼프는 “구단주들이 국기에 결례를 범하는 선수들을 해고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발언에는 '개XX'(Son of bitch)라는 트럼프 특유의 ‘막말’이 포함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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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막말'에 점점 더 거세진 저항운동

욕설이 섞인 트럼프의 막말은 곧장 대통령-NFL 간의 갈등으로 번졌다. NFL 사무국은 트럼프의 욕설 파문 직후 "대통령의 발언은 NFL과 선수 등에 대한 존중이 결여된 발언"이라는 성명을 냈다. 전·현직 NFL 선수들 역시도 저마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을 통해 거세게 반발했다.

트럼프도 물러서지 않았다. SNS를 통해 "운동선수가 많은 돈을 버는 특권을 원한다면, 국가에 결례를 범하면 안 된다. 그것이 싫다면 해고 또는 자격정지를 당해야 한다"며 "팬들이 NFL 경기를 보이콧하면, 변화가 빠르게 일어날 수 있다"고 맞받아쳤다.

저항이 거세졌다. NFL 경기마다 선수는 물론 코치들까지 가세해 '보란 듯이' 무릎을 꿇거나 팔짱을 끼기 시작했다. 국가가 연주되는 시간에 경기장이 아닌 라커룸에 머무르거나, 캐퍼닉 지지 티셔츠를 입는 등 다양하게 트럼프에 대한 반감을 드러냈다. 뉴욕타임스 등 현지 언론들은 시시각각 이러한 반응을 전했다.

저항운동은 다른 종목으로도 번졌다. 미국프로야구(MLB) 오클랜드 애슬레틱스의 브루스 맥스웰(27)도 메이저리그 선수로는 처음으로 무릎을 꿇는 대열에 동참했다. 구단 역시 성명을 통해 "선수들의 표현의 자유와 권리를 존중하고 지지한다"며 힘을 보탰다. 이러한 저항운동은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더 확산되는 분위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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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인 선수들의 항의였다면 비난 안 했을 것"

논란이 커지자 평소 백인우월주의, 인종차별주의적인 트럼프의 성향이 도마 위에 올랐다. NFL 선수를 향한 비난 역시 그 밑바탕에 특유의 인종주의가 깔려있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었다.

트럼프는 "인종과는 무관한 일"이라며 선을 그었으나, CNN은 "항의한 선수들이 백인이었다면, 트럼프는 비난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아무리 생각나는 대로 말한다고 하더라도, 인종적인 부분마저 생각하지 않고 NFL 선수들을 비난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트럼프의 취임식 행사에만 100만 달러(약 11억 3000만원)를 기부했던 기업가 겸 NFL 뉴잉글랜드 패트리어츠 구단주인 로버트 크래프트(71)마저 쓴 소리를 건넸다.

그는 NFL을 향한 트럼프의 막말과 관련해 "매우 실망했다"면서 "미국에서 스포츠보다 더 위대한 통합자는 없고, 불행하게도 정치보다 더 분열적인 것은 없다"고 말했다. 트럼프의 거듭되는 분열적인 발언과 관련된 '열렬한 지지자'의 일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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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구-골프 등에서도 뚜렷한 反 트럼프 정서

스포츠계와 트럼프 사이의 불편한 관계는 비단 NFL 뿐만이 아니다. 2년 연속 NBA 최우수선수상을 차지한 스테판 커리(29·골든 스테이트 워리어스)를 필두로, NBA 스타들 역시 최근 트럼프와 대립각을 세웠다.

골든 스테이트는 지난 시즌 NBA 정상에 등극했다. NBA 우승팀이 백악관을 방문해 대통령과 시간을 보내는 것은 오랜 전통이었다. 다만 커리는 백악관 초청에 응하고 싶지 않다는 견해를 밝혔다. 평소 트럼프의 정책과 언행에 반대의사를 밝혀온 까닭이었다.

이 소식을 접한 트럼프는 즉각 SNS를 통해 반응했다. 그는 "NBA 우승팀이 백악관의 초대를 받는 것은 대단한 영광일진데, 커리는 이를 망설이고 있는 중"이라면서 "골든 스테이트의 백악관 초청을 취소하겠다"고 말해 또 다른 논란을 불러 일으켰다.

이에 대해 또 다른 NBA 스타인 르브론 제임스(33·클리블랜드 캐벌리어스)는 “백악관에 가는 것은 대단한 영광이 맞다. 적어도 당신(트럼프)이 오기 전까지는 그랬다”고 꼬집었다. 커리 역시 “한 나라의 지도자가 할 말은 아니다”라며 맞섰다.

미국 여자프로골프(LPGA)에서도 반 트럼프 정서가 수면 위에 오른 바 있다. 지난 7월 트럼프 일가가 소유한 트럼프 내셔널 골프 클럽에서 메이저대회인 US여자 오픈이 개최됐기 때문. 트럼프가 공화당 후보 시절 여성 비하로 구설수에 올랐던 터라 대회를 다른 곳에서 개최해야 한다는 반발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결과적으로 개최지 변경이 무산되자 트럼프의 대회 방문을 바라지 않는다는 목소리가 줄을 이었다. LPGA 통산 2승을 거둔 브리트니 린시컴(32)은 언론과의 인터뷰를 통해 "선수들을 위한 대회다. 트럼프가 대회장을 찾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뜻을 공개적으로 밝혔다.

그러나 트럼프는 굴하지 않고 줄곧 대회장을 찾았다. 공교롭게도 이 대회에서 미국 선수들은 단 1명도 상위 10위 안에 이름을 올리지 못했다. 72년 역사상 이번이 처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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