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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규순 전 야구심판. 스포츠코리아 제공
[스포츠한국 박대웅 기자] “깨끗하고, 공정하고, 신뢰받는 리그로 거듭날 수 있도록 대책 마련에 노력을 다하겠다.”

지난해 7월 불법도박사건에 프로야구 선수들이 연루되면서 한국야구위원회(KBO)가 발표한 대국민 사과문의 한 구절이다.

그로부터 며칠 뒤 이번에는 전직 심판 최규순의 금전 거래 행위가 언론을 통해 처음 보도됐다. 그러자 KBO는 “현역 심판과 전 현직 구단 임직원들을 대상으로 개별면담 등 ‘면밀한 조사’를 실시하여 결과에 따라 적절한 조치를 취할 예정이다”는 입장을 밝혔다.

다시 약 1년의 시간이 흘렀다. KBO의 말처럼 프로야구는 깨끗하고 공정하며 신뢰받는 리그가 됐을까. 오히려 그 반대로 흘러가고 있다.

그렇다면 최규순 게이트에 대한 면밀한 조사는 일찌감치 실시됐을까. 전혀 그렇지 않다. 형식적인 사과문과 대책 마련의 약속이 몇 차례나 의미 없이 반복됐을 뿐이다. ‘국민스포츠’라고 자부했던 프로야구가 출범 이후 최악의 위기를 맞고 있다.

▶ ‘조작리그’에 ‘매수리그’ 타이틀, 부끄러운 민낯

최근 심판 판정이 모호할 때마다 팬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단어가 있다. 바로 ‘매수’다. 심판이 얼마의 돈을 받았을지, 구단이 얼마를 제공했을지 의심부터 하고 본다. 리그의 신뢰도가 바닥까지 추락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7월2일 두산 전임 대표이사가 최규순에게 2013년 현금 300만원을 건넨 것을 인정한 뒤 사의를 표명한 것은 단지 시작에 불과했다.

지난달 29일에는 KIA 구단 직원 2명이 2012년과 2013년 두 차례 돈을 송금한 사실을 인정했으며, 30일과 31일에는 삼성과 넥센까지 연달아 사과문을 발표했다. 삼성은 2013년 구단 직원이 폭행 사건 합의금을 위한 돈이 필요하다는 연락을 받고 400만원을 건넸으며, 넥센은 2013년 11월 구단의 전직 임원 계좌를 통해 300만원의 금액이 대여된 사실이 검찰 조사결과 확인됐다.

10개 구단 중 무려 4개 팀이 심판과의 금전 거래에 연루됐다. 2015년 1군 리그에 진입한 kt를 제외하면 아직까지는 그 어느 팀도 의심의 시선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팬들의 1차적인 분노가 구단과 심판 간의 금전 거래 행위 자체라면 2차적인 분노는 바로 거짓말과 은폐·축소에서 비롯됐다. KBO에 자진 신고한 두산조차 비판을 피할 길이 없는 상황에서 이번 사건에 연루된 또 다른 구단들은 허위 신고와 함께 궁색한 변명, 진정성이 느껴지지 않는 사과로 더 큰 빈축을 사고 있다.

특히 KBO는 두산 전 대표이사에게 비공개로 엄중경고 조치를 내려 논란을 키웠으며, 1년 전 면밀한 조사를 실시하겠다는 입장을 밝혔음에도 단지 구단의 회신, 검찰 수사에만 의존하는 형식적 조사로 무책임한 모습을 보였다.

▶ ‘꼬리 자르기’는 이제 그만

KBO는 2015년 삼성 주축 선수 3인방의 해외 원정 도박 스캔들, 2016년 이태양, 문우람, 유창식의 승부 조작, 이밖에 해마다 쏟아진 음주 운전 및 각종 일탈 행위 등으로 몸살을 앓아왔다.

그동안의 사건·사고들은 주로 선수 개인의 일탈과 구단 및 KBO의 관리 소홀에 포커스가 맞춰져 있었다.

이번 사건에 대해서도 KBO는 여지없이 “심판의 개인적 일탈”이라는 입장을 내놓았다. 해당 직원 징계에 나선 구단도 있다. 벌써부터 꼬리 자르기에 들어가는 모습이다. 심지어 최규순을 사기 가해자, 각 구단들을 돈을 뜯긴 피해자로 바라보는 시선도 있다. 최규순은 1일 오전 영장실질심사를 위해 서울중앙지법에 출석했고, 서울중앙지법은 검찰이 청구한 구속영장을 기각한 상태다.

물론 1차적으로 심판에게 가장 큰 문제가 있었던 것은 부정하기 어렵다. 금전 거래에 대가성이 없었을 수도 있다. 그러나 대가성 여부를 떠나 구단 관계자와 심판 간의 금전 거래는 야구규약 15장 이해관계의 금지 제 155조 ‘금전 거래 등 금지 제 1항’(리그 관계자들끼리 돈을 빌려주거나 보증을 서는 행위를 금지한다)을 어긴 명백한 규정 위반이다. 구단의 피해자 코스프레는 절대 나와선 안 될 일이다. 진짜 피해자는 바로 야구 팬들이다.

이번 사건을 개인의 일탈로 치부해서도 곤란하다. 최규순 뿐 아니라 그동안 일부 심판들이 판정을 내릴 때 사심을 담거나 막강한 권한을 이용해 소위 갑질을 한다는 목소리가 끊임없이 제기돼왔다.

개인적 일탈이라는 표현 뒤에 숨어 권력을 휘두르는 심판에 맞서지 못한 채 구단은 불이익을 받을 것이 두려워 끌려 다니기만 했고, KBO 역시 이러한 문제점을 개선하기는커녕 단지 방관자의 위치에 서 있었을 뿐이다. 그동안 곪았던 상처가 개인의 일탈처럼 느껴지는 형태로 터졌을 뿐이다.

구단 직원의 개인 일탈이라는 시선 역시 앞뒤가 맞지 않는 부분이 많다. 최규순에게 돈을 건넨 구단 관계자 대부분이 팀장급 이상의 임직원인 것으로 밝혀졌다. 구단 내에서 상당한 권한을 가진 자리인 만큼 아무런 대가를 바라지 않았다는 발언은 무책임하게 들릴 뿐이다.

명목상 빌려준 것이라 변명할 수 있겠으나 충분히 묵시적 청탁으로 볼 수 있는 문제다. 또한 구단의 묵인 없이 심판에게 돈을 건네는 초유의 일이 과연 개인의 판단만으로 쉽게 이뤄질 수 있는 일인지도 의문이다.

이번에는 구단과 KBO가 실질적인 몸통이자 뿌리다. 꼬리 자르기만으로 이번 사태를 유야무야 넘어가려는 모습이 더 이상 나와서는 안 된다.

문제는 혁신을 위한 노력의 과정이 전혀 보이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사상 초유의 사태가 복합적으로 터졌다. 그 사이 비밀 간담회가 있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KBO는 공식 이사회를 지금까지 한 번도 열지 않고 있다.

KBO는 현재 심판 금전거래 뿐 아니라 입찰비리 은폐 의혹까지 받고 있다. 문체부는 7월17일 검찰에 전직 기획팀장 등 KBO 관계자에 대한 수사를 의뢰했다.

KBO의 강 모 팀장이 지난해 중국 진출 사업에서 가족회사인 A사의 낙찰에 직접 개입한 사실이 드러났고, 이 과정에서 양해영 사무총장이 의도적으로 사건을 축소·은폐했다는 의혹이 있었다. 양해영 사무총장의 경우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의 국회의원 재직 당시 보좌관 출신이라는 사실 때문에 곤혹을 치르고 있다.

KBO는 문제점 개선을 위한 자체 정화 작업은커녕 외부의 칼을 빌려 개혁할 수밖에 없다는 한계를 드러냈고, 나아가 그동안 경험하지 못했던 총체적 문제의 수사 대상으로까지 떠올랐다. 2년 연속 800만 관중의 열매가 맺힐 분위기지만 보이지 않는 이면의 뿌리는 썩을 대로 썩어있다.

-스한 위클리 : 스포츠한국은 매주 주말 ‘스한 위클리'라는 특집기사를 통해 스포츠 관련 주요사안에 대해 깊이 있는 정보를 제공합니다. 이 기사는 종합시사주간지 주간한국에도 동시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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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시간 : 2017/09/02 06:0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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