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한국 이재호 기자] 전설은 어떻게 탄생하는 것일까. 재능도 뒷받침 돼야 하고 노력도 따라줘야 한다. 그리고 전설을 필요로 하는 시대와 그에 걸맞는 운도 함께해야한다.

이중 ‘노력’이라는 요소는 매우 주관적이다. ‘열심히 했다’는 기준은 사람에 따라 다를 수 있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너무 노력을 하다 보니 선수 은퇴 후에도 문제가 뒤따른다면 그런 이를 두고 ‘열심히 하지 않았다’고 말할 수는 없다.

소개할 선수들은 그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진정한 ‘전설’이다. 하지만 이들은 치명적인 부상에도 이를 참고 견디며 끝까지 노력해 전설이 될 수 있었다. 선수생활이 끝나고도 그 후유증은 뒤따르지만 이는 선수시절 그가 얼마나 열심히 했는지를 보여주는 바로미터이기에 의미가 남다르다.

왼쪽부터 박지성, 서장훈, 바티스투타, 샌디 코팩스. 스포츠코리아, ⓒAFPBBNews = News1
▶박지성은 왜 퍼거슨에게 현역 복귀 제안 받아도 못 돌아갔나

수식어나 업적을 굳이 설명할 필요가 없는 박지성(36). 그런 박지성은 만 33세의 이른 나이에 은퇴했다. 대표팀에도 복귀한 이동국이 만 38세라는점, 황선홍은 만 34세에 2002 월드컵에서 골을 넣었던 것을 굳이 따지지 않아도 축구선수로서 33세의 나이는 노장이긴 하지만 당장 은퇴할 정도로 많은 것은 아니다.

이른 나이에 은퇴한 이유에 대해 박지성은 은퇴 기자회견에서 “더는 지속적으로 축구를 할 수 없을 것이라 생각했다. 무릎 상태가 너무 안좋았다”며 은퇴이유를 명확하게 밝혔다.

박지성은 마지막 선수생활을 한 네덜란드 PSV의 마르셀 브란즈 기술이사도 “박지성이 지난 몇 달간 수행했던 일은 끔찍한 고통이었고 본인도 그렇게 느꼈다”고 밝혔다. 실제로 당시 현지언론에서는 ‘박지성이 경기를 마치고 나면 집에 돌아가 고통에 몸부림 쳤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많은 전문가들은 박지성의 무릎이 안 좋아진 것이 잦은 대표팀 차출에 의한 무리라고 본다. 박지성은 소속팀이 있는 영국과 대표팀 경기가 열리는 한국을 오가는 일정을 수없이 소화해야했다. 가뜩이나 무릎 수술을 여러 차례 받은 상황에서 장시간 비행으로 무릎에 계속 물이 찰 수밖에 없었다.

최근 박지성은 국내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알렉스 퍼거슨 감독이 선수로 복귀해보라고 권유했다”면서도 “하지만 무릎이 여전히 재활 중이며 조만간 수술을 한 번 더 받아야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서장훈 : 왜 그는 뿅망치도 머리에 못 맞나

예능인으로서 은퇴한 스포츠스타 중 가장 성공한 제2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 농구스타 서장훈(43). 그는 인기 프로그램인 ‘아는형님’에서 퀴즈 오답의 벌칙으로 뿅망치를 맞을 때면 다른 멤버들과 달리 머리가 아닌 등을 맞는다.

목이 매우 안 좋기 때문이다. 서장훈은 선수생활 말미에 목에 깁스를 한 채 선수생활을 강행했었다. 이미 대학시절 한국 최고의 센터였기에 집중견제를 받았고 이러다보니 서장훈은 1994~95시즌 농구대잔치에서 수비 도중 목에 충격을 받아 혼수상태로 병원에 실려 갔다. 조금만 더 빗겨서 부상을 당했다면 전신마비가 올 수 있을 정도로 심각했던 부상이었고 이로 인해 서장훈은 한국농구에 환멸을 느껴 미국으로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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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 생활 중에도 또 다시 목부상을 당한 서장훈은 선수생활을 하는 내내 목보호대를 착용하고 경기에 나왔다. 당시 상황에 대해 서장훈은 은퇴식에서 “목을 다쳤을 때 병원에 가니 의사가 농구를 그만 둬야 한다고 엄포를 놓더라. 여기서 농구를 포기하면 그 동안의 농구인생이 무의미해진다고 생각했다. 농구를 계속 해야겠다고 생각했고 그 대안으로 목보호대를 만들게됐다”고 했다.

‘목도리 도마뱀’ 등 조롱도 많이 받았지만 서장훈은 “그 보호대 덕분에 마지막까지 선수생활을 할 수 있었다”고 말하기도 했다.

강력한 의지, 그리고 은퇴 후 뿅망치조차 목에 무리가 갈까 맞지 못할 정도로 목부상을 참고 버텼기에 KBL 역대 득점 1위(13231점), 리바운드 1위(5235개)에 오를 수 있었던 서장훈이다.

▶‘바티골’ 바티스투타, ‘다리절단’ 오보까지 난 이유

2015년 전 세계 축구팬들에게 놀라운 소식이 전해진다. 아르헨티나의 공격수였던 가브리엘 바티스투타(48)가 심한 무릎 통증을 견디지 못해 두 다리 모두를 절단하고, 티타늄 의족으로 대체할 예정이라는 소식이 전해졌기 때문.

많은 이들은 바티스투타를 안타까워하면서 워낙 충격적인 이 보도를 사실로 믿었다. 하지만 지난 7월 FIFA와 진행된 인터뷰에서 바티스투타는 “다리를 절단할까 계획을 세웠었지만 절단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여전히 걷기가 힘든 상태”라고 자신의 상황을 전했다.

그의 무릎이 이토록 좋지 못한 것은 플레이스타일 탓이기도 하다. 바티스투타는 현역시절 급가속과 급커브 등을 통한 드리블을 즐겨하던 선수. 게다가 ‘바티골’이라고 불리던 그의 골장면은 대부분 엄청난 파워를 기본으로 하는 슈팅이었다.

A매치에서만 56골을 넣으며 2016년 리오넬 메시가 57번째 골을 넣기 전까지 아르헨티나 역사상 가장 많은 A매치 골을 넣은 선수이기도 했던 바티스투타는 2002 한일월드컵에서 조별리그 탈락이 확정되자 그라운드에서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는 가슴 뜨거운 선수이기도 했다.

ⓒAFPBBNews = News1
▶샌디 코팩스는 왜 사이영상을 탄 30세에 은퇴했나

1960년대 최고의 투수는 단연 좌완의 샌디 코팩스(82)였다. 올드팬들은 현재 LA다저스 에이스 투수인 클레이튼 커쇼를 보며 ‘코팩스가 떠오른다’고 할 정도. 코팩스는 1962~1966시즌 5년간 111승 평균자책점 1.95 100번의 완투, 33번의 완봉, 사이영상 3회, MVP 1회, 올스타 5회를 차지하는 ‘황금의 5년’을 보냈다.

오죽하면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라는 명언을 남긴 요기 베라는 코팩스를 보고 “코팩스가 어떻게 25승을 했는지는 알겠다. 내가 이해하지 못하겠는 건 대체 어떻게 5번을 진 거냐는 것”이라는 또 다른 명언을 남겼을 정도다.

그러나 1966시즌을 마치고 코팩스는 돌연 은퇴를 선언한다. 그의 나이 고작 30세가 되던 해였다.

지금으로 치면 건재한 커쇼가 갑자기 은퇴를 선언하는 것보다 더 충격적인 수준. 이유는 명확했다. 왼팔의 고통이 너무 심하다는 것. 코팩스는 “만약 야구를 계속하게 되면 내 남은 인생동안 왼팔을 쓰지 못할까 두려웠다”고 은퇴식에서 밝히며 “남은 생은 왼팔을 쓰며 살아가고 싶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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