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한국 이재호 기자] 모두가 인정하는 현존 바둑 최고기사인 커제 9단.

세계 최고라는 커제가 바둑을 두다 무력감에 눈물을 흘렸다. 지난 5월 27일 알파고는 커제에 3연승, 완승을 거뒀다. 커제의 눈물을 보며 더 이상 인류는 ‘경우의 수가 무한하다’는 바둑에서도 기계에게 이길 수 없음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알파고를 발명한 구글은 승리와 동시에 홈페이지를 통해 인간계에 ‘마지막 선물’을 하고 알파고를 은퇴시켰다. ‘마지막 선물’은 바로 알파고와 알파고가 둔 바둑 기보 50판을 공개한 것.

이미 이세돌이 1승4패로 졌을 때부터 예감은 했지만 커제마저 완패하며 무력감에 빠진 인류에 ‘알파고 셀프대국 50판’ 공개는 또 다른 충격을 안겼다. 그동안 인간이 두던 바둑과 너무나도 다른 수가 많았기 때문. 스웨 9단은 “여태까지 본 적이 없는 저 먼 미래의 대국”이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알파고가 인간을 상대하는 수를 보며 ‘그동안 인간이 바둑을 잘 못 두지는 않았구나’라고 여긴 이들에게는 분명 충격적인 수가 많았다. 그렇다면 ‘인간보다 압도적으로 잘하는’ 알파고간의 셀프대국을 통해 정말 인간은 그동안 바둑을 잘 못 뒀던 것이 증명된걸까. 그리고 알파고가 보여준 바둑은 5세기부터 인류가 둔 바둑의 패러다임을 바꾸게 되는걸까. 전문가들의 견해를 통해 알파고 바둑이 미친 영향을 알아봤다.

알파고와의 대국에서 괴로워하는 커제 9단. ⓒAFPBBNews = News1
▶알파고, 정말 다른 차원의 바둑을 뒀나?

바둑TV 등에서 명쾌한 해설과 분석으로 유명한 김성룡 9단은 알파고 셀프대국을 보고 ‘알파고는 자유자재이며 인간의 바둑 격언을 철저하게 무시한다’는 소감을 밝힌 바 있다.

누구보다 알파고 셀프대국 50판을 열심히 분석한 김 9단은 전화통화에서 “어떤 세계든 일정 수준 이상을 넘어버리면 이해하기 힘들지 않나. 바로 알파고 셀프대국이 그런 수준”이라며 혀를 내두르며 “확실히 인간은 고정관념이 있으니 쓰지 않던 수를 자유롭게 쓰더라. 알파고가 말을 해서 왜 그렇게 뒀는지 설명해줬으면 하는 정도”라고 말했다.

바둑전문지인 월간바둑의 이영재 기자 역시 “분명 파격적인 수법이 꽤 있었다. 인간은 잘하지 않는 삼삼에 들어가는 것 등 놀라운 수가 많았다. 또한 ‘기량이 너무 뛰어나서’ 두는 수랄까, 굉장히 떠올리기 어려운 수를 두는 것도 있었다. 분명 인간과 수준 차이가 명확했다”라고 감탄했다.

하지만 반드시 알파고의 바둑이 압도적인 수준인 것에 대해서는 반대의 목소리를 냈다. 이 기자는 “셀프대국 기보가 공개되고 처음에는 많이들 충격 받았고 '그동안 잘 못 뒀나'하는 분위기가 있기도 했다"면서도 "2달 정도가 지난 현재 보니 아예 다른 바둑을 두는건 아니더라. 지금은 ‘놀랍긴 한데 모든걸 바꿀 정도로 파격적인건 아니구나’ 하는 정도로 정리되는 분위기도 있다”고 전했다.

▶알파고 수준에 도달하려면 얼마나 걸릴까

그렇다면 두 전문가에게 동일하게 물었다. 과연 인간이 알파고가 보여준 바둑 수준에 다다르려면 얼마나 걸릴까. 김성룡 9단은 “일단 기보에 대한 해석이 먼저다. 해석을 해야 따라두고 이해하고 배운다. 인간도 시간이 지날수록 발전을 하니까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1600년대 도사쿠가 뒀던 바둑을 그때는 해석하지 못했지만 지금은 아는 것처럼 말이다. 그런데 그게 10년이 걸릴지 50년일지 100년일지 모른다”고 했다.

또한 “이창호 9단의 수도 한참이 지나고 이해한 경우도 있었다. 분명한건 바둑은 꾸준히 발전을 해왔는데 알파고가 몇 단계를 한 번에 뛰어넘은 것 같다. 이게 어느 정도 우리를 앞섰는지 조차도 알 수 없다”고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AFPBBNews = News1
월간바둑 이영재 기자는 “인간이 아예 알파고의 수준에 도달하지 못할 수도 있다”며 다소 충격적인 얘기를 꺼냈다. 그 이유로 “알파고와 인간의 가장 큰 차이는 ‘계산 능력’이다. 알파고는 엄청난 계산력을 뒷받침해 착수 후 파생 효과까지 모두 계산한다. 그러나 현대의 바둑은 ‘지루해진다’는 이유로 제한시간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이 기자는 “인간은 계산에 무조건 시간이 필요한데 컴퓨터와 계산능력의 하드웨어 차이가 너무 크다. 환경적 요인도 빨리두게 변하고 있다. 마치 3m키를 가진 이와 농구를 하는 시점이랄까. 알파고에게 영감을 얻어서 조금 더 발전된 바둑을 두는건 가능하겠지만 알파고를 완전히 이해하고 터득해 알파고처럼 두려면 정말 오랜 시간이 걸리거나 혹은 불가능할 수도 있다”고 했다.

분명한 것은 알파고가 둔 바둑의 수가 너무 앞서나가든 아니면 인간이 감당하기 힘든 계산능력이든 간에 인간이 알파고를 완전히 이해하는데 굉장히 많은 시간이 필요할 것이라는 점이다.

▶알파고는 바둑에 어떤 영향을 미쳤나

알파고 쇼크 이후 바둑계는 어떤 변화를 겪었을까. 그리고 어떤 식으로 변화를 꾀하고 있고 향후 바둑계는 정말 알파고를 배우는 방향으로 흘러가게 될까.

김성룡 9단은 “알파고의 수 중에 인간이 바로 쓸 수 있는 수도 있고 쓰기 어려워 연구가 필요한 것도 있다. 만약 알파고가 은퇴하지 않고 계속 발전하고 바둑을 둔다면 알파고만 연구할 수도 있지만 지금은 멈췄다. 알파고도 연구하고 커제나 이세돌 같은 고수를 연구하는 방향으로 갈 것”이라며 “분명한건 알파고를 모두 이해할 때 바둑의 패러다임은 바뀔 것이다. 1600년대 바둑을 보면 ‘이것밖에 못 둬?’하는 생각이 들 듯 말이다”라며 알파고가 바둑계에 지금도, 그리고 미래에도 큰 영향을 미칠 것임을 단언했다.

이영재 기자는 “이미 알파고가 빈번하게 두는 수가 있는데 이를 프로기사들도 비슷한 장면이 나오며 고민하지 않고 똑같이 둔다. 완벽하게 설명은 못해도 ‘알파고가 그렇게 두니까’ 시간도 아낄 겸 믿고 두는거다. 이처럼 이미 알파고는 현대바둑에 영향을 주고 있다”면서 “예전에는 자신은 잘 모르겠고 아니라고 생각하는 수도 소위 ‘인간 최고수’들이 뒀으니까 의식해서 따라둔 경우가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알파고가 워낙 자유롭게 두다보니 ‘강박’이 사라졌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월간바둑의 조사에 따르면 ‘알파고가 끼친 세 가지 영향’에 대해 국가대표 상위랭커들은 1.의식의 확장 2.고정 관념의 탈피 3.바둑의 무한한 가능성 제기를 뽑았다. 알파고는 분명 그동안 ‘정석’으로 알려지고 ‘고수들의 방법’으로 정형화됐던 바둑에 메시지를 던졌다. 이제 꼭 누군가를 따라두며 배우는 바둑이 아닌 스스로 생각하고, 영감을 받아 자유롭게 자신만의 수를 둘 수 있게 했다는 점에서 큰 의의가 있다.

당장 파격적인 수나 완전히 다른 차원의 바둑을 뒀다는 것보다 알파고는 인류에게 ‘자유’와 ‘창의성’의 중요성을 깨닫게 했다는 점에서 미래 바둑이 나아가야할 방향을 제시한 것은 아닐까.

알파고와의 4국에서 180수끝에 'AlphaGo resigns'를 받아내고 돌아가는 이세돌 9단의 미소. ⓒAFPBBNews = News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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