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한국 박대웅 기자]‘스타크래프트는 예술이었고 문화였으며 우리의 학창시절이었다.’

지난 1월 서울 신촌의 연세대학교 대강당에서 열린 ‘250만 돌파 KT GiGA 인터넷과 함께하는 아프리카TV 스타리그(ASL)' 시즌2 4강전에서 한 스타리그 팬의 이같은 응원 문구가 방송 카메라에 잡혔다.

1998년 스타크래프트(이하 스타) 게임이 출시된 이후 비단 친구들과 PC방에서 꼬박 밤을 샜던 학생들 뿐 아니라 퇴근길에 동료들과 삼삼오오 모여 스타 내기 승부를 했던 직장인들, 프로게이머들의 경기를 TV 중계를 통해 지켜보며 열광했던 e스포츠 팬들의 가슴까지도 시큰하게 만든 문구였다.

지난달 7월31일 부산 광안리에서 스타크래프트 리마스터 런칭 이벤트 ‘GG투게더’가 뜨거운 호응 속에 막을 내렸다. 연합뉴스 제공
▶‘20년 역사’ 스타-스타리그의 부흥과 쇠락

과거 ‘어린이, 불량 청소년, 폐인들이나 하는 것’이라는 부정적 인식이 팽배했던 게임을 하나의 문화이자 예술, 국가의 경제 산업 분야로까지 성장시킬 수 있었던 데에는 스타의 역할도 상당히 컸다.

실제 프로게이머가 CF 스타로 거듭나거나 청와대로까지 초청되는 상상도 못했던 일이 실현됐고, 대기업을 뿌리로 두고 있는 게임단을 넘어 공군 상무팀이 리그의 부흥을 등에 업고 창설되기도 했다. 최대 10만 여명의 관중 앞에서 수천만원의 상금을 건 대회가 열리는 일도 있었다.

그러나 영원할 것만 같았던 스타의 열기도 약 20년의 세월이 흐른 현재는 상당히 잠잠해진 편이다. 특히 2010년 승부조작 사건이 터지면서 급격한 쇠락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이후 공식리그가 하나씩 문을 닫은 가운데 최근 몇 년 동안에는 대부분 인터넷 방송 등을 통한 소규모 리그 정도로 그 명맥이 겨우 유지되고 있다.

어느덧 다양한 장르의 타 최신 게임들이 스타의 옛 영광을 대체해나갔다. 세계적 시장은 점차 확산되고 있는 추세지만 한국에서만큼은 과거 스타리그 시절을 뛰어넘는 e스포츠 황금기 부활이 결코 쉽지 않은 분위기다.

추억의 프로게이머들과 중계진이 모처럼 한 자리에 모였다. 연합뉴스 제공
▶옛 추억과 새 기술의 만남

이같은 상황에서 e스포츠 팬들에게 과거의 향수를 자극하는 반가운 소식이 들려왔다. 스타를 출시한 블리자드 엔터테인먼트가 약 20여년 만에 4K UHD로의 그래픽 품질 향상 등 다양한 방법으로 게임을 업그레이드 시킨 것. 이미 스타2가 2010년 출시됐지만 이번에 발표한 작품은 본질적인 게임 구조를 그대로 보존했다는 점에서 스타 올드 팬들에게 더욱 친숙한 느낌을 심어줬다.

8월15일 스타 리마스터의 출시를 약 보름 앞두고 7월31일에는 과거 10만 관중을 불러 모은 ‘e스포츠의 성지’ 부산 광안리에서 런칭 이벤트 ‘GG투게더’가 열려 높은 관심을 집중시켰다.

특히 추억의 인물들이 대거 한 자리에 모였다. ‘살아있는 히드라’ 국기봉, ‘푸른 눈의 전사’ 기욤 패트리, ‘테란의 황제’ 임요환, ‘폭풍 저그’ 홍진호, ‘천재 테란’ 이윤열, ‘영웅’ 박정석, ‘혁명가’ 김택용, ‘폭군’ 이제동, ‘최종병기’ 이영호에 이르기까지 스타의 눈부신 역사를 함께 만들고 계승해온 9명의 전설적 프로게이머들이 무대에 초대됐다.

또한 스타리그 중계를 통해 수많은 어록을 탄생시킨 전용준 캐스터와 엄재경, 김정민 해설위원이 다시 한 번 마이크를 잡고 걸출한 입담을 뽐냈다.

현역 활동을 했던 시기, 이후 저마다의 행보에 따라 프로게이머들의 기량 차는 뚜렷했지만 컴퓨터 앞에 자리한 순간만큼은 모두가 승부사의 눈빛을 여지없이 드러내 팬들의 환호를 이끌어냈다.

임요환-홍진호의 ‘임진록’, 이영호-이제동의 ‘리쌍록’ 등 최고의 라이벌전이 모처럼 재현되면서 수많은 관중들을 열광시켰다.

단지 옛 향수만으로 현장에서 박수갈채가 쏟아졌던 것은 아니다. 프로게이머가 조작한 유닛들은 보다 화려해진 모습으로 가상 현실 속 전장을 누볐고, 고해상도 속 전투 장면에서도 다양한 효과들이 구현되며 감탄을 자아냈다. 과거의 추억과 새로운 기술이 한 자리에서 조화되는 역사적인 순간이었기에 행사의 의미가 더욱 컸다.

PC방에서 한 시민이 스타크래프트 리마스터 버전을 즐기고 있다.연합뉴스 제공
▶반짝 인기일까, 부활의 신호탄일까

이처럼 뜨거운 반응 속에서 향후 스타리그의 부활에 대한 기대감도 점차 부풀고 있다. 게임이 시대에 맞는 멋진 옷을 입은 만큼 신규 유저를 유입시킬 여지가 있으며 그 과정에서 새로운 실력자들이 등장할 수도 있다.

또한 런칭 행사에서 나타난 폭발적 관심이 꾸준히 이어진다면 가장 큰 난관이라고 할 수 있는 대회 스폰서 유치에도 힘을 얻을 수 있기 때문에 충분히 긍정적인 상황을 기대해볼만 하다.

그러나 반짝 효과에 머물 것이라는 의견도 만만치 않다. 실제로 가야할 길이 너무나도 험난하다.

종목은 다르지만 스타처럼 고도의 두뇌 싸움을 기반으로 하는 바둑의 경우 지난해 알파고-이세돌 9단의 대국이 전 세계적으로 뜨거운 관심을 집중시켰고, 실제 구글 뿐 아니라 바둑계에도 엄청난 홍보 효과를 안겼다. 한계를 가늠할 수 없는 인공지능의 등장으로 많은 이들이 충격에 빠지기도 했지만 우려와 달리 대국을 계기로 바둑이 선풍적인 인기를 얻었다.

하지만 냉정히 봤을 때 대중적인 관심이 지속적으로 이어졌다고 보기는 어렵다. 또한 올해 열린 알파고와 세계 1위 커제 9단의 대결은 일방적 결과가 일찌감치 예상되면서 이세돌 9단과의 첫 대전 때에 비해 열기가 식었다.

심지어 중국에서조차 당국 정책에 의해 인터넷 콘텐츠 플랫폼의 중계방송이 차단되는 일이 있었다.

스타 리마스터의 경우에도 추억의 프로게이머들이 다시 모였다는 점에서 화제는 됐지만 궁극적으로는 관심의 지속성이 스타리그 부활의 가장 중요한 열쇠다. 단순히 TV 앞에서 선수들의 경기를 시청하는 수동적인 모습 대신 컴퓨터 앞으로 새 유저들을 유입시켜야 하며, 후속 대회들을 철저한 준비 속에서 신속하게 유치하지 못할 경우 열기도 머지않아 식을 수밖에 없다.

또한 승부조작 사건이 쇠락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것은 사실이지만 오랜 세월이 흐르면서 스타리그에 드러난 또다른 문제점들도 있다. 프로게이머들의 기량이 인간으로서 보여줄 수 있는 한계치에 어느덧 도달하면서 초창기 때의 참신한 전략 전술이 아닌 정형화된 빌드 속 비슷한 패턴의 승부가 계속 반복된 것도 서서히 지루함을 더해갔다.

이번 리마스터 버전이 전략의 다양성을 이끌어낼 신규 유닛을 추가하거나 기존의 뼈대에 큰 변화를 준 것은 아니기 때문에 결국 동일한 한계에 부딪힐 가능성도 크다.

이 밖에 기존 스타리그의 인기를 주도했던 프로게이머 마지막 세대 상당수가 군 복무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점도 걸림돌이며, 블리자드 엔터테인먼트가 단지 게임 출시에 만족하지 않고 지속적인 관심과 운영을 이어가는 것도 상당히 중요한 일이다.

어느덧 20여 년의 역사를 걸어온 스타가 향후 20년 뒤에도 변함없이 많은 이들에게 사랑받을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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