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한국 이재호 기자] 포털 검색창에 ‘귀화’라는 단어를 쳐보자.

이용자 수가 가장 많다는 포털에서 ‘조나탄 귀화’라는 검색어가 가장 먼저 뜬다. 그 정도로 수원 삼성의 공격수 조나탄(27)의 귀화에 대한 관심이 높다.

하지만 냉정히 따져봐야 한다. 조나탄이 과연 다른 최전방 공격수 자원보다 뛰어난가. 물론 최근 3경기 7골을 넣은 모습을 보면 조나탄은 과장을 조금 보태면 크리스티아누 호날두와도 맞먹을 태세다.

그러나 시즌은 길고 꾸준한 모습이 우선이다. 단순히 몇 개월, 1년 잘하는 것을 넘어 오랫동안 높은 클래스를 보여주는 것이 필요하다.

조나탄 귀화설의 현실 가능성과 함께 축구계의 귀화 논란과 귀화선수를 훑어본다.

수원 삼성의 조나탄(왼쪽)과 신의손. 스포츠코리아 제공
▶브라질 출신의 조나탄, 득점 1위 질주

수원 삼성은 지난 19일 K리그 클래식 21라운드 전남 드래곤즈와의 홈경기에서 조나탄의 해트트릭으로 4-1 대역전승을 거뒀다.

조나탄은 후반 20분, 25분, 40분 잇따라 3골을 넣으며 가히 완벽에 가까운 기량을뽐냈다. 최근 3경기에서 무려 7골을 넣는 등 리그 16골로 득점 단독 선두에 올랐다.

조나탄은 뭘해도 가능했다. 공을 위로 띄운 뒤 그저 강하게 때려도, 사각지대에서 오버헤드킥을 해도 다 골이 됐다.

오죽하면 상대팀 전남 노상래 감독마저 경기 후 “잘 준비해도 막기 힘들었다. 후반전같은 상황을 내줬으면 안 된다. 조나탄은 피지컬, 스피드, 결정력 등 모든 게 잘 갖춰진 선수다”라며 혀를 내둘렀다.

경기 후 조나탄은 귀화문제에 대해 묻자 “따로 귀화를 위해 노력을 기울이지는 못했다. 제가 지금 하고 있는 것에 집중하고 있다”면서도 “좋은 활약을 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는 모른다”는 의미심장한 말을 남겼다.

▶조나탄의 귀화, 현실 가능성은?

그렇다면 귀화는 현실 가능성이 있을까. 먼저 귀화조건을 봐야한다.

FIFA에 따르면 귀화할 선수 또는 생물학적 부모 및 조부모가 해당국가에서 태어났거나, 본인이 18세 이후 해당국에서 최소한 5년을 지속적으로 거주해야 귀화가 가능하다.

또한 FIFA나 대륙 연맹 주관 대회가 아닌 친선경기에 출전했거나 연령별 대표팀에 출전한 기록만 있을 경우에 귀화가 가능하다. 단, 발탁 및 출전은 FIFA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

조나탄은 올해로 K리그 4시즌째다. 하지만 2015년 대구에서 챌린지 득점왕에 오른이후 다시 고국 브라질로 돌아가 6개월을 뛰다 2016년 여름이적시장을 통해 수원으로 복귀했다. 5년을 지속적으로 한국에 살았어야하는 조건에 미달인 것이다. 기본적으로 조나탄은 FIFA가 요하는 귀화조건에 부합하지 않는다.

물론 특별귀화가 있을 수도 있다. 단적인 예로 평창 동계올림픽을 준비하면서 아이스하키, 루지 등 한국이 약세로 있는 종목에 수많은 귀화 선수들이 태극마크를 달고 있다. 귀화 선수들은 실제로는 귀화조건에 전혀 부합하지 않는 선수지만 모두 국가대표가 되고 있다.

하지만 이는 매우 특수한 사례이며 국가적으로 밀어주기에 가능한 일이다. 평창 올림픽의 성공적 개최와 흥행을 위해 국가가 나서서 귀화에 적극적인 움직임이기에 가능하다.

조나탄이 이런 활약을 계속해서 이어간다면 모를까 국가가 나서서 조나탄의 귀화를 추진하기에는 명분이 부족하다. 당장 위기의 축구대표팀을 위해 선발하기에는 고작 한달 남은 시간이나 공론화 단계가 없어 현실성이 떨어진다.

성남에서 뛰었던 모따(왼쪽)와 전북에서 뛰었던 에닝요. 스포츠코리아 제공
▶조나탄 이전에 귀화설 나돌았던 외국인 선수

조나탄 이전에도 2000년대 중반 성남의 중흥기를 이끌었던 모따, 전북의 전성기를 시작케했던 에닝요 등 대단했던 외국인 선수들이 늘 귀화설에 올랐었다.

전남과 성남, 포항에서 뛰었던 모따는 2000년대 중반 성남의 전성기를 이끌었다. 당시 창간하는 한 축구잡지의 선수들을 상대로 한 설문조사에서 ‘최고 선수 1위’에 올랐다. 심지어 많은 선수들이 “모따가 왜 K리그에 있는지 모르겠다”고 했을 정도로 뛰어났다.

하지만 이미 국내에서 5년을 보낸 시점에서 20대 후반이었고 2009년에는 고작 2골만 넣는 등 기복도 보여 귀화로 이어지지 않았다.

전북에서 활약했던 에닝요의 경우 2008년부터 2012년까지 5시즌 연속 10골을 넣었고, 세 번의 10골-10도움 시즌을 해내기도 했다. 전북이 2009년 첫 우승을 시작으로 현재까지 ‘왕조’를 이어가고 있는데 에닝요가 입단한 시즌이 2009년이었다는 점은 의미심장하다.

이외에도 샤샤, 라돈지치 등 많은 외국인 선수들이 귀화설이 있었지만 현실적인 조건뿐만 아니라 아직 유색인종과 ‘단일민족’이라는 생각을 가진 국민정서를 뛰어넘지 못한채 현재까지도 귀화 국가대표는 축구에 나오지 않고 있다.

▶신의손, 데니스, 이싸빅 등 K리그 통해 귀화한 선수들

‘귀화설’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실제로 귀화한 사례도 있다. 축구선수로 귀화 1호 선수는 그 유명한 ‘신의손’이다.

러시아 국적의 발레리 사리체프는 1992년 처음 K리그에 등장한 이후 1999년 잠시의 공백기를 제외하고 무려 12시즌이나 한국에서 뛰었다. 실력이 워낙 압도적이었고 1993, 1994, 1995 일화의 전대미문 3연속 우승의 핵이었다.

너무나도 실력이 뛰어났기에 현재까지도 이어져오고 있는 ‘외국인 선수는 골키퍼로 쓸 수 없다’는 K리그의 외국인 선수 조항이 신의손 때문에 나오기도 했다.

2000년 이미 귀화조건을 충분히 갖춘 상태에서 귀화했고 신의손은 이후 한국인 선수 자격으로 K리그에서 뛰기도 했다. 그러나 이미 2000년 귀화 당시 40세의 나이였기에 대표팀이 되기엔 모자랐다.

신의손은 은퇴 후 2012 런던 올림픽 골키퍼 코치 등을 하며 현재는 여자축구 이천대교의 코치로 재직 중이다. 신의손의 경우 구리 신(申)씨의 시조이기도 하다.

2003년 성남에서 함께 귀화한 데니스와 이싸빅도 있다. 러시아의 데니스(데니스 락티오노프)와 크로아티아의 이싸빅(야센코 사비토비치)은 압도적인 실력으로 귀화했으나 귀화 당시 30대를 넘는 나이가 국가대표에 걸림돌이었다.

데니스의 경우 2002 월드컵을 앞두고, 이싸빅의 경우 2006 월드컵을 앞두고 대표팀 발탁 설이 돌았으나 모두 현실적 이유와 국민 정서를 넘지 못했다. 데니스의 경우 수원 삼성 유스팀인 매탄중학교 코치로 재직하기도 했고 이싸빅은 에이전트로 활동하며 국내 구단에 동유럽권 선수들을 수급하고 있다.

K리그 레전드에 뽑힌 신의손(왼쪽)과 에이전트로 변신한 이싸빅. 스포츠코리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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