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MA에서‘무패’, ‘극강’ 같은 호칭은 양날의 검이다. 더할 나위 없는 찬사인 동시에, 이 별명을 잃는 순간 걷잡을 수 없는 몰락이 찾아오곤 하기 때문이다.‘마지막 황제’ 예멜리야넨코 표도르(42·러시아), ‘경량급 표도르’ 미구엘 토레스, ‘여제’ 론다 로우지(31·미국), ‘사신’ 브렛 로저스(37·미국) 등이 그 예다. 이들은 모두 정점에서 당한 1패 후 끝도 없는 추락을 경험했다.

한때 무패를 달렸던 크리스 와이드먼(34·미국)과 켈빈 가스텔럼(27·미국) 역시 이들과 같은 길을 걸을 위기에 처했다. 미들급 타이틀을 세 차례나 방어했던 와이드먼은 최근 3연패를 기록하며 대권 경쟁에서 한참 밀려났다. TUF 시즌 17을 우승하고 UFC 5연승을 달렸던 게스텔럼은 잦은 계체 실패와 한 끗 차이 패배에 발목 잡혔고, 지난 4월에는 대마초가 검출되는 굴욕을 겪었다.

그리고 처지가 비슷한 이 두 선수는 이제 서로를 제물로 삼아 부활을 노린다. 오는 23일, 와이드먼과 가스텔럼은 UFC On FOX 25의 메인이벤트에서 맞붙는다. 이 경기에서 진다면 타이틀전에 다시는 도전하지 못할 수 있는 만큼, 그 어느 때보다 치열한 대결이 예상된다. 과연 누구의 ‘무패 징크스’가 더 강력할 것인가.

크리스 와이드먼. ⓒAFPBBNews = News1
단단하고 강하다, 와이드먼

와이드먼은 거대하다. 앤더슨 실바(188cm), 루크 락홀드(191cm), 게가드 무사시(185cm) 등 최근 대진 상대들이 워낙 커 그렇게 티가 나지 않았지만 와이드먼 역시 188cm의 장신이다. 리치는 198cm, 평소 체중은 100kg 내외로 알려져 있다. 웰터급 출신인 데다 지금까지 상대한 선수 중 가장 작은(175cm) 게스텔럼을 상대로 이는 확실한 이점이다.

와이드먼은 전형적인 미국 대학 레슬러식 웰라운드 스타일을 구사한다. 이런 좋은 신체능력을 바탕으로 기본기에 충실하니 상대 입장에서는 공략하기 까다롭다. 필살기는 없으나 ‘너도 약점 하나는 있겠지’라고 말하듯 정직하게 두드리며 아킬레스건을 찾는 그는 실히 공포스럽다. 그 과정에서 수반되는 위험은 신체능력으로 무마시키기 일쑤다.

이 같은 운영은 상당한 인내심을 필요로 하는데, 와이드먼은 상대의 리듬이나 도발에 말려들지 않는 훌륭한 멘탈을 갖고 있다. 앤더슨 실바의 도발을 완전히 무시하고 결국 KO시킨 경기가 그 예다. 뿐만 아니라 전략 이행능력까지 뛰어나 상대에 맞춰 자기 무기를 적절히 쓸 줄 안다. 이쯤 되면 뚜렷한 단점이 없는 선수라 하겠다.

유연하고 빠르다, 가스텔럼

반면 가스텔럼은 ‘완벽’과는 거리가 있다. 대신 그를 보면 ‘재능’이라는 말이 떠오른다. 광속 타격으로 유명한 비토 벨포트(41·브라질)를 제압하는 펀치스피드, 강한 완력과 그에 맞지 않는 유연함, 어떤 주먹도 아무렇지 않게 흘려버리는 턱, 탁월한 운동신경 그리고 장기전도 끄떡없는 강철 체력까지. 단신이라는 점만 제외한다면 그야말로 축복받은 신체라고 할 수 있다.

그중에서도 가장 무서운 부분은 언제 어떤 타격을 내야 하는지 아는 동물적인 감각이다. 얼핏 보기엔 가스텔럼은 원투 후 훅 연타 콤비네이션으로 일관하는 단순한 펀쳐다. 하지만 그는 절묘한 타이밍 감각과 센스로 타격을 대부분 적중시킨다. 어퍼컷, 바디샷, 킥 등 여러 옵션은 자주 쓰지 않을 뿐 적재적소에 사용한다.

이런 감각적인 움직임은 그라운드에서도 마찬가지다. 가스텔럼은 스크램블(난전) 상황에서 햄스터처럼 몸을 움직여 유리한 포지션을 잡는데 능하다. 제이크 엘런버거(33·미국) 전은 그 진가를 볼 수 있는 경기다. 1라운드 막판 엘런버거가 그에게 스플렉스 테이크다운을 시도했으나, 그는 오히려 그립을 빠져나가 백마운트를 잡고 초크로 경기를 끝내버렸다.

켈빈 가스텔럼. ⓒAFPBBNews = News1
속도의 가스텔럼, 높이의 와이드먼

보통 파이팅 스타일이 완전히 다르다면 상성이 경기결과를 바꾸곤 한다. 당시 적수가 없던 료토 마치다(40·브라질)가 ‘한물갔다’던 마우리시오 쇼군(37·브라질)에게 덜미 잡힌 경기가 대표적이다. 당시 전문가들은 끊임없이 전진하는 쇼군이 극한의 아웃복서인 마치다에게 완전한 상성이라는 의견을 내놨다. 그렇다면 와이드먼 대 게스텔럼은 어떨까.

강한 육체의 아메리칸 레슬러라는 점에서 와이드먼과 가스텔럼은 얼핏 비슷해 보인다. 하지만 와이드먼은 압도적인 사이즈와 탄탄한 기본기로 ‘높은’ 기준을 강요하며, 가스텔럼은 신속한 공수교대와 스크램블로 ‘빠른’ 경기운영을 앞세운다. 두 선수의 스타일은 사이즈 차이만큼이나 판이하다.

스타일이 다른 만큼 서로를 공략할 무기 역시 확실하다. 가스텔럼은 웰터급에서도 작은 키로 미들급에 올라왔으며, 헤드무빙이 전혀 없다. 테이크다운 디펜스와 포지셔닝 능력은 정상급 레슬러라 보기엔 많이 부족하다. 한편 와이드먼은 체력문제를 노출했으며 뻣뻣한 움직임이 서서히 간파당하는 분위기다.

여기서 예상할 수 있는 시나리오는 크게 두 가지다. 전자는 와이드먼이 가스텔럼에게 잽과 원투로 데미지를 입히고 케이지에 찌그러뜨리는 그림이고, 후자는 가스텔럼이 빠른 템포의 공방으로 지친 와이드먼을 두들기는 각본이다. 워낙 극과 극의 가능성인 만큼 상성이 어떻게 작용할지는 미지수다.

크리스 와이드먼. ⓒAFPBBNews = News1
도박사, ‘속도’의 손을 들어주다

보통 이런 경우 전문가들은 ‘속도’보다는 ‘높이’의 승리를 점치곤 한다. 변수가 많고 통하지 않으면 완벽하게 망하는 ‘속도’에 비해, ‘높이’는 안정적으로 전투를 끌어가기 때문이다. 이번 대결에서도 마찬가지다. 현저한 사이즈 차이와 여태껏 겪어보지 못한 ‘진짜 미들급’ 초대형 유닛의 타격은 가스텔럼에게는 큰 난관이다.

그러나 이번 대결에서 북미 도박사들은 일제히 게스텔럼의 승률을 55~60%로 봤다. 와이드먼이 최근 신체능력 저하와 3연속 KO패로 분위기가 나쁘며, 반대로 가스텔럼은 미들급에서 진가를 발휘하고 있다는 점을 반영한 결과로 보인다.

실제로 가스텔럼은 미들급에서도 손꼽히는 파워 레슬러 팀 케네디(39·미국)을 압도하며 잡아냈다. 와이드먼의 ‘높이’가 간파당한 지금이 젊은 가스텔럼이 잠재력을 폭발시킬 기회라 볼 여지도 충분하다. 과연 가스텔럼은 도박사들의 예상대로 가치를 증명할까. 아니면 전 챔피언이 연패를 끊으며 부활을 알릴까. 어느 쪽의 무패 징크스가 깨질지 주목된다. 스포츠한국 유하람 객원기자 droct8969@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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