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한국 이재호 기자]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고 변화하는 현대사회에서 ‘전통’이라는 가치는 잊혀지기 쉽지만 잊혀져서는 안될 중요한 가치인 것도 사실이다.다소 어렵고 복잡한 전통이라도 나름의 가치가 존재하고 그 전통을 지켜나갈 때 그 누구도 가지지 못하는 희소성과 특별함도 함께 따라오기 때문이다.

그러나 전통이라는 이름하에 부조리가 이어진다면 곤란하다. ‘예전부터 그래왔으니까’라는 말보다는 왜 예전부터 그래왔는지, 그리고 이것이 현재에는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생각해볼 필요도 분명 있다.

스포츠에서도 각 종목, 대회마다 전통이 존재한다. 역사가 오래된 스포츠일수록 전통에 대한 규율도 엄격하고 그 전통이 자랑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하지만 이 전통 중에는 현대의 ‘자유분방함’과는 대척돼 충돌을 일으키는 것도 있다. 바로 ‘하얀색’만 고집하는 윔블던과 메이저리그 뉴욕 양키스의 수염 금지다.

양키스 입단 후의 박찬호(왼쪽 상단)와 양키스 입단 전의 박찬호(오른쪽 상단), 하단은 윔블던 테니스대회에 출전해 하얀 경기복을 입은 선수들. ⓒAFPBBNews = News1
▶속옷까지도 하얀색 입으라는 윔블던의 ‘하얀색 전통’

테니스하면 선수들의 복장은 일반적으로 ‘흰색’을 떠올리게 된다. 1884년 윔블던 테니스에서 첫 여자단식 챔피언 영국의 모드 왓슨의 흰색이 상징적으로 기억되기 때문. 과학적으로도 잔디의 초록색과 산뜻하게 잘 어울려 잔디코트의 주조색으로 인정받았기도 하기에 테니스와 흰색을 뗄레야 뗄 수 없다.

하지만 시대가 변하고 개성이 다양해지면 흰색이 아닌 여러 색의 테니스복장이 등장했다. 이제는 흰색이 아닌 테니스복과 장비들은 당연시되고 있다. 그럼에도 세계 4대 메이저 대회인 윔블던 테니스는 여전히 ‘흰색’ 규정을 전통으로 여기고 이를 엄격히 제재하고 있다.

2013년 대회때 로저 페더러는 주황색 테니스화를 신었다 대회사의 지적을 받고 하얀 테니스화로 갈아 신은 바 있는데 이는 약과다. 올해는 비너스 윌리엄스가 1회전 경기 중 분홍색 브래지어끈이 경기 중 하얀 옷에 옆으로 흘러나왔고 경기는 바로 중단돼 속옷을 갈아입어야했다. 오죽하면 1986년까지 테니스공마저 하얀색만 가능했던 윔블던이다.

윔블던 측도 시대에 따라 이 흰색규정을 변화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도 그럴 것이 1963년 ‘주로(Predominantly) 흰색 유니폼을 입어야 한다’는 룰을 발표했고 1995년에는 ‘대부분(Almost) 흰색 유니폼을 입어야 한다’는 룰로 수정했다.

완화되는가 했지만 2014년에는 ‘속옷 역시 흰색이어야 한다. 보이는 부분은 모두 마찬가지다. 땀에 의해 비치게 되는 부분도 다 흰색이어야 한다’고 복장 규정 9항을 신설하며 다시 전통을 지키자는 주의로 돌아섰다.

1950년대 윔블던 테니스의 모습. ⓒAFPBBNews = News1
▶수염이 개성? 깔끔한이 더 중요하다는 양키스

뉴욕 양키스 역시 독특한 전통이 있다. 바로 소속 선수의 수염과 장발을 인정하지 않는 것. 깔끔함을 중시하는 오랜 전통으로 그 어떤 개성 강한 선수들도 양키스라는 세계 최고의 야구팀에 입단하기 위해서는 모두가 따라야만 하는 조건이다.

양키스의 ‘보스’ 조지 스타인브레너 전 구단주는“양키스를 사는 것은 모나리자를 사는 것과 같다. 모나리자를 싸구려 액자 속에 넣을 수는 없는 것 아닌가”라며 몸값에 맞는 품위와 모습을 강조해왔다.

그러다보니 무시무시한 강속구와 직설적인 말로 유명했던 ‘빅유닛’ 랜디 존슨도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를 떠나 양키스에 입단할 당시 장발과 수염을 모두 밀었다.

제이슨 지암비, 자니 데이먼 등도 턱수염과 장발이 그 선수를 상징하는 아이콘이었지만 양키스 입단과 동시에 싹 정리했다. 브라이언 윌슨이라는 턱수염으로 유명했던 불펜투수가 FA시장에 나오자 양키스는 대놓고 ‘영입대상에서 제외한다’고 했을 정도다.

박찬호 역시 마찬가지였다. 2009년 필라델피아 필리스에서 뛸 때만 해도 턱수염이 무성했지만 2010년 한국인 최초의 양키스 입단을 하자 스프링캠프에서 수염을 깔끔하게 밀고 나타났다.

좌완 불펜 앤드류 밀러의 양키스 입단 후(왼쪽)의 모습과 퇴단 후의 모습.ⓒAFPBBNews = News1
▶전통인가 개인의 자유 뺏는 악습인가

이처럼 윔블던과 양키스는 세계 최고라는 권위가 있기에 이런 독특한 전통을 고수해올 수 있었다. 하지만 현대 들어 이 전통에 대해 반박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고 볼멘소리가 나오고 있기도 하다.

윔블던에 출전했던 로저 페더러는 “이것도 안 되고, 저것도 안 된다니, 선수들로서는 선택의 여지가 없어서 살짝 유감이다”라고 속내를 드러내기도 했다.

엄밀히 따지면 논리적 이유가 없는 전통이기도 하다. 선수들에게 흰색을 입어야한다는 스트레스보다 자유롭게 유색 복장을 입는 훼방감이 더 좋은 경기력을 이끌어낼 수 있다. 양키스 역시 수염과 경기력의 관계가 존재할 리가 만무하며 수염을 기르면 깔끔하지 않다는 논리조차 어불성설임을 일반 상식적으로 모두가 알고 있다.

스코틀랜드 세인트앤드루스 로열에이션트 골프장에는 260년동안 '개 또는 여성은 출입 금지'라는 푯말이 있었고 미국 오거스타 내셔널 골프클럽에도 ‘골퍼는 백인, 캐디는 흑인’이라는 전통아닌 전통이 있었다.

하지만 로열에이션트 골프장은 2014년 여성 회원을 받아들였고 오거스타 골프클럽도 1997년 흑인 골퍼 타이거 우즈가 백인 캐디와 함께 마스터스 챔피언에 등극했다.

이처럼 누가 봐도 불합리한 전통 아닌 전통은 자연스레 깨지고 있다. 과연 윔블던의 하얀색 규정과 양키스의 수염과 장발 금지 규정은 언제까지 지켜질 수 있을까. 단순히 ‘예전부터 그래왔으니까’가 아닌 ‘왜 그렇게 해왔고 현재에는 어떠한지’를 생각할 때 전통은 더 단단하고 오래 지켜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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