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한국 김명석 기자] 지난 5월, 축구장에 ‘낯선’ 풍경이 펼쳐졌다.

아르헨티나와 잉글랜드의 2017 국제축구연맹(FIFA) U-20 월드컵이 열린 전주월드컵경기장이었다. 경기가 한창이던 후반 33분, 주심이 경기를 일시 중단시켰다. 선수들도, 관중들도 어리둥절해하던 순간, 전광판에 ‘비디오 판독중’이라는 문구가 떴다. FIFA 주관대회 사상 두 번째로 시범 도입된 비디오 판독 시스템(VAR·Video Assistant Referee)이 실시되는 순간이었다.

주심은 영상판독구역으로 다가가 문제의 장면을 확인한 뒤 아르헨티나의 라우타로 마르티네스를 향해 레드카드를 꺼냈다. 상대 수비수의 얼굴을 팔꿈치로 가격한 것에 대한 판정이었는데, 이를 보지 못한 주심이 VAR의 도움을 받아 뒤늦게 판정을 내린 것이다. 오심으로 남을 수 있었던 상황이 VAR을 통해 ‘바로잡힌’ 장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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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계에 불기 시작한 ‘변화의 바람’

앞선 상황이 낯설었던 이유는, 다른 종목들과는 달리 축구는 그동안 비디오 판독이 진행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필요성은 거듭 제기되어 왔으나, 축구계는 경기 흐름을 끊을 수 있다는 우려와 심판의 권위 하락 등을 이유로 보수적인 자세를 취해왔다. 이 과정에서 심판들의 오심은 ‘경기의 일부’라는 표현 속에 정당화됐다.

다만 잦아들지 않는 오심논란, 그리고 기술의 발전과 맞물려 축구에도 비디오 판독 도입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더욱 거세지기 시작했다. 결국 지난해 축구 규정과 경기방식을 결정하는 협의체인 국제축구평의회(IFAB)를 통해 VAR 도입이 승인됐다. FIFA, UEFA(유럽축구연맹) 등도 각종 대회를 통해 VAR을 시범적으로 운영키로 했다.

국내에서 개최된 U-20 월드컵에서도 VAR이 시범 운영됐다. FIFA에 따르면 52경기 가운데 총 15차례 VAR이 시행됐고, 12차례의 판정이 번복됐다. 오프사이드 판정을 받아 득점이 취소되거나, 뒤늦게 페널티킥이 선언되는 등 심판이 놓친 결정적인 장면마다 VAR이 힘을 발휘했다. FIFA는 “VAR을 통해 7경기의 결과가 바뀌었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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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AR 방식, 다른 종목과는 다르다?

VAR은 기존의 4명의 심판진(주심·부심2명·대기심)에 2명의 비디오 심판이 추가돼 진행된다. 비디오 심판은 비디오 판독 시스템 운영실에서 영상을 분석하는 역할을 맡는다.

판독은 ▶득점 장면 ▶페널티킥 선언 ▶퇴장(레드카드) ▶다른 선수에게 카드를 줄 경우에만 시행된다. 주심은 앞선 4가지 장면에 한해 직접 VAR을 요청하거나, 반대로 비디오 심판진이 주심에게 권고할 수 있다. 단, 앞선 4가지 장면이라 할지라도 VAR은 필수가 아니다. 시행 여부에 대한 최종 결정은 주심에게만 있다.

VAR을 시행하기로 결정하면, 주심은 손으로 귀를 가리켜 VAR 진행 여부를 알려야 한다. 그런 다음 영상판독구역에서 직접 화면을 확인하거나, 비디오 심판들과 무전을 통해 의견을 주고받아 판정을 결정한다. 이후 VAR에 따른 판정 변경 내용이 있을 경우, 주심은 손으로 네모를 그리는 제스처를 통해 이를 알린 뒤 판정을 정정한다.

모든 권한이 주심에게만 있다는 점에서 다른 종목과는 차이가 있다. 감독이나 선수 등은 VAR을 요청할 수 없다. 만약 비디오 판독을 요구할 경우 경고를 받는다. 영상판독구역에 접근하면 퇴장까지도 당할 수 있다. 다른 종목은 감독에게 요청할 수 있는 권한이 있고, 정심과 오심 여부에 따라 권한을 유지하거나 잃게 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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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리그 7월 도입… 현장 목소리 ‘긍정적’

VAR은 K리그에서도 볼 수 있다. 한국프로축구연맹은 10억원 가까이 투자해 7월 1일부터 프로축구 K리그 클래식(1부리그) 전 경기를 대상으로 VAR을 도입하기로 결정했다. “판정에 대한 항의를 줄이고 신뢰성을 확보해 존중과 신뢰를 회복하겠다”는 취지에서다. 당초 내년 도입 예정이었으나, 시즌 초반부터 오심 논란이 거듭 불거짐에 따라 도입 시기를 앞당겼다. K리그 챌린지(2부리그)는 기반 상황이 갖춰지는 대로 도입될 예정이다.

도입 전 오프라인 테스트에서는 이미 합격점을 받았다. 연맹 측은 “37경기에서 진행된 테스트를 통해 16차례의 오심을 발견했다”면서 “평균 판정 시간은 20초였다. 특히 페널티킥이나 득점 상황 등 승패에 영향이 있는 판정은 100% 판독했다”고 설명했다.

현장 목소리 역시 대체로 긍정적이다. 황선홍 FC서울 감독은 “필요한 제도다. 모든 팀에게 공평하게 적용될 수 있다. 심리적으로도 안정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최윤겸 강원FC 감독도 “축구 흐름에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판정시비 등이 아무래도 줄어들 것 같다. 선수나 구단, 감독들도 적극적으로 따라야 한다”는 의견을 밝혔다.

국내 다른 프로스포츠에는 일찌감치 비디오 판독이 도입됐다. 2007년 프로배구를 시작으로 2009년 프로야구, 2014년 프로농구가 비디오 판독을 통한 오심잡기에 나섰다. 시스템이나 문화 역시 발전을 거듭하고 있다. 예컨대 홈런-파울 판정에 한해 비디오 판독을 진행하던 프로야구는 올해 미국 메이저리그(MLB)처럼 비디오 판독센터를 설치했다. 프로배구는 비디오 판독이 진행될 때 긴장감 넘치는 음악을 트는 등 하나의 문화로 자리 잡았다.

다른 종목들 역시 흐름은 끊길지언정, 결정적인 오심을 최소화할 수 있는 장치라는 점에서 긍정적인 평가를 받고 있다. K리그를 비롯해 축구계가 VAR을 도입한 배경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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