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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한국 김성태 기자]포털 사이트에 익숙한 이름이 도배가 됐다. 무엇보다 충격적인 것은 바로 사진이었다. 동공이 풀리고 초점이 흐린 눈동자와 헝클어진 머리, 그리고 정돈되지 않은 수염까지 누가 봐도 정상적인 몸 상태는 아니었다. 사진 속 인물은 바로 '골프황제' 타이거 우즈(41)였다.

지난달 30일(이하 한국시간) 우즈는 음주, 또는 약복 복용 운전 혐의를 받고 경찰에 체포됐다. 그가 몰고 있었던 최고급 벤츠 차량은 곳곳에 긁힌 흔적이 많았고 운전석 앞과 뒤쪽의 타이어는 모두 찢어져 있었다. 심지어 차량의 앞 범퍼는 충격에 의해 내려앉은 상태였다.

우즈는 경찰 조사에서 "음주가 아닌 허리 수술 후, 통증으로 인해 병원에서 처방을 받은 약을 복용한 것 뿐이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그가 복용한 약 가운데는 허리통증에 효과가 있는 진통제의 일종이자 중독성이 강한 바이코딘이라는 약이 포함되어 있었다. 과도한 약물 복용으로 인한 사고, 그렇게 한 시대를 풍미했던 최고의 선수는 나락으로 빠졌다.

세계 최고의 슈퍼스타, 우즈가 골프였다

골프는 몰라도 타이거 우즈라는 이름은 안다. 트레이드 마크였던 빨간 셔츠와 유명브랜드의 로고가 새겨진 모자는 불티나게 팔렸다. 그가 사용하는 골프공과 드라이버는 연일 매진 사례를 이루며 골퍼들의 사랑을 받았다. 물론 스타성에 국한되지 않는다. 실력 또한 최고였다.

우즈가 메이저대회에서 들어올린 우승 트로피만 무려 14개다. 이를 포함해 미국프로골프(PGA)에서 그가 집으로 가져간 우승 트로피는 모두 79개다.

화려한 우승 경력에 걸맞게 그가 따낸 상금 또한 어마어마하다. 미국의 한 매체인 비즈니스 인사이더에 의하면 우즈가 PGA 투어에서 챙긴 상금의 총액은 무려 1억 1010만달러(약 1244억 3502만원)라고 한다

거기에 유러피언 투어 상금 4570만 유로(약 552억 6401만원)까지 합치면 대략 1억 6000만달러(약 1800억)에 이른다. 끝이 아니다. 그가 받은 협찬이나 광고 계약까지 포함하면 그가 벌어들인 금액은 상상하기 힘들 정도였다.

소수 백인 상류층의 전유물이었던 골프는 그렇게 우즈로 인해 전 세계적인 인기 스포츠로 자리잡았고, 그는 세계랭킹 1위의 자리를 무려 683주나 차지할 정도로 실력과 스타성을 겸비한 최고의 선수가 됐다. 너도나도 우즈가 되고 싶었고, 그의 플레이를 보고 싶었다.

나이키골프제공
전설의 시작, 역시 마스터스였다

지난 1997년 4월, 21살의 젊은 우즈는 US아마추어선수권대회 챔피언 자격으로 4월 10일부터 13일까지 나흘간 열린 제61회 마스터스에 참가했다. 디펜딩 챔피언이자 60회 마스터스 우승자였던 닉 팔도와 같은 조에 편성된 우즈는 팔도의 입을 쩍 벌리게 만드는 완벽한 플레이로 1라운드 2언더파 70타로 첫 날을 마무리 했다.

본격적인 스타탄생의 서막은 다음날이었다. 2라운드에서 6언더파 66타를 기록, 중간합계 8언더파 136타로 대회 첫 선두로 나섰다. 멈추지 않았다. 그는 3라운드에서 7언더파 65타를 기록하며 경쟁자를 따돌렸다. 3라운드까지 중간합계 15언더파 201타를 기록, 6언더파 201타의 2위와의 격차를 9타 차이로 벌리는데 성공했다.

대망의 13일, 우즈는 마지막 4라운드에서 3언더파 69타를 적어내며 최종합계 18언더파 270타로 우승을 차지했다. 그렇게 우즈는 21세 3개월 14일 역대 최연소의 나이로 마스터스의 상징인 '그린재킷'을 입었다. 그리고 2개월 후, 그는 세계랭킹 1위에 오르며 자신의 이름을 전 세계에 알리게 됐다. 바로 전설의 시작이었다.

골프황제에서 스캔들의 황제로 변신

1997년의 마스터스 우승을 시작으로 그는 2001, 2002, 2005년에도 그린재킷을 입었다. 이후 US오픈과 PGA챔피언십, 브리티쉬 오픈까지 꾸준히 타이틀을 획득하며 승승장구 했던 우즈의 전성기는 영원히 이어질 것이라 봤다.

하지만 2008년, 무릎 부상이라는 악재가 찾아오면서 먹구름이 드리우기 시작했다. 그리고 2009년, 우즈 인생의 가장 큰 시련인 '불륜 스캔들'이 터지면서 세간이 시끄러워졌다. 한 잡지의 기사에 우즈의 불륜설이 실리자 아내가 분노해 우즈와 다투게 됐고, 부부싸움으로 번지면서 일이 커졌다.

진짜 문제는 그게 아니었다. 이곳저곳에서 '나도 우즈의 사랑을 받은 여자'라며 그와 내연관계였다고 주장하는 여성들이 등장했다. 그 수가 10명이 되더니 나중에는 20명에 육박했다. 슈퍼스타의 불륜은 최고의 이슈였다. 여기저기서 그의 사생활이 담긴 기사가 쏟아졌고 그는 다른 의미의 스타가 됐다.

그렇게 골프 선수 우즈가 아닌 바람의 대명사 우즈로 사람들의 입에 오르락 내리락 하게 됐고, 우즈는 그동안 쌓아온 명성을 한 순간에 잃게 됐다. 결국 이혼도 했다. 스웨덴 모델 출신의 아내 엘린 노르데그렌과 헤어지면서 위자료만 무려 1억 달러(약 1120억)를 내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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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깐의 부활, 그리고 다시 나락

사생활과 실력은 별개였을까? 시간이 지나면서 우즈의 스캔들도 점차 조용해지는 듯했다. 그리고 2012년 PGA투어 아놀드파머인비테이셔널에서 30개월만에 우승을 차지하며 부활의 신호탄을 쐈다.

2013년 세계랭킹 1위에 다시 올라섰고 그 해에만 PGA투어에서 4승을 기록, 통산 79승을 달성했다. 하지만 2013년 8월에 열렸던 브리지스톤 인터내셔널을 끝으로 우즈의 우승 소식은 더이상 나오지 않았다. 고질병이었던 허리 부상이 다시 재발했다.

젊은 시절부터 끊임없는 훈련과 투어 참가라는 반복된 일정은 그의 허리와 무릎을 망가뜨렸다. 기약 없는 재활의 반복은 그를 계속 지치게 했다. 올해는 반드시 부활을 다짐하고 투어에 도전했지만 연달아 컷 탈락의 수모를 겪으면서 고개를 숙였다.

올해 마스터스 대회 역시 참가하려 했지만 끝내 무산됐다. 결국 2014년 4월, 2015년 9월과 10월, 올해 4월까지, 총 네 번의 허리 수술을 받은 것이 타격이 컸다. 오랜 기간에 걸친 슬럼프로 인해 그의 기량은 다시 회복되기 힘들었다. 어찌보면 은퇴를 생각할 수 있는 시점이 분명했다. 그럼에도 우즈는 여전히 자신이 할 수 있다고 믿었다.

재기에 대한 무리한 의지는 과도한 훈련과 연습으로 이어졌고 과다한 약물 복용 상태에서 운전을 한 혐의로 연결되며 체포까지 당했다. 스캔들에서 시작해 허리부상, 그리고 약물 복용까지, 그렇게 우즈는 추락에 추락을 거듭했다. 그는 오는 7월 5일 정식 재판대에 선다. 그 때까지 우즈의 선수 복귀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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