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한국 박대웅 기자] 한국 프로농구 역사의 산증인이 농구공을 손에서 내려놓는다. 1997년 프로 출범 당시 연습생으로 입단해 이듬해부터 매시즌 코트를 지켜왔던 주희정(40)이 고심 끝에 은퇴를 결정했다.

주희정은 지난 18일 KBL 센터에서 은퇴 기자 회견을 열고 그동안 선수로서 걸어온 다사다난했던 농구 인생을 뒤돌아봤다.

2000~01시즌 챔피언결정전 MVP에 등극한 주희정의 풋풋했던 모습. KBL 제공
주희정은 “언젠가는 은퇴를 할 것이라는 막연한 생각 속에서도 농구가 좋았기 때문에 농구에 미쳐 지금껏 해왔다”며 “이제는 과거가 된 일들이지만 항상 부족한 점을 채우고 성장하기 위해 스스로를 채찍질했다. 눈물 나게 힘든 순간에도 나 자신과의 싸움을 이겨내기 위해 이 자리까지 왔다. 때문에 농구선수로서의 인생에 후회는 없다. 항상 최선을 다해왔다”고 지난날을 돌이켰다.

또한 그동안 함께 해온 지도자들을 비롯해 선후배, 동료, 구단 및 KBL 관게자들에게 차례로 감사의 인사를 전한 뒤 특히 오랜 시간 응원해준 팬들, 너무나 아끼고 사랑하는 가족, 돌아가신 할머니 등에게도 고마움을 잊지 않는 모습을 보였다. 이 과정에서 주희정은 눈물을 쏟아내며 “눈을 감는 순간까지도 농구에 대한 열정을 놓을 수 없을 것 같다”고 밝혀 주위를 숙연하게 했다.

농구공을 처음 잡은 초등학교 4학년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무려 30년 동안이나 농구 인생을 걸어왔고, 특히 이 가운데 프로에서만 20년을 뛰었다. 데뷔 초창기 파릇파릇했던 그에게 붙었던 ‘테크노 가드’라는 별명 속에서 얼마나 많은 세월이 흘렀는지를 실감할 수 있다.

주희정은 철저한 자기 관리와 끊임없는 노력으로 2008~09시즌 정규리그 MVP를 거머쥐었다. KBL 제공
농구대잔치 시절에는 일반적으로 30대 초반이면 노장으로 분류됐고, 은퇴를 해도 이상할 것이 없었다. 프로 출범 이후 역시 선수 관리가 과거보다 철저해진 것은 사실이지만 격렬한 몸싸움이 필요한 농구의 경우 타 스포츠와 비교했을 때 여전히 선수 수명이 짧은 종목이다. 주희정과 비슷한 또래 대부분이 코치, 심지어 감독직까지 맡고 있음을 감안하면 그동안 자기 관리가 얼마나 철저했는지 알 수 있다.

주희정이 남긴 통산 기록 중 일부는 불멸로 남을 가능성도 상당히 높다. 먼저 20시즌 동안 이룬 1029경기 출전은 도전할 엄두조차 내기 어려운 기록이다. 주희정 스스로도 가장 애착있는 기록으로 꼽은 것이 바로 1000경기 출전이었다.

그는 데뷔 이후 단 15경기만을 결장해 98.6%의 출전률을 기록했으며, 2012~13시즌까지는 출전률이 99%(820경기 출전, 8경기 결장)를 돌파하기도 했다.

정규시즌 54경기씩 19시즌을 모두 채워도 1029경기에 도달하지 못하기 때문에 최소 20년 간 선수 생활을 해야만 바라볼 수 있는 기록이다. 출전 경기수 역대 2위에 올라있는 추승균의 738경기와 비교해도 격차가 어마어마하다.

이밖에 주희정은 플레이오프까지 포함할 경우 1100경기를 정확히 채웠을 뿐 아니라 통산 출전시간도 3만1349분39초에 달한다. 평균 30분 이상을 출전했음에도 큰 부상이 없었고, 수많은 잔부상은 묵묵히 참고 뛰었다.

주희정은 고려대 중퇴로 프로 진입이 빠른 편이었고, 개인 사정으로 군 면제를 받은 특수성까지 있다. ‘고교 루키’ 송교창 정도를 제외하면 현역 가운데 주희정의 출전 경기수 기록을 꿈꿀 수 있는 선수조차 존재하지 않는다.

통산 1000경기 출전의 금자탑을 쌓은 주희정. 스스로도 가장 의미를 부여하는 기록이다. KBL 제공
단순히 오래 뛴 것만이 그가 남긴 발자취의 전부는 아니다. 주희정은 포인트 가드로서 가장 중요한 기록인 어시스트에서도 5381개로 소위 ‘넘사벽(넘을 수 없는 사차원의 벽)’을 구축했다. 5000어시스트는 물론 4000어시스트를 돌파한 선수조차 주희정 외에는 찾아볼 수 없으며, 3000어시스트를 넘어선 선수 역시 이상민, 신기성, 김승현까지 단 3명 뿐이다.

프로 초창기까지만 하더라도 공격적인 성향이 강했고 강동희, 이상민, 김승현 등에 가려 리딩 능력에서는 높은 평가를 받지 못했던 주희정이다.

그러나 2006~07시즌 프로 10년 차에 뒤늦게 어시스트왕에 오른 그는 이후 4년 연속 이 부문 1위를 지켜냈고, 2008~09시즌에는 8.33개로 커리어 하이를 작성했다. 누적에서만 많은 주목을 받아왔지만 어시스트왕 4회 수상은 강동희, 김승현과 함께 역대 공동 1위에 해당되며, 4년 연속은 주희정만이 간직하고 있는 기록이다.

스틸 역시 1505개로 2위 김승현(917개)과의 격차를 상당히 벌렸다. 스틸왕은 단 두 차례 거머쥐었을 뿐이지만 30분 이상을 소화한 시즌 중 1.5스틸 밑으로 떨어진 적이 단 한 번도 없었을 만큼 꾸준한 모습을 선보였다.

1대1 수비에서는 상대가 볼을 내리는 순간을 절묘하게 파고들었고, 패스 흐름을 예측하는 노림수 역시 뛰어났다. 이러한 역량을 통해 데뷔 이후 3년 연속 수비5걸상을 받기도 했다.

주희정의 어시스트와 스틸은 NBA의 전설적 가드 존 스탁턴의 기록만큼이나 KBL 내에서 독보적인 영역을 구축하고 있다. 출전 경기수와 마찬가지로 기록이 깨지는 모습을 상상하기조차 어렵다. 이처럼 많은 어시스트와 스틸을 기록했음에도 실책(평균 1.4개)과 파울(평균 2.1개) 관리가 비교적 잘 이뤄졌다는 점이 더욱 놀랍다.

역대 1위는 아니지만 주희정의 3점슛 성공(1152개, 2위)과 리바운드(3439개, 5위) 역시 대단한 기록으로 평가받기 충분하다. 슈터나 빅맨이 아닌 포인트 가드로서 이룬 업적이기 때문이다.

특히 3년 차까지의 주희정은 단 한 번도 3점슛 성공률 30%를 돌파하지 못했을 만큼 외곽슛에 약점이 있는 선수였지만 해마다 끊임없는 노력으로 부족함을 보완했다.

그 결과 정규시즌 MVP를 차지한 2008~09시즌에는 평균 1.9개의 3점슛을 38.5%의 확률로 적중시켰으며, 커리어 통산 3점슛 성공률 역시 34.7%까지 끌어올리는데 성공했다.

리바운드는 빅맨들의 전유물이나 다름없는 항목이지만 외국인을 모두 포함해도 그보다 많은 리바운드를 따낸 선수는 단 4명 뿐이다. 국내 선수 중에서는 서장훈(5235개)과 김주성(4313개) 다음으로 높은 수치이며, 가드 중에서는 3000리바운드에 앞서 2000리바운드를 잡아낸 선수조차 주희정 외에는 없다.

특히 2006~07시즌에는 서장훈을 밀어내고 국내 선수 부문 리바운드 1위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180cm의 단신임에도 적극적으로 리바운드에 가담해왔고, 위치 선정 능력까지 뛰어났기에 도달할 수 있었던 기록이다.

이처럼 다방면에서 최고의 활약을 선보였기에 주희정은 통산 트리플 더블에서도 8회로 전체 공동 2위(국내 선수 1위)에 이름을 올렸으며, 평생 한 번 뿐인 신인상(1997~98시즌)을 시작으로 챔피언결정전 MVP(2000~01시즌), 정규시즌 MVP(2008~09시즌)와 같은 최고의 영광을 누리기도 했다.

이제 최고의 선수가 아닌 자랑스러운 아빠와 남편으로 돌아가지만 주희정의 농구 인생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KBL 제공
또한 전성기를 지나 선수 생활 말년에는 모범선수상(2회), 우수후보 선수상 등을 가져갈 만큼 주희정은 코트 위에서 언제나 돋보이는 존재였다. 비록 2016~17시즌 챔피언결정전 우승은 아쉽게 놓쳤으나 그는 마지막 순간까지 본인의 이름 석자를 농구 팬들에게 확실히 각인시켰다.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 주희정은 코트를 떠나는 순간 어느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열정과 땀방울이 새겨진 불멸의 기록들을 남겼다. 한때는 흔히 볼 수 있는 유형의 가드로 여겨졌지만 이제는 ‘제2의 주희정’에 근접할 가드조차 다시 볼 수 있을지 장담하기 어렵다. 그만큼 주희정이 KBL에 남긴 발자취는 위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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