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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한국 김성태 기자]"대체 한국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인가?"

한국에서 뛰다가 미국으로 돌아온 한 선수를 보고 놀라움을 금치 못한 현지 기자의 반응이다. 이런 감탄을 꺼내기에 부족하지 않다. 사실 리그의 수준 차이라는 것이 있었기에 큰 기대는 없었다. 하지만 이 정도로 잘해낼 것이라 생각하지 못했다.

특히나 한국 무대에서 최고의 모습을 보여준 선수들이 미국에서 가서 고전을 면치 못하는 것을 보면 더욱 납득이 간다.

그런데 생각 이상으로 잘해내고 있다. 좀 더 지켜볼 필요는 있지만 지금까지의 활약만 놓고 봐도 상당하다. 바로 메이저리그 밀워키 브루어스에서 뛰고 있는 에릭 테임즈(31)다.

시작은 다소 미미했던 평범한 '마이너리거' 테임즈
흔히들 테임즈를 두고 하는 말이 있다. '완전체'다. 타격과 주루, 수비까지 부족한 부분이 없다.

테임즈가 처음으로 메이저리그에 입성할 당시, 그는 가능성 있는 유망주 정도에 불과했다. 나쁘지 않았다. 빅리그 경험도 있었다. 181경기에 나서 타율 2할5푼 21홈런 62타점을 기록했다.

하지만 마이너리그에서 뛰던 시간이 훨씬 많았다. 모두 394경기에 나서 타율 3할5푼 53홈런 269타점을 기록했다. 마이너리그에서는 좋은 타자였지만 빅리그에서는 그저 그런 선수였다. 어차피 선수는 많으니 굳이 테임즈를 기용할 특별한 이유는 없었다.

자신은 있었지만 뛸 수 있는 곳은 없었다. 기회는 주어지지 않았고 개인적인 사정까지 겹쳤다. 테임즈는 맘고생이 심했다.

그러던 와중에 바다 건너 저 멀리서 연락이 왔다. 한국이라는 곳이었다. 그 중에서도 NC라는 구단이 적극적으로 영입에 나섰다.

당시 NC는 이종욱과 손시헌 등, 외부 FA 영입을 하면서 팀 전력을 한참 끌어올리고 있었다. 포지션 정리가 필요했지만 테임즈가 1루가 가능하다는 판단에 그를 과감하게 영입했다.

테임즈 역시 새로운 곳에서 다시 한번 야구 인생을 시작해보고 싶은 마음이 컸다. 당시 테임즈는 여자친구과 막 이별을 한 상황이었다. 야구도 맘대로 풀리지 않는데다 속상한 마음을 달랠 수 있는 길이 없었다. 그에게 한국은 도피로 시작됐다. 하지만 끝은 결코 도피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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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O리그를 정복한 괴물의 등장
시애틀의 외야수 넘버1 백업이자 메이저리그 40인 로스터에 포함된 선수였기에 NC 팬들의 기대는 컸다. 테임즈 역시 출전 기회가 보장되지 않은 마이너리그 생활보다 항상 주전, 그리고 4번 붙박이 타자로 매 경기를 뛸 수 있다는 안정감이 좋았다.

테임즈에게 한국은 그야말로 운명의 땅, 기회의 땅이었다. 김경문 감독은 그를 절대적으로 신뢰했다. 코치진 역시 테임즈가 최대한 편하게 야구를 할 수 있도록 배려에 배려를 더했다. 그렇게 2013시즌까지 속상한 마음에 집에서 보드카만 들이키고 있던 테임즈에게 2014시즌은 화려하게 달라졌다.

그 해, 테임즈는 타율 3할4푼3리(리그 8위) 152안타(13위) 37홈런(3위) 121타점(2위)을 기록했다. 역대 KBO리그에서 단일시즌 가장 많은 타점을 올린 롯데 호세(122타점)에 단 1점이 부족한 좋은 기록이었다. 팀 역시 가을야구에 진출하면서 테임즈는 그 다음 해에도 NC와 함께 했다.

2015시즌은 테임즈의 절정이었다. 기록만 쭉 나열해도 어마어마하다. 우선 아시아 및 한국 최초로 40(도루)-40(홈런)을 달성했다. 4번 타자의 유니폼이 그렇게 더러울 수 없었다. 대도' 전준호 코치의 지도를 그대로 흡수한 테임즈는 머리부터 슬라이딩을 하는 4번 타자로 활약하며 '빠른 발'이라는 무기까지 장착했다.

타격은 더욱 강해졌는데 발야구도 가능하니 제대로 진화했다. 기록만 언급해도 한참이 걸린다. KBO리그 통틀어 역대급 순위다. 타율 3할8푼1리(역대 4위), 180안타(역대 8위), 141타점(역대 4위), 130득점(역대 2위), 출루율 0.498(역대 2위), 장타율 0.790(역대 1위), OPS(장타율+출루율) 1.288(역대 1위) 등, 셀 수 없이 KBO리그 역대 기록을 모두 도장깨기 했다.

거기에 한 시즌에 두 번이나 사이클링히트(한 경기에서 1루타, 2루타, 3루타, 홈런)를 기록하는 등, 평범한 타자로서는 상상하기 힘든 여러 대기록을 남기기도 했다.

궁금하다. 미국에서는 평범한 마이너리거였던 테임즈가 한국에 와서는 어떻게 전설에 가까운 선수가 됐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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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이든 한국이든 야구는 결국 야구일 뿐이다
그가 언급한 성공의 비결은 바로 '적응력'이었다. 언어와 문화가 다르더라도 어차피 야구는 같다는 것이 그의 말이다.

테임즈는 하나를 더 붙인다. 바로 '루틴'이다. 그는 한국에 있을 당시, 처음에는 훈련량이 미국에 비해 많아서 고생을 했다. 하지만 자신에게 확실히 맞는 루틴을 찾아냈고 이를 끊임없이 되풀이 했다.

같은 시간에 일어나 대략 서너 군데의 식당에서만 식사를 하고 같은 시간에 같은 훈련을 반복해서 소화한다. 혹여나 슬럼프가 오거나 타격 밸런스가 맞지 않고 수비에서 연달이 실수를 하더라도 그는 심정적으로 흔들리지 않는다.

처음에는 별 것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방망이를 휘두르고 웨이트 트레이닝을 하고 스트레칭에 시간을 투자하는 등, 작은 부분을 하나하나 반복해서 하다보면 마음이 가라앉는다. 루틴이라는 습관을 통해 테임즈는 스스로를 컨트롤하고 이겨냈다.

그렇게 2016시즌에서 최소경기-최연소 100홈런을 기록한 그는 KBO리그에서 3년을 뛰며 통산 390경기에 나서 1351타수 472안타 타 율3할4푼9리 124홈런 382타점을 기록했다. 한국은 그에게 신세계였다.

그는 "한국으로 온 것은 정말 나에게는 운명과도 같은 일이었다"라고 자주 이야기했다. 그리고 2017시즌을 앞두고 그는 메이저리그 밀워키의 제안을 받게 된다.

KBO리그에서 보여준 인상적인 활약 덕분에 3년 1600만달러라는 금액을 받고 미국 무대로 돌아갔다. 사실 테임즈의 미국행은 일찌감치 예견됐다. 무엇보다 KBO리그에서 메이저리그 직행한 첫 외인 타자였기에 관심이 많았다. 물론 걱정도 함께였다.

과연 한국에서의 활약이 미국에서도 이어질 수 있을지 물음표가 나왔다. 하지만 그는 기대 이상을 해주고 있다. 22일 기준, 5경기 연속 홈런에 타율 4할1푼5리 홈런 8개 15득점 14타점 OPS 1.481 등, 각종 부분에서 리그 선두 및 상위권을 달리고 있다.

테임즈를 향한 좋지 않았던 시선은 이제 긍정적으로 돌아섰다. 아직 시즌 초반이기에 변수는 존재하지만 지금까지 그가 보여준 활약만 해도 기대 이상이다. 이미 밀워키 브루어스 역대 두 번째 5경기 연속 홈런 타자로 역사에 남았다.

테임즈는 미국에서 팔 및 정강이 보호대에 한글로 '테임즈'라는 글자를 새기면서 한국에서 뛰었던 시절을 잊지 않고 있다. 미국을 떠나 한국, 그리고 다시 미국으로 향해 성공가도를 달리고 있는 테임즈다. 역수출의 가장 좋은 사례가 여기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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