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한국 용인=이재현 기자] 프로 데뷔 이후 참가한 2번째 대회에서 당당히 삼천리 오픈 우승컵을 들어 올린 박민지(19·NH 투자증권). ‘대형신인’이라는 수식어가 절로 따라 붙게 됐지만, 만 19세의 앳된 그는 우승이 확정 된지 한 참이 지났음에도 떨리는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박민지는 16일 오후 경기도 용인 88컨트리클럽(파72·6583야드)에서 열린 2017 삼천리 투게더 오픈 4라운드에서 2타를 줄여 최종합계 11언더파 277타를 기록했다.
생애 첫 승에 도전했던 박결(21·삼일제약)과 ‘베테랑’ 안시현(33·골든블루) 역시 동률을 이뤘던 탓에 연장에 돌입했던 박민지는 3차 연장 끝에 두 선수를 모두 물리치고 최종 승자가 됐다.
극작가가 일부러 집필하기도 어려운 시나리오 속에서, 박민지는 말 그대로 극적인 우승을 차지했다. 그가 신인이었기 때문.
지난 1984년 LA 올림픽 핸드볼 은메달리스트인 김옥화씨를 모친으로 둔 박민지는 2016년 골프 국가대표를 지냈고, 지난해 세계 팀아마추어 챔피언십 여자단체전 우승으로 KLPGA 정회원 자격을 획득했고, 2017 KLPGA 투어 시드 순위전 본선에서 8위를 기록하며 프로무대에 직행했다.
아마추어 무대를 평정하고 프로 무대에 화려하게 데뷔했지만, 사실 박민지가 첫 해부터 선전할 것이라 기대하는 이는 그리 많지 않았다. 아무래도 프로와 아마추어는 엄연한 실력차가 존재하기 때문.
그러나 박민지는 이러한 편견을 단 2번째 대회 만에 산산 조각냈다. 지난 6일 롯데렌터카 여자오픈에서는 38위에 머물렀지만, 삼천리 오픈에서는 당당히 1위에 올랐다. 게다가 투어 통산 2회 우승은 물론 LPGA 경험까지도 보유한 베테랑 안시현을 꺾고 거둔 우승이었기에 의미는 더 했다.
박민지는 경기 직후 “대회가 열린 88 컨트리클럽이 평소 나만의 연습 장소여서 편안한 마음으로 쳤다. 사실 지금도 실감이 안 난다. 몸이 덜덜 떨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 너무 기쁘다. 정말 떨린다”라고 소감을 전했다.
하지만 소감과는 달리 경기 중 그의 모습은 침착함 그 자체였다. 전혀 떨리는 모습이 드러나지 않았던 것. 어느 때는 ‘신인’ 답지 않은 노련함 마저 묻어나왔다.
이에 박민지는 “사실 제가 겁도 많고 내성적인데 골프를 할 때는 마음을 다스리고 표정을 숨기고자 노력했다. 긴장을 많이 하는 편인데 떨리는 모습이 드러나지 않았다면 성공한 것 같다”라고 웃으며 답했다.
단순히 마음만 잘 다스린다고 해서 우승을 할 수는 없다. 기량이 뒷받침이 되지 못한다면 우승은 불가능하다. 그가 떨지 않고 대회에서 제 기량을 발휘 할 수 있었던 비결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박민지는 우승의 원동력으로 친숙함을 꼽았다. 그는 고교 재학 시절이었던 지난 2015년부터 지난해까지 88컨트리클럽이 선정한 장학생이었다. 매일 같이 해당 코스에서 연습을 해왔기에, 익숙할 수밖에 없던 것.
그는 “해당 코스에서만 2년 넘도록 연습을 해왔다. 장학생으로 선발되면서 마음껏 코스를 돌 수 있었다. 아침, 저녁으로 함께 연습했던 분들이 응원을 많이 해주셨던 부분도 큰 도움이 됐다. 내 집 같은 편안함이 우승의 비결이라고 생각한다”라고 답했다.
이어 그는 “편안한 분위기 속에서 퍼트에 집중하자고 생각했다. 대회가 열린 코스는 비거리에 욕심을 부리지 말고 짧게 쳐야 승산이 있다. 여기에 퍼팅감이 무척 좋았다. 대회 내내 치는 대로 들어갈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다”라고 덧붙였다.
어린 시절만 하더라도 크게 주목받지 못했던 선수라 자신을 소개하기도 했던 박민지. 그러나 첫 우승을 계기로 그는 그 누구보다도 큰 꿈을 그리고 있었다.
“올해는 1승만 하고 신인왕에 오르겠다는 목표가 있었는데, 이제는 2승을 하고 신인왕을 수상하고 싶어졌어요. 하지만 골프선수로서 이루고 싶은 궁극적인 꿈은 박세리, 신지애 선배와 같은 선수가 되는 것이죠. 한 마디로 한국 여자 골프선수의 대명사가 되고 싶어요.”
2015년 삼천리 오픈이 시작된 이래로, 해당 대회의 우승자는 해당 시즌 KLPGA를 대표하는 최고의 선수로 성장했다. 2015년 대회 우승자 전인지, 지난 시즌의 박성현은 모두 해당 시즌 상금왕을 차지하며 미국 무대 진출이라는 쾌거를 이뤄냈다.
과연 ‘대형 신인’ 박민지 역시 선배 ‘삼천리 오픈 여왕들’의 전철을 그대로 밟게 될 수 있을까. 전철을 밟을 수만 있다면 그가 바라는 ‘한국 여자 골프선수’의 대명사가 되는 일 역시 결코 불가능한 일은 아닐 것이다.